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겪는 거 알지만 그 순간에는 너무 외롭고 힘들잖아요.”
그래서 마련한 카키의 [Home]. 그 안에는 일곱 군데의 쉼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1. [RSK] 신보 발매를 앞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약 한 달 전에 작게 유럽투어를 다녀왔는데요. 그 뒤로 정말 5분도 쉬지 않고 앨범 마무리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살려주세요. 하지만 재밌습니다.
2. [RSK] 요즘도 피자 많이 먹고요?
최근에 단순탄수화물, 즉 단순당이 몸에 최악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몇 개 본 뒤로 최대한 줄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2피자 정도?
3. [RSK] 피자 말고 음악 말고, 지금 당장 떠오르는 내가 좋아하는 것 3가지!
커피,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 친구들의 강아지들. 고양이도!
4. [RSK] 지금 머릿속엔 뭐가 가득 차 있어요? 카키의 뇌 구조를 그린다면 어떤 키워드들이 자리할까요?
원대한 나의 꿈 80%, 그 꿈을 위한 플랜(이번 앨범 [Home] 포함) 19.9%, 서든어택 잘하는 법 0.01%.
5. [RSK] 카키색이 좋아서 카키가 됐다고 들었어요. 함께 후보에 두고 고민했던 다른 이름들은 없는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이 질문을 제 지인들도 많이 하는데 왠지 모를 창피함이 끓어오릅니다. 대략 200가지 후보군이 있었는데요, 최종 후보로는 서퍼(surfer), 이건 느끼해서 탈락. 골드(gold), 콜드랑 비슷해서 탈락. 이렇게 있었습니다.
6. [RSK] 본명인 희태는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어요?
희는 ‘기쁠 희’고요, 태는 특이하게 ‘나라 이름 태’라는 한자예요. 저희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거로 아는데 기쁜 나라? 아무튼 기쁘게 살아가라는 뜻인 듯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레어해서 좋아하고요. 사랑해요,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식사하시고 바로 눕지 마시고.
7. [RSK] 오늘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죠? 곧 세상에 나올 신보에 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이번 앨범 [Home]은 사운드적으로나 곡을 메이킹하는 방식으로나 저한테만큼은 시도적이고 얼터너티브해요. 이야기의 관점에서는 그간의 전작들보다는 좀 더 일상적이고, 그 일상 안의 감정에 대한 앨범이고요. 누구나 겪는 성장통 그리고 인생을 살며 느끼는 회의, 사랑, 우정 같은 인간관계에 대한 아주 평범한 고민을 저만의 표현으로 눌러 담아 봤습니다. 누구나 겪는 거 알지만 그 순간에는 너무 외롭고 힘들잖아요. 그럴 때 자연스레 집이 떠오르듯이 이 앨범이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해요. 집으로 가고 싶은데 길을 모르겠을 때도 너무 좋을 것 같고요. 많이들 찾아와주세요.
8. [RSK] 새 EP의 주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한 단어로 소개한다면 어떤 단어를 고를 거예요?
위로와 휴식.
9. [RSK] <Hotel> <Coffee> <Escape Plan> 데모를 들었어요. 너무 좋던데요? 세 노래는 각각 어떻게 태어났나요?
<Hotel>은 이미 가진 게 많다는 저의 낙천적 가치관으로부터 태어났어요. 항상 국밥이나 빅맥 같은 일상적인 음식을 먹을 때 친구들이랑 입버릇처럼 “야, 이게 인생이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행복하다. 우린 우리라서 행복하고 더 바랄 게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하거든요. 그런 노래입니다.
<Coffee>는 이제 전에 만났던 한 친구가 주말이면 카페 야외석을 찾아서 가는 게 취미여서 저도 같이 즐겼거든요, 그 시간을. 피곤함 한 가득이던 주중을 지나서 일요일에 바삭한 햇살 아래에서 커피 마시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순간을 떠올리시면 좋지 않을까, 혹은 그런 여유가 필요할 때 꼭 틀어주세요.
