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듯이 황홀한
대중음악의 수식에서 좋은 음악과 퍼포먼스를 완성하는 것은 절반의 성공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을 채우는 건 아티스트의 역량이다. 스타는 청중을 꿈꾸게 하는 힘을 가졌다. 그래서 그들의 무대에는 꿈결 같은 반짝임과 설렘이 있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시대를 호령하는 대중음악의 아이콘들은 한 가지 능력이 더해진다. 그들은 원하게 한다. 지민의 호흡과 열기로 빚어진 첫 솔로 앨범 [FACE](2023)는 팬들이 그를 얼마나 원하는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놓는다. 미칠 듯이. 데이비드 보위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의 개념을 인용하며 "신을 대신할 수 없다면 우리 안에 창조한 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고 질문한 적 있다. 지민은 최고 가치의 신성함만이 장악할 수 있는 영혼의 텅 빈 공간을 그를 향한 미칠 듯한 마음으로 메운다.
지민은 황홀하다. 황홀함은 역설적이다. 희열만큼의 절망, 닻 같이 무거운 위태로움, 얼음 속의 불을 동시에 품고 있다. [FACE]는 황홀하고 강직한 존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역설을 표현한다. 데뷔와 동시에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오른 타이틀 <Like Crazy>는 지민만의 고혹적인 보컬과 유려한 무브로 환호 속의 고독과 부유 속의 직시를 그리며 모든 감각과 시선으로 그를 느끼게 한다. 더블 타이틀인 <Set Me Free Pt.2>는 투명한 혼돈과 억압 속의 자아를 스스로를 해방하는 지민의 서사를 원초적인 몸짓으로 그려낸다. 깃털 같은 나긋함과 날렵함, 폭풍처럼 위력적인 진동과 절도를 가진 지민의 춤은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며 지극히 개인적인 그의 진실에 함께 휩쓸리게 한다. [FACE]는 지민이라는 차원을 통해 황홀함의 역설을 증폭하고 청중의 내면으로 도래시킨다. 그 감미롭고 뜨거운 체험은 지민만이 선사할 수 있는 환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탕달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볼 때 느끼는 충격과 격앙을 의미하는 '스탕달 신드롬'을 탄생시킨 저서 <로마, 나폴리, 피렌체>에서 "황홀함의 정도가 음악에서 미의 유일한 척도다"라고 정의했다. [FACE]는 지민처럼 황홀하다. 지민이 숨과 혼을 담아 탄생시킨 음반이자, 지민을 그 안에서 스스로 다시 태어나게 한 [FACE]에서 드높은 미적 경지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다.
미칠 듯이 환상적인
[FACE]에서 지민은 달이 된다. 몸에 타투로 새겨진 달의 플롯, 무대 위 시리게 빛나는 시선과 신화적인 역동감, 어둠을 걷어내는 은은하고 신비로운 아우라를 가진 지민의 존재감을 달로 표상하여 앨범 전체 세계관으로 확장한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거룩한 숙명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예술 작품의 영감이 되어 왔다. [FACE]는 달이 자아내는 황홀경, 카오스, 생명력을 지민의 음악과 춤, 언어와 이미지로 유기적으로 형상화하여 K팝의 새로운 문법을 만든다. 이 거대한 형이상학의 덩어리들을 지민은 존재의 힘으로 격조 있게 붙잡고 거느리며, 동시에 해석으로 접근할 수 없는 진실함으로 전복한다.
[FACE]에서 가장 지배적으로 드러나는 달의 상징은 생명력이다. 달은 그 어떤 어둠을 겪더라도 환하게 다시 차오른다. 이 앨범은 팬데믹의 밤 동안 지민이 겪은 배신과 분노, 방황과 공허를 고백으로써 직면하고 자유를 찾는 여정을 순행적으로 다룬다. 벗어나고 싶은 현실을 성난 얼굴로 돌아보는 <Face-off>로 시작하여, 불현듯 방문을 크게 두드리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나 현재를 직시하는 <Interlude : Dive>, 불 꺼진 방 안을 홀로 걸으며 맞이하는 <Alone>의 고독한 절정을 지나, 마지막 트랙인 <Set Me Free Pt.2>에 이르러 스스로에게 "Finally free(해방)"를 선언한다. 지민은 [FACE]를 통해 밤과 공존하는 법을 깨우치며 새로운 빛으로, 자기 서사와 감수성을 가진 솔로 아티스트로 다시 태어난다.
이 회복과 재생의 서사는 다시 달에서 비롯되는 파장으로 시각화되며 예술적 텍스트로서 [FACE]의 층위를 더한다. 앨범의 탄생을 알린 컨셉 트레일러는 [FACE]의 시각적 세계관의 모태로, 달의 중력이 만드는 물의 격정을 그린다. 빛과 어둠, 위와 아래, 물방울과 바다가 마주하고 역전하며 끝내 만드는 이 파동은 [FACE]의 뮤직비디오, 아트 워크, 스타일링 등 보이는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 달 세계관을 응집하고 공명하게 한다. 타이틀인 <Like Crazy> 뮤직비디오는 취기와 허무의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민의 불안과 고립감의 고저를 조수(潮水)의 역학에 비유해 문학적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이 수사로 <Like Crazy>의 구슬픈 희열에 함께 잠겨 가라앉게 한다. <Set Me Free Pt.2> 뮤직비디오는 달의 형상에 집중한다. 원형 감옥의 무대에서 릴케의 <넓어지는 원>의 시구를 몸에 새기고 생명이라는 속박의 굴레를 표현한다.
