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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고 멋진 리바이벌, 케이팝과 록의 동행

록 팬들이여, 일어나라! 피를 끓게 만드는 전자 기타와 가슴속 가장 깊은 곳까지 울리는 베이스, 절로 발을 구르게 되는 드럼 소리가 최근 자주 들린다. 옷장 속 고이 개어 놓았던 너바나, 아이언 메이든, 메탈리카, AC/DC 로고가 그려진 록 티셔츠가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음악 방송에서는 가죽 재킷을 입고 '악마의 뿔' 제스처를 그리며 춤을 추는 그룹이 인기다. 잠깐. 그런데 이거, 요즘 케이팝 이야기 아닌가? 

케이팝과 록의 화학작용이 활발하다. 해외 동향을 관찰하고 시험하던 단계를 넘어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록의 다양한 요소를 가져와 유행을 이끌고 있다. 단순하게는 미적인 요소부터 과감하게는 타이틀 싱글과 앨범, 그룹의 서사를 결정하는 주제 의식까지 곳곳에 록이 있다. 수단에 그치지 않고 공통의 정서를 공유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0X1=Lovesong>을 내놓고 세븐틴이 <Rock With You>를 발표했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태연이 에이브릴 라빈 스타일의 <Can't Control Myself>를 부르고 예나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문법을 빌려 <Smiley>를 공개했다. JYP의 야심 찬 신인 엔믹스의 <O.O>는 베일리 펑크 장르에 이어 완연한 틴에이지 록을 펼쳤고, NCT 드림은 <버퍼링>의 하이라이트 댄스 브레이크에 앨범 제목의 [Glitch Mode] 대신 디스토션 걸린 기타 연주를 앞세웠다. 결정적으로 (여자)아이들의 <TOMBOY>가 등장했다. 2022년 케이팝 상반기 히트곡이자 록의 애티튜드를 케이팝에 가장 성공적으로 이식한 작품이다. 

추세에 민감한 팬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록의 상승 조짐을 포착했다. Z세대 문법이 메이저 시장을 장악하며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위세를 떨친 팝 펑크, 이모 코어, 얼터너티브 록이 재조명받았다. 힙합과 세련된 일렉트로 팝, 펑크(Funk)와 디스코가 주류 차트에서 오래도록 대세를 차지하는 동안 젊은 세대는 그들의 유년기를 지배했던 록스타들 - 강렬한 이미지와 대중적인 멜로디로 팝스타의 지위를 누렸지만, 평단과 마니아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던 - 에 자신을 투영했다. 




 

세 팀의 사례를 들어 이 유행을 살펴보자. 2021년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케이팝 록 트렌드를 한 해 앞서간 그룹이다. 미국 팝 펑크 리바이벌을 이끄는 뮤지션 모드 선이 참여한 <0X1=Lovesong>는 림프 비즈킷 등 뉴 메탈과 마이 케미컬 로맨스, 더 유즈드 등 이모 코어의 요소를 갖춘 록 스타일의 노래였다. 이 노래에 참여한 이는 놀랍게도 팝 펑크 리바이벌의 선두 주자 중 한 명인 모드 선(Mod Sun). 추후 공개된 '이모 코어 믹스'를 들어보면 현재 미국 Z세대가 지향하는 록의 궤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리패키지 앨범의 <LO$ER=LO♡ER>는 더 과감하게 록을 끌어안았다. 밴드 보컬의 퍼포먼스를 연상케 하는 안무는 더욱 거칠어졌고, 침울한 저항의 정서도 깊어졌다. 2000년대 이모 코어에서 1990년대 포스트 그런지 스타일의 곡으로 시곗바늘을 돌리며 차가운 세상 앞에 냉소적으로 변한 소년의 허무함을 절절히 표현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올해 나왔다면 더 큰 호응을 얻었을 곡이다. 

