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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크러시는 죽지 않고 장르가 된다.

걸크러시 이야기를 해보자. 신조어의 원류를 찾아가자면 결국 나와야 하는 이름은 스파이스 걸스다. 1996년도에 싱글 <Wannabe> 나왔던 순간은 걸그룹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90년대 중반부터 영국은 산업적으로 보이 그룹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테이크 댓에 이어 보이존과 웨스트라이프가 등장하자 영국은 보이 그룹 전쟁으로 타올랐다. 스파이스 걸스는 보이 그룹의 성공에 힘입어 결성된 그룹이었다. 남성 청자들을 위해 결성된 산업적 결과물이었지만 오히려 반응이 터져 나온 여성 청자들로부터였다. 음반사는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 파워'라는 문구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멤버들에게 슈퍼히어로 같은 별명을 붙이고, 성적 매력보다는 여성의 당당함을 내세운 것은 혁신적인 일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걸크러쉬라는 단어는 스파이스 걸스로부터 탄생한 것이라고 단언할 있을 것이다. 세인츠, 슈가베이브스와 걸스 얼라우드도 스파이스 걸스의 성공 전략을 따라 하며 등장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걸크러시라는 단어는 조금 오용되는 면이 있다. 우리는 무엇을 걸크러시라고 불러야 것인가. 단순히센캐' 이미지의 곡을 내면 그것은 걸크러시인가? 여성 팬에게 적극적으로 소비되면 그것을 걸크러시라고 불러야 하는가? 대부분의 경우 걸크러시라는 단어는이번에는 섹시 컨셉이에요.' 마찬가지로이번에는 걸크 컨셉이에요.'라는, 소속사가 그때그때 정해준 활동의 단기적인 컨셉에 불과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여자)아이들의 정규 앨범 [I Never Die] 그런 점에서 확실히 걸크러시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어 데뷔 4 그룹을 이끌겠다는 의지가 확연히 보이는 드문 걸그룹 앨범이다
 

데뷔 이후 (여자)아이들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정체성을 탐구했다. 정규 앨범 발매 그룹의 가장 히트곡이었던 덤디덤디는 무난한 여름용 댄스 팝이었다. 미니 앨범 [I Burn] 까지는 (여자)아이들이라는 그룹의 명확한 방향을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지드래곤으로부터 물려받은셀프 프로듀싱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전소연의 음악적 감각과 수진의 아이돌적 매력이 그룹의 매력을 끌고 가는 쌍두마차라는 분명했다. 수진이 탈퇴하면서 무게는 전소연의 어깨에 온전히 얹혔다. 그렇다면 방향은 어떤 면에서 충분히 예상할 있었다. <언프리티 랩스타> 솔로 앨범 [Windy]에서 지속적으로 암시했던, 종속적인 여자 아이돌이 아닌 여성 뮤지션으로서의 자의식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특히 싱글인 <Tomboy> 그야말로 아이돌 정체성에 대한 일종의 반기다. 작곡자인 전소연은 트렌디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등장으로 소환된 펑크록의 기운을 후렴구의 캐치한 기타 리프로 담아내는 대단히 트렌디한 선택인 동시에걸파워' 혹은걸크러시'라는 컨셉을 그룹의 정체성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음악적 선언이다. 록이 음악적 선언이라면미친년이라 말해", “I’m a (fucking) tomboy”라는 가사는 정체성 선언이다. 물론 당신은 모든 것이 상업적으로 설계된 컨셉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게 상업적인 컨셉이라면 (여자)아이들과 큐브 엔터테인먼트는 멋진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비즈니스는 중요하다. 음악적 방향과 비즈니스의 방향이 맞물려야 좋은 아이돌 그룹이 탄생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번 신보를 이야기하면서 에이브릴 라빈, 올리비아 로드리고로 이어지는 여성 펑크 뮤지션의 이름만 거론하는 약간 반쪽짜리 이야기가 것이다. (여자)아이들의 가장 히트곡인 <덤디덤디> <Tomboy> 많은 면에서 90년대 영국 걸그룹들의 기운을 드러낸다. <덤디덤디>여름에 관한 노래'라는 점에서도 세인츠의 히트곡이자 DJ 팻보이 슬림이 2002 유명한 브라이턴 비치 페스티벌에서 리믹스한 역사적인여름 송가' 남은 명곡 <Pure Shore> 분명한 자장 아래 존재하는 곡이다. [I Never die] 영국 걸그룹 역사상 가장 비평가들의 편애를 받았던 슈가베이브스를 떠오르게 만든다. 슈가베이브스는 2000년대 영국에서 전형적 걸그룹의 이미지를 파괴한 걸그룹으로 인기가 높았다. ‘못된 얼굴의 천사들'이라는 의미의 걸작 <Angels With Dirty Faces> 일종의안티-스파이스 걸스 (Anti-Spice Girls)'를 표방했다. 그들의 노래는 버블검 팝이 아니라 거라지, 일렉트로니카, 힙합에 록의 강렬한 기타 리프를 끼얹은 댄스곡들이었다. 2000년대 영국 팝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I Never Die], 특히 <Tomboy>에서 슈가베이브스의 히트곡 <Hole in The Head> <Freak Like Me> 레퍼런스를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케이팝은 지구상에 존재하던 역사의 종합적 믹스에 가까운 장르다. 완벽하게 오리지널 한 것은 없지만 팝의 역사적 레퍼런스들을 모조리 가져와 뒤섞은 패스티시(Pastiche : 혼성모방) 매력이야말로 케이팝의 오리지널리티다. (여자)아이들의 [I Never Die] 자신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완성할 애티튜드와 레퍼런스를 영리하게 골라서 선택했다. 전략을 지속해서 반복할 있을지가 관건이겠지만 그거야 너무 이르게 예측하고 예단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가장 미친년스러운' 걸그룹의 새로운 시도를 즐기면 된다. 어쨌거나 [I Never Die] 확실히크러시'한다
 

< 사진 제공 - 큐브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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