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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을 향한 서울 소울의 침공, K-POP은 진화 중!

글로벌 힙합 뮤지션인 박재범(Jay Park)은 신곡 <DNA Remix> 뮤비 공개 후 영상 속 그의 '드레드 헤어' 스타일이 '흑인 문화를 훔쳤다'라는 다소 공격적인 비판 속에 '힙합 문화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해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해당 뮤비를 삭제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힙합 뮤지션으로서 꾸준히 선한 영향력을 보였던 것은 물론 '조지 플로이드'(비무장 흑인이 백인 경찰에 의해 사망한 인종차별 사건)를 추모하고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한 #blackouttuesday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그 누구보다 흑인 문화와 인권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었기에 이런 논란이 더없이 아쉽다고 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필리핀계 출신의 뮤지션 브루노 마스(Bruno Mars) 또한 흑인 문화에 대한 문화적 도용(Cultural Appropriation)을 했다며, 흑인 운동가들의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박재범과 브루노 마스는 과연 블랙 뮤직이라는 문화적 도용을 통해 오늘날의 성공을 이뤄낸 것일까? 오늘의 K-pop 유랑기는 아시아계 뮤지션들에게 뿌리내린 블랙 뮤직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골든 에라라고 칭하던 90년대 말로 돌아가자. 당시는 말 그대로 티엘씨(TLC),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 퍼프 대디(Puff Daddy), 브랜디 & 모니카(Brandy & Monica) 등 힙합과 알앤비 장르의 주류화로 음원 차트를 점령하면서 소위 길거리 음악이라 폄하되었던 블랙 뮤직이 대중화되는 시초가 되었다. 이에 힘입어 정점을 찍게 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에미넴(Eminem)이라는 슈퍼스타의 등장이다. 애초에 백인의 힙합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있던 힙합 장르에 에미넴이라는 신예 래퍼가 거물급 힙합 프로듀서 닥터 드레(Dr. Dre)의 프로듀싱과 함께 전 세계 음악 시장을 뒤흔들게 된 것이다. 

*이전에도 바닐라 아이스(Vanilla Ice), 스노우(Snow) 등의 백인 래퍼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반짝스타 수준으로 점차 사라져갔다.

디트로이트 빈민가 출신의 그는 불우한 가정과 지역적 환경으로 인해 힙합과 랩이라는 문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였으며, 곧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한 일부분이 되었고, <My Name Is>, <Kill You>, <Cleanin' Out My Closet> 등의 곡에서 적나라하게 삶을 토해내고 있기에 대중들의 공감을 살 수 있던 것이다. 







그렇다. '선택이 아닌 필수'

지금의 MZ 세대는 SNS를 통해 글로벌 소통을 즐기며, 흑인 문화의 대중화 속에 태어난 세대로서 인종과 장르적 구분 없이 유행을 이끌어 가고 있다.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나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 역시 '우린 블랙 뮤직이다, 아니다'로 스스로를 굳이 규정할 필요가 없는 세대인 것이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원인을 정리해 보자. 우선 MZ 세대에게 블랙 뮤직이란 어린 시절부터 선택이 아닌, 방송과 인터넷 등의 환경적 요소로 인해서라도 필수가 된 세대이며, 흑인 문화에 대한 이해도와 표현력에 있어서도 남부럽지 않게 각자의 개성으로 뽐낼 수 있는 일종의 놀이로 받아들여졌다는 견해가 더욱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것이다.


한 예로, 필자는 최근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가 안내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섬머 케익(Summer Cake)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아시아계 여성 알앤비 뮤지션이라고만 알려진 신예 섬머 케익(Summer Cake)에게선 90년대의 향수와 MZ 세대들의 트렌드를 아우를 아주 흥미로운 사운드는 물론 아샨티(Ashanti) 피처링의 <What's Luv>가 떠오르는 매력적인 보컬 톤까지 더해지다 보니 <2021 BEST POP PLAYLIST>에 추가하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어찌 보면 말레이시아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유나(Yuna)의 행보를 그녀에게서 기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유나는 아시아계 여성 소울 알앤비 뮤지션으로서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 등 음악적 영향력이 강한 프로듀서들과 협업하며, 본인의 정체성을 동일선상에 놓고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한 좋은 사례로 남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바도 있다. 그동안 블랙 뮤직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아시아계 뮤지션들이 대부분 해외의 것을 따라 하기 급급하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천재 소울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시미즈 쇼타(Shimizu Shota) 이후 차세대 일본 블랙 뮤직 기대주로 주목받았던 리리(RIRI), 한국의 유명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KPOP STAR 4> 우승자 출신의 케이티(KATIE), 제2의 딘(Dean)이라는 화제성을 등에 업고 데뷔한 세이(SAAY) 등 분명 이들도 발군의 실력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사운드, 글로벌을 타깃으로 한 영어 가사의 곡이라는 점에서 모자람이 없어 보이지만 이제 SNS라는 창구를 통해 '실시간' 검증이 가능한 시대에서 1+1식의 답습은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혹자는 말한다. 당신은 이에 고개를 끄덕일 것인가? "정체성이 확실하며, 그에 따른 경쟁적 가치가 있는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란 표현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자이언티(Zion.T)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알앤비의 실험적 색채를 케이알앤비 카테고리로만 단정 지을 수 없듯이 말이다. 국내는커녕 해외 블랙 뮤직 시장에서도 생소한 그의 음악이 진정 세계적이라는 설득력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잠비노(Jambino)가 그렇다. 그는 보컬과 랩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싱랩을 구사하며, 몇 장의 앨범만을 대중들에게 공개한 아직은 거칠고 투박한 매력을 뿜어내는 뮤지션이지만 <누워버릴까>와 <Her'liday> 등을 통해 본인 만의 방식으로 서울 소울(Seoul Soul)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 하니 언젠가 한국을 대표하는 블랙 뮤직 아티스트로 BTS 못지않은 세계적 성과를 기대하게 된다.


앤(Ann One), 제이(J), 솔리드(Solid), 업타운(Uptown),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 등 교포 출신의 뮤지션들로 인해 90년대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한국 블랙 뮤직의 도입이 시작되었다면, 약 20년간의 세월을 거쳐 상향 평준화된 현재 한국의 블랙 뮤직은 얼터너티브와 재즈, 펑크 등으로 스펙트럼을 넓혀가며, 죠지(george), 릴체리(Lil Cherry) & 골드부다(GOLDBUUDA), 백예린(Yerin Baek), 진보(JINBO), 호림(HORIM), 에이트레인(A.TRAIN) 등의 풍부한 자원 확보를 통해 아이돌 음악으로 인식되었던 K-pop의 다변화를 꿈꿔볼 수 있다.


"이것은 한국을 위한 승리다. 아시아 아메리칸을 위한 승리다. 진심과 진정성의 승리다. 이제 시작이야."

 

제이지(Jay-z)가 이끄는 세계적인 힙합 레이블 락네이션(Roc Nation)과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로 계약한 박재범의 인터뷰가 오늘따라 울림이 더 크게 와닿는 것은 그로 인해 (아시아계 블랙 뮤직 아티스트들의)꿈은 이루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SUMMERCAKE - Love Villain 앨범커버, 잠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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