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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괴물>은 누구인가, 여전히 유효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질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이의 눈을 통해서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감독이다. 신작 <괴물>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며 전개된다. 이에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계속 괴물이 누구일지 찾아내지만, 끝에 가서는 결국 아무도 괴물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대신 어떻게든 누군가가 괴물이리라고 단죄하기 위해 집요한 시선으로 사건을 쫓았던 내가 괴물이었던 것 아닐까 하는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영화관을 나오게 된다. 주인공인 ‘미나토'와 ‘요리’의 진심을 짓밟던 영화 속 인물들과 내가 다를 바가 있나. 하는 자책과 함께 말이다.

과연 괴물은 누구일까? 고레에다 감독은 <괴물>을 통해서 아이들의 진심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에 대해 질문을 하고, 어른들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2024년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타당한 질문을 던진 고레에다 감독의 신작에 한국은 50만 관객이라는 수로 응답했다. 흥행에 감독이 직접 한국을 찾았고,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한 감독은,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기자들을 만났다. 



1. [RSK] 지난 주말에 한국에 오셨어요. 2박 3일 동안 팬분들도 만나시며 촘촘한 일정을 소화하셨는데요. 어떠셨나요?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극장에서 한국 관객 여러분들과 교류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열정적으로 끊임없는 질문을 해주셔서 충실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틀 동안 송강호, 배두나 배우와 만나는 시간도 있었고요. 매우 귀중하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2. [RSK] <괴물>의 한국 관객 수가 50만을 돌파했어요. 흥행에 직접 서울을 방문하셨다고요. 


물론 한국에서 개봉하는 시기에 맞추어서 방한 캠페인을 하러 오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신작 드라마 촬영이 이어졌어요. 부산국제영화제로 1박 2일 온 게 한국 방문의 전부였죠. <괴물> 개봉 시기에 한국을 오지 못했기에, 쿠로카와 소야(미나토 역)와 히이라기 히나타(요리 역) 이 두 소년에게 잘 부탁한다, 하고 한국 기자간담회를 맡겼습니다. 바쁘던 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되어서 약간 짬이 나서 이렇게 한국에 왔습니다. 지금껏 상영이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요.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3. [RSK] 한국 관객들은 어떤 특징이 있었나요?


젊은 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한국 관객분들은 연령층이 젊고, 스태프분들도 마찬가지이며 에너지가 넘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한국 관객 여러분들께서 제게 선물을 참 많이 주십니다. 다른 나라 관객분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예요. 가끔 제 초상화를 직접 그려주시는데, 그럴 때면 부끄럽고, 이걸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싫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내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모쪼록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4. [RSK] <괴물>은 감독님이 연출하신 영화 중 한국 최고 흥행작이에요. 한국에서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제가 보기에도 <괴물>은 지금껏 만든 어떤 작품보다 스태프, 캐스트 분들이 훌륭하게 해주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작품에서는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이 훌륭했고, 오디션을 통해 뽑힌 훌륭한 소년들의 매력이 컸기 때문에 한국에서 50만 명의 관객이 봐주신 거 아닐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제 작품이 많이 사랑받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어요. 이유로는 우선, 제가 30년 가까이 영화 일을 하고 있는데, 오래도록 만들어 왔다는 점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30년 전을 떠올려 보면, 이와이 슌지, 이누이 잇신 감독님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계셨어요. 그분들이 일본 영화를 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셨기에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또한 요즘 한국 영상업계 분들과 얘기해 보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존재감이 여전히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덕을 보았습니다. 



5. [RSK] 한국에서 향후 협업하실 생각도 있으신가요?


아직 비밀입니다.(웃음) 아직 구체적으로는 움직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기획들이 전부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그중에는 한국 배우들과 함께하고 싶은 기획도 있다는 걸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6. [RSK] 함께 하고 싶은 한국 배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여러가지 문제가 일어날 거 같은데요.(웃음) 함께 작업했었던 송강호, 배두나 배우와는 지금까지 좋은 관계이기에 이번에 인사도 나눴습니다. 이때까지 일을 같이하지는 않았지만 영화제나 시사회에서 인사를 나눈 분들도 많습니다. 김다미, 한예리 배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가능성이 있다면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7. [RSK] 2022년에 개봉한 <브로커>는 감독님께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촬영하고 연출하신 영화입니다. 당시 촬영하시며 느꼈던 한국의 장점으로는 어떤 게 있었나요?


<브로커>를 만들기 위해서 한국에서 오랫동안 체류하며 영화 만들었습니다. 한국 촬영 환경은 일본보다 잘 갖추어져 있어요.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일하는 장소로서, 영화의 현장은 매우 풍요롭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젊은 스텝 분들이 매우 씩씩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느낍니다. 노동시간을 관리하는 것을 포함해서요. 영화제작 환경에서의 폭력적인 요소들도 근절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이 조금 뒤처져있지 않은가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경험을 살려서 일본 영화환경을 좋은 쪽으로 개선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지난 2년 동안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서로 배울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재의 교류를 비롯하여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교류를 위해, 의식적으로라도 저도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8. [RSK] ‘후시미 교장’이 마트에서 뛰어다니는 아이의 발을 거는 장면, ‘미나토’가 정지된 모습으로 지우개를 집는 장면 등에서 기묘함이 느껴집니다. 각각의 장면이 담고 있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각본에 그렇게 쓰여 있었거든요. 엄마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무언가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엄마의 감정을 따라가며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 둘 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모든 사건에 이유가 있고, 나중이 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구성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사실 현실에서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끝나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말씀해 주신 신들도 그렇죠. 이야기 속에는 해답이 없습니다. 영화 속의 엄마도 해답을 모르고 관객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가 생각한 것이라서, 저는 제 나름의 해석을 통해 배우들에게 연기를 시켰습니다. 



