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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랑하는 나의 목격자들에게” - Agust D 트릴로지의 말하기

방탄소년단 SUGA가 ‘Agust D’라는 랩네임으로 발표한 트릴로지(3부작 시리즈) 앨범의 완결판 [D-DAY](2023)의 테마는 사랑이다. 리스너를 향한 사랑과 신뢰가 없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그를 사랑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미성년자 청취 불가 트랙이 3개나 되는(스포티파이 기준) 이 격렬한 앨범을 두고 ‘사랑’을 연상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귀 기울이면 진실과 거짓, 어둠과 빛, 선과 악의 이분을 베는 사람에 대한 그의 포기하지 않는 진심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 사랑, 살아

Agust D의 트릴로지는 SUGA의 생존 기록이다. 말하기와 드러내기를 통해 내면 깊은 곳의 두려움과 직면하고, 음악을 통해 리스너들이 그의 목격자가 되어주길 청한다. 심리학의 고전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트라우마>에는 “(트라우마 치유의) 목표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데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D-DAY]는 트릴로지를 완결하기까지 긴 세월을 지나 마침내 그가 도착한 진리를 이야기한다.

 

<AMYGDALA>에서 “어서 나를 구해줘”라고 외치며 두려움과 공존하는 삶을 수용하고, <해금>에서 “과연 우릴 금지시킨 건 무엇일까? 어쩌면은 우리 자신 아닐까?”라고 의문하며 해답을 통해 확장되는 삶을 보여준다. <Snooze>와 <Life Goes On>에서는 삶은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축하며 나아가는 뜨거운 여정이라고 전한다. [D-DAY]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극야>에서 <Interlude : Dawn>으로 넘어가는 트랙 배치이다. 자신의 삶이 어둠 끝의 어둠인 ‘극야’가 아니라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새벽’이었다고, 혹는 극야를 지나 마침내 새벽에 이르렀다고 고백하며 진리를 통해 자유에 닿고자 한다. 수많은 음악가들이 ‘날 것’을 보여주고자 시도한다. Agust D의 날 것은 위로하는 존재가 되고 싶은 이면 없는 다정함이다. 그것이 Agust D의 사랑이다.

 



 

마지막의 마지막

나는 앨범 리뷰를 쓸 때, 아무도 안 궁금하겠지만, 아티스트의 모든 음악을 발행 역순으로 무한

재생하며 머릿속에서 내용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린다. [D-DAY]는 기다림이 유독 길었다. “어서 나를 구해줘”라는 애끓는 절규와 가족의 아픔, ‘래퍼 SUGA’라는 악극의 서곡 <INTRO:Never

Mind>(2015)에서 들려준 사춘기 시절 “하루 수백 번 입버릇처럼 말했던 내게서 신경 꺼”의 자아에서 <Snooze>의 타인을 ‘신경’ 쓰는 자아로의 변화, 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종교음악처럼 웅장한 인털루드까지 그의 역사를 집대성한 이 앨범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마침내 물꼬가 트인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 나는 광주광역시 유스퀘어 터미널에 막 도착한 참이었고, 헤드폰에서는 트릴로지의 첫 앨범 [Agust D](2016)의 수록곡 <마지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로댕은 말했다. “예술가는 철저하게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결코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마지막>은 격렬한 변주와 샤우팅,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진실한 가사로 Agust D의 독보적인 예술가적 지평을 담아낸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내게 물었어. **** 주저 없이 나는 말했어 그런 적 있다고” 과거의 자해 또는 자살 사고를 암시하는 가사로 어떤 두려움 앞에서도 자기 전부를 내보이겠다는 뜨거운 기개를 전하고, “꼴랑 두 명 앞에 공연하던 족밥 이젠 도쿄돔이 내 코앞에 (...) 세이코에서 롤렉스 악스에서 체조, 내 손짓 한 번에 끄덕거리는 수만 명들의 고개”라고 악에 받친 듯 노래하며 노력으로 일군 것들에 대한 떳떳한 자부심과 증명의 욕망을 표현한다.

 

<마지막>은 그로부터 7년 후 현실인 [D-DAY]와 만나 폭발한다. 이 노래는 Agust D 트릴로지 전체의  근원이자 귀결이다. 도쿄돔이 가장 큰 공연장인 줄 알았던 24살의 그는 월드투어를 조기 매진시키고  손짓 한 번에 수천만 명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31살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과거에서 나아가, 음악으로써 자기의 치열했던 싸움과 극복의 경험을 나누고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먼저 위로를 건네는 존재가 되었다.

 

이 과정을 떠올린 순간, 그가 겪어낸 세월이 해일처럼 나를 덮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죽거나 아니면 죽이거나’의 전쟁처럼 허무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그의 싸움이 감격적이고, 자랑스러웠다. 평온한 토요일 오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나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울음을 꾹 참으며 대합실을 나섰다. 7년 전으로 시간 이동해 그에게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황당한 바람을 마음에 안고서.

 



 

그날

인생은 무엇인가. 이 해답 없는 의문에 사로잡힐 때마다 내게는 늘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오래 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여행할 때, 국모로 추앙받는 에바 페론이 잠든 ‘레콜레타’ 묘지에 간 적 있다. 죽은 이들을 위한 호사스러운 호텔 같았던 그곳에서 오른쪽에는 결혼 사진, 왼쪽에는 장례식 사진이 걸려있는 한 부부의 묘를 발견했다. 한참을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인생을 두 장의 사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두려웠던 스물다섯 살의 나에게 몹시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삶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듯 막막해질 때마다 그 두 장의  사진을 떠올렸다. 인생이란 두 개의 장면 사이를 걸어가는 일. 벗어날 수 없는 좌절의 늪, 저주받은 카르마의 절벽 같은 건 없다. 인생은 위치가 아닌 방향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구했다. 모든 삶은 흐른다. 그래서 나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SUGA는 Agust D 트릴로지를 통해 ‘모든 삶은 흐른다’라는 명제를 자기의 전부를 걸고 증명해 낸다. 앞서 인용한 <트라우마>는 “과거를 마무리 지은 생존자는 미래를 생성하는 과제에 직면한다”라고 설명한다. [D-DAY]를 통해 SUGA는 과거를 완결 짓고 미래로 나아간다. 마치 그의 첫 월드투어 콘서트 엔딩 시퀀스처럼, 단호히 뒤돌아 새로운 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 나간다. 음악을 통해 리스너들에게도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 그의 굳건한 뒷모습을 보면 자연히 소망하게 된다. 그대의 창조와 삶이 끝없이 흐르기를, 시작은 두려웠을지언정 당신의 끝은 마침내 자유롭기를.

<사진 제공 - 빅히트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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