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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그런 파란이 아닌가, (Tune Blank)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감상에서 시작된, 한국 대중 예술의 유려함으로 더 기대되는 앞날.

“침묵이 들려요.” 말을 내던 여자는, 어쩌지 못할 떨림을 눈에 싣던 남자에게 흔하게 안긴다. 아니, 뭐 대단히 화려할 건 없는데도 순식간에 매료된다. 영화관에서 한껏 고조되어 볼 게 아니라 집에서 편안하게 보는 게 어쩌면 더. 

이렇게 <드라이브 마이 카 (이하 드마카)>는 이번 오스카 아시아권 수상작이 되었다.


독주인지 합주인지 모르게 비어져 나오는 선율의 오래됨. 그 위를 억지로 밀어 긋는 차 소리. 때릉, 삭 하는 자전거 스침은 이웃 같고, 익숙한 옆집 창문스럽게 녹이 좀 슬고 투박한 유릿덩이는 덕지덕지. 누릿한 벽 바탕과, 그 앞을 가린 빨래건조대에는 있는 줄도 모르게. 그래 마치, 

공기처럼. 양말이 걸리어 있다.


지난번 오스카 아시아권 수상을 넘어, 온갖 상들을 그야말로 째로 채운 한국 수상작 <기생충>에서는 더하면 더했던 그런 소시민적 일상이다.


화려한 기교도 좋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기에 지극히 기본적인 일상에서 가장 깊은 유려함을 다뤄내는 것. 이것을 아시아가 정말 잘 해낸다 생각하고, 그중에서 한국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요즘의 한류열풍이 증명한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부터 깊게 들여다볼 것이다, 오스카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아름다움을.


취업난에 생존을 위해 협잡을 한다던가, 애인보단 덜 사랑하는 애인 외의 사람이 엄연히 존재한다던가, 그 존재에도 애인과의 신뢰를 위해 은닉하려는 태도를 그대로 보고만 있는다던가 따위의 행동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찌푸려지는데, 그렇다 해서 이게 아주 이해 불가할 큰 범죄까지는 아니다. 사실 이거야말로 진짜 일상적이다.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는 자잘한 잘못들과 실수들은 이렇게 일상에선 적나라하게 볼 수가 있고, 숫제 가장 잘 담겨있다. 우리는 선하려고 나름 자꾸 노력해도 본능적 쾌락에 망설이고 현실적 제약에 선뜻 두려워한다.


그러나 여태 등장해왔던 화려한 영웅들은 어떠했는가. 나는 돈 없어서 간식 하나 사 먹어도 되나마나 하고 있는데, 저 어디 무슨 좋은 대학 나온 좋은 머리 영웅 아저씨 하나는 친구와의 신뢰를 산답시고 0의 개수가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금액을 일시불로 내질 않나. 나는 야근하느라 운동할 시간은커녕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다, 여우짓 하는 낙하산 회사 동료에게 피해 입어도 사회생활 뒷감당이 두려워 별말 어려운데, 쭉쭉빵빵 영웅 또 하나는 남들보다 일찍 퇴근하질 않나. 여우가 애인에게 집적이면 그게 재벌 몇 세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엎어버리고도 사회생활 계속 잘 한다. 왜냐, 너무 능력 있어서 살인 강간범만 아니면 이 영웅을 계속 쓸 수밖에 없어서.


그래, 화려하고 부럽고. 야아, 점점 감동하지 않게 된다. 왜냐고 질문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내가 발음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잖나, 너무 남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래, 우리는 영웅도 궁금하지만, 우리와 같은 아름다움은 더 궁금하고. 영웅도 솔직히 우리에게서 나왔으면 한다. 정직해 보자면, 나 같은 출신의 주인공이 자신의 부족함을 견디고 자신만의 색채를 살려, 화려도 좋지만 그보단 가장 훌륭하게 살아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반영하는 배경은 화려하지 못한 진짜 일상에서 출발하는 것이겠다.


