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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YonYon × KIRINJI × Slom  — 음악과 인생, 일본과 한국의 교차로에서 탄생한 화학작용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DJ / 싱어송라이터 /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YonYon이 새 싱글 [Moonlight Cruising feat. KIRINJI]를 발표했다.

     

KIRINJI를 대표하는 호리고메 다카키와의 협업은 2019년 발표된 KIRINJI의 인기곡 ‘killer tune kills me feat. YonYon’ 이후 약 6년 만이다. 이번 곡에서는 SUMIN & Slom으로도 활동하며, 2025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R&B/소울 음반을 수상한 한국의 대표적인 신예 프로듀서 Slom이 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Moonlight Cruising’의 “교차하는 사람들의 마음, DJ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생은 마치 Mixtape (交差する人の想い DJみたく途切れずに 人生はまるでMixtape)” 이라는 가사 속에는, 2018년 일본과 한국의 음악 씬을 잇는 프로젝트 <The Link>를 시작한 이래로,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온 YonYon이 ‘선택한 길’과 ‘그 삶의 방식’이 담겨 있다. 세 사람의 관계, 곡 작업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한일 양국의 음악 씬의 연결고리에 관해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를 향한 존중이 담긴 만남, 그리고 재회

 

먼저 이번 ‘Moonlight Cruising’을 만들게 된 배경을 알려주세요.

 

YonYon:사실 저는 지금 첫 정규 앨범을 제작 중이에요. 작품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지만, 이 앨범을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피처링 아티스트도 지금까지 인연이 있었던 분들께 부탁드리고 있어요.

 

 

올 1월에 발매한 싱글 ‘Old Friends’에서 SIRUP, Shin Sakiura 같은 오랜 친구들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겠네요.

 

YonYon:맞아요. 다카키 님과 제 첫 정규 안에서 꼭 함께 작업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번 타이밍에 제안을 드렸습니다.

 

 

다카키 님은 제안을 받고 어떠셨나요?

 

KIRINJI:물론 기뻤죠. 하지만 처음 제안을 받고 나서 곡이 완성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어요. “같이 해보자”는 얘기를 처음 들은 건 아마 2022년이나 2023년쯤이었을 거예요. 그땐 한 번 흐지부지됐는데, 작년쯤 다시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죠.

 

YonYon:맞아요. 

 

KIRINJI:그 사이에도 YonYon이 KIRINJI 공연에 몇 번 함께해 주셨고, ‘killer tune kills me’도 많은 분께 들려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언젠가 YonYon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제안이 딱 그런 타이밍이었던 것 같아요.

 

 

 

‘killer tune kills me’는 2013년에 KIRINJI 가 밴드 편성으로 바뀌고 나서 이후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곡이 되었죠. (현재 KIRINJI는 호리고메 다카키의 솔로 프로젝트로 운영 중이다). 그 정도로 많이 플레이되었다는 것은, 해당 노래가 해외 리스너에게도 도달했다는 증거일 것 같아요.

 

YonYon:한국어로 가사를 썼는데, 유튜브 댓글 등에서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한국어 가창이 나와 반가웠다!”는 반응을 찾아볼 수 있었고, 무척 기뻤죠.

 

 

KIRINJI의 라이브에서 이 곡을 부를 때 YonYon님이 부재할 때는, 다카키 님께서 직접 한국어 파트도 부르시죠?

 

KIRINJI:서툴지만 계속 부르고 있어요. (웃음) 원래 여성 보컬의 음역이라 좀 높긴 한데, 제 목소리도 비교적 높은 편이라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다만 발음은 완전히 가타카나식 한국어에요.

 

 

다카키 님과 Slom 님은 이번이 첫 만남은 아니죠? 작년에 함께 이자카야에 가셨고, 그때 YonYon 님이 통역을 맡으셨다고요.