[FACE]의 달 세계관은 탁월하고 영리하다. K팝 아티스트에게 특히나 가혹하게 던져지는 '무엇을 들려줄 것인가?'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의 요구를 압도적으로 충족시키고, 새로운 대중예술의 철학을 제시한다. 새로운 상상력과 문법으로 정교하게 구축된 [FACE]의 세계를 탐험하다 보면 언젠가 지민이 열게 될 솔로 콘서트에서 달빛처럼 영롱하고 창백한 조명 아래 꿈꾸듯 춤추고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미리 보는 듯한 백일몽에 빠지게 된다. 지민으로부터 뻗어 나오고 완결되는 이 세계관이 안겨주는 공감각적 일체감은 솔로이스트로서 첫발을 뗀 지민의 성공의 추진력과 가능성으로도 확장된다. [FACE] 단 한 장의 앨범으로 지민이 닦은 음악적 토대는 이토록 넓고 굳건하다.
미칠 듯이 격렬한
지민은 이를 악물어야 하는 순간에 웃으며 한계점에서 리듬을 만드는 사람이다. 정박을 찌르는 동시에 뛰어넘으며, 느긋하게 뒤돌아보기까지 하는 지민만의 아름답고 격렬한 리듬감은 우주조차 곡절 시켜 그의 무대로 흐르게 한다. [FACE]는 그 리듬의 추동으로 만들어졌다.
[FACE]는 예상외의 앨범이다. 지민 자신조차 아이돌다운 컨셉추얼한 음악으로 활동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매력과 서정, 퍼포먼스 능력을 최상의 이미지로 구현하는 방탄소년단 음악 속의 지민은 막강하고 찬란하다. 그 모습을 잇는 솔로 앨범을 발표했어도 그의 예정된 성공의 결과는 변함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민은 스트리트 댄스를 그만두고 현대무용을 시작하고, 다시 아이돌 연습생이 되길 택한 지난날처럼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할 때를 판단하고 밀어붙이는 힘은 지민이 가진 수많은 재능 중 가장 결정적이다. 그는 결국 해내고야 말 자기 자신을 믿는다.
[FACE]는 지민처럼 담대하다. 입대를 앞두고 당장 뭔가를 보여주기를 세상이, 어쩌면 지민 자신이 가장 재촉했을 순간에 긴 시간과 진통이 필요한 셀프 프로듀싱 방법으로 앨범을 제작했다. 만인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이 술에 취해 잠든 밤의 허무와 인간관계의 신물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민은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고, "찔러도" 같은 팬들의 마음을 아득하게 할 단어가 적힌 작사 노트를 부록으로 싣기까지 했다. 늘 낙천적이고 신중한 모습을 보여온 지민이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 많은 생각과 염려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민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그래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하우스 방식으로 10개월 동안 차근차근 앨범을 만들며 지민은 음악으로써 해방하고 싶은 자아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가사를 쓰고, 수많은 밤과 새벽을 헤아리며 모든 음과 호흡으로 멜로디를 짰다. 수없이 재녹음하며 지민만의 음악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 그 과정을 너무나 치열하게 직면하고 뛰어들었기에 정제될 수 없는 날 선 감정을 이야기하면서도 [FACE]엔 응어리가 없다. 노래를 부르는 지민의 담담하고 고아한 보컬엔 수없이 다시 생각하고 뜯어고친 창작물만의 차분함과 관조가 느껴진다.
이 앨범에 내면의 상처를 직면하는 치열함과 진솔함만 담긴 것은 아니다. 지민의 감수성과 서사에 감미로운 상상력을 더해 탄생한 타이틀 <Like Crazy>는 어쩌면 [FACE]에서 가장 솔직한 노래인지도 모른다. 마음 깊은 곳을 끌어당기는 지만만의 그윽하고 탄성 있는 보컬과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절정의 그루브가 아찔하게 얽힌 이 노래는, 그간 '뭘 좀 안다' 정도로 소극적으로 표현되던 지민의 특별한 매력을 무척 대범하게 구현한다. 그 유혹이 유독 위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음악과 퍼포먼스가 지민의 무드 안에서 격렬하게 섞이고, 폭발하기 때문이다. 춤으로 음악을 시작했기에 지민에게 퍼포먼스는 음악의 나중이 아니라 한 쌍이다. 그런 지민이 제목을 짓고, 멜로디와 가사를 쓰고, 안무를 제안했기에 <Like Crazy>에는 근원부터 여운까지 지민만의 미적 운율이 충만하게 흐른다. <Like Crazy>는 오직 지민만이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노래다. 오직 그 자신만 완성할 수 있는 노래를 가진 아티스트는 많지 않다.
지민은 자기의 이야기와 영감이 무르익으며 앨범으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역사와 꿈을 품은 솔로 아티스트로 다시 태어났다. 지민다운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려 깊은 프로듀서들과 서로 꼭 끌어안듯 작업을 하며 음악이 얼마나 기쁘고 위대한 것인지 새로이 깨닫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민은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똑같은 방식으로 앨범 작업을 하겠다고 말한다. 창작은 고통스럽지만, 예술가는 오직 그 고통으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에게 가혹해지는 것은 예술가의 본능이자 숙명이다. 그리고 지민은 항상 그 숙명을 직시해 왔다.
<Set Me Free Pt.2> 뮤직비디오에서 지민이 몸에 새긴 릴케의 시 <넓어지는 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넓어져 가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FACE]는 지민이 온 존재를 바쳐 만든 '넓은 원'이다. 마치 달빛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지민이 만드는 아름답고 진실한 원의 파장은 더 넓게, 더 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사진제공 - 빅히트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