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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 뮤즈의 탄생

오직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만이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솔로 2집 [MUSE](2024)에서 지민의 이야기는 더욱 황홀해졌다. 타이틀 <Who>의 빌보드 핫100 차트 31주 진입(2025. 3. 4. 기준). 전 세계 모든 뮤지션의 꿈이자 성공의 상징인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지민이 몇 번이나 역주행을 거듭하며 K팝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31주 진입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12년 전 세운 K팝 솔로이스트 최장 진입 성적과 타이기록이다. 군 복무 중 발표되어 본격적인 프로모션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지민은 감미롭고 장악력 있는 보컬과 퍼포먼스로 그만의 멋을 각인시켰다.

 

첫 솔로 앨범 [FACE](2023)의 타이틀 <Like Crazy>는 데뷔와 동시에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등극했다. 1963년 사카모토 큐의 <上を向いて歩こう(Sukiyaki)>가 아시안 뮤지션 최초로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오른 데 이어, 아시안 솔로이스트로서는 지민이 60년 만에 1위를 갱신했다. 작곡을 비롯해 퍼포먼스, 비주얼 창작까지 직접 주도해 완성한 두 장의 솔로 앨범으로 그는 아티스트로서의 선명한 존재감과 피 튀기는 세계 음악 시장에서 계속 슈퍼스타로 살아남을 수 있을 만한 탁월한 감을 증명했다.

 

그러나 [MUSE]가 특별한 진짜 이유는 높은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이 앨범에서 지민은 직면하는 용기, 부딪치는 결기, 넘어서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자극적이고 일시적인 화제성이 넘쳐나는 시대에 지민은 음악과 무대에 대한 오롯하고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며 근본으로 돌아가 자기만의 세계를 굳건히 했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음악에>에서 "(음악이란) 우리들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으면서 우리를 뛰어넘어 헤치고 나오는 것"이라고 썼다. 솔로이스트로서 새로운 챕터를 시작한 지민은 내내 자기 자신을 힘차게 뛰어넘어 헤치고 나오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존재는 가장 깊은 내면으로 흘러들어 잊을 수 없는 울림을 만든다. 이 한없이 인간다운 서사는 지민의 무대를 더욱 찬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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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의 탄생

'지민은 어떤 뮤지션인가?' 묻는다면 나는 이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그는 [MUSE] 발매 준비를 모두 끝낸 후, 최소 2년 동안은 아무 공연도 할 수 없음에도 입대 전까지 마이크를 차고 매일 무대에 오르는 연습을 했다. 1천 번 넘게 리허설 영상을 돌려보며 정교하게 완성한 <Who>의 퍼포먼스를 제대 후에 정확히 구현하려면 그는 아마 근육을 깨우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민은 최후의 순간까지 끈질기게 본질에 집중했다. 요동치는 현실에 주의를 뺏기지 않고 묵묵히 근본으로 향할 수 있던 이유는 지민이 멀리 보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사람은 결코 현재에 갇히지 않는다.

 

1집 활동에 대해 지민은 "살갗을 벗겨내는 느낌"이라고 소회를 밝힌 적 있다. 이 날것의 표현은 베테랑 가수인 동시에, 신인 솔로이스트로서 새로운 무대에 서며 그가 느낀 공기가 얼마나 낯설고 격렬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BTS 지민'이었던 그가 '지민'이 되기까지, 그는 가수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지민은 승부사다. 그의 인생은 눈앞에 닥친 현실과 자기 자신과의 수많은 한판 승부의 연속이었고, 대부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MUSE]에서 엿볼 수 있는 지민의 승부법은 분명 색다르다. 이전까지 그는 현실을 겨뤄야 할 상대로 받아들이며, 살벌한 경쟁과 증명의 세계에서 남다른 승리를 쟁취해 왔다. 이 치열한 여정과 결기를 음악으로 확장하여 데뷔작 [FACE]에 담았다. 자신을 술에 취해 흔들리게 하는 현실의 허무와 염증을, 직면을 통해 이겨내고 자유와 정화를 쟁취하는 서사를 통해 솔로이스트 지민의 세계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MUSE]에서는 대결보다 화합이 두드러진다. 1집을 제작하고, 활동하며 겪은 생생한 현실을 흡수하듯 체화해 알을 깨고 나오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1년 4개월 여의 시간을 꼬박 들여 신중하고 순수하게 완성한 [MUSE]의 인트로 제목이 'Rebirth(재탄생)'인 이유일 것이다. 1집 후반 녹음 도중 2집 제작에 착수했음에도 이렇게나 접근법이 다른 앨범이 만들어졌다는 건, 자신의 음악과 삶을 재해석하는 이 과정을 그가 얼마나 엄격하게 치렀는지,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 뮤지션인지 증명한다.

