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하여 그동안의 아카이브를 활용한 특별 웹사이트가 개설되고, SM 아티스트들 간의 리메이크로 채워진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됐다. TV에서는 기념 방송이 편성되고, 30년의 역사를 담은 서적과 굿즈도 나왔다. 서울에서 시작된 단체 콘서트 <SMTOWN LIVE 2025>는 올해 내내 전 세계를 돌며 이어질 예정이다. 이처럼 30주년을 기념해 공개된 많은 콘텐츠들 중에서 특히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것이 브랜드 필름 <THE CULTURE>다. 지난 세월을 SM과 함께해온 여러 세대의 ‘핑크 블러드’들이 그 영상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SM의 역사를 함께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도 수없이 존재하는 핑크 블러드들, 이들은 어떻게 핑크 블러드가 되었을까? 그들이 직접 자신의 피를 핑크빛으로 물들인 노래들을 이야기한다.
H.O.T. - 아이야! (I Yah!) (1999)
이현호 / 36세 / 대한민국 대구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바이트
1999년, 아직 초등학생이던 시절 처음 H.O.T. 4집을 들었다. 당시 H.O.T.는 최고의 슈퍼스타였기 때문에 TV에서 이미 수도 없이 봤었지만, 앨범에서 만난 H.O.T.의 모습은 방송에서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타이틀곡 <아이야! (I yah!)>에서는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참사에 대한 사회의 무거운 책임을 이야기하고, 그 외에도 역사의 아픔을 다루거나 자신들을 향한 비판에 거칠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앨범을 통해 아이돌 그룹이 단지 예쁘고 멋있게 꾸며진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작품을 통해 보다 넓은 영역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아티스트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앨범 단위로 들은 첫 작품이자 앨범 감상의 재미를 알려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때 이후로 많은 음반을 사 모으면서 앨범을 구성하는 시각적 요소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케이팝 아티스트의 앨범과 상품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게 됐다. 직간접적으로 음악 분야와 얽힌 일을 하면서 그들의 흥미로운 진화와 발전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핑크 블러드로서 큰 축복이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 - Sea Of Love (2002)
송다혜 / 33세 / 대한민국 서울 / 음악 마케팅, 오프더레코드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노래하던 MV 속 환희와 브라이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두 사람 모두 외모도 멋졌지만, 가창력이 훌륭하다는 것이 오랫동안 좋아한 큰 이유였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다른 그룹에게서 보지 못한 것이었고, 당시 CD 플레이어로 매일같이 전곡을 돌려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자연스럽게 SM의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어, 어마어마한 가창력을 보여준 또 다른 그룹인 동방신기의 팬이 되기도 했다. 당시엔 친한 친구들이 모두 동방신기 팬이었는데, 라이벌로 여겨진 타 팀 팬들과는 함께 놀지도 않는다며 유치한 기싸움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게 방송업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이어져 언론홍보를 전공하기도 했고, 졸업 후에는 공연 기획, 음악 마케팅 등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하게 됐다. 이제는 연예인을 보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 연차가 됐지만, 브라이언이 유튜브를 통해 다시 주목받거나, SM 30주년 공연에서 환희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라서인지 여전히 반갑고 설레는 자신을 발견한다.

f(x) - 라차타 (LA chA TA) (2009)
사스키아 / 24세 / 영국 런던 / 해운 행정 보조
2014년 SNS에서 f(x)가 비를 맞으며 <라차타 (LA chA TA)>를 부르는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됐다. 쏟아붓는 빗속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왔고, 캐치한 코러스는 어느새 머릿속에 각인됐다. f(x)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음악 방송서부터 한국 예능, 팬 소통 라이브, 그리고 앨범과 굿즈까지, 온갖 콘텐츠로 가득한 케이팝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실제로 직관한 첫 케이팝 공연도 '2015 런던 코리안 페스티벌'에서 봤던 f(x)의 라이브였다. 그날 내 피는 완전히 핑크색으로 물들었고, 이후 영국에 찾아온 SM 아티스트의 공연은 빠짐없이 챙겨 봤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핑크 블러드로서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기에, 결국 대학교 땐 아예 한국 유학을 감행했다. 2022년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고려대 축제에서 친구들과 에스파, 레드벨벳의 공연을 봤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물론 핑크 블러드 라이프는 귀국 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오늘은 레드벨벳 10주년 콘서트 실황을 관람할 예정이고, 내일은 에스파의 런던 공연에 간다.

