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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 “역전할 수 있을 것처럼 살아보자”

이승윤은 역전을 노래한다. 그 목소리는 힘차게 터지는 폭죽을, 줄기차게 쏟아지는 폭포를 닮았다. 

 

 

1. [RSK] 약 1년 반 만에 다시 만났어요. 그땐 1월에 만나서 새해 소망 세 가지를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체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체력은 많이 좋아졌나요?

 

아마 그때도 정규 앨범 발매와 전국 투어를 앞두고 있어서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정확히 같은 상황에 답변하게 되어서요. 이번 앨범을 1년 3개월 정도 준비했더니 체력이 발바닥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기분입니다. 그래도 앞으로 일정까지 체력, 체력, 체력!

 

 

2. [RSK] 다시 만난 지금, 마음속 가장 큰 공간을 자리 잡고 있는 이슈는 뭐예요?

 

보람인 것 같습니다. 보람찼으면 좋겠다. 나에게나 이 여정을 함께해 주는 모든 이에게나, 보람을 주는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요즘 들어 부쩍 듭니다. 

 

 

3. [RSK] (인터뷰일 기준) 정규 3집 발매에 앞서 곧 선공개 EP가 발매되죠? 신보 [역성]은 어떤 앨범이에요?

 

거스를 수 없는 자명한 것들을 이번 한 번만큼은 거슬러보겠다는 태도에 관한 앨범입니다. 타이틀곡인 <폭포>와 <폭죽타임>을 포함해 8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1, 2곡 먼저 선공개를 하려다 ‘이건 빨리 부르고 싶은데’, ‘이건 여름에 어울릴 것 같은데’ 하며 하나둘 추가하다 보니 8곡이나 되었습니다. 

 

 

4. [RSK] 이번 EP는 소설과도 닮아있는 것 같아요. 1번부터 5번 트랙은 이야기의 절정 부분을, 6번부터 8번 트랙은 행복한 결말을 그린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말씀을 듣고 보니 아무래도 거스른다는 테마 자체가 기승전결 중에서 전 즈음에 해당하는 것 같긴 합니다. 사실 결말은 없는 이야기를 쓴 것 같습니다. 소설로 치면 아직 마지막 장을 어떻게 채워 넣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그냥 써내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장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기승 정도였을 수도 있고, 전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을 담아버리자’, ‘지금 이 장에는 이 이야기를 써버리자’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행복한 결말로 들려서 다행이네요.

 

 

5. [RSK] 더블 타이틀 두 곡을 들으며 느낀 건, 때를 기다리다 역전의 타이밍을 노리는 소년 만화 주인공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인상은 이승윤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있을 거란 생각도 했고요.

 

역전의 타이밍을 노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금 이 타이밍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역전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살아내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이밍을 기다린 게 아니라, 타이밍이 마음가짐을 쥐여준 것 같습니다. 저는 한방이나, 로또를 바라며 사는 편은 아닙니다. ‘뚜벅뚜벅 걷자’ 파인데 그래도 이번만큼은 역전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살아보자, 그렇게 마음과 시간을 내어준 이들에게 보람이라는 걸 한번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던 것 같습니다. 

 

 

6. [RSK] <폭죽타임>을 들을 땐 폭죽이 터지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칠흑에 생채기를 내어 빛이 살짝씩 쏟아져 나오다가 나중엔 완전히 폭죽이 터지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되다가 나중엔 흉포한 사운드가 쏟아지길 원했는데 생각보다 기타 베이스 드럼이 함께 흉포해지면 사운드가 지저분해져서 오히려 카타르시스가 적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적절한 흉포함의 농도를 녹음하는 데 애를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폭죽 효과음은 신스 소리와 샘플 소리들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7. [RSK]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하나만 꼽는다면 어떤 곡의 어떤 가사를 고를 거예요?

 

매일 다른데 지금은 ‘최고의 나도 최악의 나도 최선의 나도 어차피 나는 나야’로 하겠습니다.

