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약동하며 기세 좋게 자신들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실리카겔은 새로움을 넘어 모든것을 확장하는 무한대의 상태에 돌입했다. 2023년 싱글 Mercurial을 시작으로 EP Machine Boy, 싱글 Tik Tak Tok, 그리고 정규 POWER ANDRE 99까지, 그들이 쏟아낸 거대한 메카닉컬 세계와 디스토피아적 메타포로 가득한 음악은 팬들을 고무시키는 것을 넘어 신을 부흥시키는 희망의 촉매제와 같다. 기계적이고 차가운 물성의 사운드, 하지만 휴머니즘을 놓치지 않은 가사와 메시지의 적극성, 이들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양가성이 주는 흥분. 오랜 시간 그들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것이 그들의 정점이 아닌 그들의 새로운 ERA의 시작임을 깨닫고 다가올 그들의 새로운 확장을 기대하게 한다. 2024년, 실리카겔이란 밴드의 세상은 다시 시작된다.
1. [RSK] 7년 만에 나온 정규 ‘POWER ANDRE 99’는 앨범 소개 글처럼 얼마나 새로운가보다 어떻게 이렇게 새로울 수 있는가를 보여준 앨범입니다. 2023년 시작된 ‘Machine Boy’부터 이번 ‘POWER ANDRE 99’까지의 여정을 요약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김한주: 최대한 짧게 얘기하자면 이번 앨범은 ‘확장의 확장’인 것 같아요. 릴리즈 단위로 치면 싱글부터 앨범까지 확장이 됐고, 앨범에 담긴 서사들도 실제로 불어났으니까요. 가사도 많아졌고, 음도 많아졌고, 그리고 싱글, EP 커버 아트에서 표현된 신체 기관들이 조금씩 드러나다 마지막 정규 앨범에서 포트레잇을 볼 수 있게 표현이 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의미에서 ‘확장’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2. [RSK] Mercurial, Machine Boy, Tik Tak Tok에서 차가운 물성의 유폐된 기계 혹은 안드로이드의 몸과 장기를 파헤치는 듯하더니 POWER ANDRE 99에서 마침내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앨범 커버에 대한 설명과, 커버와 음악의 연관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김한주: 저희는 이런 조각의 이미지들을 모아 빌드업해서 앨범까지 도달하자는 최초 계획을 짠 후에 이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 했어요. 그러다 저희 소속사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의 디자인 팀으로 계신 정다혜 씨가 EP Machine Boy의 ‘눈’ 커버아트를 그려주셨어요. 커버를 보니 이게 눈이고 이걸 개연성으로 이어지게 할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저희 Kyo181을 작업해 준 데일런(Daylen Seu)이라는 외국 작가에게 이 화풍을 모방해서 이 ‘눈’이란 장기의 이미지에서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이 있는 작업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접근은 어떨지 라고 이야기를 했고, 그게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 다혜 씨의 작업물을 출발점으로 Tik Tak Tok, 그리고 정규까지 이어진 거죠. 이것저것 네트워크들의 아이디어가 조금씩 반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RSK] 이 긴 여정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영감을 얻게 되고 구성하게 되고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정규 앨범이 나오기까지 1년간의 여정이 있었는데 햇수로는 1년이지만 사실 실리카겔은 이 전부터 앨범을 준비했을 거잖아요. 무엇이 여러분을 이러한 여정을 이끌게 하고 촉발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김춘추: 처음부터 기계적인 걸 하자, 딱 Machine Boy 이런 주제로 가자라고 했던 건 아니었던 아니었어요. 어쨌든 시기가 실리카겔의 정규 음반 내야 될 것 같은데?란 질문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 같고요. 확실히 7년 만의 정규다 보니 규모를 충분히 만들어 내야할 시기라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긴 했어요. 그걸 어떻게 하겠느냔 생각을 한 게 최초의 여정의 시작이겠지요.
