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Features

레드벨벳과 NCT 드림이 펼쳐보인 2022 SM 월드

드르륵,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정겨운 클래식 선율이 흐른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와 함께 우아한 추임새가 더해지는 이 공간은 신비로운 청록빛의 비밀 정원, 중세 이전의 유토피아를 꿈꾼 라파엘 전파 시기의 명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황홀경이다. 이윽고 편안한 감상에 마음을 놓을 때쯤,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린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 속 기이한 창조물들이 생명을 얻어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를 마구 헤집고 뒤섞어 독특한 리듬을 창조한다. "우릴 오만과 편견에 가두지 마"라는 선언과 함께 "무도회를 뒤집어" 놓으면서도 달디 단 슈가파우더처럼 사뿐사뿐한 멜로디가 귀를 간지럽힌다. [The ReVe Festival 2022 - Feel My Rhythm]이 들려주는 레드벨벳의 세계다.    




 

고풍스러운 미술관 길 건너에는 네온사인 간판 아래 콘솔 게임기와 타이틀을 판매하는 매장이 문을 열었다. 각자 손가락에 우정 반지를 끼고 있는 사이좋은 일곱 친구들이 매장 곳곳에 나타났다가, 깜빡이고, 자취를 감췄다 어느새 등 뒤에서 나타난다. 처음 느껴보는 설렘과 낯선 기분의 기복에 따라 화사한 꽃밭과 차가운 눈보라를 오가는 이곳은 천진난만한 청춘의 감정에 따라 테마를 바꾸는 팝업스토어다. 아케이드 게임과 콘솔 게임, PC 게임을 넘나드는 그룹은 긴 '버퍼링'을 견디어 오늘날 누구보다도 선명하게 우리 앞에 나타났다. NCT 드림의 두 번째 정규 앨범 [Glitch Mode]다. 

SM에게 2022년 두 그룹의 성공은 각기 다른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데뷔 8년 차의 레드벨벳과 데뷔 6년 차의 NCT 드림은 SM 컬처 유니버스(SMCU)를 이끄는 에스파가 '광야'를 개척하기 전 SM의 현재를 지탱해온 그룹이다. 하지만 둘의 궤적은 달랐다. 레드벨벳이 2010년대 케이팝에서 가장 혁신적인 음악을 들려준 팀으로 장수한 그룹이라면 NCT 드림은 청소년 연합팀으로 불투명한 미래에 놓여 있다 2020년 4월 로테이션 제도를 폐지하고 일곱 멤버로 구성된 연합팀으로 체제를 개편하며 본격적으로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익숙함'의 승리, 그리고 '낯섦'의 승리다.  




 

레드벨벳의 ‘끝나지 않는 꿈'

<Feel My Rhythm>은 지난 7년 간 레드벨벳의 음악 세계를 압축하여 전시한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샘플링은 소속사 선배 문희준의 <G선상의 아리아>가 아니라 2015년 신비로운 뮤직박스 소리의 <Ice Cream Cake>를 떠올리게 한다. '노래를 따라서 저 달빛에 춤을 춰' 파트처럼 독특한 리듬과 잘게 쪼개진 신스 샘플이 는 5인조 레드벨벳의 시작을 알렸던 처음을 의미심장하게 지시한다.  

지금까지도 팬들의 논쟁을 부르는 '레드' 콘셉트와 '벨벳' 콘셉트 사이 충돌을 중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Perfect Velvet] 앨범의 오싹함과 <Bad Boy>의 풍성한 코러스가 더해지며, '리브 페스티벌' 세계관과 더불어 아이린&슬기의 시크한 솔로 활동과 조이의 센티멘털한 리메이크 앨범, 웬디의 솔로 앨범 [Like Water]의 잔향도 느껴진다.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리브 페스티벌'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Psycho>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결정적으로 이 노래는 완전체 컴백을 알리며 팀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종식시킨 <QUEENDOM>의 메시지를 계승하는 곡이다. "작은 소란을 또 일으켜", "폭죽을 더 크게 터트려" 등의 노랫말이 그룹의 지속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거듭 강조한다. 주체적인 면모 역시 자신감의 발로다. 무한한 상상과 기대를 부르는 이 음악은 타인의 시선과 예측을 단호히 거부한다. 여전히 자유롭고 독창적인 리듬이다. <Feel My Rhythm>은 평범하지 않은 아이디어로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레드벨벳의 강점을 자랑스레 증명한다.




