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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넘어져도 다시": ALL’N이 바이올린 선율에 담아낸 삶의 자서전

"바이올린을 들으면 ALL’N이 떠오르도록":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뮤지션

 
Interviewer: 나탈리아 카벵게 (Natalia Kabenge)
 
 
K-팝 산업이 거침없는 진화를 거듭함에 따라, 아티스트들 역시 선구자들이 터놓은 길 위에서 한계를 뛰어넘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그 최전선에 선 인물이 바로 싱어송라이터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ALL’N(올린)이다. 그는 음악이라는 오랜 갈망을 통해 비로소 가장 본연의 자아를 찾아낸 뮤지션이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한 이후, 그 선율은 그의 삶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핵심 축이 되었다. 뉴욕대학교(NYU)에서 뮤직 비즈니스를 전공하던 중, 그는 돌연 안락한 궤도를 벗어나 전업 뮤지션으로서의 삶이라는 과감한 모험을 선택했다. 이후 세계 각지를 유랑하며 업계 전문가들로부터 노하우를 습득했고,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리며 음악 여정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마음속을 울리던 꿈을 향해 독립 레이블인 'SKS 엔터테인먼트'를 직접 설립하기에 이른다.

 

<롤링스톤 코리아>는 스스로를 믿고 던진 던짐(Chance)이 어떻게 가장 위대한 꿈을 현실로 바꾸어 놓았는지, 솔로 아티스트 ALL’N을 만나 그 깊이 있는 서사를 들어보았다.

 

1. 먼저, <롤링스톤 코리아> 독자 여러분께 인사와 함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LL’N: 안녕하세요, 바이올린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K-팝 솔로 아티스트이자, SKS 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 겸 대표 ALL’N입니다. 아홉 살에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이후 제 여정은 다소 독특하게 전개되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으로 시작해 중국에서의 아이돌 트레이닝,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 프로듀싱, DJing, 그리고 비즈니스 영역을 거쳐, 결국 제 레이블을 직접 설립하며 K-팝씬으로 돌아오게 되었죠. ALL’N이라는 이름으로 저는 보컬, 랩, 댄스, 프로듀싱,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특정한 하나의 장르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바이올린은 제 모든 스펙트럼을 하나로 꿰어내는 일종의 '실'이며, 제 궁극적인 목표는 K-팝에서 바이올린 선율이 들릴 때 대중이 자연스럽게 ALL’N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2. 올 4월, 오랜 시간 아이돌이라는 꿈을 향해 달린 끝에 마침내 ALL’N으로서 공식 솔로 데뷔를 이루어 내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티스트로서 새로운 여정의 출발선에 선 기분은 어떠신가요?
ALL’N: 여전히 다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시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을지 아득했던 침묵의 시간이 꽤 길었거든요. 제 원래 궤도는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외부 변수들로 인해 탈선되었고, 이후 정확히 언제, 어떤 모습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채 수년간의 준비 기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지난 4월, <뮤직뱅크>와 <엠카운트다운> 무대에 올랐을 때 느꼈던 감정은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벅찼습니다. 단순히 "드디어 데뷔했다"는 감격을 넘어, 무대도, 컴백을 준비해 줄 기획사도, 기약조차 없던 그 아득했던 세월들이 스쳐 지나갔죠.
동시에, 데뷔는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를 절감하게 해준 계기였습니다. 감사하지만, 아직 어떤 도달점에 이르렀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출발선에 섰다는 느낌입니다.


 

