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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클로이 플라워, 팝시컬 시대를 정의하는 여성 아티스트

클로이 플라워(Chloe Flower)는 클래식 음악의 방식과 문법을 가장 대담하게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로듀서로서 ‘팝시컬(Popsical)’이라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개척하며 클래식의 경계를 넓히고 있는 그는, 동시에 오랫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작곡가들의 목소리를 다시 세상에 들려주는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음악에는 전통을 새롭게 바라보는 상상력과 사회적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특히 음악 교육의 의미를 확장하고, 음악이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클로이 플라워가 그려갈 내일의 음악은 단순한 장르의 실험을 넘어, 여성 창작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클래식의 미래를 대중과 다시 연결하는 새로운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선율이 앞으로 이 시대의 예술과 사회에 어떤 변화를 남길지 기대된다. 그에게 물었다. 지금 이 세계에 필요한 음악은 무엇이며, 그가 만들어가고 싶은 변화는 무엇인지.

 

 

1. [RSK] <롤링스톤 코리아> 구독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클로이 플라워입니다. 클래식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로듀서이고, 자랑스러운 한국계 미국인이기도 합니다! 제 음악을 통해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클래식 음악이 얼마나 멋지고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장르인지 보여주는 건데요, 클래식 음악가들도 ‘락스타’들이기 때문이죠. 또 다음 세대도 악기를 배우고, 음악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음악 교육의 대표 주자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2. [RSK] 이번 앨범 [She Composed: The Holidays]는 모든 곡이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최초의 연주 앨범이에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 [She Composed]라는 제목에 담긴 메시지를 들려주세요.

 

이 앨범은 ‘연말 시즌에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음악 중 여성 작곡가가 쓴 곡이 거의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으면서 시작됐어요. 저는 어릴 때 헨델의 <메시아>,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앤더슨의 <슬레이 라이드> 같은 위대한 작품들을 들으며 자랐어요.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 중 여성 작곡가의 작품은 거의 들을 수 없었죠. 뭔가 음악의 큰 세계가 그 시절에서 통째로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잊히고 가려졌던 여성 작곡가들의 목소리를 다시 공연장과 가정, 그리고 우리의 연말 홀리데이 문화 속으로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She Composed]라는 타이틀은 단순한 제목을 넘어, 수 세기 동안 무시당하고 역사에서 지워져 온 모든 여성 작곡가를 향한 헌사예요. 저는 21년 동안 음악원에서 공부했지만, 여성 작곡가의 곡을 배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제가 성장하면서 만약 여성 작곡가나 여성 지휘자를 봤다면, 저도 더 일찍 작곡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을지도 몰라요.

 

 

3. [RSK] 이번 앨범 속 여러 작품 중에서, 특히 영감받거나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한 가지만 소개해 주세요.

 

특히 카시아니(Kassiani)의 <When Augustus Reigned>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이 곡은 저와 줄리아드 음악원 학장인 데이비드 루드윅(David Ludwig)이 함께 편곡했는데, 깊은 음악성과 지식을 가진 분과 함께 작업하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원래 이 곡은 800년대쯤 단순한 멜로디만 존재했던 작품이라 악기 편성과 화성을 새롭게 더해가는 과정이 매우 도전적이면서도 영적인 경험이었죠. 어제도 이 곡을 연습하다가 다시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그의 음악에는 제 마음 깊숙이 울림을 주는 섬세함이 있어요. 그리고 그가 자신의 목소리를 지켜내기 위해 어떤 어려움들을 견뎌냈는지 알고 나니, 그 음악을 듣는 경험에 더 깊은 감동이 더해졌어요. 정말 아름답고 강렬하고 성스러운 작품이에요. 앞으로 그의 작품을 더 탐구해 보고 싶어요.

 

 

4. [RSK] 피아니스트이자 인권 활동가로서,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나요?

 

음악은 우리가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가장 강력하게 일깨워주는 도구예요. 음악 교육은 단순히 음악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인간을 만든다고 믿어요. 그리고 바로 이런 곳에서 사회적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죠. 지금 전 세계적으로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기 때문에 음악 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해요. 음악은 더 공감하는 사회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교육 도구이고, 저는 음악 교육이 단 한 세대 만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나라, 모든 학교에 음악 교육이 생길 때까지 쉬지 않을 거예요. 저는 이 일에 대해 정말 큰 열정을 갖고 있어요.

 

 

5. [RSK] 음악을 통해선 세상에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어요?

 

가장 크게 바라는 것은 제 음악을 통해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악기를 배우기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때는 없어요. 학교와 정부가 예술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 이유는 학생들이 스스로 이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악기를 배워야 했는데”, “계속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면서도, “잘 못해서 그만뒀다”고 하곤 하죠.
그럴 때 저는 항상 이렇게 말해요. 운동도 프로 선수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운동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악기 연주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학교에서는 수많은 스포츠 천재를 길러내면서도 음악 분야는 훨씬 적은데, 저는 이 이유가 접근성 부족과 낮은 수요 때문이라고 봐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해 그 수요를 높이고 싶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저처럼 느낀다면, 스포츠 프로그램에 줄 서듯 클래식 음악을 배우기 위해 줄을 설 거예요.

누군가 “당신 때문에 피아노 배우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해줄 때마다, 제가 겪어온 희생과 어려움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요.

 

 

6. [RSK] 자신의 음악을 ‘팝시컬(Popsical)’이라고 표현했는데, 클래식의 감성과 팝의 감각이 충돌할 때, 음악적 타협점은 어떻게 맞추나요?

