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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레이베이(Laufey)의 꿈의 무대: 할리우드 보울에서 펼쳐진 교향악의 밤

 

영화 <Laufey’s A Night at the Symphony: Hollywood Bowl>은, 올해 여름 LA 필하모닉과 함께 할리우드 보울(Hollywood Bowl)에서 공연했던 레이베이(Laufey)의 콘서트 실황을 담은 작품이다. 현장에서 공연을 못 본 대신 나는 영화를 틀었다. 일단은 콘서트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겠거니 짐작하면서.

 

 

영화가 시작되자 카메라는 밤하늘 아래 야외 공연장인 ‘할리우드 보울’을 비췄다. 공연장은 독특한 반원형 구조였다. 무대 뒤쪽에는 거대한 반원형 벽이 세워져 있고, 벽 앞으로는 무대가 넓게 펼쳐지는 형식. 무대를 중심으로 두고 관객석은 그 주위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졌다. 약 17,000석이 가득 찬 가운데 등장한 레이베이는 밑단이 풍성한 검은 미디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하던 그는 다음 순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본인 노래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자신의 세상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Above the Chinese Restaurant>으로 포문을 연 후 <Second Best>, <Slow Down>, 그리고 자신의 일란성 쌍둥이 유니아(Junia)와 함께 <Best Friend> 무대를 이어가던 레이베이는 <Letter To My 13 Year Old Self> 부분에서 울컥한 듯 보였다.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인 이 곡에는, 아이슬란드, 중국, 미국 세 나라에서 자라면서 겪은 혼란과 갈등이 담겨 있었다. 고통에서 회복한 과정을 나누던 레이베이는 “할리우드 보울에서 공연하는 것은 제 소망이었어요. 오늘 꿈을 이뤘네요. 정말 감사드려요 여러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불안에 떨던 과거에 답장을 보내는 표정으로.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콘서트 실황을 넘어, 성장의 서사를 다루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1부가 마무리된 후, 레이베이는 등 뒤에 커다란 리본이 달린 핑크빛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 이어지는 무대는 마치 동화 속 장면처럼 환상적이었다. <Dreamer>, <While You Were Sleeping>에서 레이베이는 무대를 누비며 익살스러운 표정과 연극적인 포즈로 사랑스러움을 자아냈다. 이렇게 디즈니 영화 속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가운데에서도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고음으로 쭉 뻗어 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목소리와 오케스트라 연주는 한 몸처럼 어우러졌고, 한층 풍성해진 선율이 공연장 위로 겹겹이 내려앉으며 어둠을 밝혔다. 

 

 

그러나 나를 이 영화에 빠져들게 한 것은 레이베이의 기술적인 완성도, 화려한 무대 연출도 아닌, 공연 내내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그의 진심이었다. 꿈의 베뉴에서 공연을 하는 상황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레이베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떨리는 듯한 설렘이 화면 너머의 내게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순수하게 꿈을 좇은 이가 마침내 본인의 눈으로 그 결과물을 확인할 때, 그 순간은 단순한 무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의 떨림에는 보는 이들까지 울컥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인간에게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있으며, ‘꿈’은 세상 물정 모르는 이의 순진함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

 

 

이 영화를 떠올리면 언제나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놀라움과 기쁨이 한데 얽힌 얼굴. 펄이 가득한 아이섀도는 마치 눈이 내린 듯 반짝거린다. 이어지는 레이베이의 목소리. "인생은 생각보다 아름다우니, 허무맹랑해 보이는 꿈을 좇아도 돼요. 여러분.” 그래서 이렇게 결론을 맺기로 했다. 가끔 지레 겁먹고 물러나고 싶어져도, 적어도 꿈만큼은 확실히 지지해 주는 게 더 나은 결과를 나으리라 믿기로. 

 

<사진 제공 - 프로젝트 아스테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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