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마스크걸>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배우 이한별에게는 현실로 펼쳐진 일이다. 넷플릭스에 작품이 공개되자마자 하루아침에 온 세상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자신을 향한 질문이 이어지는 세상. 단숨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뀐 지금 그는 어떤 생각을 품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의 자세는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올곧고 단단한 모양이었다.
1. [RSK] <마스크걸>로 인생의 새 챕터가 열린 지금,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마스크걸> 공개 후 최근까지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느라 개인적인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인터뷰 일정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데 며칠간은 계속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평소에 하던 취미생활이나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원래 생활 루틴을 찾으려고 하는 중입니다. 아직은 분주했던 일정의 여파가 남아 있긴 하지만 서서히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 [RSK] 1000:1의 경쟁을 뚫고 오디션에서 합격했다고 들었어요. 합격 소식을 들은 순간은 어떤 기분이었어요?
합격 소식을 듣기 한 달 전부터 필요한 준비를 먼저 해나가던 중이었습니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든 해내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고, 캐스팅이 확정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불확실하게 진행되던 일이 정리됐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모든 경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필요한 것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쁘기도 했지만, 마냥 즐거운 마음보다는 앞으로의 일들에 책임감이 생기는 기분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3. [RSK]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어요. 드라마 오픈 후 가장 달라진 건 뭐예요?
주변에서 저에 관련된 기사나 영상, 사진들을 많이 보내주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누구나 찾아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라는 사람에 대해 공유하는 것 자체가 익숙지 않아서 쉽게 즐기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사실 아직은 연기가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제 모습이 어색해서 좀 외면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4. [RSK] 주변을 둘러싼 것, 나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순식간에 바뀌었잖아요. 그러면서 깨닫게 된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없는지 궁금해요.
아직까지 반응을 찾아보지 않고 있어서 저를 둘러싼 변화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작품 공개 전에는 걱정이 있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대범하지 못할 줄은 몰랐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새 만나는 분마다 전혀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고 차분한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해주셔서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5. [RSK] <마스크걸>은 국내 1위는 기본이고 해외 72개국에서도 톱10에 올랐어요.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이런 기록들이 한별 님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사실 지금 제가 겪는 일이 처음인지라 아직 모든 게 얼떨떨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부터 생각하느라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소식을 들어도 체감으로 크게 느껴지지는 않고 머리로만 ‘그렇구나’ 하고 상황 파악을 하는 데에 그치게 되는 기분입니다. 많은 분이 함께 고생하며 만든 작품인데, 좋은 결과가 있어서 모두에게 더욱 뜻깊은 시간으로 남은 것 같아요. 힘들었던 일들도 위로가 되고, 함께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6. [RSK] 사실 대중의 시선에선 이한별이 한 번에 떠오른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불안한 생활을 견딘 끝에 얻어낸 결과잖아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텐데, 그 순간을 견디게 해 준 건 뭐였어요?
멋진 이유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가장 큰 버팀목은 꿈을 향한 저의 철없는 마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숱하게 봤던 영화들 덕분에 제 찌질한 현실조차 마음을 다해 청춘을 보내고 있다는 감각으로 쉽게 치환했고, 주변의 반대나 마음처럼 되지 않는 세상일도 결국은 꿈을 이룰 주인공의 가장 어두운 시절로 승화시키는 객기 섞인 생각을 진심으로 믿으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힘들 것을 알고 시작했음에도 현실에선 예상보다 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어요. 때문에 고비가 올 때마다 현실적인 문제에만 빠져들었다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빨리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서 한편으로는 ‘철이 없어 다행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7. [RSK] 몇 편의 독립영화를 거쳐 <마스크걸>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시간에서 배운 게 있다면요?
연기를 하면서 같은 온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작품을 만든다는 건 경험할수록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 본질적인 마음은 모두 같지만, 그것의 형태나 지키는 방식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조급함을 버리고 제가 가진 것에 더 집중하면서 그것을 잘 다듬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배움이 가장 깊이 남았고, 오래도록 도움이 되었습니다.
8. [RSK] 모미의 이야기는 직장에서 시작해요. 실제로 사회생활을 경험했던 이한별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 있었을까요?