 

 

재탄생은 무대로 증명된다. 타이틀 <Who>를 공연하는 그는 "무대를 잡아먹는" 흡입력을 가진 BTS 지민에서 나아가 지휘자이자 주인공이 된 모습을 보여준다. 라이브를 염두하고 구성된 연극적 동선 위주의 퍼포먼스에서 그는 수많은 등장인물과 교차하며 인연과 감정의 스파크를 만든다. 주인공의 자리에 서서 무대의 호흡을 이끄는 그의 역할은 너무 정확해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귀에 쏙 박히는 특별한 음색과 질감을 가진 지민의 보컬은 오랫동안 '별가루'에 비유되었으나, [MUSE]에서는 나아가 폭발과 궤도를 보여준다. 솔로이스트 지민의 재탄생은, 10년 동안 몸에 익은 표현과 동선을 초기화해야 하는 새로운 현실에서 '가수는 무대로 말한다'라는 신념에 정직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과 시도를 했는지 보여준다.

 

타이틀 <Who>의 공식 활동은 입대 전 미리 촬영한 미국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 무대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공연 시간 3분 12초. 돌아서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쇼츠 영상 두어 개쯤 볼 수 있는 짧은 시간. 그러나 지민의 무대는 결코 휘발되지 않을 인상과 여파를 남긴다. [MUSE]를 완성하기 위해 그가 치른 전쟁 같은 시간이 모두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 무대를 포함해 뮤직비디오와 댄스 프랙티스 영상까지 단 세 번의 슛을 위해 지민은 리허설 영상을 1천 번 넘게 돌려보며 정교한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입대를 앞두고 활동 여부가 불투명한 앨범을 만드는 데에 1년 4개여 월의 긴 시간을 쏟았다. 음악의 '격'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능가하기 위한 도전과 절대적인 시간의 '겹'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이란 찰나에 담긴 역사다. [MUSE]에는 제한된 시간과 낯선 기로 위라는 현실에 숙이지 않고 무한한 것을 담으려 한 지민의 집념이 담겨있다.

 

 

뮤즈의 탄생

제작 과정에서 솔로이스트 지민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음악에서는 세계를 알 수 있다. [MUSE]는 지민만이 묘사할 수 있는 형형색색 감정의 장면들로 이뤄졌다. 옴니버스 영화처럼 각각의 이야기와 시점이 서로 다른 이 앨범은, 지민만의 표현력으로 카니발 같은 절대적인 환희와 대도시의 그림자처럼 애처로운 공허, 경탄처럼 온몸으로 퍼지는 끈질긴 사랑을 들려준다. 첫 앨범 [FACE]가 아이돌이 아닌 인간 지민의 심연에서 휘몰아치는 흑백의 음악이었다면, [MUSE]는 아티스트로서 그가 탐구하고 뻗어 나가려는 사랑과 영감의 향연을 담는다. 이 선명한 색채와 대비가 자아내는 황홀함과 혼란, 격정과 극적임이 바로 지민의 세계다.