3. 활동명인 ‘ALL’N’은 사활을 걸고 몰입한다는 의미의 ‘All in’과 본인의 정체성인 바이올린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아티스트로서 ‘올인(All in)’한다는 것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LL’N: 꿈을 그저 말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꿈에 대한 완벽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구상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과정을 직접 습득하겠다는 결의죠. 그것이 곡 프로듀싱이든, 뮤직비디오 편집이든, 비즈니스 구조에 대한 이해든, 인재를 채용하거나 자금을 조달하는 일이든 가리지 않고요.
이러한 철학 때문에 이 이름이 운명처럼 느껴졌습니다. 'ALL’N'은 'All in'에서 유래했지만, 동시에 한국어 '바이올린'이라는 단어 속에 '올린'이라는 발음이 들어있기도 하니까요. 이 두 가치가 제 프로젝트의 본질을 완벽히 요약해 줍니다.
물론, 몰입한다는 것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과정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점도 계속 배워가는 중입니다. 워낙 생각을 멈추기 어려워하는 성향이라 삶의 균형을 잡는 것이 숙제이지만, 적어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큼은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4. 이번 여정의 일환으로 독립 레이블 ‘SKS 엔터테인먼트’를 직접 설립하셨습니다. 아티스트와 경영자라는 양쪽의 독특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레이블을 설립할 때 가장 유용했던 과거의 경험이나 통찰은 무엇이었나요?
ALL’N: 재능이나 뛰어난 곡 하나만으로는 음악을 프로페셔널한 필드에 릴리즈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상업적 현실을 깨달은 점입니다.
대중이 보는 K-팝 뮤직비디오는 3~4분에 불과하지만, 그 이면에는 프로듀서, 엔지니어, 믹싱/마스터링 전문가, 안무가, 댄서, 스타일리스트,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촬영/조명 팀,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유통사, PR 팀 등 수많은 인력이 얽혀 있습니다.
원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펼치지 못했던 시기 동안, 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실제로 구동하는 비즈니스 메커니즘을 공부했습니다. 여러 국가에 거주하고 작업하며 문화권마다 콘텐츠를 소모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체득했고, 무엇보다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직접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자본을 모았죠.
가장 값진 레슨은 '창작 아이디어를 실행 가능한 비즈니스 플랜으로 전환하는 법'을 익힌 것입니다. 아티스트로서의 저는 "멋진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지만, CEO로서의 저는 "누가 연출하고, 예산은 얼마이며, 데드라인은 언제까지인가? 그리고 스태프들의 정당한 보상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질문합니다. 매일 이 두 가지 시선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5. 과거 서바이벌 프로그램 <청춘유니> 출연 및 아이돌 그룹 '하이팅(Highting)' 활동을 거치셨습니다.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작업은 기존 그룹 활동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요?
ALL’N: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감이 차원이 다릅니다. 그룹 활동에서는 무대 위의 에너지와 안무, 나아가 심리적 압박감까지 동료들과 분산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 아티스트는 무대 위에서 빈틈이 생기더라도 이를 채워줄 조력자가 곁에 없습니다. 모든 공백을 오롯이 혼자 채워내야 하죠.
그 점은 싱글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 뼈저리게 느껴졌습니다. 댄서 없이 완전히 홀로 무대를 채워야 했던 첫 작업이었거든요. 바이올린과 카메라, 그리고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정수만이 존재했죠.
하지만 솔로 아티스트가 갖는 절대적인 자유도 역시 사랑합니다. 전통적인 아이돌 그룹의 규격화된 구조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방식으로 바이올린 중심의 유기적인 편곡을 시도할 수 있고, 곡의 서사에 따라 보컬, 랩, 댄스, 프로듀싱, 악기 연주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습니다. 숨을 곳이 없다는 사실은 두렵지만, 그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강제하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6. 바이올린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서사의 핵심이었고, 이는 예명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바이올린을 아티스트 정체성의 중심축으로 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LL’N: 어느 순간, 제 삶의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이 악기야말로 저를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홉 살 때 클래식 정통파 연주자로 시작해 콩쿠르를 거치며 바이올린을 매우 엄격하게 대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삶과 K-팝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별개의 평행선으로 분리해 두고 있었죠. 하지만 문득 '왜 또 다른 틀에 맞추기 위해 내 가장 확실한 정체성을 감추려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바이올린 연주를 결합한 DJ로서 일렉트로닉 음악 무대에 섰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 악기가 클래식이라는 고전적 틀을 벗어나서도 충분히 강렬한 생명력을 발휘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K-팝과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이어졌고요.
이제 저는 ALL’N의 모든 디스코그래피에 바이올린의 텍스처를 남기고자 합니다. 다만 그것이 상투적인 클리셰로 떨어지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때로는 공격적이고, 때로는 감성적이며, 일렉트릭 기타처럼 폭발하거나, 어떤 순간엔 존재감을 숨기다 극적으로 터져 나오게 만들 겁니다. 그 사운드적 변주야말로 제가 추구하는 재미입니다.


