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가 홀로 선다. 귓가를 간지럽히던 와글거림은 사라지고, 조용한 적막만이 맴도는 무대에서. 그렇게 이브는 스스로를 똑바로 마주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는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즐겁다고 말한다.
1. [RSK] 약 6년 6개월 만의 솔로 데뷔죠? 오랜 시간을 지나 돌아온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먼저 그룹에서 솔로로 돌아온 소감을 듣고 싶어요.
2017년 그룹 활동 당시 솔로로 프로젝트 싱글을 발매했을 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두렵기도 했다면, 2024년 지금의 저는 차분하기도 또 설레기도 합니다. 물론 떨리기도 하지만 빨리 무대에 서고 싶어요.
2. [RSK] (인터뷰일 기준) 솔로 데뷔까지 일주일 정도 남았는데, 지금 기분은 어때요?
실감이 잘 안 나요. ‘정말 내가 데뷔하는 건가?’ ‘이제 시작인가?’하는 물음표들이 쏟아지는데, 쇼케이스 당일 첫 무대를 하면서 피부로 느껴봐야 알 것 같아요.
3. [RSK] 지난해 11월부터 파익스퍼밀과 함께하게 됐다는 소식을 3월에 공개했어요. 거처를 옮기고 반년 정도가 지났는데, 새 둥지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새들도 처음 둥지를 만들 때 나뭇가지들을 고르고 골라 하나씩 옮기며 보기 좋고 편하도록 가다듬죠. 5월이 된 지금 파익스퍼밀은 제게 비로소 편안한 둥지가 됐어요. 처음에는 낯설기도, 어렵기도 했었는데 회사 분들이 잘 도와주셨어요.
4. [RSK]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이 변했죠? 그중 가장 변화를 크게 실감하는 건 어떤 부분이에요?
시끌시끌 기분 좋던 데시벨이 사라지고 적막해진 것? 멤버들과 있을 땐 하루 종일 수다 떨고 장난도 쳤는데,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생각도 많아진 것 같아요.
5. [RSK] 걸그룹 멤버 이브로 활동할 때와 솔로 가수 이브로 나서는 데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무대를 바라보는 태도나 마음가짐 같은 것들도 그렇고요. 그중 스스로가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걸그룹 멤버로 있을 때는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자’라는 마인드로 임했더라면, 지금은 나 스스로 무대를 온전히 채워야 하니까 책임감이 더 막중해진 것 같아요. 스스로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부족한 부분도 더 크게 느껴져서 더 많이 연습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싫지 않아요. 재미있어요.
6. [RSK] “아이돌을 넘어 아티스트로서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갈 것”이라는 말도 했죠? 이달의 소녀가 아닌, 솔로 아티스트 이브의 세계는 어떤 것들로 채워져 있을까요?
저의 순간순간의 감정과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기록해 나가고 싶어요. 그게 어떤 게 될지는 함수처럼 미지수라 저도 기대가 되고 궁금해요. 1년 뒤, 2년 뒤, 저의 색깔은 어떻게 칠해져 있을까요? 비밀의 방처럼 재밌을 것 같아요.
7. [RSK] 팬 쇼케이스도 준비 중이라고요? 준비는 잘 되고 있어요?
차근차근 마음이 급해지지 않게 컨트롤하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8. [RSK] 솔로 EP [LOOP(루프)]는 어떤 앨범이에요?
끝없이 굴러가는 일상, 변함없이 반복되는 관계가 지닌 순환의 고리를 끊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다양한 장르의 곡들로 표현한 앨범입니다.
9. [RSK] 새 앨범을 준비하며 가장 공을 들이고 힘을 쏟은 건 어떤 부분이에요?
제 이야기를 하는 거요. 물론 데뷔 앨범은 회사의 멋진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들이 만들어주셨지만, 그 기반에는 저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다 담겨 있어요.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다들 제 얘기를 궁금해해 주시고 잘 들어주셨기 때문이라 감사해요.
10. [RSK] 이번 EP에는 이브의 자필로 쓰인 '이브의 러브레터’가 포함돼 있어요. 여기에는 어떤 것이 담겨있나요?
