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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면 감천, 시인 원태연

20년과 13개월. 이번에 시인 원태연을 인터뷰하며 에디터가 가늠해 본 시간이다. 전자는 원태연이 시를 쓰지 않은 세월이고, 후자는 그가 이번 시집을 준비하며 쏟은 시간이다. 그러니까 1992년도에 발표한 첫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로 150만 부 이상 판매된 기록을 세운 인물이 20년 만에 펜을 쥐고 나서 1년 뒤, 이 시집이 만들어진 것이다. 

20대 무렵, 시인은 떠오르는 문장들을 받아 적으면 되었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노트를 꺼낼 여유도 없이 펜만 다급히 꺼내 자신의 생각을 적어내린 적도 있었다고. 그의 머릿속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영감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강산이 바뀌고도 남았을 만큼의 긴 공백 끝에 펜을 쥐자 자신이 어디 서있는지 모르겠는 막막함을 느꼈다고. 그 시기를 회상하며 시인은 망망대해라는 비유를 사용했다. 이 단어를 통해 에디터는 시인 본인의 좌표를 알 수 없었던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최근 시집 <너에게 전화가 왔다>는 원태연이 감각과 노력을 되찾고자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결과물이다. 이 시집의 제목을 다른 말로 하면 ‘지성이면 감천이다.’가 되겠다. 정성이 지극하면 어떠한 어려운 일도 이룰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았던 이번 여정을 함께 살펴보자. 


1. [RSK]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원태연 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롤링스톤 코리아와 인터뷰에 앞서 구독자분들께 자기소개와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난독증 협회 홍보대사 시인 원태연입니다. 

 

 

2. [RSK] 벌써 12월이 거의 다 왔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인터뷰 날짜 기준)

 

최근에 시집을 낸 후, 어제까지 출판사에서 1100권 남짓한 책에 직접 사인을 했어요. 그리고 오늘은 이렇게 롤링스톤 코리아와 인터뷰를 하러 왔네요. 

    

3. [RSK] 최근 새로운 시집을 출간하셨어요. 간단하게 소개해 주신다면?

 

한 철딱서니 없는 시인이 있었어요. 그 시인이 자신의 재능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가 20년 동안 헤맸어요. 꿈꾸던 걸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요. 그러다 딱 한 명의 독자분의 한 마디로 용기를 얻어서 한 페이지도 허투루 넘기지 못하는 시집을 쓰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 후 13개월 동안, 20년 전의 스타일을 다 잊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시집입니다.

 

 

4. [RSK] 이번 시집 <너에게 전화가 왔다>를 사랑 이야기들로 채우신 이유가 있을까요?

 

출판사에서 사랑을 주제로 잡아주셨어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하고 썼어요. 왜냐하면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느낌이었거든요. 망망대해가 태양이 내리쬐는 아래 지평선이 보이는 바다에 홀로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줄을 다 푼 기타처럼 아무 소리도 안 나는 저를 만났거든요. 출판사에서 제시한 사랑이 저에게는 글쓰기의 첫 기준이 되었어요. 기준이 생겨서 되게 고마웠어요.

 
 

5. [RSK] 이번 책의 <잡담>에서 ‘상처가 많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순도와 밀도는 꽤 높아요’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어요. 제게는 이 부분이 마치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아도 또 사랑을 시작할 때는 순수하고 온 진심을 다한다는 뜻으로 들렸어요. 작업 과정도 궁금합니다.

 

시는 읽는 사람의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는 장르 같아요. <잡담>은 제가 쓰기 시작한 지 7-8개월 정도 되었을 때, 여태까지 쓰지 않은 긴 시를 써보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다양한 형식을 위해서요. 쓰다가 제가 평소 쓰지 않는 단어인 ‘의연하다’라는 말이 툭 튀어나와서 스스로도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6. 작업하실 때 그런 순간(의도치 않은 단어가 튀어나오는)이 잦은가요?

 

아니요. 처음이었어요. 

 


 

7. [RSK] 이번 작품에서는 형태적 실험을 시도하신 게 눈에 띄었어요. 시어의 배열이나 시의 형태 등을 다채롭게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 시집에는 85편의 시가 있는데, 17편의 시는 결사대 같은 시에요. 이전에 제 작업 방식은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기준 삼고, 이 톤 대로 시집을 만들었는데 이번 시집을 작업할 때는 그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어요. 그렇게 17편을 계속 퇴고하다가 자연스레 형태의 변화를 주게 되었어요.

 

 

8. [RSK] 영감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떨 때 영감을 얻으시나요?

 

혹시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 빌어보면 이루어진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찰나의 순간에 비는 소원은 염원이거든요. 그것처럼 지금 전 노력하며 영감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9. [RSK] 프랑수아즈 사강은 어린 나이의 성공으로 인해 힘든 시기도 많이 겪었다고 했는데, 시인께서는 이러한 왕관이 약간의 부담처럼 느껴지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이런 거인 줄 몰랐어요. 머릿속에 글이 지나가는데 그걸 못 적는 사람이 된 거예요. 일기도 20년 만에 쓰면 어색할 텐데 시를 그러니, 벌받을 만하죠. 예전에는 떠오르는 걸 그냥 받아 적었어요. 지하철 안에서 펜을 들어 쓰기도 하고요. 그러던 사람이 뭘 써도 안 써지는 난관에 봉착한 거죠. 그래서 13개월 동안 저는 시를 쓴 기억밖에 없어요. 

   

 

10. [RSK] 앞으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멋있는 시인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장래희망으로 멋있는 남자를 써낸 기억이 있어요. 멋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척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일맥상통해요. 매일 같은 옷을 입어도 멋진 사람이 있는 것처럼. 멋있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11. [RSK] 긴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 및 끝인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분께서 <히스토리>가 좋으셨다고 해서 반갑네요. 의외였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좌우지간 다들 돈 많이 버십시오. 감사합니다.

 

<사진제공 - 박.찬.목.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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