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게 활동하고 있는 케이팝의 가장 성공적이면서 대표적인 베테랑 그룹의 리더. 하지만 아이린의 음악적 역량이나 매력에 대한 분석은 어쩌면 오랫동안 보류됐다. 그걸 꼭 대중이나 평단의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레드벨벳 멤버들의 음악적인 성취를 평가할 때 아이린의 이름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레드벨벳 멤버들의 그룹 외 활동은 주로 보컬에서 조금 더 두드러진 역할을 부여받아 왔던 멤버들에게 조금 더 많은 관심과 시선이 쏠려있었다. 웬디는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케이팝의 정상급 디바 중 한 명으로 그 위상이 격상되었고, 슬기 역시 기존의 이미지를 떨쳐내는 감각적인 솔로 활동을 선보였다. 아이린 역시 슬기와 함께 유닛을 구성해 [Monster](2020)를 선보인 바 있지만 두 사람의 조합에서 상상하던 가능성에 비해서는 여러모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게 다시 4년이 흘렀고, 이제 아이린의 음악적 가능성을 재평가할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아이린의 목소리는 늘 레드벨벳의 보이스컬러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폭발적이지 않지만, 세련된 보이스를 가졌고 다양한 장르와 분위기의 곡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며, 다른 멤버들과의 배음에서도 산뜻한 어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톤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드라이한 음색과 몽환적인 톤을 활용해 섬세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모습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기반을 둔 모던한 팝에 최적화된 면모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린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인 [Like A Flower]는 이같은 아이린의 음색적인 장점을 정확하게 포착해 다채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반가움만큼이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감상한 이 앨범은 근래에 들었던 그 어떤 아이돌들의 솔로 작들 이상으로 만족스러움을 주는 작품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레드벨벳의 근작들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더 레드벨벳답다고 말할 수도 있는 앨범이 아닐까.

첫 곡이자 타이틀곡인 <Like A Flower>에서부터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아이린은 아프로 리듬의 그루브와 중독적이면서 몽환적인 사운드에 잘 어울리는 톤을 연출하면서 곡이 가진 서정성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가사와 멜로디에 있어서 레드벨벳 곡들에 대한 오마주를 의도하는 듯한 이 곡은 아이린이 오롯이 본인만의 보컬로 분위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Summer Rain>은 앨범 전체를 통틀어 아이린의 보컬 컨트롤이 가장 매력적으로 이뤄진 곡으로 첫 곡과 함께 앨범의 꿈결 같은 콘셉트를 성공적으로 연출해 낸다. 파워풀한 보이스가 아닌 섬세한 보컬 컨트롤을 내세우는, 오히려 그래서 곡들을 더 모던하고 상쾌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아이린의 노하우는 <Strawberry Silhouette>에서도 잘 드러난다.

앨범의 주된 정서가 이 앨범의 커버 이미지처럼 신비롭고 몽환적이면서 내밀한 자아의 발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앨범 후반부를 장식하는 경쾌하고 싱그러운 팝 넘버들은 그간 쉽게 보이지 않았던 아이린의 따뜻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만끽하게 해주어 소중하기 그지없다. <Start Line>은 비-사이드로만 소비되긴 아쉬운, 어쩌면 향후 아이린의 새로운 주력 장르로서 손색이 없는 밴드 스타일의 팝 넘버다. 이 같은 음악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루시 조원상의 가사도 훌륭하지만, 세련된 감각으로 후렴을 매력적으로 소화하는 아이린의 보컬은 노련하다. <Winter Wish>와 <Ka-Ching>은 레드벨벳의 그 어떤 곡들 이상으로 아이린의 사랑스러운 느낌을 잘 끌어내고 있는 곡으로, 특히 <Winter Wish>는 이 같은 스타일만으로도 앨범을 구성해도 충분히 매력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아이린의 담백하면서 세련된 청량미와 따스함을 잘 살려낸 앨범의 베스트 순간 중 하나다.

[Like A Flower]를 들으며 별안간 아이린이 리더로서 이끌어온 레드벨벳의 지난 세월이 한꺼번에 스쳐 갔다. 평론가로서 내가 레드벨벳을 주목해 왔던 이유, 그건 아름다운 음색을 가진 보컬의 아름다운 앙상블과 함께 대중성과 실험성을 절묘하게 가로지르는 풍성한 레퍼토리였다. 다시 말해 레드벨벳의 지난 10년은 어쩌면 케이팝의 성공적인 힘이 단지 퍼포먼스나 콘셉트 혹은 세계관 같은 복잡한 것이 아니라 친숙하면서도 세련된 음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시키고 또 강화해 온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린의 첫 앨범 [Like A Flower]는 적어도 음악적인 면에서 레드벨벳의 정수에 근접한, 내가 레드벨벳을 사랑한 이유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새삼 확인시킨 기분 좋은 작업이다.
<일러스트 - Razzle Dazzlee,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MORE NEWS
-
# Main Feature SM 30주년, 우리의 피를 핑크빛으로 물들인 노래 10 BY. 최용환 -
# Main Feature K-가족의 탄생 - 가족계획(쿠팡플레이, 2024) BY. 송치혁 -
# Main Feature 송대관, 트로트의 삶을 살다 BY. Minjae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