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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황제 전소연

전소연, NEVER DIE

전소연은 완벽하다.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완벽’이란, 잘 코팅된 프리미엄 초콜릿 표면처럼 흠 없이 매끈매끈한 어떤 것이다. 전소연의 완벽은 다르다. 그는 고대의 전투부대처럼 긴 창을 들고 웅장한 밀집대형으로 전진해 청중의 가슴을 무자비하게 찌르고, 관통된 부위를 카타르시스로 흥건하게 적신다. 이것이 전소연이 선사하는 완벽이다. 


전소연의 음악에는 고통과 전율이 있다. “뜨겁지 못한 날들에 홀로 데인 흉터를(<화(火花)>)”를 어루만지며 생명을 불태워 음악을 만든다. “앨범을 내면 매번 슬럼프가 와요. 모든 걸 쏟았기에 다음에 이거보다 나을 자신이 없거든요(<VOGUE KOREA> 2021년 7월호 인터뷰 중)”라고 말한다. 그의 음악은 먼 곳이 아니라 높은 곳을 바라본다. “Oh my god She took me to the sky(<Oh my god>)”라고 노래하며 더 높은 경지를 향해 몸짓한다. 그래서 때로 서글프다. 그의 음악을 ‘에스닉’하다고 평가하는 건 틀렸다. 그의 음악은 제의(祭儀)적이다.


(여자)아이들이 오랜 공백 끝에 발표한 데뷔 4년 만의 첫 정규앨범 [I NEVER DIE](2022)는 전소연이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각오로 만들었다. 가장 ‘완벽’하며, 가장 큰 ‘고통과 전율’이 있는 앨범이다. 이전까지 전소연의 음악에 ‘죽을 각오로 임한다’의 기백이 담겨있었다면, [I NEVER DIE]는 ‘죽거나 죽이거나’의 결기로 인정사정없이 달려든다. 앨범 아트와 타이틀곡 <TOMBOY>의 뮤직비디오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데쓰 프루프>(2007)를 오마주했다. 앨범 곳곳에 ‘죽기’의 메타포가 넘쳐흐른다. CD 버전 <TOMBOY>의 “fucking tomboy”, “I like to sex”라는 타부를 깨는 가사까지 더해져 (여자)아이들의 음악이 결코 ‘여자 아이들’도 ‘여자 아이돌’의 것도 아님을, 사정없이 반격하고 한계 없이 정복해낼 위력과 위엄이 있음을 만방에 증명한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그래서 전소연은 결코 죽지 않는다. 늘 죽을 각오로 음악을 만들기 때문이다. 

 




전소연, AM

전소연은 경쟁한다. 승자독식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피 튀기는 텔레비전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프로듀스101>, <언프리티 랩스타>, <퀸덤>에 참전해 모두 영웅이 되어 귀환했고, “전 경쟁을 좋아해요. 극한 상황에 밀어붙여지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 상황에선 할 수 없던 일도 하게 되죠. 제일 잘하고 싶어서 불타올라요(<GQ KOREA> 2020년 1월호 인터뷰 중)”라며 경쟁을 긍정한다. 그의 경쟁은 귀족적이다. 등수를 매기기 위해서가 아닌, 명예를 위해 목숨 건 한판승을 벌인다. 


<프로듀스101 시즌 1>(2016)에서는 ‘프리티’가 실력이자 표준으로 강제된 케이팝 여자 아이돌 유니버스에 도전하는 자작 랩으로 인상을 남겼다. 그가 세상에 선보인 첫 랩의 가사는 “살다 보니 붙여진 뭐 하나 할 애. 늘 확신에 차있는 상태. 누가 뭐래도 내 일에 대해서는 나는 절대 부끄러워 안 해”였다. 수많은 래퍼들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뜨거운 스포트라이트, 고조된 무드에 심취해 지킬 수 없는 다짐을 해왔다. 그러나 전소연은 콜로세움처럼 높은 101개의 의자가 내려다보는 무대에서 처음 다짐했던 대로, 늘 “뭐 하나”를 해 왔고, 확신을 주는 음악을 만들어왔다. <프로듀스101>에서 전소연은 왕좌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그의 최종 등수가 아니라 존재감이다.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 3>(2016)에서는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십 대 아이돌 연습생으로 참전해, 성인 프로 래퍼들 사이에서 겁먹거나, 가사 한 번 절지 않는 독보적인 실력과 음악적 야망을 보여줬다. ‘여성 아이돌 연습생’을 조이는 편견과 한계의 포승을 끊고, ‘프리티’와 ‘언프리티’의 이분법으로 감히 재단할 수 없는 전소연의 존재를 증명했다. 


<퀸덤1 >의 시즌 1(2019)에서는 전설을 만들었다. 전소연의 랩 “다 안녕하십니까. 여기 다 바쁘니까 실력으로 소개할게 우린 like 혜성 같은 불도저 (...) 그래 저 왕관을 내놔”로 시작하는 데뷔 만 1년 차 신인 (여자)아이들의 호기로운 오프닝 무대는 <퀸덤1> 이후에 이어진 <로드 투 킹덤>(2020), <킹덤: 레전더리 워>(2021), <퀸덤2>(2022) 시리즈를 모두 아울러 ‘적자생존’이라는 쇼의 정체성을 리드하는 프리퀄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대망의 파이널 경연 <LION> 무대. 필자의 얘길 잠깐 하자면, <LION> 무대에 집중하기 위해, 공연 시작 전 집의 모든 조명을 끄고, 세탁기도 멈추고, 정자세로 앉아 스스로 왕관을 쓰는 전소연을 알현했다. 그가 노래의 클라이맥스에서 “I’m a queen!”을 외치며 웃는 순간, 세상이 뭔가 끝장나는 것 같았다. 그날 정말 뭔가가 끝났다. 그리고 시작됐다. 누가 봐도 예쁜 외모, 대형기획사, 음악적 야망을 억누른 고분고분한 태도라는 케이팝 제국 여자 아이돌의 폐쇄적 ‘혈통’을 끊고 전소연이 왕관을 쓰며, 케이팝의 새로운 전기를 시작했다.


전소연, THE EMPEROR

전소연은 부정한다. <TOMBOY> 뮤직비디오는 전소연이 ‘The Queen’이라 적힌 낙서에 립스틱으로 엑스를 긋는 것으로 끝난다. 솔로앨범 [Windy](2021)의 무섭도록 세련된 수록곡 <Is this bad b****** number?>에선 “제트를 이끄는 아이돌 래퍼는 킹인지 퀸인지 그게 누구인지”라며 ‘여자치고 잘하는’ 전소연이 아니라 그냥 전소연임을, 성별 리그 구분을 부정한다. 


전소연은 여왕도 왕도 아니다. 그는 케이팝의 황제다. 왜 전소연이 황제인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전소연이 아니면 대체 누가 그 왕관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사진 제공 - 큐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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