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dream is to create a society and environment
that allows golf players (and all athletes) to enjoy sports for a long time.”
“골프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종목의 선수가 온전히 스포츠를 즐기면서 오래할 수 있도록
좀 더 나은 환경과 사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저의 새로운 꿈이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화려한 싱글의 삶과 입담으로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는 박세리이지만, 대한민국이 외환위기에 허덕이던 1990년대 말 우리 국민에게 박세리는 희망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다. 온 국민이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 소식에 환호했고, 당 대회에서 맨발로 워터 해저드에 들어가 공을 쳐내는 모습은 TV 화면 조정 시간에 흘러나오는 애국가의 영상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명장면이 되었다. 이러한 박세리 신화는 다른 한국 선수들이 LPGA 메이저대회에서 줄지어 우승할 수 있게 한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소위 말하는 ‘박세리 키즈’가 지금 전 세계 골프계를 주름잡는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박세리는 우리나라에서 골프의 생활화에도 큰 영향을 줬다. 그의 등장 이전까지 골프라는 스포츠는 소위 돈 많은 사람의 여가 활동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그 이후에는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서 제대로 대접받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외환위기가 회복되자 곧바로 골프 인구가 늘어났으며, 자녀의 진로 선택지에 골프선수라는 목표를 추가하는 학부모도 증가하였다. 박세리는 그렇게 수많은 기록과 기억 속에서 ‘난세의 영웅’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말처럼 자유롭게 방송 활동과 일상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다. 영웅 박세리도 우리에게 소중하지만, 인간 박세리 역시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롤링스톤 코리아는 영광스럽게도 이러한 희대의 스포츠 영웅이고 친근한 언니이자 누나인 박세리를 만날 수 있었다.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 법, 롤링스톤 코리아와 함께 박세리의 매력의 해저드에 빠져보자.
안녕하세요, 박세리 님. 롤링스톤 코리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영광입니다. 인터뷰에 앞서 소개와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여자 골프 국가대표 감독이자 스포츠 기업 ‘바즈인터내셔널’의 대표 박세리입니다.
24년간의 선수 활동을 마무리하고 감독으로, 한 회사의 대표로 살고 계시는데 새로운 삶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어떤가요?
골프선수로서의 삶을 마치고 다시 사회 초년생이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삶을 마주했어요.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아 떨리기도 하고, 걱정도 되며,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겠지만 그럴 때마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는 저의 가치관을 되새기며 끊임없이 도전할 생각입니다.
골프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미국으로 가겠다고 한 것도 그리고 은퇴를 결심한 것도 다 본인의 의지였다고 들었어요. 그런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이었나요?
‘골프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막연한 목표 하나만으로 미국에 진출했죠. 당시 미국에서는 아시아 선수가 홀로 우승하고 다니는 모습이 생소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이슈가 됐어요. 세계 최고라는 목표를 달성한 뒤, ‘세리 키즈’가 저의 뒤를 이어 세계 무대에 진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기회를 넘겨주고 싶었어요. 첫 미국 진출은 나 혼자만의 성공을 생각한 결정이었다면, 은퇴라는 결정은 저 자신보다 후배들을 위한 결심이었던 거죠.
수많은 시즌과 우승 뒤에 힘겨운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골프’는 굉장히 힘들고 고된 운동이에요. 하지만 선수 생활을 하던 그 당시에는 그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경기와 시즌을 그저 묵묵히 열심히 치렀던 것 같습니다.
성적과 관계없이 가장 즐긴 경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솔직히 경기 자체를 즐긴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결정적인 순간, 한 타에 의해 우승이 결정되고 희비가 교차되는 순간이 매일같이 반복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뒤돌아보니 세계적인 선수들과 같은 필드 에서 경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게 정말 영광이었고, 우승 트로피를 하나씩 들어 올릴 때마다 많은 변화가 따라온 것을 생각하면 제겐 선수 시절 그 자체가 행복이었습니다.
우승 트로피들은 어떻게 소장하고 계신가요?
