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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세상이 가장 원하는 남자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는 글로벌 팝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할리우드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쉽지 않은 게 분명한 이 모든 일을 더없이 쉽게 보이도록 만드는 그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금요일 밤, 뉴욕에서 해리 스타일스의 공연이 있었다.

 

단순한 공연은 아니었다. 그가 본인의 세 번째 앨범, 곧 최대 히트작이 될 [Harry’s House]를 모두 연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5월의 그 밤에 관중은 롱아일랜드의 UBS 경기장을 깃털과 반짝이와 눈물로 뒤덮었다. 스타일스가 도시에 올 때마다 일종의 의식적인 깃털 뽑기가 이루어졌다.
팬들은 앙코르 공연에서 뭔가 평소와 다른 게 있음을 알아차렸다. 스타일스는 평소처럼 <Kiwi>로 이번 공연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그는 눈물 젖은 춤과 함께 <As It Was>를 부르며 그 밤의 막을 내리고자 했다. <As It Was>는 팬데믹 속의 고립과 변화를 반추하는 새 싱글로서, 이 날 두 번째로 공연한 것이다. 그때 청중은 스타일스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폭발했다. 그 반응에 그도 약간 충격을 받은 듯했다.



“우리는 무대에서 내려왔고 저는 탈의실로 들어갔어요. 잠시 혼자 앉아 있고 싶었죠” 이것은 두 달 뒤 스타일스가 나에게 한 말이다. “원 디렉션(One Direction) 이후로 그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뭐랄까, 이런 기분이었거든요. ‘좋아, 지금껏 온갖 정신 나간 꼴은 다 봤어’ 제가 있던 그곳에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겁을 먹은 건 아니었지만 잠깐 시간이 필요했죠. 그게 뭔지 확실치가 않았으니까요. 그냥 그 에너지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스타일스는 28세에 혼자 힘으로 새로운 차원의 스타덤을 열었다. 몇 년 전, 그는 보이밴드인 ‘원 디렉션’의 멤버로 활동하며 정기적으로 청중으로 가득 찬 스타디움에서 공연했다. 올해 봄과 여름에는 그런 공연을 혼자서 했다. <As It Was>는 그의 최대 히트곡이 되었다. 스트리밍 기록을 여럿 세웠는데, 미국에서의 연속 10주 1위를 포함하여 24여 개국에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가 젊은 여성 팬이 많은 스타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그와 관계 맺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그저 예쁘장한 십 대 아이돌을 거부하는 것보다 심했다. (그러한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보여주려고 수십 년의 음악사를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기이한 방식으로 흐름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As It Was >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확실히 남성 팬의 수가 가장 많아진 곡이에요. 이건 조금 이상한 말 같긴 해요. 남성 팬을 얻는 게 목적은 아니었거든요. 그냥 그런 변화를 알아차렸다는 의미예요”라고 말했다.



해리가 4월에 코첼라에서 헤드라인 무대에 서기 전, 나는 무대 뒤에서 그가 제임스 코든(James Corden)과 게스트인 샤니아 트웨인(Shania Twain) 그리고 여자 친구인 올리비아 와일드(Olivia Wilde)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후로 그의 뉴욕 공연과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공연도 매진 기록을 세웠다. 이처럼 스타일스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사랑은 이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거의 모든 공연의 마무리 인사에서 그가 말하는 것처럼 ‘1년, 2년, 5년, 12년’ 동안 그를 지지해 왔든 아니든, 모든 팬의 얼굴에서 그런 사랑을 볼 수 있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As It Was>가 모든 택시에서 흘러나왔다. 아침 식사를 할 때는 <Watermelon Sugar>가 사운드트랙이 되었다. 런던의 한 약국에서는 <Golden>이 은은한 배경 음악이 되었다. 브루클린의 한 바에서는 <Late Night Talking>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 남자가 “난 해리 스타일스가 좋아요.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외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마치 급진적인 자기 수용 행동인 것처럼 말이다.
2022년에는 그가 어디에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스타일스는 문자 그대로 내 앞에 있다. 땀이 나도록 더운 6월의 오후, 그는 독일 함부르크의 한 호텔 비즈니스 스위트룸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 오늘 아침 아일랜드해에 몸을 담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시내로 날아온 그는 2018년 이후로는 첫 유럽 투어 일정 가운데서 하루를 쉬는 중이다.