저희가 처음에 Mercurial이란 싱글을 2023년 초에 발매를 했고 당시에 저희가 산산기어와 콜라보를 하면서 고프코어 패션과 이어지게됐고 Mercurial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떤 질감이나 텍스처 같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곡에 집어넣어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음반 작업을 하다 보니 EP로 확장이 됐고요. EP에 들어갈 곡 제목들을 정하려고 하다보니 Machine Boy가 어감도 좋고 나쁘지 않다는 라는 의견이 나와 이러한 이미지로 이어지게 됐죠. 처음부터 우리가 어떤 금속성의 이미지로 가자라기 보다 저희가 시작하게 된 이미지와 물성들을 좀 더 설명하기 위한 단계를 거쳐 가면서 자연스럽게 연속성이 생기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Machine Boy라는 곡이 결정이 됐고, 그런 Machine Boy가 결정 됐으니 이 세계관이 우리가 2집 음반 작업 초기에 생각했던 음반 전반을 아우르는 어떠한 가상의 존재가 Machine Boy란 명사와 잘 붙는 것 같은데 이걸 이용해서 더 이야기를 만들어볼까라는 식의 확장이 됐어요. 어떤 정확한 시점이나 컨셉이 있고 나서라기 보다 우리가 정규 음반이라는 큰 규모의 음반을 만들어야 하는 데라는 생각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과정에서 컨셉이 만들어 진 것 같아요. Machine Boy가 발매 되고 활동을 하면서 음반에 대한 컨셉을 어떻게 비주얼 적으로 표현할까, 어떻게 자연스럽게 Machine Boy에 대한 느낌을 보여줄까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점점 더 디테일한 텍스처들과 이미지들, 상황이 쌓이게 됐고 결과적으로 저희의 POWER ANDRE 99라는 거대한 세계관이 만들어 진 것 같아요.
4. [RSK] POWER ANDRE 99에서 드디어 어떠한 형태의 로봇 혹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Machine Boy이자 Andre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진 기계 인간 인건가요? 혹은 인체실험을 통해 변경된 존재, 마치 ‘에반게리온’의 파일럿들이나 ‘아키라’의 테츠오와 같이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는 존재인가요?
김한주: 설정상은 POWER ANDRE 99가 Machine Boy의 이름이었다는 것은 맞는데요. 그렇다고 이걸 완전히 단정해 놓지는 않았어요. 저희 내부적으로 일단은 그런 설정을 두고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보는 사람들에 따라 더 뒤틀린 해석을 해도 상관없고, 그림 속의 캐릭터가 Machine Boy가 아닌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다양한 인물들, 무언가들, 누구든 Machine Boy나 PH-1004(정규 앨범 수록곡이자 캐릭터)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열린 세계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앞선 질문에 조금 더 보충하자면 주변에서 실리카겔의 음악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것들이 조금은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Kyo181부터 가사가 기계적으로 입력된, 인위적으로 만든 가사로 느끼시기도 하고 음악도 어떻게 보면 조금 규칙적인 느낌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이 안에는 기계적이지만 인간적인 열정도 있는, 서로의 이면에 있는 휴머니즘이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하게 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기계와 인간의 양가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들에 대한 평가가 이전부터 많이 있었고, 그런 평가들이 저희에게 조금의 영향 혹은 영감을 준 것 같아요.
김건재: 요즘 언제부터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생각 해봤는데 여러 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게 답인 것 같아요. 요즘 저희는 하나의 물질을 정하지 않고, 정확하게 선을 그어 정의하려 하지 않아요. 개개인이 인지하는 범위 내에서 서로 맞다고 생각하는 바를 이해하고 굳이 정리하려고 하지도, 막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게 이를테면 우리가 인지하는 선에서 그럴듯하겠다 싶으면 그걸 받아들여요. 무언갈 만들 때 이걸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보고 계속해서 주제와 고민들이 왔다 갔다 하잖아요? 이게 한 명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의견이 오가면서 서로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인드로 여러 의견을 정리하는 개념으로 POWER ANDRE 99가 나오게 된 게 아니냐고 최근에 생각해 봤어요.
