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살아있는 존재이길 바랐던 것 같아요.”
살아있는 존재임을 느끼고 싶어서 시작한 요리, 그렇게 멈추지 않고 화구 앞에서 요리하고, 손님 앞에 접시를 내며 이어온 시간. 지금의 서울을 한 그릇에 담아내기 위해 고안하고, 음식과 다른 장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지속가능한 식단을 이어나가고자 고찰하는 임희원 셰프의 식당에서.
1. [RSK] <흑백요리사>의 열기는 올해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뜨거웠습니다. 방송 직후 인기를 실감하는 일이 많았을 것 같아요.
너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흑백요리사> 방송 이후, 하루 만에 24년 모든 예약이 끝날 만큼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예약 문의가 쇄도했답니다.
2. [RSK] 오늘 촬영장에서는 요리뿐 아니라 화보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모습이었어요. 오늘 자신의 화보에 심사평을 매겨본다면?
그렇게 봐주셨다니 너무 감사하죠. 셰프이다보니 ‘잘 나와야겠다’라는 생각보단 ‘즐겁게 촬영하자’라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뭐든 지금처럼만 하자! 잘했다 임셰프!
3. [RSK] 요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뭐예요? 근래 머릿속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주제는 뭔지 궁금해요.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한식이란 무엇인가’예요. 전통 음식을 바탕으로 한 지금 우리 시대의 한식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의 한식’이란 주제로 고민하고 있어요. 두 번째는 제가 전개하고 있는 식문화를 어떻게 다른 문화와 결합할 수 있을까입니다. 음악과 요리, 영화와 요리, 미술과 요리… 다른 장르와의 연결을, 소통을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셰프들이 한층 더 아티스트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4. [RSK] 요리하거나 음식을 맛볼 때 즐겨듣는 음악도 따로 있나요?
요리를 준비할 땐 음악을 듣는 걸 선호하지 않아요. 재료를 써는 소리, 볶는 소리, 주방에 나는 모든 소리에 집중합니다. 요리가 끝나면 듣는 노래는 있어요. 맥 밀러(Mac Miller)의 <Dang! (feat. Anderson .Paak)>, 그리고 뉴진스의 <Cookie>.
5. [RSK] 평소엔 어떤 음악을 자주 듣나요? 플레이리스트엔 어떤 음악이 담겨있는지, 유년 시절부터 들어온 음악은 뭔지도 궁금해져요.
스케이트 타고 다니던 어린 시절엔 힙합을 좋아했죠.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Where Is The Love?>, 아웃캐스트(OutKast)의 <Hey Ya!>, 피프티 센트(50 Cent)의 <P.I.M.P.>,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La Vie En Rose>, 뮤즈(Muse)의 <Time Is Running Out>, 오아시스(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 윤미래의 <검은 행복>, god의 <애수(哀愁)>, 김건모의 <어제보다 슬픈 오늘>, 우리 동네 사람들의 <지금의 내 나이>, 조덕배의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
6. [RSK] 셰프와의 이야기인 만큼, 대화의 메인디쉬는 역시 ‘요리’가 되겠습니다. 가장 처음 요리를 하고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하게 된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는 제가 살아있는 존재이길 바랐어요. 누군가가 만들어준 모습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가는 제 모습을 원했어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한정식당에서 소스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반했고, 그래서 요리를 택했어요. 그때 제 나이가 열여덟이었어요. 직접 요리하면 내가 만든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겠다 싶었죠.
7. [RSK] <흑백요리사>에서 처음 선보인 요리는 ‘베지테리언 사시미’와 ‘베지테리언 후토마키’였죠. 눈을 감고 먹으면 아보카도와 김의 조합이 참치처럼 느껴지는.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 할 아이디어예요. 생선 대신 채소를 재료로 사용하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처음 얻었나요?
10년 전 일본의 한 이자카야에서 얻었어요. 아이디어보단 생각을, 발상을 바꾸는 법이랄까요? 그 이자카야 메뉴 중 ‘가지 사시미’라는 메뉴가 있었어요. 신기해서 시켜봤는데, 정말 단순하게 가지, 와사비, 간장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셰프님께 물어봤는데요. 사시미, 칼로 써는 행위를 사시미라고 한다더라고요. 그때 제가 개발하고 있던 메뉴 중 ‘비트 아보카도 샐러드’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비트가 참치로 보였어요. 그렇게 만들게 됐습니다.
8. [RSK] 이런 아이디어를 짤 때에는 어떻게 완성하는지도 궁금해요. 악상이 떠오르는 것처럼 번개처럼 갑자기 아이디어가 번뜩하고 떠오르는 건지, 혹은 책상 앞에 앉아서 펜을 쥐고 고민해야 답이 나오는 건지요.