 

지민의 음악이 오색찬란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템포 때문일 것이다. 솔로 활동 이전에는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보여주던 정교하고 대담한 리듬감과 표현력을 앨범 전체로 확장했다. 아다지오(아주 느리게)가 슬픔을, 포르티시모(아주 세게)가 격양을 자아내는 것처럼 음악에서 템포는 정서와 서사로 나아간다. 지민의 솔로 앨범에는 무대 위를 미끄러지듯 유영하고, 뛰어넘고, 폭발시키는 그만의 속도로부터 물결치는 독창적인 정서가 있다. [FACE]가 통일성 있는 무드의 음악으로 정체성 확립에 집중했던 것과 반대로, [MUSE]는 마치 즐거운 모험을 하듯 모든 트랙의 음악적, 서사적 장르를 달리한다. 이번에도 지민은 승부사다운 기질을 발휘해 신중한 해석과 표현으로 각 트랙의 정서를 완결 짓고, 뮤지션으로서 넓은 스펙트럼을 증명한다. 그의 근원의 울림에서 시작된 음악에선 지민이라는 존재의 감정뿐만 아니라 근육과 온도마저 느낄 수 있다.

 

동화적인 감수성으로 사랑의 환희를 노래한 첫 번째 트랙 <Rebirth(Intro)>는 지민의 세계를 집약한다. 1집 [FACE]는 솔로이스트 지민의 Birth(탄생)를 보여줬다. 2집에서 그는 'Re'birth('재'탄생)로 나아간다. 이 노래는 지민이 [MUSE]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포착한다. [FACE]에서 자아의 심연을 직시하던 날 선 시선은, 갓 알을 깨고 나온 무구한 존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두리번거리는 듯한 경탄과 낙관으로 빛을 바꾼다. 재와 불이 타오르던 흑백의 세계는 봄꽃이 만발한 싱그러운 정원이 된다. <Rebirth(Intro)>는 [FACE]에서 [MUSE]로 이어지는 계절 같은 변화의 절정을 담으며, 지민이 느끼는 음악이라는 생명의 신비에 함께 빠져들게 한다. 그리스 신화의 뮤즈는 창조적 영감을 주는 존재로 해석된다. [MUSE]에 담긴 '뮤즈'는 지민이 헤엄치는 이 신비로운 창조적 영감의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한다.

 

<Rebirth(Intro)>는 앨범의 주제 의식을 집약한다는 점에서 1집 첫 트랙인 <Face-off>와 형식으로 닿아있지만, 본질은 더블 타이틀인 <Set Me Free Pt.2>와 연결된다. 이 노래는 운명으로부터 억압된 자아를 스스로 해방하여, 새로운 나로 재탄생하는 서사를 담는다. 뮤직비디오에서 원형 감옥에 갇혀 원초적 춤을 추며 구원을 갈구하던 어둠 속 지민은, 대단원에 이르러 자유를 쟁취하고 빛의 세계로 나아간다. <Rebirth(Intro)>는 그 원형 감옥에서 해방된 지민의 이야기다. 가사에서 표현한 "칠흑 같던 나"는, 다시 태어나 "너와 눈 맞추며 노래"하기 위해, "진정한 사랑"을 위해 [MUSE]의 세계로 입장한다. [FACE]의 주인공은 '과거의 나'였다. [MUSE]에선 '너와 나의 현재'로 진화한다. 이렇듯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차원의 연결을 통해 뮤지션으로서 지민의 진정한 세계가 탄생한다. 여담이지만, 칠흑 같았던 과거를 빠져나오니 빛나는 너와 내가 있었다는 전개는 상당히 로맨틱하다.

 

 

선공개 곡인 <Smeraldo Garden Marching Band>는 그의 또 다른 뮤즈인 팬들에게 바치는 세레나데다. 다소 복잡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MUSE]에는 두 축의 '뮤즈'가 존재한다. 앞서 설명한 창조적 영감으로서의 뮤즈와, '지민(ME)' 안의 '팬들(US)'를 형상화한 M'US'E이다. 이 노래는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Band'로 끝나는 긴 제목, 현장음을 삽입해 라이브로 촬영한 트랙 비디오, 비틀즈의 패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검은색 슈트를 입은 지민의 모습에서 그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와 본질적으로 연결된 지점은 '론리 하츠 클럽(Lonely Hearts Club)'이다. 론리 하츠 클럽은, 외로움을 채워줄 특별한 누군가를 찾으려 술집 게시판에 건 광고를 의미한다.<Smeraldo Garden Marching Band>는 어느 대도시의 어두운 밤, 클럽의 바 테이블에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누군가를 '스메랄도 가든(Smeraldo Garden)'으로 손잡고 이끄는 듯한 내용의 노래다. 트랙 비디오의 배경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알프스산맥의 초원을 연상케 한다.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들, 낮에는 꽃가루가 날리고 밤에는 반딧불이 켜지는 동화적인 세계에서 지민은 웨딩 싱어처럼 사랑과 축복을 가득 담아 노래한다. 정직한 사랑을 표현한 로꼬의 피쳐링까지 더해져, 음악으로써 팬들에게 완벽한 행복을 선물하고 싶은 지민의 마음을 전한다.