5. [RSK] 그렇네요. 갑자기 뭔가를 시작했다기보다 지금까지 쌓여온 이야기들과 새로운 생각들이 모여 이어지다 보니 이 타이밍에 이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군요.
김건재: 맞아요. 물론 정규라는 완전한 볼륨을 본격적으로 생각한 건 S G T A P E – 01을 발매할 때부터였던 것 같기도 해요. 싱글, 싱글, EP, 정규, 뭐 이런 식으로 정규라는 하나의 지점을 두고 계속해서 세밀하게 트렌드를 바꿔가며 전략을 세워왔다고 할 수 있어요.
6. [RSK] 새로움에 대해 항상 고민하는 편인가요, 지금까지 만들어온 곡들이 자기 복제적인 부분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매번 새로운 장르, 생경한 가사, 조금 적극적 여지거나 멀어지거나, 어려워지는 등의 청자와의 간격을 조율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실리카겔에게 새로움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김한주: 새로움이란 게 멤버마다 어떤 후보로 보느냐 판단 기준이 다를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을 때 새로움이란 이 자체를 탐구하기도 하지만 이걸 갖고 놀 수 있는 기준이 생겨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저희가 활동한 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이전에 냈던 곡들이나 활동해 온 이력이 있기 때문에 이걸 기준으로 이것들을 배반할 수도 있고 갖고 놀 수도 있고 이런 기준들이 생겨서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이 레퍼런스가 돼서 이 레퍼런스를 어떻게 갖고 놀까를 탐구하다 보면 새로운게 나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제 실리카겔의 새로움은 외부에서 수입되는 것보다는 내부에서 창출되는 새로움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김춘추: 지금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고 생각해서 새로움이라… 모르겠어요. 저도 실리카겔에게서 뭔가를 만들어 내야겠다고 생각할 때 항상 생각하는 건 뭔가 새로운 걸 만든다기보다는 약간 다들 잊고 있었던 것들을 끄집어내서 같이 보자.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서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과정 같아요. 사실 솔직하게 저희의 음악들을 들어보면 저희끼리는 분명히 다들 알고 있는 요소들이거든요. 서로가 가져온 음악엔 연상되는 어떤 뮤지션이 있을 수도 있고, 정말 프레시하다는 느낌이 드는 포인트가 늘 있는 건 아니에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튀어나오는 환경을 만들어서 새로운 걸 흘려낼 수 있다기보다 우리가 이거 재밌잖아! 라고 제시하는 것들 사이에서 늘 흥미로운 것들이 나오고 재밌는 게 뭘까, 이건 뭘까 고민하는 사이에서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건재: 다들 위트있는 걸 좋아해요. 아까 말씀드렸듯 정확하게 어떤 틀이 있고 그걸 굳이 고정해서 생각하진 않아요. 그러다 보니 어떠한 틀이 있고 거기에 다른 함수가 들어가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막 새롭거나 다르거나 그런 생각들이 오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쨌든 음악을 하는 입장이나 만드는 입장에서는 결국 익숙한 것들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과정의 순서가 저는 재밌는 순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희가 생판 아무것도 모르는 걸 가지고 무언갈 하진 못한단 말이에요. 익숙한 도구와 익숙한 툴을 가지고 어떤 걸 받아들이고 거기에 새로운 함수가 섞이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펑션이 발생하고 이런 과정들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7. [RSK] On Black, T, Ondine, 9분이 넘는 Machineboy空 등 가사 없이 연주만 있는 곡들을 중간중간 배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연출적인 부분인가요? 1부, 2부, 3부와 같이 스테이지가 나눠지는 걸까요? 마치 미술품과 같이 여백의 미를 주는 그런 공백의 배치일까요?
