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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무대와 링을 오가며 거침없이 돌진하는, 밀리(Milli)

 

음악과 무에타이.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 밀리(Milli)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공연장과 경기장을 넘나들며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태도. 밀리는 단순히 두 세계를 오가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이름을 더욱 견고히 세우는 중이다.

 

 

1. [RSK] 최근 롤링스톤 코리아와 촬영했죠. 쉬는 시간에는 발랄한 표정으로 빵을 먹다가도, 셔터음이 들리면 표정이 돌변하는 게 멋졌어요. 그토록 빠르게 몰입할 수 있는 비법이 뭐예요?

 

팀의 도움이 있었어요. 촬영장에 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었는데, 그가 태국어로 표정이나 자세를 디렉팅해줬거든요. 표정이나 얼굴 각도 같은 걸 잡아주면서 계속 지켜봐 줬어요. 이렇게 도움도 받지만, 결국 제가 느끼는 감정이 중요해요.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감정이 생기면 순간적으로 몰입하게 되거든요. 쉽지는 않지만, 연습도 많이 했어요.

 

 

2. [RSK] 스타일링에서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걸 아는 사람 특유의 여유가 느껴졌어요. 평소에도 직접 옷을 고르나요?

 

아직도 제 패션 스타일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유행은 늘 바뀌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결국 내면에서 나오는 거라 변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어떤 스타일이 잘 맞는지 계속 찾고 있어요.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면서요. 아직은 연습 중이라고 할 수 있죠.

 

 

3. [RSK] 자신만의 색을 찾는 과정은 음악에서도 이어지는데요. 13곡이 담긴 새 앨범 [HEAVYWEIGHT]의 작업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이번 앨범은 대략 1년 정도 걸렸어요. 제 첫 앨범은 작업에 2년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훨씬 빨랐죠. 시간제한이 있기도 했고, 또 LA에서 뮤직 캠프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죠.

 

 

4. [RSK] 팬들과 평론가들은 이번 앨범을 두 개의 챕터처럼 바라보더라고요. 전반부는 혼란과 분노, 후반부는 감정과 구원으로요. 두 가지 흐름을 어떻게 연결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요.

 

사실 이번 앨범은 제 삶을 그대로 보여줘요. 저한테는 두 가지 모드가 있거든요. 혼란스러우면서도 에너지가 넘칠 때가 있고, 일을 마치고 집에서 차분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이 앨범은 제 모습들을 반영한 거예요. 그래서 혼돈과 고요의 흐름으로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꼭 앨범 전체를 들어줬으면 해요. 무거운 에너지를 건네기도 하지만,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감정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5. [RSK] 그중 가장 애착을 갖고 만든 트랙이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마치 어떤 아이가 제일 좋냐고 묻는 것 같거든요. 모든 곡을 사랑하지만, 특히 제 마음이 많이 담긴 곡은 <Invisible Tears>예요. 이 곡은 직접 쓰기 힘들어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문제와 마주할 때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제삼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은 그냥 하나의 바위일 수도 있어요. 그런 감정을 담고 있는 곡이라 특별해요.

 

 

6. [RSK] Awich, BewhY, ATARASHII GAKKO!, Gong H3F, Hugo 등 아시아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눈에 띄는데요. 아시아 아티스트로만 구성한 의도가 있는 걸까요?

 

제가 아시아인이라 그런 것도 있어요. 아시아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요. 또 이 아티스트들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이라, 곡을 쓰거나 콘셉트를 구상할 때 자연스럽게 떠올라요. 각자의 매력, 사운드, 노래 안에서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방식까지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좋은 시너지가 난다고 느꼈어요.

 

 

7. [RSK] 이들과 함께 작업하며 생긴 에피소드도 들려준다면요?

 

<HELL YES>라는 곡에는 래퍼 비와이(BewhY)와 함께했어요. 죽음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노래인데요.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잖아요. 하지만 ‘내가 지옥에 간다 해도 친구들도 함께라면, 정말 두려울까? 오히려 무더운 여름날의 파티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됐죠. 어릴 때 엄마가 ‘착하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고 말씀하셨을 때도 저는 ‘난 지옥이 두렵지 않아. 내 친구들이 다 거기 있을 테니까. 오히려 천국에 가면 더 외롭고 쓸쓸할 것 같아’라고 대답하곤 했어요.

