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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TS 슈가가 품은 야망의 본색

 

야망은 슈가의 음악에 대해 말해준다. 슈가의 음악을 끌어가는 것이 야망이기 때문이다.
생일을 맞이한 슈가의 음악과 가사, 목표에서 야망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들을 살펴보았다.

 

비주얼 아티스트 제임스 진(James Jean)은 음악 뮤지엄 하이브 인사이트(HYBE INSIGHT)의 의뢰를 받아 방탄소년단 멤버 7명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 속 슈가는 고양이, 불가사리와 함께 파도에 둘러싸인 소년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소년은 시선은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내면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영하고 있는 것도, 물 위에 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거친 바다의 일부인 것만 같다. 소년이 파도와 싸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파도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이브 인사이트에 방문한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은 제임스 진의 그림을 보자마자 슈가임을 알아보았다. 당시 지민은 “윤기 형이 조용히 있는 척하면서 야망이 큰 사람이거든요. 나는 바로 이해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해석과 함께 그림을 보면 “조용한 나의 바다에 파도가 일곤 해”라는 <Louder than Bombs> 라는 곡의 가사가 떠오른다. 이 곡은 방탄소년단이 어떻게 고통을 감내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위의 가사는 슈가를 매우 잘 설명해주고 있다. 

슈가(본명 민윤기, 또 다른 활동명 Agust D)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가사는 <Mikrokosmos> 라는 곡의 “어떤 빛은 야망”이다. 무대에서는 격렬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조용한 슈가는 언제나 방탄소년단에서 가장 야망에 차 있는 빛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재능, 열정, 그리고 야망을 흘려보낼 수 있는 다양한 창조적 분출구가 필요했다. 슈가는 방탄소년단 외에도 솔로 및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작업에서 프로듀싱, 작곡, 작사, 랩, 보컬을 맡고 있다. 이처럼 그 어떠한 조용한 해안가도 슈가라는 파도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다. 

슈가는 자신의 야심 찬 성격에 대해 솔직하다. 슈가의 야망은 왕이 되고 싶다고 (<Interlude : Shadow>), 나아가 이미 왕이 되었다고 (<대취타>) 표현한 가사에도 잘 드러나 있다. 때로는 자신의 목표를 공표하기도 하는데 그 중에는 돌아보면 예견과도 같은 것들도 있다. 커리어를 보면 혼자서도, 그리고 방탄소년단으로서도 수많은 기록을 깨고, 상을 받고, 수백만 장의 음반을 판매했다. 이 수치들은 슈가의 랩에 담긴 플로우와 에너지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슈가의 왕국에는 다른 면도 있다. 야망과 권력은 물질적이거나 위계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슈가의 야망에는 그보다 더 깊고 미묘한 본성이 담겨있다. 슈가의 야망은 차트 순위나, 공연장이나, 수상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점은 2013년 <No More Dream> 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계속해서 이들의 음악에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No More Dream> 의 인트로에 나오는 훅은 모든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함께 부른 것이다. 그러나 그 첫 소절은 슈가의 랩이라는 점에서 볼 때 방탄소년단의 목적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슈가의 몫이었다. “I want a big house, big cars, and big rings”라는 가사는 슈가의 시시한 야망에 대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혹은 힙합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성공의 물질적 상징들은 장애물을 극복한 약자의 승리 또는 이들을 환영하지 않았던 체제에 대한 복수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가사는 “But”이다. 슈가는 물질적 야망들을 열거한 후 “But 사실은 I don’t have any big dreams”라는 대조적인 고백을 한다. <No More Dream> 이후에도 몇 년 간 <Home>, <Interlude : Shadow>, <어떻게 생각해> 등의 곡에서 슈가는 같은 가사를 언급하며 부유함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슈가에게 큰 집, 큰 차, 큰 반지는 불충분한 야망이었다.

슈가의 가사에는 대조적인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부자가 되고 싶지만 큰 꿈은 없고 (<No More Dream>), 스케줄은 바쁘지만 삶의 이유가 없고 (<So Far Away>), 유명하지만 외롭다 (<Interlude : Shadow>). 이러한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슈가의 작업에서 야망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슈가는 항상 큰 꿈을 꿨다. 그러나 슈가에게 있어서 크다는 것은 반드시 비싸거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누가 시간은 금이래 내 시간은 더 비싼데”라는 <대취타>의 가사는 말장난이지만 알맹이가 있다. 

슈가/Agust D는 “범으로 태어나 개처럼 살 수는 없지”라는 <Give It To Me>의 랩 가사와 마찬가지로 <대취타> 에서도 자신을 “범”에 비유했다. 이 은유는 우리나라 민속에 뿌리를 둔 것으로 단순히 권력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 결정권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남들의 얄팍한 잣대에 갇혀 모른 척하며 살다간 코트처럼 인생도 노을 져”라는 <INTRO : 화양연화> 의 가사에도 나타나 있다.