 

KIRINJI:원래 YonYon의 신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일정 조정을 하던 중에, 마침 Slom 씨와 SUMIN 씨가 일본에 오는 타이밍이 겹쳐 “(그들의) 앨범이 나올 테니 브이로그를 찍자”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되었죠. 촬영한다면, 격식 없는 장소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가끔 가는 코엔지의 이자카야에서 촬영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YonYon:그때 먹었던 음식들, 진짜 맛있었어요. (웃음)

 

 

Slom 님은 다카키 님을 직접 만나보니 어떠셨나요?

 

Slom:정말 영광이었어요. KIRINJI를 처음 알게 된 건 6년 전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고요. 특히 앨범 [3]은 전곡을 무한 반복할 정도로 들었어요. 스포티파이 연말 결산에서도 매년 KIRINJI의 이름이 꼭 올라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작년에 제 앨범 (SUMIN & Slom [MINISERIES 2])을 발매 전에 들어보셨으면 해서 YonYon 누나를 통해 연락드렸는데, KIRINJI 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다카키 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이자카야에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니 굉장히 섬세한 분이시고, 제가 받아온 음악적 영향도 정확하게 캐치해주셔서 너무 기뻤고,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만남이었습니다.

 

그때는 아드님과 함께 코엔지에 옷을 사러 오곤 한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저 같은 젊은 뮤지션은 아무래도 마음이 조급해지기 쉬운데, 마치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면 돼”라고 말씀을 해주시는 것만 같아서 생각이 정리되는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다카키 님는 Slom 님의 음악을 듣고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KIRINJI:코엔지에서 들려준 ‘보통의 이별 (JUST A BREAKUP)’은 브라질리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데, 5-60년대의 보사노바를 그대로 도입했다기보다는 80-90년대 브라질 음악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느낌이 들었어요. 마침 저도 “그런 감성의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정말 좋았어요.

 

이 노래뿐만 아니라 Slom 씨의 트랙은 그저 “R&B를 듣고 R&B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훨씬 깊이가 있다 생각해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흡수하면서 R&B적인 문법으로 풀어내는 그 음악적 감각에 매료됩니다.

 

 

 

Slom 님은 [MINISERIES 2] 작업 과정에서 브라질 밴드 무탄치스(Os Mutantes)의 리타 리(Rita Lee)를 연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같은 브라질 음악이나 도널드 페이건(Donald Fagen) 같은 AOR 음악도 좋아하신다고요.

 

Slom:제 음악적 뿌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아버지의 영향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저희 집에서는 늘 재즈가 흘러나왔고, 그중에서 처음으로 강하게 반응했던 음악이 조빔의 앨범 [Wave]였어요. 왜 그렇게 끌렸는지는 당시엔 잘 몰랐지만,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있었고, 계속 반복해서 듣게 됐죠.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리듬감이 강한 음악에 점점 더 끌리게 되었고, 힙합이나 R&B, J-POP, 시부야계 음악도 접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저도 직접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동시에 “이 아티스트는 어떤 음악을 들으며 자랐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과거의 음악을 인용하거나 재해석하는 문화가 있잖아요. 이전 세대들이 쌓아 올린 아카이브를 다시 꺼내, 거기에 새로운 문맥을 더해 나가는 방식에 깊은 매력을 느꼈어요.

 

그렇게 제 뿌리를 파고들던 중에, 5년 전쯤 AOR이라는 장르를 접하게 됐어요. 브라질의 리타 리나, 미국의 도널드 페이건 같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한국에서 제가 재구성하면 어떤 사운드가 나올까 하는 흥미가 생긴 거죠. 물론 한국에도 그런 음악을 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제 경우엔 힙합과 R&B가 뿌리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요소들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 굉장히 고민하면서 작업에 임했던 기억이 납니다.

 

 

YonYon 님은 2018년에 발표한 [Period]에서 당시 23살이었던 Slom 님을 기용하셨죠. Slom 님의 정식 데뷔가 2017년이라면 꽤 이른 시점이었네요?