소녀시대 - Gee (2010)
카프리 / 24세 / 대한민국 울산 / 댄서, 레이디바운스
초등학교 3학년 때 소녀시대의 <Gee>를 처음 봤던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단숨에 귀를 잡아끄는 음악과 소녀시대 멤버들의 비주얼도 강렬했지만, 무엇보다 따라 하고 싶은 안무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Gee>에 이어서 발표된 <소원을 말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핑크빛으로 물든 피는 f(x)에도 반응했다. 소녀시대와 달리 멤버마다 뚜렷한 개성을 드러낸 f(x)에는 또 다른 느낌으로 끌렸다. 어린 시절 스마트폰이 생기기 전까지는 정말 매일같이 ‘쥬니어네이버’에 들어가서 소녀시대와 f(x)의 뮤직비디오를 봤고, 그 춤을 따라 춰보고 싶어서 스스로 안무를 따고 연습하며 점점 춤에 빠져들었다. 핑크 블러드가 된 것이 나에게 댄서라는 꿈을 심어준 것이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 지금 나는 댄스팀 레이디바운스의 막내이자 여러 케이팝 가수들과 함께하는 안무가가 됐다. 몇 년 전에는 댄서로 최강창민의 <Maniac> 뮤직비디오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한 명의 핑크 블러드로서 감회가 남달랐던 작업이었다.

EXO - 3.6.5 (2013)
장혜진 / 25세 / 중국 지린성 옌지 / 대학원생
중학교 때 사촌 언니가 요즘 가장 대세인 그룹이라면서 엑소의 리얼리티 쇼 <EXO's Show Time>을 보여줬다. 당연히 방송 중 BGM으로 엑소의 노래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3.6.5>는 희망적인 가사와 힘차고 밝은 분위기 때문에 가장 좋아했던 곡이다. “세 번까진 부딪혀 봐 여섯 번쯤 울지라도 다섯 번 더 이겨내면 끝이 보이기 시작해”라는 가사는 그 뒤에도 도전이 망설여지고, 실패에 좌절할 때마다 큰 힘을 줬다. 학창 시절 엑소가 갔던 곳을 가보기 위해 용돈을 모아서 한국 여행을 갔고, 리얼리티 쇼에 나왔던 남산타워에 가거나 회오리 감자를 먹으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나의 삶에 활력을 준 이 산업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지금은 아예 한국으로 건너와 이화여대에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얼마 전에는 NCT 드림이 커버한 <Love Me Right>을 들으며 뭉클하기도 했는데, 그때 새삼 내 안에 ‘핑크 블러드가 흐른다’는 것을 실감했다.

레드벨벳 - 행복 (Happiness) (2014)
김종희 / 30세 / 대한민국 경북 문경 / 백엔드 개발자, IT 스타트업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하나쯤 있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여중생 여고생 시절부터 나는 철저히 장르 음악만 파는 마이너 취향의 소유자였다. 그런 내가 SM의 신인 걸그룹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퍼렐 윌리엄스와 함께 넵튠스로 팝 시장을 뒤흔든 채드 휴고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뮤직비디오를 재생한 순간, 케이팝에 대한 편견은 오색 빛깔로 부서졌다. 유니크한 영상미, 트라이벌 비트에 어우러지는 예쁜 음색, 강렬한 투톤 헤어, 그리고 웬디의 “Shine on me~”까지, 온갖 방식으로 눈과 귀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쏟아져 나왔다. 원래도 꽂히면 깊게 파던 성격이었던 만큼 SM 작품들을 모조리 찾아 들으면서 다양한 콘셉트와 보컬, 퍼포먼스의 조화 등 케이팝을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했다. 그렇게 보통 팬 활동이 뜸해진다는 취준생 시절 오히려 열혈 핑크 블러드가 됐고, 일부러 전공과 겹치는 일을 찾아서 케이팝 관련 데이터 분석 업무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직해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블러드 컬러는 여전히 변치 않았다.

