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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불쌍한 세계에 버려진 사람들, <마인> (tvN, 2021)

<마인>은 버려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무능한 장남(박혁권), 이기적인 차녀(김혜화), 열등감에 사로잡힌 삼남(이현욱)이 보여주는 왕좌에 대한 욕망은 자신을 버린 세상에 대한 복수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때문에 효원가의 사람들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은 이 불쌍한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파열음에 가깝다. 이들을 배경으로 서현(김서형)과 희수(이보영)가 효원이라는 견고한 벽을 무너뜨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는 버려진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막장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엇갈린 복수와 사랑은 <마인>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효원가의 인물들이 반복하는 비정상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이 불쌍한 세계에서 ‘나’로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몸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장남의 알콜중독, 차녀의 갑질, 삼남의 반사회적 성향은 뒤틀린 가족관계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다. 악마(魔人)처럼 보이는 효원의 사람들이 사실 세상이 남겨놓은 마인(馬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일 뿐이라는 해석은 <마인>이 보여주는 드라마의 품격에 가깝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길고 지난한 싸움을 피하지 않았던 것은 서현과 희수다. 예술을 사랑하던 동성애자 서현과 자유를 사랑하던 여배우 희수는 효원가의 유일하면서도 은밀한 동맹관계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버리고 효원가에 기꺼이 몸을 던졌고 그 안에서 자기를 지키려하는 유이한 존재이기도 하다. 한회장의 자식들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버렸던 것과 반대로 서현과 희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효원의 거대한 문을 기어코 넘어가려는 계획을 실행한다.


한회장(정동환)이 뿌려놓은 분란의 씨앗이 효원가를 흔드는 사이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선택한다. 누군가는 왕좌를, 누군가는 자식을, 누군가는 사랑을 찾아 떠난다. 복수도 사랑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마인>이 드라마로서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회장의 부재로 세상에 내몰린 인물들이 선택해야만 하는 잔인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가진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때문에 <마인>은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힌 기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쌍한 세계에 버려진 나(들)의 다채로운 얼굴을 끊임없이 교차적으로 클로즈업하는 이야기다. 


<스카이캐슬>(JTBC, 2018~ 2019)과 <펜트하우스>(SBS, 2020~2021)가 최상류층의 욕망과 복수를 양극단에서 옹호했던 것과 달리 <마인>은 그 어떤 욕망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오로지 불쌍한 세계에 버려진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불확실한 선택을 반복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삶을 관조할 뿐이다. 때문에 <마인>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줄 소유(mine)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전부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나를 증명해줄 수 없다는 역설적인 결론에의 도달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인>은 버려진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버텨내야만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이 삶의 형태가 오롯이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명확한 2분법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미덕이다. <마인>이 긴 시간을 돌아오며 관철시키려했던 ‘나’의 선택은 세상에 홀로 남은 외로움을 견뎌내야만 하는 모두의 선택이기도 하다. 

 

삶은 곧 버려짐에 대한 체험이다. 중요한 것은 서현이나 희수가 그러했듯 나를 지키기 위해 몇 번이고 길고 외로운 싸움을 피하지 않을 용기다. 나를 지키기 위한 긴 싸움에 대한 견뎌냄이 빛나는 것은 불쌍한 세계에 버려진 나(들)의 이야기는 <마인> 이후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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