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Interview

INJAE(인재) “모든 기억은 결국 사랑의 형태로 남아요”

 

이따금 우리는 홀린 듯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기억의 방들. 눈앞에 놓인 여러 개의 문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면, 낯설지만 익숙한 감정이 스며든다. 지나온 서사를 다시 훑으며 “그때 그래서 내가 그런 감정을 느꼈구나” 하고 비로소 나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사람이 기억을 연료로 살아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기억의 방 중에는 사랑의 흔적으로 가득한 공간이 있다. 지나간 시간이 만들어낸 울림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 INJAE(인재)의 [J.A.E (Just After the Echoes)]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1. [RSK]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시작했나요? 하루 루틴이 궁금해요.

 

아침에 일어나 식빵과 과일, 라떼로 간단한 식사를 했어요. 요즘은 EP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전반적인 모니터링을 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고 있죠. 제 음악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을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편이에요. 중간중간 집 근처를 산책하며 활동량도 채우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2. [RSK] 이번 EP 제목은 [J.A.E (Just After the Echoes)]예요. '울림'이라는 개념을 음악으로 풀어내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떤 경험을 하고 나면, 그 순간보다도 시간이 지난 후에 더 깊이 되새기면서 감정이 커지곤 하잖아요. 저 역시도 그런 여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때 그래서 내가 그런 감정을 느꼈구나’ 하고 곱씹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풀어나가게 됐던 것 같아요.

 

 

3. [RSK] ‘사랑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해진다’라는 점을 강조하셨는데,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부분이 있을까요?

 

언제나 불꽃같이 타오르는 사랑만이 강렬한 건 아니더라고요. 잔잔하면서도 묵묵하게 곁을 지켜주는 사랑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좀 더 뜨겁게 타올랐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조용한 사랑 덕분에 힘든 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런 감정들이 여전히 제 안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어요.

 

 

4. [RSK] 앨범에 수록된 곡 중 가장 애착이 가는 트랙이 있나요? 이유도 궁금해요.

 

솔직히 말하면, 이번 EP의 모든 곡을 하나하나 싱글로 내고 싶을 정도로 다 애착이 가요.(웃음) 비트부터 분위기까지, 제가 정말 좋아하는 R&B 사운드에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작업하는 과정도 너무 즐거웠고, 그 기억들이 고스란히 음악에 스며 있는 것 같아요. 한 곡만 꼽는 건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5. [RSK] 그냥노창, shinjihang 등 여러 아티스트가 앨범에 참여했는데, 함께 작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타이틀곡 <Playback>은 MELOH 님과 함께 작업했어요. 어릴 때부터 비슷한 음악적 취향을 가져서인지, 굳이 많은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곡이 완성됐어요. 벌스를 처음 들었을 때의 쾌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딱 들으면 ‘아, 이 느낌이구나’ 하고 직감적으로 와닿을 거예요. 그런 직관적인 연결이 참 좋았어요.  

<Lessons>는 그냥노창 오빠와 함께했는데, 오빠는 제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를 정말 잘 아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듣자마자 감정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는 비트를 건네주셨죠. 흥미로운 건, 오빠가 만든 훅 가사(‘Babe Picture me ballin'
I'm the one you've been wantin'
계속 그녀들의 전화가 오지만
I'm still curvin')가 과거 저스트뮤직 컴필레이션 [우리 효과]에 수록된 <실키보이즈>의 훅에서 가져온 부분이라는 거예요. 원곡은 애절한 감성이 강한데, 저는 그 가사를 ‘사랑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라는 콘셉트로 해석해서 곡을 풀어냈어요. 작업하면서 오빠와 주제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왜 하필>은 지항이와 함께했는데, 제가 원하는 무드가 명확했던 곡이라 디렉팅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지항이는 곡의 기승전결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능력이 탁월한 아티스트라,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어요. 덕분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어요.  

 

 

6. [RSK] 90~00년대 R&B 감성과 현대적인 프로덕션을 조화롭게 융합한다고 하셨는데, 이번 앨범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그 시절의 감성을 반가워하면서도, 저만의 강점을 녹여내고 싶었어요. 저만의 말투(가사), 창법, 그리고 태도까지—이런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면,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음악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제 음악을 음미하면서 들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7. [RSK] 키샤 콜, 시애라, 앨리샤 키스, 재즈민 설리번 등 여러 R&B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이번 앨범 작업에 영감을 준 아티스트나 앨범이 있을까요?