김춘추: 음악이라는 게 제 생각에는 되게 빨리 정보가 휘발되는 것 같아요. 물론 기억으로 남겠지만 어쨌든 고막을 터치하는 건 굉장히 일순간이다 보니까 그 순간에 어떤 인상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계속 되돌려 가며 듣는 건 부자연스러우니까, 그래서 뚜렷한 어떤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어떤 타이밍이라든가, 곡의 톤이나 위에서 언급한 곡들처럼 목소리의 부재라든가 그런 것들에 대한 뚜렷한 대비들이 만드는 인상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노래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가지는 힘이 너무나도 강하다 보니 노래나 가사, 사람의 이미지들이 쉽게 떠오르기 마련인데 연주곡은 비교적 그렇지 않아서 훨씬 더 다양한 컬러를 더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곡들이 새롭다기보다 노래와는 좀 다른 경험을 주니까 그런 곡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물론 T의 경우라든가 On Black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 이후에 배치된 곡들이랑 연결되는 걸 분명히 생각하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게 어떤 특유의 연출로 인해서 연주곡이 그 위치에 들어갔다는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게 그 대비가 필요한 어떤 위치인 것 같아 넣게 된 거죠.
아까 얘기했듯이 감각적인 포인트, 스스로 느끼는 것들, 그런 순간적인 감각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그런 식으로 배치하기도 했고요. 실제로 곡간에 대해 생각 할 때 곡과 곡 사이에 그 넘어가는 그 순간의 느낌이 어떤지에 대한 위치를 많이 조정했어요.
즉 곡을 배치하는 것이 어떤 목표나 목적이 있는 연출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타이밍에 느껴지는 어떤 포인트에 집중해서 지금의 간격과 위치가 나온 게 아닌가, 그렇기에 연주곡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배치된 게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8. [RSK] 이번 앨범에서는 가사가 없는 곡도 있지만 Gosan과 'Ryudejakeiru'와 같은 새로운 시도의 곡들도 있어요. 시규어로스가 떠오르기도 하고 제3국의 낯섦, 한편으론 좀 더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곡들이었어요. 특히 최웅희 감독의 Ryudejakeiru는 파멸된 세상에 마지막 남은 소년과 소녀의 모습같기도 했고요. PH-1004는 디스토피아 세상의 끝에 한줄기 남은 인간애, 다정함이 느껴지기도 했죠. 마치 에반게리온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같이 뭔가 엄청난 디스토피아 물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엔딩크레딧 같기도 하고요. 이 곡들이 앨범에서 작용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김건재: Gosan 같은 경우에는 제가 여기저기 일본 여행할 때 다카야마라는 지역을 갔었어요. 거기 나무가 무척이나 길게 뻗게 자라거든요. 그걸 보다 이렇게 쭉 음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그런 자연처럼 곡을 이렇게 쌓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반복되는 구간 없이요. 그래서 Gosan 같은 경우에는 멜로디 라인으로만 보면 abcd 하고 그냥 끝나거든요. 그렇게 길게 뻗어 자란 나무를 좀 만들어 보고 싶어서 그렇게 구조를 짜봤어요. 시규어로스 좋아해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노래를 잘 부르거나 만들진 못해요.(웃음) 아무튼 그런 나무의 풍경을 많이 담으려고 했고요, Ryudejakeiru 같은 경우에는 웅희 감독님이 설명해 주실 겁니다.
최웅희: 뮤직비디오 기준으로 설명을 해드릴게요. Ryudejakeiru의 뮤직비디오의 경우에는 저희 멤버 각자가 생각하는 스토리가 다 달랐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거기서 좀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야 하니까 멤버들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이미지를 계속해서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스토리가 눈에 딱 보이게 만들어야 하기도 하고. Ryudejakeiru 뮤직비디오는 저희 앨범의 엔딩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김한주: Machine Boy와 POWER ANDRE 99의 엔딩.