 

반짝이는 별을 따라 달려가는 NCT 드림

이제 NCT 드림으로 넘어가자. 2016년 무한 개방, 무한 확장을 모토로 내걸고 등장한 NCT의 개념을 대중이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NCT U, NCT 127, NCT 등 다양한 유닛이 등장하는 가운데 활동 초기부터 각 팀의 차이를 확실히 인지하고 정체성을 기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런 유기적인 흐름과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SM의 의도였겠지만, 시대는 범접할 수 없는 슈퍼스타 대신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함께 성장해나가는 그룹을 원했다.  

NCT 드림이 그래서 소중했다. 이들은 청소년 연합팀이라는 분명한 콘셉트 아래 10대를 지나가면 졸업하는 로테이션 형태를 공언하며 등장했다. 해맑은 소년들의 데뷔곡은 호버 보드를 타며 등장한 <Chewing Gum>이었다. 복잡한 세계관이나 운영 방식을 숙지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일곱 멤버들은 끈끈한 우정으로 함께했다. 드림의 멤버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견디어 내며 서로를 의지하고 믿어왔다.  

이들의 음악은 '광야'로 대표되는 SM 컬처 유니버스, 레드벨벳의 복잡 미묘한 팝, NCT 이름으로 발표되는 실험적인 무드와는 다른 영역에 있다. NCT 드림의 음악은 밝은 미래를 굳게 믿는 일곱 멤버들의 우정과 행복, 희망과 낙관으로 가득한 긍정의 세계다. 성장을 넘어 두터운 자신감과 쾌활함을 극대화한 첫 정규 앨범 [맛 (Hot Sauce)]의 대성공을 통해 SM은 뒤늦게 '휴먼 터치'의 위력을 체감했다. NCT 세계 진입 문턱을 낮추는 기분 좋은 초대, 근사한 미래를 향해 손을 잡고 나아가는 <Hello Future>의 힘은 여느 인위적인 설정보다도 힘이 셌다.   

SM은 이 ‘낯선' 매력을 놓치지 않는다. [Glitch Mode]는 보다 현대적인 콘셉트를 더하면서도 NCT 드림의 순수한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웰메이드 팝 앨범이다. 발매 전에는 '글리치'라는 단어로 인해 실험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을 예상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앨범은 일곱 소년들의 활달한 오늘과 지난날의 추억,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는 방향을 택한다.  

마크와 제노, 재민의 랩을 곡 중심에 배치하며 NCT 패밀리의 일원임을 강조하는 저돌적인 <Fire Alarm>과 <Saturday Drip> 흥미로운 구조를 오가는 <버퍼링 (Glitch Mode)>, 런쥔과 해찬 두 보컬 멤버를 중심으로 섬세하고 포근한 하모니를 강조하는 <잘 자>, <미니카>, <북극성>이 앨범을 이루는 두 축이다. 원하는 바에 따라 기울기를 조절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등장한다. 성숙을 강조하고 싶다면 <Arcade>, 보다 자연스러운 무드의 댄스 팝을 원한다면 <Better Than Gold>로 기울기를 조정하면 된다. 기분 좋은 마무리 <Rewind>로 멤버들의 우정과 근심 없는 미래를 강조하는 것까지도 잊지 않는다.  

가장 혁신적이었던 걸그룹이 긴 시간에도 전혀 녹슬지 않은 채로 돌아왔다. SM은 레드벨벳을 통해 2010년대 초중반 샤이니와 에프엑스가 이끌었던 세련된 팝의 ‘익숙함'이 여전히 유효하며 생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NCT 드림의 성공은 어떤가.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짜릿하고 낯선 경험을 안정적인 정규 앨범으로 굳혔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빚고, 현재를 통해 미래에 도전한다. 2022년 SM의 흥미로운 세계다.


<사진 제공 - SM엔터테인먼트>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