실제로 만나본 스타일스는 중성적 스타일의 아이콘이 된 인물이라기보다는 절친의 귀엽고 발랄한 오빠 같은 이미지에 가까웠다. 그는 탈의실에 둔 목도리와 스팽글 점프슈트 대신 파란색 아디다스 트랙 재킷, 운동용 반바지, 구찌 운동화를 착용하고 있었다. 로맨스 소설에 등장하는 떠돌이 왕자처럼 ‘헝클어졌다’고 묘사될 때가 많은 그의 머리카락은 쉬는 날의 시그니처 액세서리인 집게핀으로 정리돼 있었다.
스타일스는 일종의 밀레니얼 이상 현상이다. 그는 방 건너편에 전화기를 꽂아 충전해 두고 스팸 메시지의 알림에 곁눈질 한 번 주지 않는다. 종종 영국인 특유의 느린 말투로 천천히 생각을 풀어놓는 동안에도 상대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그는 예전에 비해 좀 더 차분해 보였으며 심지어 금욕적인 느낌까지 풍겼다. 12년 전 세상이 원 디렉션의 멤버인 그에게 처음으로 반했을 당시 그가 뿜어내던 엉뚱하고 오락부장 같던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변함없이 상냥하고 매력이 넘쳐서, 내가 그를 (직업적으로) 스토킹할 때 다른 도시에서 함께 나누었던 소소한 이야기의 세세한 것까지 기억해 냈다. 그리고 그는 내가 함부르크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 계획인지, 잡지 마감일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도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얼마 전 그는 새 앨범과 관련된 스포티파이(Spotify) 이벤트를 뉴욕에서 열어 팬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는 데이비드 크로스비(David Crosby)의 최신 앨범이 무척 마음에 든다며 그 앨범에 대한 내 의견을 묻기도 했다.
함부르크는 스타일스에게 특별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종조부께서 여기에 사세요. 독일 여성과 결혼하셨거든요. 그래서 제게는 독일인 사촌 한 명이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가족이 놀러 오곤 했는데 그 사촌이 아는 영어라고는 ‘레모네이드(lemonade)’뿐이었죠. 그 애가 실제로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싶었던 건지 ‘물 좀 주세요!’라고 말하려고 했던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는 내일 밤 함부르크의 지역 축구 경기장인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Volksparkstadion)에서 5만 여명의 팬들을 위해 공연할 예정이다. 스타일스가 현재 진행 중인 <러브 온 투어(Love on Tour)>는 원래 그의 두 번째 앨범인 [파인 라인(Fine Line)]이 발표된 지 몇 달 뒤인 2020년 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대로이다.



스타일스는 작년 가을까지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없었지만, 그 사이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가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는 동안, 스타일스는 [Fine Line]에 수록된 <Watermelon Sugar>가 첫 번째 1위 히트곡이 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처음으로 이 곡으로 그래미상(Grammy)을 수상했다.
팬데믹 사태가 심각해지자 스타일스는 결국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고 집을 구해서 세 친구와 함께 살게 됐다. 그와 친구들은 그의 말에 따르면 “산책을 하고 저녁 식사를 만들며 상추를 씻는 것 같은 온갖 종류의 일”을 함께했다. 그가 휴식 기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겠노라 결심하고 새로운 곡을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 말이다. 마침 릭 루빈(Rick Rubin)의 말리부 스튜디오인 샹그릴라(Shangri-La)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스타일스는 오랜 프로듀서이자 공동 작곡가인 키드 하푼(Kid Harpoon)과 타일러 존슨(Tyler Johnson)과 함께 이사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스타일스는 “우리는 우리가 뭘 하려는 건지 제대로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느니 그냥 우리 모두가 한곳에 모여 음악을 만들어보면 더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러고 그들은 이미 [Harry’s House]를 만들고 있었다. 그의 앨범 중 [Harry’s House]는 현재까지 라디오에서 가장 높은 빈도수로 방송되었다. 그 앨범은 마치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려주는 진술서와도 같다. 그는 몇 년 전 일본에서 살 때 처음 들었던 호소노 하루오미[細野晴臣]의 1973년 LP [호소노 하우스(Hosono House)]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곡들을 자기 삶의 하루를 가로지르는 내면의 독백처럼 취급했다.