최웅희: 아까 에반게리온의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이게 어쩔 수 없이 저도 어릴 때부터 본 애니든 영화든 책이든 드라마든 이런 게 다 좀 반영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플루토나 에반게리온 그런 소재들이 되게 오밀조밀하게 모이게 됐어요. 즉 제 기억 속 파편들이 다 모여서 딱 완성된 긴 스토리의 엔딩 같은 그런 느낌으로 저는 Ryudejakeiru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뭔가 Ryudejakeiru가 앨범의 마지막은 아닌데 뭔가 이 앨범의 마지막 같은 기능을 하는 그런 스토리라고 생각하고 보시면 좀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9. [RSK] 그러면 이 POWER ANDRE 99 자체도 캐릭터인데 Ryudejakeiru의 뮤직비디오 속 캐릭터들이랑 겹쳐지는 건가요? POWER ANDRE 99 라는 캐릭터는 어떤 캐릭터고 Ryudejakeiru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한 한주 씨가 POWER ANDRE 99인지 아니면 다른 캐릭터가 있는 것인지 이런 캐릭터 연관성도 좀 궁금해요.
최웅희: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 뮤직비디오에 POWER ANDRE 99랑 PH-1004 그 둘이 나오고 그 둘 중 누가 연기한 게 POWER ANDRE 99인지 PH-1004 인지는 각자 직접 생각해 보시는 걸 권해드려요. 제가 말할 수도 있지만 정해지면 재미없거든요. 누가 누구인지 의심해주세요. 김한주가 김한주가 아닐 수도 있다!(웃음)
10. [RSK] 사랑을 해봤냐고 물었던 Kyo181, 소외된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NO PAIN, 세상엔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 많지만 Mercurial, 혼자 무섭지만 견뎌보려는 Realize, 이런 모습에서 실리카겔이 세상에 도움을 요청하는 느낌이 들어 사람들이 연대하길 바라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또 APEX에선 사랑이 있다고 말했죠. 지금까지 가사들을 봤을 때 실리카겔에게 사랑이란 어떤 의미, 그 정의가 궁금해졌어요.
김건재: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듣고 생각하는 대로 사랑이라고 느끼면 된다?
최웅희: 제가 팬분들을 생각하는 것?
김한주: 전 방금 언급해 주신 여러 곡들 가사에서 엿보이는 어떤 사랑과 어떤 절망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 그렇게 생각하는 게 Machine Boy라는 캐릭터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키워드 같아요. 언급해 주신 것들과 함께 보니 실리카겔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게 메카닉컬함과 휴머니즘이란 양가성이 있잖아요. 그런 게 결국 인간적이고 싶고, 깊어지고, 혹은 연대하고 싶지만은 그러지 못하는, 어떤 절망에 몰린, 하지만 노력해야 되는데 노력을 못하면 또 금세 나락에 빠지게 되든…. 계속 수축과 이완의 연속인 어떤 심리적인 갈등이 그냥 노래로 다 표현이 된 것처럼 느껴져요. 돌아보니까 그렇게 보여요.
사랑이라고 하면 이제 그런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갈등을 해결하려고 나아가는 어떤 방향성을 사랑이라고 명명하고 그것이 구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어떤 믿음의 일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게 이제 어떤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 희망을 품으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리카겔 음악 안에서 사랑이 뭔지 뽑자면 그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춘추: 그렇게 볼 수도 있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사랑이라는 것이 아까 건재 씨가 얘기했던 다양한 형태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기에 엄청나게 끔찍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도 하고, 굉장히 전형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절망적인 사랑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랑에는 그런 요소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이란 게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이잖아요. 모르겠어요. 이상적인 사랑이란 것도 있겠지만 저는 좀 끔찍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11. [RSK] 사랑이라는 게 자기 파괴적일 수도 있고 상대를 진짜 파괴하는 걸 수도 있고 사랑이라는 게 정말 여러 가지 형태의 모습이 있죠.
