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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아임 파인 (I’m fine) -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의 영화 「노바디」 (2021)

한 남자가 있다. 평범한 가장이자 노동자인 허치는 어느 날 침입한 강도들 덕분에 자존심이 상한다. 그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사춘기 소년의 반항과 자신에게 무관심한 아내 때문에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던 차였다. 강도들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당히 강도를 놓아준 것이지만 가족들은 그 일을 핑계로 허치를 소외시킨다. 이제 그는 구겨진 자존심을 다시 찾아야 한다.
 

전직 FBI 출신답게 뒷조사를 통해 강도들의 아지트를 알아낸 허치는 한 자루의 총을 들고 침입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허무하고 안타까운 현실만을 목도한다. 허치의 집에 침입한 강도들은 병에 걸린 아기의 약값을 벌기 위해 강도짓을 벌인 것이다. 허무와 분노가 뒤섞인 상태로 복수를 포기하고 집에 돌아오던 허치는 버스 안에서 러시아 갱스터들을 만난다. 그동안 분노를 참아왔던 허치는 러시아 갱스터들의 행패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른다. 곧 난투극이 벌어지고 허치는 러시아 갱스터들을 모두 처치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생각지도 않게 허치와 러시아 갱스터들의 전쟁으로 치닫는다.
 

영화 「노바디」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던 전직 FBI출인 남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회복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가족에 헌신하는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던 참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지루한 일상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 믿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고 없는 강도들의 침입은 행복한 가정이라는 자신의 환상을 깨뜨렸다. 그는 자신의 환상에 새겨진 얼룩을 제거하기 위해 직접 총을 들고 강도들의 아지트에 침입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강도들의 아지트에 확인한 것은 환상에 새겨진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강도들이 허치의 집에 침입한 이유가 그들의 병든 아이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드러날 때, 허치가 꿈꾸던 행복한 가정이란 여러 경제적 조건들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진실이 폭로되기 때문이다. 허치가 지키고자 하는 행복한 가정은 현실 세계 없다. 그것은 단지 허치의 관념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가족공동체일 뿐이다.
 

영화에서 허치의 초자아는 그의 폭력을 금지한다. 그의 정체가 밖으로 드러나면 가족과 그의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허치가 앓는 우울증은 그의 욕망을 통제하는 초자아의 명령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허치의 우울증은 초자아의 명령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초자아가 정한 법에 구속하는 데에 있다. 즉 사회적인 법과 도덕 그리고 가장의 책무에 억눌린 자아는 삶의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허치가 억눌렀던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며 초자아의 명령을 거부하고 전직 FBI로서의 면모를 드러낼 때 비로소 그의 우울증은 해소된다. 그는 이제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초자아의 명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있는 의지를 회복한다. 이런 점에서 영화 속의 액션은 허치의 히스테리를 표현하며 그의 분노는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필연적이다. 하지만 허치의 분노는 부르주아 가족 판타지를 꿈꾸게 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향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그의 분노는 죄 없는 러시아 갱스터에게 돌려지고 다시 가정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즉 이 영화의 한계는 사회적 모순을 일상적 개인의 일시적인 일탈과 복귀의 문제로 축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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