<Escape Plan>은 제가 잡생각이 많으면 잠을 자버리던 나날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를 생각하면서 쓴 곡이에요. 잠이라는 휴양지로 탈출하는 거죠. 근데 사실 깨고 나면 더 무거워져 있거든요. 그래서 고쳤는데 그 습관을. 하여튼, 노래에도 보면 벌스 끝에 ‘돌아가겠지’를 연신 외치는 파트가 있는데,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10. [RSK] 개인적으로는 <Hotel>은 노을 지는 풍경이, <Escape Plan>은 이른 초저녁이, <Coffee>는 칠흑 같은 밤이 떠올랐어요. 카키가 직접 각각의 음악에 색깔을 하나씩 부여한다면 어떤 컬러를 택할 거예요?
쨍한 대낮을 생각하며 만든 <Coffee>가 칠흑 같은 밤으로 느껴지다니…. 신기하고 재밌어요! 그 밤이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Coffee>는 아주 쨍한 톤의 초록을 생각했고요, <Escape Plan>은 채도가 짙은 주황빛, <Hotel>은 <Escape Plan>보다 더 붉은색에 가까운 노을빛을 생각했습니다. <Hotel>은 통한 듯. 찌찌뽕.
11. [RSK] 만들어둔 곡은 얼마나 더 있어요?
많습니다. 요즘 음악 만드는 게 다시 재밌어진 시기예요.
12. [RSK] 최근 <안병웅 Concert MPBOY Vol.3>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봤어요. 무대 위에선 어떤 생각을 해요?
사랑하는 제 동생의 공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 생각 안 해요, 무대 할 때. 그래서 좋고. 마치 들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무게의 벤치프레스를 들어 올릴 때랑 비슷해요.(웃음) 그냥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고 집중하고 기억하려 하는 거죠. 바벨에 제 온 에너지를 전달해서 힘을 주듯이 제가 가진 에너지가 그 모든 분에게 온전히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13. [RSK] 어떤 이들이 카키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분위기와 진심을 느낄 줄 알고, 낭만이 살아있다고 믿으며, 무엇보다 멋지고 예쁜 사람들이요… 맞잖아~
14. [RSK] 카키가 되기 전까지의 최희태는 어떤 삶을 살았어요?
공부에도 진심이어서 재수했었어요. 재수도 미끄러졌지만…. 시험장에서 돌아오는 아빠 차 안에서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렸었더랬죠. 아르바이트도 피시방부터 양재꽃시장 화분 물류까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었어요. 대학에 가서도 과제를 제끼고 동아리 공연을 준비할 만큼 동아리에 진심이었고… 연애도 그랬고, 우정도 그랬고. 그냥 뭐든 그 당시 꽂히는 거에 진심인 듯해요. 지금은 음악이 제게 그렇고요. 당꽂진남(당시 꽂힌 것에 진심인 남자)으로 불러주세요.
15. [RSK] 법대 진학 후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죠?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걸까요?
법대라 하면 제가 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수능 정말 못 봤었습니다. 두 번 모두… 법학과도 그냥 성적 맞는 아무 대학이나 간 거였고, 원래는 무역학과를 가고 싶었어요. 두 번의 수능 낙방 이후 저는 공부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아요. 어린놈이 당돌하게도…. 그래서 자연스레 제 관심사를 돌아보게 되었고 옷이나 영화도 있었는데 음악만큼 깊진 않았나 봐요, 그 당시에. 그래서 흑인음악 동아리 들게 되고… 부회장이었나 맡아서 무대도 항상 제일 많이 하고, 대천 가서 버스킹도 하고… 하다가 의경으로 입대하면서 무작정 장비를 사게 됩니다. 그때 처음으로 작업물을 만들면서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고 자연스러웠던 거 같아요, 이 정도면!