저 역시 일을 계속하면서도 연기를 준비했잖아요. 밤에는 BJ로 생활하고 피곤하게 출근하는 모미를 보며 매일 회사에 가서 일하면서도 속으로는 딴생각하는 부분이 공감됐습니다. 그리고 모미의 회사 팀원들은 조금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개성 넘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는 점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9. [RSK] 캐릭터를 숙지할 때 모미와의 유사성을 가장 깊게 느낀 순간은 언제예요?
상처를 가졌다는 점, 그 부분을 모두 성숙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원하는 것을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이라는 점이 모미와 가장 닮은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미는 일상생활에서도 방송할 때도 불완전한 모습으로 타인에게 쉽게 평가나 비교를 당하고 그것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입니다.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본인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느껴지는 언행이 보여서 저와의 유사성을 많이 느꼈습니다.
10. [RSK] 내 연기를 향한 반응 중 가장 기뻤던 코멘트를 떠올려 본다면요?
제 연기를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고 반응을 듣는 일이 처음이라 관심을 가져주시는 모든 반응이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특히 제 연기를 보면서 모미에게 마음을 줄 수 있었고, 앞선 모미의 모습을 떠올리며 끝까지 감정에 이입할 수 있었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첫 번째 모미가 해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를 풀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인 것 같습니다.
11. [RSK] 만약 내 이야기를 드라마나 영화로 엮는다면 어떤 스토리가 될 것 같아요?
제가 보내온 시간을 떠올리면 독특한 흐름보단 하루하루 일상을 성실하게 채워가자는 생각에 집중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래서 특별한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보다는 매일의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가끔 실컷 웃는 일도 생기고, 어쩌다 예고 없이 상처받는 사건도 일어나고, 덜컥 새로운 일이 시작되기도 하는 그런 한 사람의 성장기를 담은 모큐멘터리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2. [RSK] 이십 대의 막바지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건 보통의 용기로는 불가능한 일일 것 같아요.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연기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요?
크고 작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원하던 대로 연기하지 못하던 당시의 마음을 곱씹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이 일을 잃고 살아갈 날을 상상하다 보니 지속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수많은 결심 끝에 연기에 도전했다기보다는, 모든 경험이 도움이 되고 힘이 되어줄 거란 믿음으로 조금은 다른 길을 기꺼이 선택하고, 오히려 그 길이 행복하게 느껴졌던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13. [RSK] 여러 선택지 가운데 최선을 선택하는 나만의 비결을 공개한다면요?
중요한 결정일수록 직관을 따르는 편입니다. 생각도 많고 겁도 많아서 단호하게 마음을 잡는 게 쉽지 않았는데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벼리기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택하고 책임지기가 두려워 주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후로는 결정하고 행동하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그 선택으로 작게나마 결과를 얻어보고, 벌어지는 일들을 책임지는 것을 반복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결과든 시도했으므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마음이 가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 수 있고,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4. [RSK] 무언가를 주저하는 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남겨주세요.
무언가에 주저하게 된다는 건 그 안에 넘치게 많은 것들이, 현실보다 큰마음이 담긴 일이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소중하고 애틋해서 한순간 깨져버릴 듯한 유리구슬을 닮은 마음은 품 안에 안고 종종거리게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기어이 세상에 꺼내어 투명하게 빛나는 모습을 눈에 담고 나의 용기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느끼며 살아가기를 응원합니다. 저도 아직 많은 순간 주저하며 살아가기에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15. [RSK] 다음 작품을 통해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요?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도 많고, 어떤 작품과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지 당장은 예상할 수 없지만 모미는 짧은 시간 동안 큰 감정의 진폭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생의 굴곡을 견디며 살아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미래의 작품으로는 이미지도 연기도 조금은 편안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16. [RSK] 마지막으로 미처 남기지 못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마스크걸>은 배우로서 저의 모든 처음과 시작을 함께한 소중한 작품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고, 많은 분들께서 관심 가져 주신 덕분에 더욱 뜻깊게 남을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모습과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계속해서 기대와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Photographs by NETFLIX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