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 시대의 진정한 새해는 4월에 시작된다.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이 열리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력(曆)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코첼라가 진행되는 2주 동안 온라인에는 관련 콘텐츠가 새해를 축하하는 꽃가루처럼 쏟아진다. 수강신청서처럼 성실한 관람 계획표가 스토리에 올라오고, 스마트폰엔 태평양 표준시가 더해진다. 웨스턴 스타일, 뜨개(크로셰) 드레스와 비키니, 청키한 액세서리로 대표되는 '코첼라 룩'을 입은 인플루언서들, 얼탱이 없는 가격일수록 더 흥미로운 스낵 소개를 담은 숏폼들을 끝없이 보다 보면 어느덧 콜로라도 사막 위에 세워진 음악의 오아시스에 도착한 기분이 든다. 몸은 비록 유튜브 앞 1열에 있지만, 아주 먼 곳으로 가야만 가능한 기분 좋은 아득함을 느끼기에 크게 부족함은 없다.

HAVE YOU EVER MET Jennie?
"HAVE YOU EVER MET Jennie? (제니를 만난 적 있어?)" 그렇다. 2025 코첼라에서 제니를 만났다. 미국까지 갔느냐고? 아니. 캘리포니아는 해안 지역에서 멀어질수록 감수해야 할 것이 많아지고, 나는 충분히 용감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그를 만났다. 코첼라에서 제니는 직접 프로듀싱을 맡은 독보적인 정규 1집 [Ruby]에 담아낸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의 결정(結晶)과 광채를 보여줬다. 처음부터 끝까지 붉은색이었다. 제니의 에너지도, 무대 연출과 음악도 마치 적색경보처럼 위협적일 만큼 열정적으로 타올랐다.

45분 동안 제니는 [Ruby]의 인트로와 마지막 트랙을 제외한 13곡을 연이어 불렀다. '불렀다'로는 사실 표현이 좀 모자라다. 모든 곡마다 고유한 드라마가 있었다. 제니는 쉴 새 없이 전환되는 입체적이고 정교한 퍼포먼스 포메이션과 감정선을 지휘하며, [Ruby]를 통해 한 인간이자, 아티스트로서 자신을 해방한 것처럼 앨범 안에 정지한 감정을 무대 위로 해방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좋은 공연은 좋은 음악에서 비롯된다. [Ruby]의 선명한 정체성과 다채로운 선율은, 그 위에 코첼라의 거대하고 화려한 무대를 세울 만큼 확고했다. 다양한 체격과 인종의 댄서들, 코러스, 여성 멤버로 구성된 밴드, 결정적인 순간을 더욱 결정적으로 증폭하는 카메라 무빙, 마음 가장 뜨거운 곳을 일렁이게 하는 극적인 스테이지 비주얼이 모여 코첼라 밸리에 (HAVE YOU EVER MET) 'Jennie'의 우주를 투영했다. 과하게 치밀하다는 점에서 K팝다웠고, 무대 위 구성원과 요소들이 각자 독립된 에너지를 발산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 면에서 전혀 K팝답지 않았다. "제니가 코첼라를 찢었다"라는 표현에 다 담기 어려운 과정의 진한 땀방울이 느껴지는 성실하고 순수한 공연이었다.
극단적으로 느껴질 만큼의 탁월한 스타일링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소재와 광택의 붉은색 아이템을 매칭해 제니의 정체성과 근원을 콜라주한 [Ruby]를 패션으로 시각화했다. 때깔도, 폼도 끝내줬다. 지금 당장 제니의 코첼라 영상을 틀고 아무 데서나 재생을 멈춰도 매거진 표지에 실릴만한 A컷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숏폼 시대의 슈퍼스타란 스틸컷만으로 레벨을 증명한다.

like JENNIE
사막의 모래 알갱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제니의 무대를 보러 '아웃도어 시어터(Outdoor Theatre)' 구역에 모였다. 공연 시간은 일요일 밤 7시 45분(PST). 광활한 페스티벌 부지를 땡볕 아래 사흘 동안 헤맨 사람들이 마지막 체력을 쥐어짜는 시간대다. 캐리어를 모두 싸놓고, 마음을 이미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서. 차가워진 코끝으로 스미는 사막의 냄새를 아쉬운 마음으로 들이쉬고, 어룽지는 무대의 불빛을 바라보며 아마 페스티벌처럼 삶도 유한하다는 찬란한 여운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