그렇다고 일상을 무턱대고 찍는다고 감동하지도 않지. 남의 일상 그냥 막 찍어놓은 건 에이, 그거 볼 시간에 내 일상에나 집중하지, 당연하다. 내가 예술을 누릴 돈은 정해져 있다. 그 귀한 돈을 갖다가 누가 아무 데나 쓰고 싶겠나. 그래서 당연하게도, 일상인데도 내용엔 반드시 대충 쓴 이야기와는 다른 깊이의 아름다움이 있어야만 대작이 된다. 그래서 최고의 걸작 쓰기 너무 힘들다. 세계 웬만한 진짜 예술가들도 잘 못한다. 이걸 갖다가, 차별과 각종 힘든 여건을 극복하면서까지 한국이 해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인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언제부터 해내게 되었나. 한국 대중예술의 세계화는 최근 일이지만, 세계가 주목하기 전부터 우리의 경쟁력은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쯤부터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그전에도 훌륭한 예술가들은 존재했으나, 서태지에서부터 깊은 혁신적 가사와 한국을 더 혁신하는 선율로 비로소 단순 음악팬들은 종교적 두텁팬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물론 저급한 대중문화 생산은 그 전후에도 늘 존재해서, 그 진화가 혹 변질될까 우려하는 말들도 나름 자신들만의 깊은 생각을 담고 있었으나, 진짜 예술가들 상당수 또한 자신들의 괜한 생각을 예술화하는 게 아니었기에. 우려를 한낱 괜한 우려로 만들고 세계적인 아름다움이 된 현재가 될 때까지, 아름다움을 성숙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드디어 성숙이 빛을 보게 된 방탄소년단 (<데미안>과 같은 깊은 생각을 예술화), 넷플릭스 1위 <오징어 게임> (경제력과 감옥 안의 공통점에 대한 첨예한 묘사, 자크 라캉의 <욕망이론> 종류의 깊은 생각을 예술화), 넷플릭스 최상위권 <지옥> (자연현상을 종교로 합리화했을 때 벌어지는 진짜 비극을 예술로 승화) 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디즈니+ 1위 <그리드>, <그리드>는 현재 진행 중인 한류 열풍이기에 더 자세히 서술하겠다.


당황스럽게도 <그리드>는 훌륭하면서 화려하기까지 한 작품이며, 보통 출신에서 나온 영웅이 훌륭하게 화려해지면서 두 마리 토끼 다 잡는 이례적인 내용이다.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데도 자연스럽게 찬사가 된다. 그냥, 완벽 그 자체. 물론 김새하 역 서강준의 뛰어난 외모와 더 뛰어난 연기는 영웅적이긴 하나, 정작 김새하는 평범하게 청소부 자녀 출신으로 시작해서 공무원 낮은 계급 사무직으로 일하며, 부속품 취급하는 세상의 낮은 존중감에 우리처럼 시달린다. 그렇게 오랫동안 대의를 위해 사람 한둘쯤은 우습게 취급하는 저들, 선의가 사실상 불분명한 유령과 공무원 단체에게 비판적 노력을 가한다. 노력이 더해지며, 아, 드디어 노력의 꽃. 개인 몇 짓밟아가며 세상을 구하는 현재를 정반대로 바꾼다. 허나 웬걸, 개인 몇몇만 꿀이고 세상 전체는 마구 짓밟히고 있었다. 그 짓밟힘에는, 정말, 정말 훌륭한 동료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꿀 누리는 개인 몇에는 다행히 자신이 포함돼 있었지만, 그 개인 몇도 사실 선의가 여러 의미로 불분명했다. 결국 양심을 견디지 못한 새하는 다시 비판적 노력을 가한다. 그리고 질문을 맞닥뜨린다. 

무고한, 심하면 선의의 개인이 다시 짓밟힐 수 있고 그 개인이 하필 내가 될 수 있음에도, 

나도 세상도 둘 다 가장 존중받는 최고의 훌륭함을 실현할 수 있는가?


자, 오늘 이야기할 것은 이 훌륭함의 내일이다.

한국 열풍에 가장 기대되는 점은 어쩌면 이 상승세의 앞으로이다. 이건 예술가 저마다들 답할 수 있겠지. 또한 그들 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바라볼지 머뭇거릴 대중에게도 묻는다. 

어떻게 쓸래 이 기회의 곳간을? 예술 앞에 선 세상은 괜히 빈 공간이 아니라서, 가장 훌륭한 선율이 채울 것을 기다리는 여백에서.


<ILLUSTRATION by - JAEHYU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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