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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세련된 담백함

GbM7 - AbM9 - BbM9의 코드 진행으로 이루어진 오프닝의 첫 세 음은 이 앨범에서 뉴진스가 드러내고자 하는 이미지와 방향성을 심플하면서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렵지 않게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그 뒤에는 7th와 9th의 텐션 노트들처럼 아는 사람들만이 반응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세련미가 숨어 있다. 마치 그 은근하지만 뚜렷한 차이를 아느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목(attention)”을 갈구하는 메시지가 담긴 첫 곡으로는 다소 얌전한 출발이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다. 짧은 몇 초 동안 그 차이를 직감적으로 알아챈 사람들에게 이 그룹은 끊임없이 궁금함과 동경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루비한 비트가 터져 나오고, 이 다섯 명의 가볍고 역동적인 몸짓이 화면에 최근 케이팝 신에서 볼 수 없었던 미학을 뿌려놓기 시작하면 그 궁금증은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힙하고, 강요하지 않지만 충분히 호소력 있는 내추럴하고 경쾌한 움직임에 이어 후렴 “You got me looking for attention”이 흘러나오면 우리는 이 매력적인 여성들이 ‘새로운 세대’임을 직감한다. 


이 그룹의 음악과 퍼포먼스, 그리고 비주얼을 구성하는 모든 디테일들은 ‘케이팝의 진부함에 대한 거부’라 이름 붙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꼼꼼히 디자인된 듯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프로듀서 250이 주도하는 음악이다.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게 음악적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고급스럽고 유려한 코드워크는 프로들의 솜씨가 아니고서는 흉내 내기 힘든 감각적인 것이다. 트렌디한 알앤비와 힙합 그리고 일렉트로 팝에 기반을 두고 이런저런 음악적 요소를 배치하는데, 그 어떤 이음새와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간결하다. 앨범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인 Hype Boy 역시 장르는 다르지만 그 본질적인 매력은 Attention과 크게 다르지 않다. 뭄바톤의 넘실대는 비트와 심플한 사운드의 매치만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특별한 도약이나 고음, 혹은 극적인 전환 같은 어떤 ‘케이팝스러운' 장치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ause I know what you like boy”으로 시작되는 후렴은 충분히 중독적이다.  


뉴진스의 데뷔는 케이팝의 정체성에 대한 새삼스러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케이팝답다는 것은 뭐지? 아니, 케이팝이 왜 케이팝다워야 하지? 뉴진스는 케이팝 그룹들이 갖고 있던, 놓기 꺼려했던 강박과 레이블 특유의 ‘관습'을 과감하게 덜어낸다. 뜬금없는 고음 파트도, 어색한 분절도, 기계적인 파트 분배도 없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세련된 사운드는 뉴진스의 비주얼을 보며 느끼는 젊고 신선한 이미지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Cookie에서도 알 수 있지만 뉴진스의 멤버들은 충분한 기교와 성량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백하고 절제된 창법과 런을 통해 곡의 세련미를 극대화한다. 뉴진스가 들려주는 새로움은 상당 부분 ADOR의 수장이며 이 모든 기획의 마스터마인드인 민희진의 남다른 감각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케이팝 미학의 상당 부분을 디자인해온 그가 이제 스스로의 손으로 케이팝 미학의 해체 재조립을 꾀하고 있다. 


대중음악의 역사에는 늘 그런 분수령과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S.E.S.가 그랬고, 소녀시대가, 그리고 블랙핑크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걸그룹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뉴진스가 과연 그 문을 열어젖힐 그룹인지 확신하기에 이르지만 그 출발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신선하다. 무엇보다 현재의 신에서 놓치고 있거나 결핍되었던 부분을 상기시켜 그것을 새로운 세대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운드와 비주얼의 문법으로 제시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제 이 바닥에는 쓸만한 아이디어가 바닥이 났다고 여겨지던 시점, 누구나 이런 걸 그룹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그게 뭔지 설명할 수 없었던 바로 순간 뉴진스는 기분 좋은 대답을 갖고 등장했다.

 

ILLUSTRATION BY JASMINE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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