제니의 공연은 그런 무드 속에서 막을 열었다. 파열음 같은 <Filter>의 강렬한 훅을 시작으로, 제니가 웨스턴 스타일 모자에 고글을 쓰고 위엄 어린 모습으로 스테이지에 강림했다. 필터를 벗겨내고 마주한 본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Filter>는 이를테면 [Ruby]의 프리퀄 같은 곡이다. 그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과 편견, 자기 검열, 화려한 시스템의 억압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는 [Ruby]의 서사를 집약한다. 클라이맥스는 마침내 외피를 벗고 본질을 찾았다고 선언하는 가사에 맞춰 제니가 아우터를 벗었을 때다. "When I take it off!" 외침과 함께 제니와 관객이 하나의 열정으로 공명하며 본격적인 쇼가 시작됐다.

이어진 노래는 [Ruby]의 리드 싱글 <Mantra>였다. 만트라는 내면의 힘을 북돋는 주문을 의미한다. 제니는 곡에 담긴 활기찬 응원의 메시지를 끌어내 무대 자체를 하나의 만트라로 만들었다. 드라마틱한 편곡은 제니만의 만트라를 더욱 운명적으로 느끼게 했다. 에스닉한 타악기 소리와 경보음이 레이저처럼 교차하는 무대를 댄서들과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헤드뱅잉을 하며 분위기를 달궜다. 그리고 자기 파괴적인 사랑의 중독성을 이야기한 <Handlebars>가 이어졌다. 댄서들이 손을 맞잡고 그린 별의 메타포 안에서 제니가 꿈결처럼 노래하며, 무대 위로 감정의 은하를 펼쳤다. <ZEN>에서는 헛됨에 미혹되지 않는 존재의 힘을 선글라스를 낀 퍼포먼스로 보여줬다.

콜로라도 사막에서 부른 <Seoul City>는 더욱 특별했다. 이 곡은 서울을 사랑의 열기로 달궈진 감각적인 공간으로 정체화한다. 제니는 <Seoul City>가 그리는 밤, 불빛, 소음과 고요 속에 피어나는 밀도 높은 사랑의 아우라를 무대에서 재현했다. 그리고 코첼라 밸리에서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서울의 감수성을 전 세계의 관객들에게 숨결처럼 불어 넣었다.
"제니가 코첼라를 찢었다"라는 확신은, 그의 근본이 힙합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킨 <ExtraL>, <with the IE (way up)>, <like JENNIE> 메들리에 이르러 더욱 정확해진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like JENNIE>의 전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그가 관객을 등지고 카메라를 직시하며 "It's gonna be fu**ing hard"라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스타일, 포즈, 기세가 완벽하게 맞물리며 탄성을 자아냈다. 무대에서 제니는 정말 "fu**ing hard“했다. [Ruby]의 타이틀 <like JENNIE>는 아무도 '제니처럼' 될 수 없는 당연한 사실을 자랑하는 노래가 아니다. '제니'라는 이름의 삶에 겹쳐지는 수많은 역경과 오해를 직면하고 극복해 온 스스로를 향한 정직한 자부심을 표현한다. 그래서 핸드 마이크를 쥐고 플로우를 타며 무대를 장악하는 제니의 모습엔 멋을 넘어서는 존재의 압도감이 느껴진다.

엔딩곡은 <Starlight>였다. 어두울수록 더 밝게 빛나야 했던 스타로서의 삶을 고백한 노래다. 단지 엄마의 자랑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녀가,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샤워하며 현실을 이겨내는 어른으로 자라난 진솔한 서사를 담았다. 코첼라에서 제니는 [Ruby]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자신의 메시지, 감성, 멋, 정체성을 차례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긴 시간 최선을 다해 준비한 공연을 마무리하는 대단원에 이르러, 관객과 동료들에 대한 깊은 감사와 뿌듯함, 후련함에 울먹이는 <Starlight> 속 인간 김제니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가 "I love you Coachella"와 "엄마 사랑해"를 외칠 때 함께 마음이 젖는 이유는, 인생이란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도 자기만의 찬란함을 지켜내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제니의 퍼스널컬러는 언제나 붉은색이었다. 데뷔 이래 언제나 핫 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솔로이스트 활동 이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온도와 그라데이션을 보여주고 있다. 2025년 4월, 제니가 코첼라에서 울린 적색경보는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파동으로 기억될 것이다. '빛이 나는' 솔로이스트 제니의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사진제공 - 오드아뜰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