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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 에이지의 도래

Illustration by Yeon Yeoin



밀레니얼 시대의 신인류는 그들이 몰랐던 노스탤지어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으로부터 333년 전인 1688년, 스위스의 의학자 요하네스 호퍼에 의해 ‘노스탤지어’라는 단어가 탄생한다. 그리스어로 ‘nostos’는 ‘귀환’을, ‘algos’는 ‘고통’을 뜻하는데 당시 의학적으로 명명되지 않은 ‘향수병’에 대해 그가 고민 끝에 붙인 합성어였다. 물론 이것은 실제 발병하는 병이라기보다는 우울증에 가깝지만 말이다.

이후 2009년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아이바흐와 리사 리비가 정리하여 발표한 Good-Old-Days bias, 즉 ‘좋았던 옛날 편향’도 향후 이야기하려는 것과 결이 맞는 주장이다. 이는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대변할 수 있으며 이제 여기에 더해 New, 즉 ‘새로움’을 더해 ‘뉴트로’ 시대가 새롭게 창조되었다.

 

2020년 발매한 두아 리파의 앨범 Future Nostalgia는 이러한 경향에 방점을 찍은, 가장 상징적인 결과물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앨범은 ‘국제음반산업협회 글로벌 앨범 올 포맷’에서 10위에 선정되고 그래미 어워드에서 총 6개 부문 노미네이션과 함께 베스트 팝 보컬 앨범 부문을 수상하는 등 가시적으로 큰 성과를 얻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뉴트로 열기 속에서 발매한 신스웨이브 앨범으로 동년 빌보드에서 높은 성과를 낸 위켄드의 'Blinding Lights'와 함께 신스웨이브의 시대를 연 결과물로 꼽힌다.
 

K-pop에서는 어떨까? 역시 K-pop 시장도 미래지향적인 사운드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뉴트로 스타일로 과감히 말을 갈아탔다. 김현철, 빛과 소금 등 아티스트들이 ‘시티팝’의 이름으로 재발굴 되었으며, 윤종신과 유키카 등은 이러한 ‘시티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음반을 내기도 했다. BTS는 ‘Dynamite’로 70~80년대 미국을 연상시켰으며, 최근 아이유가 발매한 앨범 ‘LILAC’도 레트로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앨범 중 하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로트’가 부활했다.
 

좀 더 들어가 보자. ‘시티팝’은 일본의 버블경제 시절에 대한 강력한 향수의 근원 중 하나로 꼽히는 스타일인데, 최근 몇 년간 한국음악계의 최대 화두 중 하나로 떠오른 바 있다. 풍부한 브라스와 경쾌한 베이스라인을 기반으로 한 도시의 낙조와 같은 이 글래머러스한 음악의 정서가 한국 시장에서도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2021년 현재 K-pop에서 트렌디하게 쓰이는 사운드의 요소는 신스웨이브와 뉴 디스코 등의 댄서블한 분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트로트는 댄스와 발라드 위주의 K-pop 시장 안에서 수십 년간 숨죽여 지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비단 음악계에서의 예를 들었지만, 유리병 오렌지 주스, 8bit 게임기 재발매, 틴트 선글라스 등 다양한 산업 분야의 사례를 들자면 끝도 없다.

 

뉴트로의 핵심은 ‘경험의 재경험’이자, ‘새롭지만 익숙한 체험’이다. 뉴트로는 일단 두 가지 시장에 만족을 줄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그 이상 연령의 소비자들에게는 ‘익숙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2021년 현재를 사는 10~20대들은 디지털기기와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세대다. 대부분의 체험을 ‘가상체험’이나 영상으로 대체하는 세대이며, 외려 직접체험이 적은 세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뉴트로는 ‘향수’가 아닌 ‘새로운 경험’으로 재창조된다. 그리고 30대 이상의 경우엔 ‘복고’ 그 이상을 뛰어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들에게 뉴트로는 분명 익숙하면서도, 그 아랫세대들의 디지털적인 경험과 적절히 조합되어 경험의 재창조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것들이 모여 곧장 소비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지금, 뉴트로인가. 이에 대한 여러 분석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을 얻는 것은 ‘현실의 어려움’이다. 현대인들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힘든 시기를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좋았던 과거’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특히 강력한 바이러스가 창궐한 현재,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그 무엇보다 이런 ‘옛것’을 공유하면서 얻어지는 ‘연대’에 주목해보아야 한다.

 

유행은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공동체적 동감이 필요하다. 또한 동감을 얻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공유’가 필요하며, 공유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수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전파와 전파 사이를 통해 공감을 얻고 파도처럼 이어지는 것이다. 그 유행 안에서 인간은 외로움이 아닌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되며,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안도감도 느낄 수 있다. 비록 인간이 아니어도, 어느 동물이든 대자연 속에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간 현대인들은 미래지향적인 것들을 추구해왔다. 한때 ‘퓨쳐리스틱’이 산업과 예술계를 뒤덮었고 현대인들은 ‘발전’을 위해 경주마처럼 앞을 향해 질주했다. 그러나 바이러스로 인해, 질주해야 할 트랙이 사라져버렸다. 타의로 인해 모든 인류의 발전은 한 타임 쉬어야 했고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또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모두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마침내 과거에 대한 향수가 시작된 것이다.

 

뉴트로의 기저에는 그래서 사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마스크로 상대방을 응시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결국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인류가 다시 느끼고 있다고 말이다. ‘그때 그랬지?’ 하는 서로의 물음 속에서 공감대를 확인하는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때가 좋았어’라며 호탕하게 웃는 어른들과의 대화도 떠올린다. 이 모든 시련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마스크가 아닌 서로의 입을 바라보며 웃게 될 것이다.
 

문득지구촌이라는 흘러간 단어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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