 

전반적으로 다양한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받아왔지만, 특히 사랑을 풋풋한 마음으로 노래한 곡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간질간질하면서도 솔직하고, 예쁜 감성이 담긴 곡들이요. Chris Brown의 <Say Goodbye>, Mario의 <How Could You>, Rihanna의 <We Ride> 같은 곡들이 떠오르네요. 제 가사를 보면 직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저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곡의 진솔함을 더해준다고 생각해요.  

 

 

8. [RSK] 앨범을 작업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어려웠다기보다는, 제 스스로 더 고민했던 부분이 있어요. 기존에 익숙하게 만들어왔던 멜로디 라인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했거든요.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내 스타일’이 자리 잡게 되는데, 때로는 그것이 반복되면서 저조차도 흥미를 잃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낯설게 느껴지는 멜로디를 시도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에서 흥미를 찾으려 했어요. 그 과정이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9. [RSK] INJAE 님의 음악은 감정을 기록하는 과정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는 부분과 적절히 가려야 하는 부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나요?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는 부분은 곡의 화자가 느끼는 감정을 최대한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에서 나와요. 반면, 적절히 감추는 부분은 너무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비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거죠. 제 이야기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듣는 분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감정으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요.

 

 

10. [RSK] 신보를 통해 INJAE라는 아티스트가 청자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었으면 하나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섬세한 감성을 가진 아티스트, 잊고 있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아티스트, 그리고 앞으로의 음악이 더욱 기대되는 아티스트였으면 좋겠어요.  

 

 

11. [RSK] 만약 [J.A.E (Just After the Echoes)]가 한 편의 영화라면, 어떤 장면으로 끝을 맺고 싶나요? 또한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노래가 있다면 어떤 곡일까요?

 

폭풍 같았던 소용돌이가 지나고, 불안정한 사랑 속에서 확신을 찾으며, 결국엔 안정적인 사랑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장면일 것 같아요. 마지막에 흐를 곡은 EP의 마지막 트랙 <왜 하필>이겠죠. 제목 그대로 ‘왜 하필 너였을까?’, ‘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곡인데, 사실 그 질문의 답은 결국 ‘너여서’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면서 곁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길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때 <왜 하필>을 떠올리며 ‘새삼스러운 소중함’을 느껴보시면 어떨까요.

 

 

12. [RSK] R&B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기신다고 들었어요.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음악적 스타일이나 새로운 시도가 있다면요?

 

항상 고민 중이고, 그때그때 다르긴 한데요. 업템포나 댄스홀 같은 장르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제 이야기를 신선하게 표현하고 싶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아직 R&B가 가장 좋습니다. 

 

 

13. [RSK] [J.A.E (Just After the Echoes)]는 자연스럽게 ‘기억’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앨범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기억과 관련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만약 평생 단 세 가지 기억만 간직할 수 있다면, 어떤 순간들을 선택하시겠어요?

 

이 질문을 받자마자 왠지 모르게 울컥했어요. 세 가지 기억을 제외하고 모든 걸 잊어야 한다고 상상하니, 문득 슬퍼지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소중한 순간들이 참 많았구나 싶어요. 첫 번째는 어린 시절, 저와 동생이 밤새 고열에 시달리던 날의 기억이에요. 부모님께서 잠도 못 주무시고 저희 곁을 지켜주셨죠. 너무 아팠던 탓에 또렷이 남아 있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라 더욱 소중하게 다가와요. 

두 번째는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순간이에요. 쿠팡에서 주문한 홈 레코딩 장비 세트가 도착하자마자 무작정 비트를 만들고 보컬을 녹음해 들었죠. ‘드디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는구나’ 하는 설렘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 떨림을 잊고 싶지 않아요.

세 번째 기억은 어린 시절, 큰언니 방에 몰래 들어가던 순간들이에요. CD 플레이어에 팝송을 넣어 들으며 해외 패션 잡지를 넘겨보고, 언니의 옷과 구두를 신어보곤 했죠.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던 언니의 방은 언제나 알록달록하고 흥미로운 아이템들로 가득한 공간이었어요. 어린 시절 저의 작은 아지트이자,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곳이었달까요. 언니는 이제 하늘에 있지만, 저에게 영원한 뮤즈이자 수호신 같은 존재예요. Shout out to YJ in heaven.

돌아보면 이 모든 기억들이 결국 ‘사랑’의 형태를 하고 있네요!

 

 

Photographs by AP Alchemy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