 

YonYon:Slom이 미국에 있는 레이블을 통해 처음 공식적으로 발매를 한 것이 2017년이지만, 그 전부터 SoundCloud에 자작곡들을 올리고 있었어요. 당시 저는 2015년쯤 유학을 겸해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고, 서울에서 DJ 활동을 하며 Slom을 처음 만났어요. Slom의 DJ 플레이도 정말 멋졌고, SoundCloud에 올라온 곡들도 매력적이었죠. '언젠가 함께 작업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THE LINK>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협업을 제안하게 됐죠.

 

Slom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티스트예요. 타이밍 좋게도, 최근엔 SUMIN & Slom의 [MINISERIES] 일본판 CD/LP가 발매되기도 했고, 지금은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그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죠. 저에겐, 늘 쉬지 않고 작업하고 있는 모습만 떠오르는 아티스트예요. 

 

Slom이 이렇게 활동의 폭을 넓혀 나갈 수 있었던 건, 오랜 시간 묵묵히 쌓아온 커리어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힙합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에서 프로듀서로 출연했던 것이 도약의 계기가 되었고, 이후로도 수많은 아티스트의 곡을 프로듀싱했죠. 최근의 <MINISERIES> 프로젝트도 병행하고 있고요. 정말 언제 쉬는지 모를 정도예요.

 

https://open.spotify.com/album/3N7RPchk7SE5zHGxPbB2Ij

 

그런 Slom 님을 이번 신곡에 초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YonYon:<THE LINK> 때도 그랬지만, 저는 늘 '이 사람과 이 사람이 함께 작업하면 시너지가 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섭외하는 경우가 많아요. Slom이 이전에 KIRINJI 의 팬이라는 걸 알려준 이후로, 언젠가 셋이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번에 그 타이밍이 드디어 찾아온 거죠.

 

 

Slom 님은 2019년 ‘Ace Hashimoto & Slom - 2NITE (Feat. Taichi Mukai)’에서 YonYon 의 [Period]에도 참여했던 Taichi Mukai (현 TAIL)와 호흡을 맞췄죠. YonYon 님과의 만남은 Slom 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Slom:YonYon 누나를 처음 만났을 때는 서울에서 자주 얼굴을 보는 DJ 중 한 명이라는 느낌이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이렇게 누나를 통해 일본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Period]를 함께 만든 이후, 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마침 그 시기에 Ace Hashimoto라는 래퍼와 곡을 작업하고 있었고, 거기에 우연히 Taichi Mukai 씨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아, 이것도 YonYon 누나가 이어준 인연이구나”라고 실감했죠. 저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이었고, 누나에게는 예전부터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세상은 좁다’는 말이 있잖아요.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도, 사실은 그런 우연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있어서 YonYon 누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

 

 

 

◎ ‘스스로 선택한 길’이 만들어낸 Moonlight Cruising

 

‘Moonlight Cruising’은 어떤 형태의 노래로 만들고 싶었나요?

 

YonYon:처음에는 어떤 테마로 곡을 쓸지 정말 많이 헤맸어요.

 

KIRINJI:정말 다양한 데모가 왔었죠 (웃음).

 

YonYon:셋이서 함께 작업하는 만큼 “무조건 멋진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발매된 지금의 하우스 감성의 사운드로 자리 잡기 전까지, 데모 단계에서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만들었어요. 그래서 Slom 에게는 정말 폐를 많이 끼쳤죠…

 

KIRINJI:꽤 J-POP 스타일에 가까운 것도 있었지.

 

YonYon: KIRINJI의 오리지널 스타일에 가까운 데모도 있었고, 클럽 음악 지향적인 베이스가 강한 하우스 스타일도 있었고… 정말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봤어요.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작업물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직접 한국에 가서 Slom을 만나서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갔습니다.