마치 숫자와 라벨로 평가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사회가 정하는 만큼의 가치만을 가질 수 있다는 듯이, 슈가의 음악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야망을 정의하려는 열망과 장기적인 비전을 시사한다. 그는 차트에서 1위를 하는 것보다 지속적이고, 명품보다 값어치가 있는 그런 야망에 대한 생각에 관심이 있다. 물질적인 것들을 원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이상의 것, 그 너머의 것을 원하기도 한다. 슈가의 야망은 그 색깔과 정도가 각기 다른데 이는 가시화하거나 정량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슈가의 야망이 가진 색깔 중 하나는 그의 영향력을 통해 나타난다. 어쩌면 어떤 지위나 신분에 의한 지배보다 더 강력한 것은 영향력에 의한 지배일 것이다. 칭호는 있다가도 없어지게 되고 기록은 경신되지만 영향력은 공간의 제약도, 유효기간도 없다. 측정이 어렵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지속된다. 영향력은 슈가에게 익숙한 것이다. “영원히 소년으로 남고 싶다”는 슈가의 말에 방시혁 대표는 청춘을 주제로 한 [화양연화(花樣年華)] 시리즈를 전개했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됐다. 첫 솔로 믹스테이프인 [Agust D](2016)에 담긴 솔직하고 대담한 가사는 국내에서 정신 건강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대취타>에 국악을 사용했던 2020년에는 한국 전통 음악과 문화가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파도를 일으키는 것도 슈가지만, 때로는 그 흐름을 주도하는 것 또한 슈가다.

방탄소년단도 마찬가지다. 2018년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 의 기자 회견에서 슈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로부터 일년 후 방탄소년단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됐다. 방탄소년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음악, 교육, 관광, 경제 등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 모든 성과는 방탄소년단의 멤버인 슈가 프로필에도 적용된다. 

슈가의 야망이 가진 또 다른 색깔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고자 하는 욕구다. 윙즈 컨셉북에 담긴 인터뷰에서 슈가는 “랩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은 정해져 있었다. <Tomorrow>나 믹스테이프에 있는 <So Far Away> 처럼 희망을 주는 노래다”라고 밝혔다. 음악적으로 이러한 욕망이 앞서 언급된 여유롭고 편안한 곡들에 만연해 있다고 하는 것은 과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슈가의 가사가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으로도 팬들에게 위로를 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희망을 주는 것은 그저 포괄적인 응원의 말을 반복하거나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가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는 것이다. 슈가의 선택은 솔직함이었다. <낙원>, <Burn It>과 같은 곡들에서 슈가는 작은 꿈이어도 괜찮다고, 포기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여기서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 말을 한 사람이 큰 포부와 집요함으로 유명한 슈가라는 점이다. 한편 <The Last>나 <So Far Away>와 같이 덜 달달한 가사에서는 자신의 아픔이지만 누구나 겪는 그런 아픔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슈가의 음악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슈가의 야망이 가진 마지막 색깔은 마음의 평화다. 2021년 위버스(Weverse)와의 인터뷰에서 슈가는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감정적으로 안정된 상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꼭 가장 바쁘고 인기있는 스타 중 한 명이 아니더라도 요즘과 같이 혼란스러운 때라면 이것이 그렇게 야심찬 목표는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루기 힘든 목표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목표로 하는 것 자체가 슈가가 가진 야망의 본질에 대해 말해주는 깨달음인 것이다. “위만 보던 난 이제 걍 아래만 보다가 이대로 착지하고 파”라는 <대취타>의 가사는 자신의 야망에 사로잡혀 길을 잃기 보다는 차라리 바닥에 있겠다는 그의 마음을 보여준다. (2018년 BTS 페스타에서 슈가가 “추락은 두려우나 착륙은 두렵지 않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지는 가사가 “I’m a king, I’m a boss”라는 것은 슈가/Agust D가 헤이터들을 자신의 수준에 못 미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곡이라는 점에서 시사를 던져 준다. 그저 물질적인 성취들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슈가의 진짜 플렉스는 부와 권력이라는 환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슈가의 인생은 그의 예술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위와 같은 통찰의 저변에는 슈가의 음악에 담긴 야망의 외침이 있었다. 야망은 슈가에게 작곡, 작사, 프로듀싱에 대한 동기를 부여했다. 그러나 어워드, 콘서트 매진, 해외 투어, 돈, 명성 등을 언급한 가사만으로 슈가의 야망에 대해 단정하는 것은 실수다. 슈가의 모든 말들은 이러한 성취들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용한 슈가에게 열정이 있다면 그의 성취에는 깊이가 있다. 파도가 바다를 이루고, 바다가 대양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 제공 - BIGHIT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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