김춘추: 괜히 좀 약간 으깨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굳이 따지면 Realize 같은 곡도 어떻게 보면 러브송이라고 볼 수도 있는 반면에 좀 찝찝한 내용을 상징하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 해요. 그렇기에 저희 앨범은 어떤 면이든 그런 다양한 해석과 생각이 많이 혼재돼 있는 앨범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저희 앨범을 들으시는 분들이 얘네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게 뭘까, 혹은 땡땡땡이라는 건 뭐냐고 계속 재밌게 생각해 보시고 해석해 볼 수 있는 음반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곡을 고정하지 않고 프리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12. [RSK] 점점 곡들의 가사가 뚜렷해지고 있어요. 중얼중얼하는 슈게이징 음악은 군 제대 후 처음 나온 Kyo181부터 선명하게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2집의 경우 군대에서 작업한 곡들도 많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와 결심 같은 게 있었나요? 그 전과 지금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김건재: 단순하게 뭔가 지금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그전이나 지금이나 저희가 하고 싶은 얘기를 계속 가사화하는 건 맞아요. 그간 경험이 쌓이고 개선이 된 것도 있죠. 노래를 점점 잘 부르게 된 것도 큰 몫일 거라 생각하고요. 왜냐하면 도구를 잘 다룰수록 그만큼 더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더 많아지는 거니까요. 그전에 뭐가 더 없었고 지금에 뭐가 더 담겨 있었다 그렇게 대단하게 볼 순 없지만 저희는 항상 하고싶은 얘기를 했었고… 그냥 목소리에 관한 능력치들이 전보다는 좀 더 익숙해져서 그런 거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김춘추: 되게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건재 씨가 말한 부분도 저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스킬 풀해진 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사와 이야기에 대한 전달이 달라진 건 분명하거든요. 물론 가사에서 어떤 내용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에너지가 생겼기 때문에, 우리가 음악을 만들면서 어떤 식으로 이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표현 방법을 찾는데 좀 더 비교적 능숙해졌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저는 선택적으로 가사를 숨길 수도 있고 더 드러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실 점점 가사가 뚜렷해져서 뭔가 어떤 우리가 가사의 전달력이 좀 더 좋아졌다기보다는 좀 더 지혜롭게 소리를 쓸 수 있는 방법의 레벨이 커진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어떤 곡들에 시도하고 싶은 것들 많아지고, 가사의 다양한 이야기를 좀 더 담으려고 노력하고 그런 고민의 결과인 것 같아요. 그래서 노래를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 소리를 어떤 편곡적인 방법들을 통해 사용한다던가, 저희가 음악으로 전달하려는 어떤 의미나 느낌, 추상적인 것들을 전달하는 방법이 조금 더 지혜로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13. [RSK] 2023년 매우 많은 곡들을 쏟아내다시피 했어요. 아직 남아있는 곡들이 있을까요? 2집이 무언가를 깨닫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실리카겔은 어떤 과제를 가지고 풀어가야 할까요?
사운드 적으로도 이야기해 볼게요. 2집이 이펙터의 강렬함과 특유의 전자 사운드, 기타와 피아노, 드럼 솔로 등 ‘강렬함’이 강했다면 앞으로 실리카겔은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나요. 이번이 기계였다면 실리카겔의 새로운 실험은 어떤 곳에서부터 새롭게 시작될까요?
김한주: 저희끼리 얼마 전에 회의를 했어요. 2023년이 좀 많이 타이트한 한 해였다 보니까 2024년은 게을러지자 까진 아니지만 이제 모드를 좀 바꿔서 좀 자유롭고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보자고요. 좀 심플하다면 심플하지만 어떨 때는 또 컬러풀하게 뭔가 여러 가지를 다채롭게 하는 자유로운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런 얘기를 꺼낼 수 있었던 게 POWER ANDRE 99를 냈기 때문이고, 그 이전 ERA의 실리카겔을 졸업해서 저도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어쨌든 2024년은 자유로움과 다양함이 주 키워드지 않을까 싶습니다.