 

저에게 팝시컬은 ‘전통과 혁신’의 조합이에요. 클래식 음악은 수 세기의 깊이와 감정을 담고 있고, 여기에 혁신이 더해지면 강력한 에너지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런 음악이 대중에게 팝처럼 들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팝시컬이라고 생각해요.이건 단순히 베토벤과 비트 사이의 균형 문제가 아니라, 클래식 장르의 전통적 경계를 새롭게 상상하고 정의하는 일이기도 해요. 저는 클래식계에서는 너무 과감하다는 말을, 팝계에서는 너무 클래식하다는 말을 들으며 제 자리를 한동안 찾지 못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틀에 맞추기보다 예술적 위험을 감수하기로 하면서, 오히려 클래식을 전혀 듣지 않던 사람들까지 제 음악을 듣기 시작했어요. 제 꿈은 제 음악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 전체 장르의 음악이 빌보드 코리아 톱 10에 정기적으로 오르는 것을 보는 거예요. 제 앨범이 아이튠즈 팝 차트 톱 10에 올랐을 때는 정말 꿈만 같았어요. 앞으로 더 많은 클래식 음악이 전통적인 팝과 함께 당당히 대중 차트에 오르길 바라봅니다.

 

 

7. [RSK] 카디비, 나스, 마이크 윌 메이드 잇, 토미 브라운까지 다양한 팝 아티스트 및 프로듀서와의 협업을 진행해 왔는데, 협업 때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있나요?

 

저는 협업은 신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믿는 것, 그리고 함께 작업하는 사람을 믿는 것. 음악을 만든다는 건 굉장히 취약한 상태가 되는 일이라,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마음을 열고 작업하는 건 무서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아를 내려놓고 판단을 멈추는 순간, 진짜 마법이 일어납니다. 특히 제 장르 밖의 다른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면서, 혼자라면 감히 시도하지 못했을 창의적인 영역까지 나아가볼 수 있었어요. 제게 협업은 늘 모험과 치유가 한꺼번에 공존하는 일이었습니다.

 

 

8. [RSK] 언젠가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케이팝 아티스트도 있나요?

 

저는 블랙핑크의 로제와 꼭 협업해 보고 싶어요. 그가 <Wonderwall>을 커버한 영상을 봤을 때,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한꺼번에 떠올랐거든요. 로제는 장르를 넘나드는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서,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또다시 영감이 폭발하는 느낌이에요. 언젠가 로제를 위한 오케스트라 편곡을 만들어 함께 라이브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거예요.

 

 

9. [RSK] 무대 의상이나 비주얼 콘셉트도 직접 결정하나요? 패션이 음악을 표현하는 데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그럼요, 저는 공연과 영상에서 입는 옷을 모두 직접 정해요. 패션은 태어날 때부터 제 일상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해 왔어요. 어머니가 제게 처음 건네준 책이 <하퍼스 바자>였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는 패션으로 저 자신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열두 살 때는 피아노 선생님이 제 옷차림이 ‘진지하지 않다’며 집에 돌려보낸 적도 있거든요. 그 일을 겪은 후로 오랫동안 패션에 대한 제 사랑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랑을 분리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패션을 너무 좋아하면 진지한 음악가가 아닌 것처럼 보일까?’ 하는 생각을 늘 했죠. 그리고 이 모든 질문은 대학을 떠나 런던으로 가면서 바뀌었어요. 그곳에서 저는 패션에 대한 제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제 옷차림과 하이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됐어요. 지금은 다른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저에게 ‘덕분에 패션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용기가 생겼다’고 말해줄 때 정말 자랑스러워요. 프라발 구룽, 토즈, 오스카 드 라 렌타 같은 디자이너의 쇼에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는 일은 클래식 음악을 패션 세계와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제 방식이기도 해요. 그리고 제 관객들에게도 이 부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느껴요. 매년 핼러윈이 되면 어린 소녀들이 제 쿠튀르 스타일을 따라 입고 나타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인생의 큰 성취를 이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제 패션이 또 하나의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하고요.

 

 

10. [RSK] 팝시컬 장르의 가치를 이어가고자 하는 신예 창작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저는 완벽함보다 ‘탁월함’을 추구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클래식 음악을 배워온 사람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음악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연결되는 것이니까요. 완벽함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관객과 연결되고, 그 틀을 유연하게 바꿔보고, 탐험하고, 재창조하고, 끝없이 창작할 자유를 얻게 됩니다. 탁월함은 호기심에서 나오고, 완벽함은 두려움에서 나와요. 탁월함은 여정이고, 완벽함은 도착지죠. 팝시컬은 주변의 그 어떤 음악과도 닮지 않아도 ‘지금의 나’를 용기 있게 드러내는 데서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이 팝시컬이라면, 아마 당연히 남들과 다를 거예요!

 

 

11. [RSK] 마지막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인사나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는 아직 한국에서 공연을 해본 적은 없지만, 한국에서 무대에 서는 것은 제 가장 큰 꿈 중 하나예요. 한국 팬분들께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제가 갑니다!’라고요. 한국 분들과 깊은 정서적 연결을 느끼고 있는 만큼, 제 첫 한국 공연은 제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 중 하나가 될 거라고 확신해요. 바다 너머에서 이렇게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곧 직접 여러분을 만나 뵐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게요!

 

 

클로이 플라워의 인터뷰 전문은 추후 발간될 롤링스톤 코리아 16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By. Izzy Lee

PHOTOGRAPHS BY Chloe 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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