우승 트로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유산이기에 잘 보관하고 있어요. 은퇴 후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직접 집을 지었는데, 거실 한쪽에 저의 선수 시절 모든 추억이 담긴 우승 트로피들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트로피 진열대의 조명을 켜면 크리스탈 트로피들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뿌듯합니다.
박세리의 인터뷰 전문과 이미지는 롤링스톤 코리아 4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HOTOGRAPHS BY DAVIN
The Legacy of the Hazard Shot Lives On, Se Ri Pak
Se Ri Pak's approach is rather casual as she shares her fancy single life and fun stories on various entertainment shows. In the late 1990s, when Korea was going through the foreign exchange crisis, Se Ri Pak symbolized hope for the Korean people. The whole country celebrated Se Ri Pak winning the U.S. Women's Open. The scene of her going into the water hazard barefooted to hit the ball became famous and played during the airing of Korea's national anthem on TV. The legendary achievements of Se Ri Pak paved the way for many other Korean golfers to win major LPGA tournaments. It can be said that the "Se Ri Kids" are dominating the professional golf world right now.
Se Ri Pak was influential in making golf part of the Korean way of life. Before her appearance in the golf scene, the sport had a reputation for being a leisure activity for the rich. But after Se Ri Pak, it was acknowledged as a reputable sport for everyone. After Korea recovered from the foreign exchange crisis, the population of golfers grew. Many parents wanted their children to become future professional golfers.
Se Ri Pak is considered a "hero of troubled times." But nowadays, she has let go of all her struggles and presents herself enjoying her daily life. Watching her, we have come to realize that the "person" Se Ri Pak is just as precious to us as the "hero" Se Ri Pak.
Rolling Stone Korea had the honor of meeting this extraordinary, down-to-earth sports hero. Great opportunities don't come easily, so let's dive straight into Se Ri Pak's charms with Rolling Stone Korea.
Hello, Se Ri Pak. It's an honor for us to speak with you through this interview with Rolling Stone Korea. Before our interview, please introduce yourself, and say hello.
Hello, I am Se Ri Pak, the Korean Women's Golf National Team Coach and CEO of the sports company "Baz International." It's nice to meet you.
You wrapped up your career 24 years ago as a pro athlete. Now you are working as a coach and CEO of a company. How do you feel about your new life?
After wrapping up my career as a golf player, I approached my new life with the mentality of a person fresh out of college. I had to do so many new things, so I was nervous and worried a lot. I'm sure there are a lot more problems to come. But my motto, "there's nothing more foolish than not trying out of fear of failure," will encourage me to continue taking on such challenges.
We heard that it was solely your decision to play golf, go to the U.S., and retire. What was the most significant influence in making those decisions?
I went to the U.S. with the wild dream of being the "best golfer in the world." At the time, not many people were familiar with Asian golfers (let alone winning games). So that alone was enough to garner worldwide interest. After achieving my goal of being the best and hearing that "Se Ri Kids" were now following in my footsteps on the international stage, I wanted to pass on the baton. If the decision to go to America was for my success, retiring was more for the next generation than myself.
We're sure that there must have been some hardship behind all those seasons and championships. Is that correct?
Golf is an incredibly tiring and arduous sport. But back then, when I was actively competing, I gritted my teeth through those times with the sole goal of being the best.
Regardless of the outcome, which tournament did you enjoy the most?
To be honest, I don't think I ever purely enjoyed a tournament. This is probably because of the pressure of the winner and loser being divided with a single hit in one crucial moment, which repeats every day. But in retrospect, it was such an honor to play on the field with world-class players. I now think of all the changes that followed every time I hoisted up a championship trophy. So overall, my time as a golf player was full of happiness.
Where do you keep your trophies?
My trophies are my precious legacy. So, I have them stored safely. After retiring and coming back to Korea from the U.S., I built my own house. I have a spot on one side of my living room to display all the memories and trophies from my golf career. When I turn on the lights of my trophy display stand, the crystal trophies shine.
Whenever I see that, I'm really proud of everything I achieved.
Check out the 4th issue of Rolling Stone Korea for more of Se Ri Pak's photos and interview session.
PHOTOGRAPHS BY DAV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