14. [RSK] 형들 방에 모여 살며 ‘우리도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하면 재밌겠다’고 말하던 김한주의 꿈이 점점 이뤄지고 있습니다. 2023년 클라켄클랍을 시작으로 2024년 프리마베라에 출연하죠. 대만 FireBall Fest와 일본 BiKN에서 공연 했고요. 국내에선 서브에서 헤드라이너까지 빠르게 자리를 치고 올라왔어요. 해외 페스티벌 출연 소감 및 프리마베라를 앞둔 소감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김춘추: 사실 굉장히 기대되기는 해요. 왜냐면 옛날 저희 완전 결산 초기 때 프리버드 이런 곳에서 계속 공연할 때 관객이 진짜 정말 적었거든요. 엄청 작은 클럽 공연장에서 공연하며 나름대로 좀 치열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보니까 지금은 너무 좋은 기회들이 생겨서 큰 페스티벌에 서는게 기대가 돼요. 말씀하신 것처럼 서브 헤드처럼 좋은 자리에 서게 되기도 했고, 하지만 가끔 좀 험블한 공연장에서의 공연도 종종 머릿속에 그리기도 해요.
그리고 아무래도 프리마베라는 정말 큰 공연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의 어떤 인지도만큼 저희가 해외에서 인지도가 있는 건 아직 분명히 아니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 대한 기대나 고민이 많아요. 그 와중에 실질적으로 공연이 슬슬 성사 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저희 입장에서 조금 약간 캐릭터를 새로 키우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느낌과 좀 비슷한 것 같고 뭔가 약간의 두근거림이 또 있기도 한 것 같아요.
15. [RSK] 스스로 귀 썩는 음악이라고 말하던 실리카겔은 한국을 대표하고 신을 주도하는 밴드로 거듭났어요. 여기저기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선 실리카겔의 성공 원인을 분석하고 있어요. NO PAIN에선 현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했고, 이번 POWER ANDRE 99를 통해선 많은 사람이 실리카겔이 더욱 성공해야 밴드 신이 살아날 것이라 기대하기도 하죠. 어쨌든 확실한 건 밴드 신과 별개로 실리카겔의 붐은 왔어요. 부담이나 두려움 같은 건 없나요?
김춘추: 그게 재밌어요. 무척 흥미로운 게 우리의 활동을 보고 누군가가 계산하는 거잖아요. 그분들의 어떤 생각이 저희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물론 당연히 그분들의 말이 저희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어떤 느낌으로 보고 있나 정도는 사실 궁금하긴 해요.
그래서 우리의 활동과 우리가 하는 것들이 어떻게 전달되고 있나라는 게 많이 궁금한 것 같아요. ‘붐이 왔다’ 이런 것들 수식어처럼 쓰이는 것 같아서 그게 엄청나게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 안 하려고 하거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희의 상태가 올라와 있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확실한 것 같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우리도 활동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중입니다.
신의 평가나 대중이 생각하는 ‘붐’이란 것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 하고, 하지만 우리가 다음 활동도 계속하고 우리의 활동에 그런 것들이 어떠한 영향을 주는구나 정도는 생각하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게 활동 영역의 영향이 될 수도 있고.(웃음) 어쨌든 사람들의 의견은 늘 궁금하긴 한 것 같아요.
16. [RSK] 김한주는 솔로를 준비 중이고, 클래식을 공부했고, 새소년을 프로듀싱한 적도 있고요, 어릴 땐 오페라를 쓰고 싶다고 했죠. 김춘추는 솔로 프로젝트 ‘놀이도감’ 작업 및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프로듀싱하거나 작곡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죠. 최웅희의 와와와(Wah Wah Wah), 뮤직비디오 감독, 영상감독으로서의 활동, 김건재의 시라카미우즈, APNEA 활동 등 각자의 활동도 활발한 편입니다. 실리카겔을 구성하기 이전 각자의 역할, 그리고 실리카겔 내에서 각자의 역할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요? 솔로일 때, 실리카겔일 때 모드가 스위치가 되나요?