 

사실 이 앨범의 진짜 선공개 곡은 마지막 트랙인 팬 송 <Closer Than This>이다. 지민의 입대 직후 발표된 이 노래는 그의 상징인 달처럼 밤에도, 달이 보이지 않는 낮에도 언제나 팬들의 곁에 있겠다는 다정한 메시지를 전한다.

 

소피아 카슨과 함께 부른 <Slow Dance>는 현재까지 지민의 솔로 앨범에 실린 유일한 듀엣곡이다. '음역대가 높고 부드러운 지민이 남녀의 러브 발라드를 부르면 어떨까?' 그의 여정을 눈여겨본 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질문에, 지민은 무척 흥미로운 결과물을 내놓는다. <Slow Dance>는 사랑하는 남녀가 손을 맞잡고 춤추며 영원을 맹세하는 내용의 로맨틱한 밴드 사운드 R&B 곡이다. 노래를 들으면 따스한 조명이 켜진 댄스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 세상에 서로만 존재한다는 듯 눈을 마주하고 느긋하게 춤추는 젊은 커플을 상상하게 된다. 남자는 리드하고, 여자는 몸을 맡기고 짝지어 춤추는 이 고전적인 장면의 주인공으로, 지민이 남성 보컬로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고민하는 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로맨티스트 부산 사나이인 그가 찾은 답은, 어쩌면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되는 것 아니었을까. 지민은 더 부드럽고, 더 섬세하게 가사를 음미하며 사랑의 충만함을 전한다. 소울풀한 소피아 카슨의 보컬과 달콤한 조화를 이루며, 고전적인 스토리의 노래임에도 몹시 현대적이고 세련된 무드를 자아낸다.

 

몽환적인 소피아 카슨의 목소리는 <Like Crazy>에서 "I think we could last forever. trust me.(우리는 영원할 거야. 나를 믿어.)"라고 잔인하게 속삭이던 연인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Slow Dance>는 <Like Crazy> 세계관의 지민이 까마득한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며 꾸는, 깨어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자각몽 같기도 하다.

 

