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렇게 잘 울지도 않던 당신이>를 출간한 작가 겸 가수 이솔로몬을 만났다. 이솔로몬을 떠올리면 정적이고 고요한 이미지가 그려지지만, 이면에는 활달하고 붙임성 좋으면서도 다정한 얼굴이 깔려 있었다. 생각보다 느슨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많은, 우리가 몰랐던 그를 포착했다.
1. [RSK] 최근 롤링스톤 코리아와 화보를 진행하셨는데 현장 분위기를 한껏 밝게 만드셨어요. 촬영은 어땠어요?
서울로 이사 와서 혼자 살다 보니 친구도 별로 없어 홀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인데, 오랜만에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2. [RSK] 인스타그램으로 보던 차분한 이미지와 사뭇 달라서 더 매력적이었어요. 본인에 관한 사실 중 가장 반전인 것을 한 가지 더 공개하자면 뭘까요?
보이는 것보다 더 대충 살고, 보면 볼수록 사람 냄새가 난달까요?
3. [RSK] 신작 <그렇게 잘 울지도 않던 당신이>에는 ‘지극히 멀끔한 날들을 곁에 두고 지독한 하루가 간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이 표현은 어떤 의미를 품고 있나요?
아마도 멀끔하게 보이는 날을 살지만, 면면이 들여다보면 온통 고장 난 것들이 가득한 세상에 살아간다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4. [RSK] 책을 읽다 보니 아버지를 향한 애틋함도 느껴졌어요. 아버지를 보면서 사람을 어떻게 품고 사랑해야 하는지,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지는지, 위로가 어떤 건지 잘 배우셨다고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몇 가지 나눠주시겠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빈소에 참 많은 분이 찾아주셨어요. 어느 장례식장 관계자분께서 “너무 많은 분이 오셔서 연예계 종사자인가 했어요” 하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죠. 목회하셔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아버님은 약자에게 한없이 머리를 숙이시고 언제나 넓은 품을 내어주시는 분이셨어요. 덕분에 옛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5. [RSK] 또한 신열을 앓으며 아픈 순간에도 감정을 느끼고 분류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평소 슬프거나 고통스러울 때면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하기보다, 그 감정에 천천히 젖어 드는 편인가요?
그때는 그것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아프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서 하릴없이 새벽 내내 괴로워하다 다시 잠들 수밖에 없었죠. 돌이켜보자면 참 안쓰러운 기억들입니다.
6. [RSK] 요즘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올해는 온통 ‘환하다’라는 기분이 가득해요. 세상이 늘 회색빛으로 보였었는데, 언제부턴가 세상이 참 환해요. 꼭 이 빛을 모두가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요.
7. [RSK]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천국에 가기 직전인 사람에게,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한순간을 선택하라고 해요. 그렇게 한 가지 기억을 고르면 이는 영상에 담기고, 떠나는 이는 이 영상을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되죠. 현재를 기준으로 뒀을 때, 어떤 기억을 고르고 싶나요?
어머니를 모시고 누나와 가족 여행차 비행기를 탔을 때였어요. 앞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려 어머니와 누나를 보는데 글쎄요, 갑자기 왜 이유 모를 눈물이 나던지 혼자 앞으로 돌아앉아 울음을 참았던 장면이 생각나요. 슬프면서도 행복한 그 장면이 진하게 남아있어요.
8. [RSK] 2016년 하반기 등단 후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계세요.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인가요?
매번 바뀌지만 오늘은 박성준 시인이 생각나네요. 특히 시집 <잘 모르는 사이>가 떠오릅니다.
9. [RSK] 음악과 문학은 종종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치죠. 이 둘은 각각 어떤 특별한 힘을 지녔다고 생각해요?
음악과 문학은 ‘나’라고 지칭할 수 있는 자아를 직접 대면하면서 나도 알지 못했던 본연의 나를 알아간다는 관점에서 참 비슷해요. 방식의 차이가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은 각자의 고유 울림을 통한 치유에 가깝고 문학은 사유를 통한 세계의 확장, 그 시간을 따라 자연히 마주하는 ‘나’라는 자아를 만나 스스로를 찾는 과정 같아요.
10. [RSK] 이솔로몬이 사랑하는 연말의 장면은 어떤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나요?
자그마한 전구 트리를 하나 켜두고요. 심지 타들어 가는 소리를 들으며 텅 빈 집에 홀로 창밖 컴컴한 골목을 내려다보는 장면이요. 제 겨울은 늘 그렇게 있어요. 좀 궁상맞긴 하네요.
11. [RSK] 평소 메모를 자주 하실 거 같은데 혹시 가장 최근에 쓴 글이 있으신가요?
오늘 촬영하러 왔다가 근처에서 쓴 글인데요. 날씨가 확 추워져서 그런지 글도 좀 춥네요.
쓰다만 글들이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거리에 내던져져 있다
지하철에서는 출구를 찾다가 자주 하려던 말을 잊어버리고
조금 알 것 같던 세상도 모두 새것이 된다
뻣뻣한 옷가지처럼 자연스러운 척해 봐도 촌스럽기만 한 어색함처럼
하나도 모르겠는 세상 잘 아는 척 살아봐도
낯선 일 하나에 어린아이가 되어버리는 매일이
하루건너 하루 있다
멀미가 오래 밀어냈던 버스를 탄다
오늘도 어김없이
결국 제압당하고 말 고집을 늘 그렇게
오래도 피웠나 보다
12. [RSK] 오늘의 질문은 여기까지였어요.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롤링스톤 코리아 덕에 참 즐거운 시간 보냈어요. 살아보면 별다른 것도 없는 이 세상에 반짝이는 추억 하나를 선물해 줘서 고맙습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롤링스톤 코리아 파이팅!
이솔로몬의 다양한 화보 이미지와 인터뷰 전문은 곧 발간될 롤링스톤 코리아 13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HOTOGRAPHS BY KIMMOOND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