‘악상’이 떠오르는 것처럼 저는 ‘요상’이라고 할까요? 아이디어가 갑자기 번뜩 떠오르곤 해요. 책상에 앉아서 펜을 쥐고 고민할 때도 있지만… 역시 재료와 요리를 직접 볼 때, 그리고 먹을 때 더 잘 떠오릅니다. 마음속에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으면 어느 순간 요리에 관한 사진이나 영상, 식당, 레시피북… 여러 아이디어가 가리지 않고 마구 떠올라요. 창작하고 싶어지게. 그래서 메뉴를 자주자주 바꾸는 편이에요. 뭔가 하고 싶으면, 떠오르면 해야 하거든요.(웃음)
9. [RSK] ‘슬로우푸드’, ‘사찰음식’, 그리고 ’지속 가능한 식단’. 임희원 셰프를 대표하는 메인 키워드입니다. 요리 생활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시도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시도했었지만 실패한, 혹은 지금도 고민 중인 경험들에 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실패보단 나아가기 위한 준비이자 경험이랄까? 지금의 한식, 서울 음식을 주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서울이 내게 영감을 주는 곳이니까요. 여기에서의 서울 음식은 서울식 음식을 말하는 게 아니고, 서울이라는 곳을 느낄 수 있는, 서울의 문화를 담은 음식이에요. 예를 들어 예전에 제가 만들었던 메뉴 중 ‘바르샤 쌈밥’이라는 메뉴가 있거든요. 바로셀로나에 여행 갔을 때 한식이 그리운 거예요. 그래서 뭘 만들어 먹을까 고민하다가 스페인 하면 하몽이 유명하잖아요? 거기에서 착안한 메뉴인데 야채와 밥, 쌈장, 안초비, 하몽을 싸서 먹는 메뉴를 만들었었어요. 재미있고, 또 어딘가 서울스럽더라고요. 경복궁 옆 삼청동에서 먹는 파스타에서 서울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10. [RSK] ’지속 가능한 식단’. 개개인이 가정에서,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개인이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지속 가능한 식단이니까 말 그대로 지속 가능해야겠죠. 거창하게 ‘지구를 살리자’, ‘탄소배출을 줄이자’, 그런 거 말고. 진짜 내가 지속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는 거죠. 습관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집에서 요리를 만드는 시간이 부족하다면 좋은 제품을 고르는 행위 자체가 중요할 것 같아요. 예를 든다면 ‘풀무원 지구식단 두유면’처럼.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해 시작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11. [RSK] 중학생 시절 친구들을 위해 차린 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하며 뛰어든 한식, 2014년 서래마을 이탈리안 파스타 가게에서 만들던 양식, 2015년 홍콩의 한식 레스토랑에서의 모던 한식, 2018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부토의 퓨전 한식까지 정말 쉼 없이 달렸습니다. 내가 요리사가 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음식을 꼽는다면 어떤 음식일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인 것 같아요.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요리가 호박전과 고구마 줄기 볶음인데, 그 음식을 떠올리면 사랑이 느껴지거든요. 이게 제가 계속해서 요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지 않나 싶어요. 내가 만든 음식을 드시는 분들이 맛있어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사랑이 느껴지고요.
12. [RSK] 또, 요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직업인 만큼 보통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음식을 접할 것 같아요. 가장 인상 깊게 각인된 요리를 골라본다면요?
프랑스에 갔을 때 한 레스토랑에서 먹은 코스메뉴 중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나온 어린 새를 튀긴 음식이 나왔어요. 플레이팅도 새 둥지 콘셉트였고요. 함께 갔던 모든 일행이 차마 먹지 못해서 몰래 숨기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13. [RSK] 오랜 시간 음식을 만들며 일해온 만큼, 어쩌면 요리에 관한 생각이 처음과는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 요리를 하기로 결심했던 순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요리에 관한 가치관 측면에서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나요?
처음엔 단순히 ‘요리를 하자, 나의 음식을 먹는 분들의 행복을 위해’ 이런 마음이었어요. 지금은 이 마음을 바탕으로 ‘요리에 나라는 사람을 담아보자. 나의 색을 담자’ 이런 마음이 더해졌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창작한 음식이 일상생활에서도 먹는 음식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요.
14. [RSK] 화구 앞에 서서 요리를 만들고 그릇에 담아 손님 앞에 내는 셰프로서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앞에서 말한 것들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지금의 한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식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으면 좋겠습니다.
임희원 셰프의 다양한 화보 이미지와 인터뷰 전문은 추후 발간될 롤링스톤 코리아 13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hotographs by Kim Moond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