NCT U - Make A Wish (Birthday Song) (2020)
카토 나오코 / 40대 / 일본 도쿄 / 에디터, IT 기업
오랜 기간 음악 미디어 편집부에서 에디터로 일했었기 때문에 다양한 음악을 접했다. 물론 케이팝도 많이 들었는데, 당시에도 샤이니나 엑소 등 SM 아티스트의 음악 퀄리티를 높게 평가하기는 했지만 직업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인지 팬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NCT에 빠지게 된 것은 오히려 다른 업계로 이직한 이후다. 사실 처음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친구에게 일본인 멤버(쇼타로(현 라이즈))의 춤 실력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본 <엠 카운트다운> <Make A Wish> 영상 한 방에 넉다운됐다. 퍼포먼스는 세련됐는데, 음악적으로는 내 취향의 올드스쿨 힙합의 요소가 녹아 있는 부분이 무척 맘에 들었다. 케이팝다운 높은 완성도에 더해 오랜 음악 마니아의 감성을 건드렸다는 점이 유효했다. 그렇게 한번 NCT에 빠지게 되자, 여러 개의 서브 그룹과 많은 인원수 때문에 언제나 누군가는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팬 활동은 일상이 됐다. 지금도 현실에서 고통을 겪을 때면 언제나 NCT의 존재가 큰 위로가 된다.

에스파 - Next Level (2021)
함석진 / 17세 / 대한민국 서울 / 고등학생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하루 종일 친구들과 농구나 축구만 했고, 아이돌 음악에 흥미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친구들이 듣고 있던 에스파의 <Next Level>을 처음 듣고서 큰 충격을 받아 관심을 갖게 됐다. <Next Level>은 기존에 막연히 가지고 있던 아이돌 음악의 범위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유형의 음악이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묘한 중독성에 이끌려 반복해서 듣다 보니 점점 빠져들었고, 지금은 오히려 그 독보적인 색깔이 에스파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음악은 물론 예능이나 팬 소통에서 보여주는 멤버들의 모습에서도 큰 매력을 느꼈다. 이제 실질적으로 ‘고3 모드’에 들어가면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일상 속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에스파의 음악은 가장 큰 위로다. 지금은 팬 활동에 제약이 있지만, 수능만 끝나면 꼭 콘서트와 음방에 달려갈 생각이다. 2026년, 기다려라.

키 - Killer (2023)
윤지연 / 12세 / 대한민국 경기 부천 / 초등학생
TV에서 <놀라운 토요일>, <나 혼자 산다>를 자주 보는데, 방송에서 샤이니 키가 눈에 많이 띄었다. 표정이 귀엽고 말하는 것도 재미있어서 점점 관심이 가게 됐다. 그래서 솔로곡을 찾아서 들어봤는데, 처음 들었던 <Killier>가 예능 방송에서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멋있어서 빠지게 됐다. 키의 모든 노래들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샤이니의 음악도 하나하나 찾아 듣게 됐고, 팀 전체를 좋아하게 됐다. 이후 활동들은 빠짐없이 챙겨 보고 있고, 작년에는 아빠를 졸라 성수에서 열린 키의 팝업 스토어에도 다녀왔다. 친한 친구들은 아이브나 투어스를 좋아해서 같이 샤이니 이야기를 많이 못 하는 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난 키의 노래와 춤이 가장 좋다. 얼마 전에는 키가 진행한 SM 30주년 방송을 부모님과 같이 봤는데, 엄마, 아빠가 거기에 나오는 가수들이 다 엄청 대단하다고 이야기해서 신기했다. 방학인데도 여전히 매주 금요일, 토요일이 기다려지는 건 TV에서 키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콘서트는 함께 가기로 아빠랑 약속해서 너무 기대된다.

라이즈 - Honestly (2024)
오서영 / 24세 / 대한민국 서울 / 의과대학생
2024년, 예정에도 없던 휴학을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며 워낙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인지 휴학 기간은 오히려 무기력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여느 날과 다름없이 누워서 유튜브를 보던 중 <Honestly> 라이브 클립을 보게 됐고, 그 순간 혈관에 배운 적 없는 색깔의 피가 주사됐다.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와 후반부의 화음까지, 아름다운 비주얼과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반복 재생을 했다. 눈치 빠른 알고리즘은 곧 <Siren>을 울렸다. <Honestly>의 멜로디에 따스한 감동이 있었다면, <Siren>의 퍼포먼스에는 속이 뻥 뚫리는 호쾌함이 있었다. 알고리즘은 멤버들 한 명 한 명의 직캠부터 예능 쇼츠까지 ‘입덕’ 공격을 퍼부었고, 나는 흔쾌히 함락됐다. SNS에서 팬 활동을 하고 음악 방송을 가거나 콘서트에 다녀오면서 무기력했던 삶은 점차 활기를 되찾았다. 단지 라이즈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열심히 활동하는 멤버들을 보면서 나도 휴학 이후 놓았던 학과 공부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이제 라이즈가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다.
<사진제공 -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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