 

7. 최근 발매작 에서도 드러나듯, 컨템포러리 바이올린 사운드를 극적으로 적극 활용하고 계십니다. 팝 음악을 위해 바이올린 라인을 송라이팅하는 과정은 어떠한가요? 그 과정에서 겪는 사운드적 난제는 무엇인가요?
ALL’N: 역설적이게도 가장 힘든 작업은 '연주하지 않아야 할 순간'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입장에서는 연주자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곡 전반에 바이올린 라인을 빽빽하게 얹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하지만 팝 음악은 이미 보컬, 드럼, 베이스, 신시사이저, 기타, 각종 SFX 등이 촘촘히 믹싱된 밀도 높은 구조를 가집니다. 바이올린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른 악기들과 끊임없이 난투극을 벌이게 되면, 악기 특유의 미학이 희석되고 곡 전체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바이올린을 하나의 '보컬리스트'처럼 다룹니다. 이 섹션에서 이 악기의 프레이징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훅을 끌고 가는가, 보컬의 멜로디라인에 화답하는가, 아니면 전체적인 공간감을 형성하는가? 화려한 솔로가 필요한가, 아니면 단 2초간의 절제된 연주가 더 파괴적인가?
에서는 가사가 가진 서사의 결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바이올린이 웅장하고 시네마틱한 공간감을 형성하도록 연출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사운드의 밀당과 균형은 매 작업마다 마주하는 과제입니다. 때로는 가장 길게 침묵한 끝에 터져 나오는 바이올린 라인이 가장 강력한 한 방이 되니까요.


 

8. 는 개인적인 삶의 궤적을 관통하는 매우 자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곡의 작업 과정과, 본인에게 가지는 음악적 의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LL’N: 는 제가 지금까지 세상에 내놓은 작업물 중 가장 자서전에 가까운 트랙입니다.
곡의 도입부는 아무도 제 노력을 알아주지 않던 외롭고 아득했던 세월을 조명합니다. 이어 꿈의 단편을 맛보았다가 이를 잃어버리고, 다시 바닥에서 시작해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풀어냈죠.
가사 중 "No blueprint, no hand to hold(도면도, 잡을 손도 없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문장이야말로 제 지난 수년을 가장 완벽하게 요약합니다. 아이돌이라는 기존의 궤도에서 이탈한 뒤, 직접 기획사를 설립하고 다시 데뷔하기까지의 과정에는 그 어떤 가이드북이나 매뉴얼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가공된 픽션이 아닌 제 실제 기억과 서사를 기반으로 쓴 곡이었기에 작업 과정 내내 감정의 동요가 컸습니다. 뮤직비디오 역시 빗속, 어둠, 추락과 재기, 그리고 절망과 희망의 대비를 통해 이러한 서사를 직관적으로 연출했죠. 촬영 중 코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는데, 콘셉트에는 없던 사고였지만 역설적으로 이 곡이 가진 치열한 생존의 서사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제게 는 "나 성공했다"라는 만세가가 아닙니다. "나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다"는 현재진행형의 선언입니다.


 

 