 

그때 Slom이 기타리스트 구영준 씨를 소개시켜 줬고 멘토로 SUMIN 언니도 함께해줬어요. 스탠다드 프렌즈 스튜디오에 넷이 모여 세션을 시작했는데, 영준씨가 보사노바 풍의 감성적인 기타 프레이즈를 연주해 주면서 저희 모두 “이거다!” 라며 바로 확신했죠. 그렇게 지금의 곡이 완성됐어요.

 

Slom:[MINISERIES] 1집에서는 키보드와 신스만으로 편곡했지만, 2집에서는 좀 더 어쿠스틱한 질감을 더하고 싶어서 영준이를 여러 곡에 기용했어요. 영준 또한 프로듀서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단계였고, 이런 프로젝트에 꼭 함께했으면 해서 제가 먼저 제안했죠.

 

YonYon 누나도 이야기했듯이, ‘Moonlight Cruising’에는 다양한 버전이 존재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정답’을 찾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어요. 제가 프로듀서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아티스트가 자연스러운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것”인데요. 기교를 과시하는 것보다, 아티스트가 가장 자신답게 빛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좋은 편곡이라고 생각합니다.

 

YonYon 누나가 서울에 합류했을 때, [MINISERIES 2]에서 보사노바를 활용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저 자신도 그동안 음악 안에 이것저것 많은 것을 담으려고 했던 것을 반성하고, 오히려 심플한 코드 진행을 섬세하게 연주하는 편이 아티스트에게 ‘여백’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보사노바를 도입하게 된 거죠.

  

 

완성된 사운드를 들었을 때 다카키 님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KIRINJI:“어, 이전에 받은 데모랑 꽤 느낌이 다르네”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기타 아르페지오가 사운드의 중심에 있고, 브라질 스타일의 방향으로 나아가더라고요. 조금 의외였지만, 정말 멋지다고 느꼈어요. 처음 데모는 J-POP 스타일로 코드가 자주 바뀌는 곡이었는데, J-POP은 멜로디를 얹기 꽤 어렵거든요. 그런데 이번 곡은 코드 진행이 심플해서 저로서는 작업하기 수월했어요.

 

 

‘한밤중의 Highway (真夜中のHighway)’, ‘레코드처럼 돌아가는 3호선 (レコードみたいにまわる3号線)’라는 가사는 AOR이나 시티팝 느낌도 드는데, 이런 모티프는 어디서 온 건가요?

 

* 시부야 3호선은 일본의 고속도로 명이다.

 

YonYon:제게 있어서 KIRINJI 의 음악은 “밤”의 이미지로 다가와요. 다카키 님과 함께 작업한다면 도쿄의 밤을 테마로 곡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또 일전에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인생은 마치 장거리 마라톤이라는 테마로 곡을 쓰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어요.

 

마라톤은 사람마다 달리는 스타일이 다르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 질주하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걷다가 마지막에 전력 질주하는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어떤 속도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그런 메시지를 담은 곡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이야기 나누다 보니 식사를 마칠 때쯤에는 거의 인생 상담처럼 대화가 흘러가 버렸죠. (웃음)

 

KIRINJI:그랬었지 (웃음).

 

YonYon:그래서 처음에는 '사람이 달리는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가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점점 '자동차’나 '고속도로’ 같은 이미지로 확장됐어요. 연상 게임을 하듯이 가사가 점점 확장되어 갔죠.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나가는 이미지인 줄 알았는데, 다카키 님의 파트에서 갑자기 교통 체증에 갇히는 듯한 전개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칼데삭(cul-de-sac)’이라는 단어 선택도 KIRINJI답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KIRINJI:저도 같은 상황을 계속 그리면 곡이 평평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장면 전환이나 시점을 바꾸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YonYon씨가 “인생은 마라톤 같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드라이브가 반드시 순조롭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걸 노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죠.