하이브 레이블즈가 지난해 록에 진심이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그룹이 엔하이픈이다. HBO 맥스 시리즈 '유포리아'의 한 장면 같은 뮤직비디오와 과감한 사운드로 무장한 [BORDER : CARNIVAL]은 세계적인 록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를 소환했다. 새천년 록 팬들이라면 <Drunk-Dazed>를 인도하는 인트로 곡 <The Invitation>에서 아케이드 파이어의 2013년 작 [Reflektor]와 그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LCD 사운드시스템의 음악 세계를 감지했을 것이다. 

이후 엔하이픈의 노래에서도 록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궁지와 혼돈 속 갈등하며 질주하던 <Tamed-Dashed>에도 곡을 이끄는 저돌적인 베이스 라인 아래 뉴웨이브 스타일의 기타 리프를 삽입했고, <Blessed-Cursed>는 한술 더 떠 Y2K 문화와 1970년대 하드 록의 기타 소리를 결합했다. 

 




(여자)아이들의 <TOMBOY>는 2022년의 짜릿한 한 방이다. 록과 케이팝의 만남은 많았으나 이 곡처럼 직관적으로 대중의 인식에 깊이 침투한 곡은 없다. 높은 트렌드 이해도와 민니, 슈화, 우기, 미연 각 멤버의 강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리더 전소연은 시장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곡을 통해 새로운 브랜딩과 극복 서사를 완성했다. 앨범 제목처럼 통쾌한 “아이 네버 다이(I NEVER DIE)”다. 

전소연은 이미 지난해 솔로 미니 앨범에서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가져온 <삠삠>으로 해외 록 트렌드 도입 테스트를 마쳤다. 지코와 함께 블락비의 로킹한 기타 리프를 선보인 바 있던 작곡가 팝타임(Poptime)이라는 든든한 조력자도 곁에 있었다. 데뷔 전부터 꾸준히 유지해온 강인한 걸 크러쉬 콘셉트 이해도도 높았다. <TOMBOY>는 즉각 쾌감을 안기는 기타 리프만으로도 재미있지만, 짧은 3분가량 동안 다양한 디테일을 확인하면 더욱 흥미로운 곡이 된다. 'It's neither man nor woman / Just Me, IDLE' 선언까지 완벽한 기승전결을 들려준다. 

케이팝은 록의 요소를 재치 있게,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Z세대가 록을 가지고 노는 모습과 동일하다. 록의 역사와 록 스피릿, 밴드 구성 등 어려운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 신세대들은 록의 패션과 애티튜드를 매력적으로 가다듬어 원하는 대로 활용하며 새로운 시대의 음악을 만든다.

<0X1=Lovesong>이 매력적인 것은 이모 코어의 진행을 가져가며 중간중간에 트랩 비트와 팝 멜로디를 삽입한 덕이다. 엔하이픈의 노래 역시 록을 의식 않고 들어도 흥겨운 댄스 팝이다. (여자)아이들의 <TOMBOY>도 독특한 록이다. 전소연의 두 번째 버스는 랩을 위한 파트로 정직한 드럼 진행의 곡 중 한차례 숨을 고른다. 질주하는 밴드 라이브로는 이 곡의 역동적인 매력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최근 록이 다시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데는 음악보다 정서의 공이 크다. 부조리한 현실 속 어떻게든 분노와 무기력을 토해내며 우울한 청춘들에게 해방구를 제공했다는 점이 오늘날 신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2년의 케이팝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세계관, 미지의 세계, 신비로운 우상에서 한 발짝 물러난 아이돌 그룹들은 청춘의 표상을 꿈꾼다. 좌절하고 분노하며, 혼란 속 갈등을 거쳐 마침내 당당한 초인이 되고자 한다. 록은 이제 탐독과 경배의 대상이 아니다. 쿨하고 멋진 장르, 자아실현을 위한 좋은 도구다. 케이팝과 록의 동행은 계속된다. 


<사진 제공 - 큐브엔터테인먼트,하이브,pi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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