9. 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꿈을 향해 투신하는 이들을 위한 응원가이기도 합니다. 전업 뮤지션의 길을 택하며 본인이 희생해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으며, 그 과정이 남긴 삶의 교훈은 무엇인가요?
ALL’N: '확신'이라는 안정감입니다. 시간, 자본, 안락함, 여유, 그리고 어쩌면 더 평범하고 안정적이었을 삶 자체를 기회비용으로 지불해야 했죠.
레이블을 설립한다는 것은 수년간 아껴 모은 자금을 통장에 안전하게 두는 대신, 뮤직비디오, 음원 제작, 스태프 인건비, 스튜디오 대여, 안무, 마케팅 등 이 꿈을 현실화하기 위한 모험 자본으로 집어넣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했습니다.
최근 가장 뼈아프게 느끼는 희생은 '시간'입니다. ALL’N이라는 아티스트와 SKS라는 레이블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꼬리를 물다 보니, 물리적으로 쉬고 있는 순간에도 뇌는 멈추지 않고 비즈니스와 음악을 구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통찰은 '희생'과 '통제'의 명확한 구분입니다. 모든 것을 희생한다 해도, 음원의 성패나 대중의 반응까지 본인이 완전하게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알고리즘, 타이밍, 대중의 취향, 타인이 주는 기회는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사실뿐입니다.
그것이 제가 후회 없이 아티스트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10. 커리어의 이 시점에서 가장 깊은 감사함을 느끼는 대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LL’N: 주저 없이 제 팬덤인 '엔코어(N’CORE)'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이제 막 돛을 올린 극초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세계 곳곳에서 제 다음 행보를 진심으로 주시하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 모든 활동에 피드백을 남겨주시고, 음악을 소비하고, 성과가 아쉬울 땐 격려를, 좋은 일이 있을 땐 함께 기뻐해 주시죠.
최근 빌보드(Billboard)의 '이달의 K-팝 루키(K-pop Rookie of the Month)'로 선정되었을 때, 불과 수개월 전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데뷔 전만 해도 제가 만들어가는 이 세계에 누군가 관심을 가져줄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런 과분한 성과를 마주할 때마다 이 빛나는 인정에 깊이 감사하면서도, 제가 가장 하차선에 서 있을 때 저를 믿어준 이들이 없었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지점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11. 미국, 중국, 한국, 그리고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까지, 다양한 문화권을 오가며 살아온 유목민적 삶이 본인의 음악적 스펙트럼과 작업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ALL’N: 음악을 하나의 단일한 문화적 렌즈로만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미국의 주류 문화권에서 자랐고, 중국에서 트레이닝을 받으며 비즈니스를 경험했으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거친 모든 지역은 음악을 수용하고, 퍼포먼스를 소비하며, 리듬과 언어를 다루는 방식이 저마다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ALL’N의 모든 트랙을 천편일률적인 사운드로 복제하는 데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제 개인 플레이리스트 역시 잡식성에 가깝죠. 클래식 소나타를 듣다가 K-팝, R&B, 히프합, 페스티벌 EDM을 거쳐 완전히 이국적인 장르로 거침없이 넘어갑니다.
또한 글로벌한 환경에서의 경험은 '진정성 있는 감정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제 곡들 대부분이 영어가사와 한국어가 혼용되어 있지만, 멜로디와 퍼포먼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서사가 솔직하다면 텍스트의 뜻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국경을 넘어 그 감정이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12. K-팝이라는 거대한 신에 새로운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 아티스트로서 궁극적으로 어떤 족적(Impact)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ALL’N: 최우선 과제는 완성도 높은 뛰어난 음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서사와 비전은 음악의 본질적인 퀄리티에서 출발해야 하니까요.
나아가, K-팝이라는 유기적인 스펙트럼 안에서 '컨템포러리 바이올린'이라는 장르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 쉴 수 있는 독보적인 영역(Lane)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일회성 신기함에 그치는 이벤트가 아니라, 히프합, R&B, 일렉트로닉, 팝, 록 등 제가 탐구하는 어떤 장르 안에서도 유기적으로 생동하는 바이올린 사운드를 정착시키는 것이죠.
또한 제 서사가 불리한 위치나 절망적인 환경에서 시작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통적인 엘리트 코스나 타의에 의해 정해진 길을 걷지 못했기에, 저는 저만의 새로운 길을 직접 파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누군가 제 행보를 보고 "지금 내 팍팍한 현주소가 내 삶의 최종 장면은 아닐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품는다면 아티스트로서 더없이 값진 보람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SKS 엔터테인먼트가 확장됨에 따라, 이 임팩트가 ALL’N이라는 개인의 영역을 넘어설 수 있기를 꿈꿉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기회를 얻지 못한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정당한 무대를 제공할 수 있는 견고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죠. 물론 그 경지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까마득히 멀지만요.


 

13. 최근 차기 앨범 발매에 대한 힌트를 남기셨습니다. 향후 선보일 신보의 윤곽과 아티스트로서 기대를 걸고 있는 지점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나요?
ALL’N: 완성도 높은 정규 및 대형 프로젝트를 향해 차근차근 빌드업을 해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싱글들을 연쇄적으로 발매하며 곡마다 달라지는 ALL’N의 입체적인 페르소나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과정을 즐기고 있습니다.
다음 싱글의 타이틀은 으로, 전작인 와 가장 극명한 대척점에 서 있는 트랙입니다. 가 묵직하고 자전적인 감정선에 집중했다면, 은 제가 데뷔 첫 주 음악방송(<쇼! 음악중심>)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분들과 마주쳤던 유쾌한 실제 에피소드에서 모티브를 얻은 곡입니다. 그 위트 있는 해프닝을 랩 스토리텔링, 폭발적인 일렉트릭 기타, 헤비한 베이스, 둡스텝 요소가 가미된 일렉트로닉 사운드, 그리고 화려한 바이올린 연주가 어우러진 하이 에너지 트랙으로 승화시켰죠.
더불어 올 11월 발매를 목표로 사활을 걸고 준비 중인 또 다른 대형 프로젝트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지극히 기대되면서도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향후 이 트랙들이 하나의 정규 앨범이라는 거대한 디스코그래피로 집대성될 때, 대중이 비로소 제가 정의하는 '바이올린 드라이븐 K-팝(Violin-driven K-Pop)'의 진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똑같은 스타일을 12곡 복제한 앨범이 아닌, 각 트랙이 뚜렷한 아티스틱 정체성을 가지되 바이올린과 저라는 페르소나가 하나의 완성된 서사로 관통하는 그런 앨범을 선보일 것입니다.
 
 사진제공 : AL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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