16. [RSK] 그렇게 뮤지션이 된 후, 상상해 본 적 있어요? 뮤지션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오, 자주 해요. 근데 음악 관련 일을 하진 않았을 거 같아요. 그냥 노래 만들고, 무대하고, 그걸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여보고. 아직도 이게 좋아서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헬스 트레이너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 몇 안 되는 롱텀 취미 중 하나거든요. 유튜브 알고리즘의 90퍼센트가 헬스이기도 하고.(웃음)
17. [RSK] 책도 좋아하죠? 지금은 어떤 책을 읽고 있어요?
책을 좀 못 읽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염우진이라고 영상감독인 친구가 선물해줘서 최근에 무심코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하루에 다 읽었어요. 탈고 기준 30년 넘게 소설로 삶을 영위해 온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한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요. 아주 멋집니다. 제목과는 달리 예비 작가들을 위한 지침서 이런 건 전혀 아니고 자전적인 에세이에 가까운 듯한데 그래서 더 좋았어요. 상당 부분 공감 가는 내용도 많고요. 예를 들어 사소하게는 직장인들이 좋든 싫든 일 나가듯 매일 일정한 양의 원고를 규칙적으로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부분이라든지.(웃음). 저는 이 세상 모든 직업이 뭔가를 만드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
18. [RSK] 동시에 영화를 사랑하죠? 근래 본 작품 중 인상 깊었던 하나를 우리에게도 추천한다면?
영화 정말 사랑합니다.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고요. 근데 솔직히 근래에는 제 자식 같은 앨범을 만드느라 집중력이 달려서 못 봤습니다. 보고 싶은 건 있는데 제가 매드맥스 팬이어서 최근에 나온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인사이드 아웃 2>도 보고 싶네요. 전 슬픔이 팬이에요. 드라마이긴 하지만 <성난 사람들(BEEF)>도 1화 보고 멈춰서 얼른 보고 싶고요!
19. [RSK] 언젠가 음악이 아닌, 책이나 영화 같은 분야로 나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매우 현재 집중형이고 뇌의 용량이 작은 사람이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아직 없어요. 전혀 프로패셔널하진 못하지만, 영상 편집에 관심만 가져보고 있습니다. 그게 자극적이건, 숏폼이건, 긴 호흡의 롱폼이건 상관없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건방지게 생각 중입니다.
20. [RSK] 카키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요?
옛날엔 큰 형이나 아빠? 같다고 많이 느꼈었는데 요즘은 친구 같아요, 겁나 친한. 대다수 음악이 담고 있는 큰 주제들과 이야기들은 늙지 않는데 (물론 아주 기발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음악들도 간혹 있지만) 저는 점점 나이를 먹어가서 그런 듯합니다. 그게 나쁘지 않은 느낌이에요!
21. [RSK] 스스로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은 뭐예요?
솔직히 사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가끔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면 인생이란 게 왜 정말 조금만 달고 왜 이리 쓰기만 할까 싶습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매일 하며,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서 조그맣게 보이는 꿈을 향해서 멈추지 않고 플랜을 짜고 움직인다는 게 자랑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22. [RSK] 남은 올해 절반은 어떤 일정들로 채워져 있어요?
제가 사랑하는 동생과 협업 앨범을 준비 중인데요. 그건 이번 [Home]과도, 기존의 카키와도 또 다른 캐릭터가 될 수 있을 듯해요. 그러고는 ‘쌀쌀해질 때쯤 들으면 좋겠다’ 싶은 곡들이 카키 이름으로도 준비되어 있어서 그때쯤에 또 카키로 찾아뵙지 않을까 싶습니다! 달려볼게요!
23. [RSK] 뮤지션으로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생각이에요?
음악적 문법을 따르고 장르를 너무 따지기보다는 그 당시의 제가 하고 싶은 것, 그 당시의 저에게 솔직한 것,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Photographs by WAV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