팬데믹이 조금 완화되며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자 스타일스는 런던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 그는 세상을 떠난 양부의 차를 타고 양부가 남긴 재즈 CD를 들으면서 친구와 함께 이탈리아로 내려갔다. 팬데믹 기간 중 길렀던 콧수염이 있는 그대로 하루는 트레비 분수를 찾아갔다. 평소라면 이 유적지가 인파로 북적거렸겠지만 그때는 관광객이라고는 네 명뿐이었다. “매일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희한한 시절이야. 그렇지?’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그래, 정말 미쳤어!’”
그는 친구이자 합작 아티스트였던 룸메이트들이 그 시기에 자신과 함께 있어준 덕분이라고 공을 돌린다. “저 혼자 다 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이는 <As It Was>의 가사인 “해리, 혼자 있는 건 너한테 안 좋아(Harry, you’re no good alone)”에 빗대서 한 말이다. 이탈리아 여행 후, 스타일스는 프랑스로 가서 친구를 만난 다음 작업실로 돌아왔고, 결국 바스 근처의 리얼 월드 스튜디오(Real World Studios)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가을에 ‘파인 라인’을 넘어선 미국 횡단 투어를 떠날 즈음, 마침내 [Harry’s House]는 비밀리에 완성된 상태였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싱글 발매와 우승 기념 월드 투어 외에도 다음 단계의 스타덤에 대한 다른 지표가 있다. 그가 보유한 스킨케어, 매니큐어, 의류 라인인 플리징(Pleasing) 그리고 구찌(Gucci)와 함께한 패션 컬렉션이 그것이다. 영화계에서도 그의 활동은 왕성하게 이뤄졌다. 그는 심리 스릴러 <돈 워리 달링(Don’t Worry Darling)>과 로맨스 드라마 <마이 폴리스맨(My Policeman)>의 주연을 맡았다. 또한 영화 <이터널스(Eternals)> 시리즈 중 적어도 한 편에서 에로스(Eros)를 연기하기로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s)와 계약을 맺었다. “<엑스 팩터(X-Factor)> 이후로 제 인생의 모든 것이 보너스처럼 느껴졌어요” 그는 원 디렉션의 멤버가 되는 기회를 안겨 준 가창 경연대회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TV에 나와 노래를 부르다니.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스타일스는 오늘 함부르크의 호텔에서 여전히 사랑, 수치, 정직함, 친절, 치료 등의 중요성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며 그 모든 덕목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세계 최고 팝스타 중 한 명이 될 수 있을지, 팬들을 위해 무엇이든 되는 동시에 옆을 지켜주는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아들, 동생, 친구,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를 고심한다. 모든 것이 커질수록 스타일스는 더 작고 소박한 삶을 동경한다. 세상이 가장 원하는 남자는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부분을 자신을 위해 남겨둘 수 있을까?


 

해리 스타일스의 인터뷰 전문과 다양한 화보 이미지는 롤링스톤 코리아 8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hotographs by Amanda Fordyce.

Production by James Warren for DMB Represents. 

Set design by David White for Streeters. 

Fashion direction by Alex Badia. 

Styling by Harry Lambert for Bryant Artists.

Styling Assistants : Ryan Wohlgemut and Naomi Phillips.

Hair by Matt Mulhall for Streeters.

Grooming by Laura Dominique for Stree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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