 

 

8. [RSK] 이 가사를 쓸 땐 어떤 마음이었어요?

 

나 자신이 된다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이왕 나로 태어난 김에 나로 잘 존재하고 싶다. 최고가 되어도, 최악이 되어도, 최선이 되어도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나는 나일 수밖에 없으니 이게 나야라고 확증하고 우기지 말고 그저 그때그때 잘 존재하자.

 

 

9. [RSK] 어느덧 3집입니다. 1집과 2집에는 없었던 변화를 꼽아본다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0부터 함께 만든 앨범입니다. 형식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과정적으로나 밴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자의식 과잉을 한번 해볼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 후회할 가사를 지금 이 타이밍에 써보자 했던 것 같습니다. 

 

 

10. [RSK] ‘장르가 30호’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이승윤의 음악은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요. 내 음악을 나답게 만드는 것들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뭐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모든 가수의 노래는 그 가수다운 노래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동시에 아주 완전히 특별한 음악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제 음악엔 비틀스, 오아시스, U2, 콜드플레이, 이적, 서태지, 이승환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저 이승윤이라는 사람의 삶으로 그 음악들을 매듭짓기 때문에 이승윤의 음악이 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11. [RSK] 지금의 이승윤이 되기까지, 이승윤을 관통한 음악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어떤 음악이 이승윤을 가슴 뛰게 하고, 이곳에 오게 이끌었는지요.

 

브릿팝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비틀스로부터 시작되는 수많은 영국 밴드의 음악에 매료되어 기타를 잡게 되었습니다. 가장 처음 기억나는 팝은 <Let It Be>인 것 같은데, 제 기억에 EBS 단막극 같은 곳에 엔딩 음악으로 쓰였습니다.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달려 나가 내용도 모르는 드라마의 엔딩을 끝까지 다 보고 그때부터 <Let It Be>의 흔적이 있는 노래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12. [RSK] 내게 영감을 불어넣고 악상을 떠올리게 하는 나의 뮤즈는요? 

 

솔직히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보통 분노라고 표현하는데,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영감을 한 군데서, 명확하게 받는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부유하는 일상의 틈 속에서 수집된 마음들을 가지고서 곡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13. [RSK] 음악을 하고부터 수많은 무대에 올랐죠? 그중 가슴 뛰는 순간을 한순간만 골라본다면, 지금 이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떤 장면이에요?

 

작년 연말 <뒤끝>이라는 콘서트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고, <폭포> 초연을 했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그때 객석의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아무도 들어보지 않은 노래였던 <폭포>를 불렀는데, 그 현장감은 다시 느끼고 싶어도 영원히 느껴볼 수 없는 짜릿함이었습니다. 

  

 

14. [RSK] 이다음엔 어떤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사실 10월에 전주와 부산 야외 공연장에서 단독 공연을 여는데요. 아주 오랜 저의 로망이었습니다. 제발 비가 오지 않기를 벌써 하늘에 빌고 있습니다.

 

 

15. [RSK] 내 음악을 선보이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하며 얻게 된 것도 많을 것 같아요. 그중 가장 값진 것은 뭐라고 생각해요?

 

내가 걸어가는 길에 대한 응원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기의 길을 걷는데 그 길을 불특정 다수가 응원해 준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일 테니까요. 나는 그냥 나로 살고 있을 뿐인데 응원을 받고 있다는 값진 순간들을 새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16. [RSK] 이승윤의 음악 인생을 0부터 100까지라고 가정했을 때, 이승윤은 지금 어디쯤 있나요?

 

현실적으론 120, 자의식 과잉적으론 50인 것 같습니다. 

 

 

17. [RSK] 10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감도 안 올 정도로 저는 올해만 삽니다.

 

 

이승윤의 다양한 화보 이미지와 인터뷰 전문은 곧 발간될 롤링스톤 코리아 12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hotographs by Chanmok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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