새벽에 노트북으로 피아노 음악을 튼 채 진솔하게 적어봤어요. 불특정 다수에게 부치는 편지는 처음이라 어휘 선택이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더 말을 깨끗하게 거르게 돼서 솔직하지만, 담백한 저의 애정이 담겼어요. 누구나 읽어도 위로가 되는 그런 편지요.
11. [RSK] 솔로로서의 첫 앨범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어땠어요? 그 속에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어떤 형태였는지도 궁금해요.
톱니바퀴 같아요. 굴러갈 때마다 뾰족한 톱이 아프게 찌르지만, 깊숙한 흔적을 남기죠. 몸도 마음도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라 불안하기도 속상하기도 했지만 다 제게는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감정들이에요.
12. [RSK] <LOOP>가 가진 순환의 이미지, 그 속에서 이야기하는 '연꽃', '차분함'과 '평온함'과 같은 표현이 인상적인데, 특별한 내면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공백기 동안 마음을 다스릴 무언가가 꼭 필요했어요. 그때의 저는 너무도 불안정했죠. 절에 갔다가 너무 예쁘게 피어있는 연꽃을 보고 달려갔는데 도착해서 아래를 보니 흙탕물이었어요. 그 순간 저는 흙탕물에서도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13. [RSK] 과거의 규칙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를 담는 여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재밌어요. 저는 평범하고 틀에 박힌 규칙은 싫어요. 어렸을 때부터 청개구리 심보가 있었는데 밀릭 대표님도 저보고 청개구리래요. 힘든 길을 선택하는 편인데 그런 제가 싫지만은 않아요.
14. [RSK] 그렇게 네 개의 트랙이 완성됐어요. 가장 이브를 잘 담아낸 곡은 어떤 곡이라고 생각해요?
<Afterglow>요.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저도 알 수 없는 제 마음을 밀릭 대표님이 잘 담아주신 것 같아요.
15. [RSK] 타이틀곡 피처링으로는 릴 체리 님이 함께했는데, 이 작업으로 처음 만난 사이죠? 호흡은 잘 맞았어요?
언니와는 처음 작업했고 이번 기회로 알게 됐어요. 가이드 랩만 듣다가 언니의 랩이 채워진 곡을 들었을 때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어 기뻐했던 기억이 나네요. 언니가 다음 주에 밥 먹자고 했어요.
16. [RSK] 얼마 전, 파익스퍼밀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다큐멘터리 클립 <하수영 (Ha Soo-young)>에는 힘든 시간을 토로하고 이겨낼 거라고 다짐하는 모습이 담겼어요. 괴로운 순간 나를 일으키는 건 뭐예요?
팬들이요. 정말로 뻔한 대답일지라도 팬밖에 없어요. 저는 제가 좋아서 시작한 음악일지라도 전 세계에 팬이 한 명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그분을 위해 노래해야 해요. 약속이니까요. 그리고 그러고 싶어요. 제가 받은 사랑을 평생 다 갚을 수 없겠지만 갚고 싶어요.
17. [RSK] 처음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건 언제 어디에서였는지도 기억해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언니와 둘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알앤비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가수들을 보며 리모컨을 잡고 따라 해본 기억이 있어요. 너무 재밌어서 엄마가 퇴근하는 밤이 될 때까지 불렀는데 다음 날 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한 소리 들으셨대요. ‘딸이 노래를 잘하던데요.’
18. [RSK]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것도 많을 것 같아요.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 우리에게도 알려주세요.
너무 많지만 지금 떠오른 건 콘서트요. 온전히 제 곡으로만 차곡차곡 쌓아진 셋리스트로 무대에 서는 건 너무 멋있지 않나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19. [RSK] 뮤지션으로서의 꿈도 듣고 싶어요.
회사 테라스에서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인 동갑 친구 아이오아와 얘기를 나눴어요. 저는 성공을 바라기보다 정말 음악을 하고 싶더라고요. 서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해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나중에 이거 다 해보자” 하고. 나이가 들어감에 원통해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저는 나중에 더 성숙하고 능숙하게 음악으로 표현할 제가 기대돼요. 이런 생각을 하게끔 끌어준 아이오아에게 고맙네요.
20. [RSK] 이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아직 미지수이지만 조금 더 깊게 뿌리 내린 연꽃처럼 기품 있고 당당하지만 겸손한 모습이요. 음악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만나 뵙고 싶어요. 노력할 거예요.
Photographs by PAIX PER M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