 

YonYon:식사 자리에서 다카키 님이 “YonYon이 하고 싶은 걸 그냥 하면 돼”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이 이번 가사의 내용과 겹쳤어요. ‘불안한 여정이나 예상치 못한 결말도 즐길 수 있다면 좋겠지 (不安な道中や 意外な結末を 楽しめたならばいいよね)’라는 가사처럼, 멈춰 서는 순간에도 의미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첫 정규 앨범이니까 좋은 곡들을 꼭 만들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던 시기도 있었는데요. 좀 더 마음 편하게 작업을 해봐도 괜찮다고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곡의 마지막에 나오는 ‘네가 선택한 길 (君が選んだ道)’, ‘네가 선택한 그 삶의 방식 (君が選んだ その生き方)’이라는 가사도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KIRINJI:그 부분은 제가 쓴 가사인데요, YonYon이 ‘방황 속에 있는 사람’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곡이 끝날 때까지 계속 방황하는 느낌보다는, ‘선택한 길 (選んだ道)’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형태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야 곡 전체가 부드럽게 착지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카키 님께서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YonYon 의 ‘Mirror (選択)’를 우연히 들은 게 계기가 되어 ‘killer tune kills me’가 탄생했다는 일화가 있죠. 이번 가사에도 ‘Oh, killer tune 流してよ (Oh, killer tune 틀어줘)’ 라는 구절이 나와서 그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YonYon:맞아요. ‘killer tune kills me’에서 함께 작업했었던 인연을 떠올리면서, 이번에도 ‘killer tune’이라는 단어를 샘플링 해봤어요. 그 곡에서는 ‘킬러 튠’이 연애의 은유로 사용이 되었고 사랑했던 사람을 ‘킬러 튠’에 빗대어 표현되고 있지만, ‘Moonlight Cruising’에서는 정말 문자 그대로의 의미예요. 드라이브하면서 자기만의 킬러 튠을 틀고, 기분을 끌어올리면서 앞으로 나아가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Slom 님은 이번 협업을 통해 어떤 감상을 가지셨나요?

 

Slom:다카키 님의 보컬을 데모로 들었을 때, “이게 KIRINJI의 목소리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이 있었어요. 그래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죠 (웃음). YonYon 누나의 가사도 반복해서 들으면서, 제 안에서 점점 동화되어 가는 듯한 감각이 생기더라고요. 이번 작업을 통해 제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고,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YonYon 누나는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만들어 왔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연결하는 능력도 정말 뛰어나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결국은 해내고야 말죠. 본인의 앨범 작업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있었는데, 들려준 곡들이 전부 다 좋아서 '이 정도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웃음)

 

YonYon:한국에서 세션했을 때, Slom 과 천천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어요. “오랜만에 같이 작업하니까 감회가 새롭다”는 얘기를 나눴죠. Slom이 말하기를, 제가 2018년 당시 <THE LINK>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하더라고요. 그 대화를 기억한다 말하며, “지금은 누나가 하고자하는 것들의 결과가 점차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이제는 스스로 선택한 것들을 이제는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라는 말을 해주었어요. 그 말이 정말 기뻤죠.

 

 

◎ 일본과 한국의 연결, 그 간극과 가능성

 

이야기를 나눈 김에, “일본과 한국의 연결”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다카키 님은 한국에서 공연도 하셨고 새소년(SE SO NEON)과의 협업도 있었는데, 한국 음악 씬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나요?

 

KIRINJI:한국 음악을 좋아하지만, 씬 전체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에요. 어떤 한 지점을 듣는 느낌이랄까요. 그중에서 최근에 인상 깊었던 아티스트는 이날치(LEENALCHI)입니다. 민요 풍의 전통적인 스타일인데 사운드는 뉴웨이브에 가깝고, 베이스가 두 대나 있다는 편성도 흥미로워요. 그리고 ‘공중도둑’도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K-POP이 먼저 주목받기 쉽지만, 인디 쪽에도 흥미로운 아티스트가 정말 많아요. 저변이 넓고, 전체적인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Slom 님이 업로드하신 ‘도쿄 도심 1시간 걷기 플레이리스트’도 인상적이었어요. 오누키 타에코, 호시노 겐, Lamp, sora 같은 일렉트로니카 계열 아티스트부터, 쿠로다 타쿠야 같은 재즈 아티스트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일본 음악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을 가지고 계신가요?