9. [RSK] 낡은 기차, 종착역, 터널, 숲의 이미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 세계 같습니다. 감독님이 의도하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저도 무척 좋아하는 작품입니다만 <괴물> 제작 회의를 할 때 한 번도 언급된 적 없긴 합니다. 회의할 때 타 회사의 작품을 언급한 경우는 거의 없었고, 각본가와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단 한번 얘기가 나온 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였습니다. 제가 <괴물>의 플롯을 받아서 읽었을 때 떠오른 건, 일본의 동화 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이었습니다. 판타지면서 은하계에서 기차를 탄 두 소년의 이야기기 때문에 이 작품과 닮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각본가가 이 작품을 의식하고 쓰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집과 떨어진 숲에 있는 한 량짜리 기차. 이곳은 가장 그들다운 장소입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실현되지 못하는 시간이 그곳에만 있다는 건 그들에게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게 우리들의 책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0. [RSK] <괴물>의 구조를 두고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거론하는 관객들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반응이 어떠셨나요?


저희가 영화 만들 때는 <라쇼몽>이 언급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관객분들이 <라쇼몽>에 관해서 얘기할 수 있겠구나라는 예측은 했기에 반응을 보고 놀라진 않았습니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라쇼몽>은 각각 자신이 주관적으로 파악하는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괴물>과 구조가 꽤 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처음에 <괴물> 각본의 플롯을 받았을 때, 저는 사카모토 유지의 <콰르텟>이라는 작품을 떠올렸습니다. <콰르텟>에서는 1화부터 3화까지는 한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어 나가고, 4화부터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식입니다. 몇 중 구조를 한 작품들이 여러 편 있었습니다.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께서 이전에 드라마에서 했던 방식을 <괴물>로 끌어오신 것 아닐지 생각합니다. 



11. [RSK] 엔딩 장면을 놓고는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와 생각이 동일하셨나요?


각본을 처음 만들 때부터 촬영이 시작될 때까지 3년 반이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동안 각본가께서 각본을 여러 번 고치셨는데 매번 엔딩이 달라졌습니다. 다양한 패턴의 엔딩이 존재했습니다. 크랭크인 하기 직전에 정해진 엔딩이 있었는데, 지금 영화의 엔딩과는 또 달랐습니다. 촬영 후 편집할 때, 마지막 15분은 제가 여러번 손질하고 고쳤습니다. 매번 각본가님께 보여드리며 상의했습니다. 엔딩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 둘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할 것인가 깊이 고민한 결과가 지금의 엔딩입니다. 



12. [RSK] 엔딩 장면에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가 나오는데요. 이 곡을 넣게 된 특별한 이유나 의도가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Aqua>를 쓰게 된 이유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에 음악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사카모토 류이치 작곡가의 음악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습니다. 촬영할 마을에 가서 호수를 보았을 때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러나 사카모토 류이치 작곡가께서 병상에 계셨기에, 오케이 해주실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만약 거절당하면 음악 쓰지 말아야지 하는 선택지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편집할 때 선생님의 기성곡을 모두 입혀서 편집하기 시작했고요. 이 영화는 불에서 시작해 물로 끝나는 게 정해져 있었기에, 엔딩에는 <Aqua>만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각본 단계부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곡을 사용하게 허락해 주셔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3. [RSK] 전작들을 보면. 입양/소외계층/가족의 개념을 다루고 계세요. 연출하실 때 어떤 점을 고려하시는지와 더불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어느 가족>의 경우는 ‘이 형태의 가족을 우리가 가족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가? 우리들이 가족이라 일컫는 보통의 가족들은 그들보다 더 밀접한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연출했습니다. 부모-자식 관계처럼 일반적으로 정해진 정의를 흔들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에, 제가 선택지를 만들어서 여러분들에게 제안하는 역할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이걸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영화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본에는 ‘동조 압력'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모두가 똑같고 비슷해야 한다, 보통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한 사회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배제하는 구조가 강합니다. 강압이 일본 사회 곳곳에 깊이 존재하며, 이것이 일본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힘 속에서 고통받는 마이너리티분들이 많습니다. 한국과의 차이라고 한다면, 한국은 변화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고, 일본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더 중시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일본은 변화를 이끄는 길이 좁습니다. 그런 점에서 살기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돌파구를 알아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영화로 그 문을 연다는 아니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분들을 계속 영화에서 그려내고 싶습니다. 



14. [RSK] 지난 몇 년 동안 감독님께서는 일본판 영화진흥위원회(kofic)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또한 일본에도 영상산업을 전담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보고, 이를 이끄는 모임인 a4c의 대표를 맡으셨다고요. 노력을 이어나가시며 느낀 생각이 궁금합니다. 


말씀해 주신 활동들을 했지만, 아직 일본에서는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못 하고 계십니다. 여러 단체에 제의하며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단체가 필요한 이유 및 장래 일본 영화가 가진 위기감에 대해서 많이 공유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문제들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개혁의 스피드가 매우 느린 나라지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은 아주 조금씩 공유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배워나가면서 이 작업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15. [RSK] 오늘 인터뷰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마지막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개봉한 지 두 달이 넘은 <괴물>이 아직 상영되고 있다는 것에 굉장히 기쁘고, 감사드립니다. 현재 저는 작년에 찍은 드라마를 편집하고 있어요. 올해 후반 쯤 나올 것 같습니다. 신작이 나올 때 또 모여주세요. 함께 뵈었으면 좋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제공 - (주)미디어캐슬,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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