흥미로운 건 비와이가 굉장히 독실한 사람이란 점이에요. 그는 “밀리, 난 지옥에 가고 싶지 않아. 이미 우리가 겪어온 삶 자체가 지옥 같았으니, 우린 천국에 갈 자격이 있어”라고 말했죠. 그 순간 ‘와, 세상에’ 싶었어요. 제 원래 아이디어는 장난스럽고 가볍게 출발했는데, 비와이가 곡을 훨씬 더 진지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줬거든요. 그래서 결국 ‘우리는 이미 충분히 힘든 삶을 살았으니, 누구도 지옥에 가선 안 된다’는 메시지가 담기게 됐어요. 함께해 준 비와이에게 정말 고마워요.

 

 

8. [RSK] 지난 5월, 방콕의 Lumpinee Boxing Stadium에서 무에타이 선수로서 데뷔했어요. 그날 하루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선명하게 남은 장면이나 감정이 있나요?

 

스스로에게 존경심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꼈어요. 사실 그전까지는 저 자신을 그렇게까지 존중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번만큼은 ‘네가 해냈어. 정말 대단하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죠. 링에 오르기 전에는 감정이 벅차올라 거의 울 뻔했어요. 꿈을 꾸는 것 같았거든요. 어느 누가 아티스트에게 실제 경기에서 싸워보라고 허락하겠어요? 그런데 제 회사가 기회를 줬죠. 정말 감사했어요.

가족에게도, 저 자신에게도, 그리고 시합을 앞두고 두 달 동안 땀 흘리며 훈련했던 파이트 테크 센터에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쉽지 않았지만 결국 해냈고, 그 덕분에 지금은 확신이 생겼어요. 나는 무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잘 해낸다는 확신이요.

 

 

9. [RSK] 가족이 직접 와서 지켜본 경기였다고 들었어요. 관중석에 앉아 있던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요.

 

엄마는 너무 걱정돼서 경기 내내 소리를 지르셨어요. 끝나고 나서는 목소리가 완전히 쉬어버렸을 정도였죠. 반대로 아빠는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아빠가 늘 ‘하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라, 반쯤만 하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여라’라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스스로를 한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10. [RSK] 29–28, 판정 결과를 들었을 때의 솔직한 마음이 궁금해요.

 

저도 놀랐어요. 단 한 점 차였거든요. 제 상대는 중국의 프로 복서였는데, 정말 대단했죠. 저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녀는 이미 네 번의 경기를 치른 경험이 있었지만, 저는 이번이 첫 경기였거든요. 그런데도 그런 점수를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고, 그래서 더 뿌듯했어요.

 


11. [RSK] 무에타이는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죠. 두 세계가 주는 긴장감이나 성취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듣고 싶어요.

 

무대에 아티스트로 설 때는 아무리 힘이 빠져도 누가 때리진 않잖아요. 그런데 파이터로서 링 위에 서면 얘기가 달라요. 제가 지치는 순간 상대가 저를 완전히 무너뜨리겠죠.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제가 쓰러지는 거예요. 그게 제가 배운 부분이었어요. 꺾이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워야 했죠. 이제는 오히려 아티스트로 무대에 서는 게 훨씬 여유롭게 느껴져요.

 

 

12. [RSK] 무대와 링. 밀리는 늘 자신을 둘러싼 더 큰 세계를 궁금해하는 듯합니다. 바다와 우주처럼요. 인간은 그중 극히 일부만 알고 있다고 하는데, 두 세계 중 하나의 비밀을 알 수 있다면 어느 쪽이 더 궁금한가요?

 

바다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수영을 정말 좋아하고 바다를 사랑하거든요. 인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도 믿어요. 그런데 만약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저는 마법 세계를 고를 거예요. 해리 포터의 엄청난 팬이거든요.

 

 

13. [RSK] 또한,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 3가지를 살짝 알려준다면요?

 

그럼, 제 비밀 세 가지를 알려드릴게요. 첫째, 원래는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었는데 이제는 잘 먹어요. 둘째, 생식을 좋아해요. 특히 육회, 그중에서도 한국산 육회를 최고로 꼽아요. 예전에 혼자 네 접시를 비운 적도 있어요. 말도 안 되죠? 하지만 뿌듯했답니다. 셋째, 나름 패셔너블해요. 어느 날 파티가 끝나고 새벽에 만취해서 귀가했는데 창문 닫는 걸 깜박했어요. 그래서 햇빛이 눈을 찌르는 데도 그냥 선글라스를 끼고 다시 잠들었죠. 그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는데, 꽤 모델처럼 찍혔더라고요. 패션 아이콘 같기도 했죠. 여기까지가 밀리의 세 가지 비밀이랍니다. 감사해요!

 

 

밀리(Milli)의 다양한 화보 이미지와 인터뷰 전문은 추후 발간될 롤링스톤 코리아 15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HOTOGRAPHS BY SOYE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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