 

Slom:미국이나 일본에 갈 때마다 부럽게 느끼는 건, 정말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아카이브가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거리의 마켓에서 예전 <Billboard> 잡지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거든요. 일본에도 음악의 뿌리를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한국은 장르별로 씬을 쪼개면 시장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 보니, 그런 면에서는 조금 아쉽기도 하고요. 그래서일까요, 일본에는 동경할 수 있는 혹은 건강한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주는 아티스트가 많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물론, 인도네시아나 태국 출신의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일본은 뭔가 특별해요. 제가 좋아하는 악기 중 상당수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들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문화적으로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아요.

 

 

 

YonYon 님이 <THE LINK>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어느덧 7년이 지났습니다. 그때보다 한일 간의 교류가 활발해졌다는 인상도 드는데,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보시나요?

 

YonYon: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밀접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여전히 정보의 격차는 존재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떤 노래는 좋아하지만, 해당 아티스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라던가, "지금 일본에서는 ○○가 화제야", "한국에서는 △△가 유행이야" 같은 이야기는 종종 들리지만, "그 외에도 좋은 음악들이 정말 많은데!"라고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요. 아직 다양한 음악들이 (양국 간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한일 양국의 음악 씬이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YonYon:무엇보다도 협업이 더 많이 이루어졌으면 해요. 두 나라 모두 멋진 음악들이 정말 많거든요. 하지만 아무래도 각국의 음악에 다가갈 수 있는 동기와 친근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접할 수 있는 계기가 쉽게 생기진 않잖아요. 양국 아티스트 간의 협업이 늘어나면, 서로의 리스너들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음악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다카키 님은 앞으로도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신가요?

 

KIRINJI:네, 물론 관심은 있습니다. 이번처럼 가창으로 피쳐링하는 방식의 협업이라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편이에요. 새소년과 함께한 ‘Honomekashi’도 그랬고요. 다만, 트랙 사운드부터 함께 기획하는 작업을 비롯해 조금 더 깊은 협업을 하려면 다소 어려움이 있죠. 제가 현지에 직접 가는 게 가장 좋지만 아무래도 쉽게 들를 수 있는 거리도 아니고, 커뮤니케이션의 장벽도 있으니까요. 언어의 벽을 어떻게 넘을지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YonYon:맞아요. 그리고 단발성의 콜라보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이후에도 관계를 이어 나가며 계속해서 교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씬의 확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겠네요. Slom 님, ‘Moonlight Cruising’을 마음에 들어 한 리스너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Slom:주혜린이라는 아티스트를 추천하고 싶어요. 저와 가까운 프로듀서들이 참여해서 함께 작업했고, 기타리스트 구영준도 함께 곡에 참여했어요. 소박하고 담백한 가사, 그리고 산뜻하면서도 지금 시대의 감각이 담긴 정교한 사운드가 잘 어우러져 있는 게 그녀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신곡과 함께 들으면 좋을 만한 한국 음악을 DJ의 시점에서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YonYon:아소토 유니온의 ‘THINK ABOUT` CHU’라는 곡을 꼭 들어보셨으면 해요. 2003년에 발표된 곡인데, 한국 오리지널 AOR 사운드를 느낄 수 있는 트랙이에요. ‘Moonlight Cruising’과 함께 들어보면, 장르나 시대를 뛰어넘는 ‘한국적 정서’ 같은 것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Interview

Toshiya Oguma


KIRINJI & YonYon's Photo

Photo by Haruki Horikawa

Hair & Make up by Shuhei Kubo

Creative direction by Haruki Horikawa, Kyontie


Slom's Photo

Photo by Jinyu, Hongki Lee


Translated by
Kim Dejong, YonYon, kixxi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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