<Be Mine>은 지민의 '뭘 좀 아는' 노래의 계보를 잇는다. 후끈한 기온의 열대 섬에서 해가 뜨고 지도록 사랑을 나누자는 충실한 구애를 담은 서정적인 라틴 선율의 아프로비츠 곡이다. 팬들에게는 타이틀인 <Who>에 비견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이런 노래를 한 번쯤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정확히 저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Be Mine>은 '뭘 좀 아는' 계보의 선조 격인 BTS의 [MAP OF THE SOUL : 7](2020)에 수록된 솔로곡 <Filter>를 연상케 한다. 유혹적이고 세련된 라틴팝으로, 콘서트에서 공연했을 때 말 그대로 팬덤이 뒤집어지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라틴 선율 특유의 열정적인 고조감,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리는 이국적인 타악기 소리, 예측불가능한 전개는 특별한 리듬감을 가진 지민에게 맞춤옷처럼 잘 어울린다. 그러나 <Filter>가 유혹적인 분위기 표현에 초점을 둔 것과는 달리, <Be Mine>은 보컬리스트로서 지민의 장점을 장르로 넓히는 데에 전념한다. 타이트하고 사실적인 사운드에 밀착하는 지민의 단단한 목소리가 하나의 그루브를 만들며 담백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섹시함은 지민이 가장 쉽고, 압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민은 솔로 앨범에서 유혹적인 무드를 경계한다. <Like Crazy>에 유혹적인 가사가 포함되어 있으나, 강렬한 결핍을 감추기 위한 자기방어의 수단처럼 느껴진다. <Be Mine>은 지민에게 가장 쉽기 때문에, 가장 복잡한 고민이 필요한 노래였을 것이다. 다행히 지민은 그의 특별한 무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답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타이틀 <Who>는 공허에 대한 노래다. 공허란,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한 갈구이며, 갖기 전에 이미 상실한 것에 대한 향수이며, 그러나 부재한 채로 완전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이다. 지민은 복잡한 감정 표현에 능하다. 아주 작은 비트까지 쪼개서 장악하고, 체화해 표현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섬세하고 유니크한 그의 보컬은 마치 악기처럼 구성과 조화에 따라 색다른 울림을 만든다. 들려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다. 그러나 <Who>가 발매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빌보드 핫100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고, 다 적을 수 없는 최초, 최고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공허를 표현할 모범적인 조건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 감정을 깊숙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Who>에는 [FACE]에서 고백한 그가 지나온 절망과 방황, 인내와 성숙의 시간이 배어있다. 그리고 진실한 음악은 언제나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뮤직비디오는 영화 <빽 투 더 퓨쳐>(1985)의 결말에서 주인공이 미래로 타임 리프하는 밤거리를 연상케 한다. 네온사인이 명멸하고, 운집한 시위대가 소리치고, 자동차를 날려버릴 정도의 돌풍이 휘몰아치는 아우성 가득한 거리에서 지민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춤추며 군중 속의 고독을 연기한다. <Like Crazy>에서 반전된 퍼포먼스는 그의 고독을 더욱 운명적으로 만든다. <Like Crazy>의 지민은 자기만의 어둠에 갇혀 손 내미는 사람들을 모두 거부했기 때문에 혼자가 된다. <Who>에서는 먼저 다가간다. <Like Crazy> 퍼포먼스의 절정인 거울을 마주한 듯 춤추다 결국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끝나는 페어 안무를 반전시켜, 그 장벽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국 'Who'를 찾지 못하고, 밤거리에 혼자 남겨지며 공허를 완성한다.

 

이 노래에선 특히 지민의 보컬이 돋보인다. 'Who'를 찾기 위한 적극적인 여정을 다룬 곡답게 말을 걸듯 단단하게 내뱉는 창법을 들려준다. 날카로운 기타 리프와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과감하게 부딪치는 긴장과 쾌감의 카오스를, 지민은 힘 있고 유니크한 보컬로 휘어잡는다. "Who is my heart waiting for(내 마음이 기다리는 이는 누구일까?)" 시원하게 내지르는 절정에선 'Who'를 찾지 못하는 괴로움을 폭발시키며 곡의 서사에 현실감을 더한다. 2000년대 초반 팝 스타일의 복고적인 사운드에 지민의 뻔하지 않은 보컬이 더해져, 흥미로운 시대적 감수성도 느낄 수 있다. 입대 직전 녹음한 어쿠스틱 버전 리믹스까지 발매하며, <Who>를 통해 보컬리스트로서 보여주고자 한 모든 시도를 도장 깨기를 한다.

 

게임 체인저의 탄생

그룹 출신의 솔로 가수에게 1집보다 중요한 건 2집이다. 1집은 정체성을, 2집은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민은 2년 미만의 짧은 시간 동안 직접 판을 짜고 작곡에 참여한 두 장의 분신 같은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다. 자기만의 정체성과 방향을 확고히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전례 없는 상업적 성공도 이뤘다. 솔로이스트로서 충분한 시도를 하면서도, 스메랄도 꽃 등 BTS 세계관의 상징을 주요 콘셉트로 가져와 그룹의 서사를 넓히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해내고도 그는 아직 만 29살이다. 세계 음악 시장의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서 지민이 그려갈 미래는 무한하다.

 

<사진제공 - 빅히트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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