김한주: 저는 일단 솔로 아티스트 김한주로서는 활동을 아직 활발하게 하지 못한 것 같아요. 아직 음반이나 음원을 내본 적은 없으니까요. 실리카겔 활동과 그 외라고 쳤을 때는 저는 스위치가 완전 확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의도적인 게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떠나서도 저는 여기 안에 이 실리카겔 커뮤니티 안에서 있을 때랑 밖에 있을 때랑 완전 캐릭터가 달라요. 여기 있으면 사람들이랑 같이 미쳐가는 느낌인데 밖에 있으면 전혀 안 그러거든요.
최웅희: 그럼 뭐가 맞는 걸까?
김한주: 그러니까 이 4명 중의 한 명이라도 섞여 있으면 실리카겔로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뭐랄까, 밴드로서 스위칭 된다기보다 그냥 인간 사회인으로서 실리카겔 안에 있을 때와 그 밖에 있을 때의 저에게 너무 다른 기분과 태도를 취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최웅희: 저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보는 사람이 다를 수 있겠다만 딱히 막 뭔가를 신경 쓰고 그렇게 하지 않아서요. 그럼에도 좀 다른 게 있다면, 예를 들어 여기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몇 퍼센트까지 할 수 있고 저기서는 몇 퍼센트까지 할 수 있고가 나눠져 있긴 한 것 같아요. 그게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점 같은데 그런데도 저는 와와와를 하는 것도 실리카겔을 하는 것도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김춘추: 저는 좀 다양한 일들을 해왔는데요, 저는 항상 다양한 것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어쨌든 제 음악을 만드는 것도 하고 싶고, 다른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있는 사람도 되고 싶고, 여러 가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해왔는데요. 최근 들어 이런 다양한 프로젝트에 무척이나 다른 성격의 어떠한 역할로 들어가는 경우가 좀 많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실리카겔 같은 경우는 뮤지션이자 감수자 그런 역할이라면, 어느 작업에서는 완벽히 엔지니어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작업에서는 완벽하게 프로듀서의 역할만 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정말 연주자만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모드들에 각각 대응해야 하는데 사실 저는 그게 너무 안 되는 사람이긴 하거든요. 그때마다 모드를 체인지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그래서 저는 이런 작업을 동시에 작업할 때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최근에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뭐냐고 생각해 봤어요. 엔지니어링만 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조금 더, 특히 2023년을 돌아보면 뭐랄까 약간 더 테크니션으로서 해야할 역할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곡을 쓰고 뮤지션으로서의 라이프 빈도가 좀 낮았다 보니까 이러한 작업 후에 다시 뮤지션으로 돌아오려면 이 모드를 체인지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집중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2024년부터는 조금 더 선택과 집중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김건재: 인간의 역할이라는 게 크고 작은 사회 속에서 옷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수영장에 패딩 입고 가도 상관없는 데 수영할 거면 수영복을 입잖아요. 현대사회에서 다양하게 페르소나라는 걸 가지는 게 그렇게 유별난 건가 싶기도 해요. 그러니까 딱히 이 역할 저 역할을, 규정을 하고 싶진 않아요. 저는 뭔가 뚜렷하게 자아를 만들어서 TPO로 맞추는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형태나 환경에 따라서 마찰이 적은 쪽으로 스스로를 사용하는 것 같아요.
즉 굳이 나는 수영장에 패딩을 입고 가겠다 그럴 수도 있는 거고, 그러지 않아도 될 때는 그냥 수영복을 입고 가면 되는 거구요. 저는 상황의 콘셉트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어요. 어떤 모드든 심각하지 않게. 어쨌든 저라는 건 변하지는 않으니까 그냥 그렇게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17. [RSK]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2024년 활동 계획. 기대하는 부분, 팬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나요?
김한주: 2024년은 실리카겔이 내부적으로든 대외적으로든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시도를 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구요.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기저에 깔고 열심히 살아야죠.(웃음) 그게 일단은 지금으로서 떠올라 있는 목표고 나머지는 팬분들에게 이야기한다거나 인사한다거나는 웅희에게…
최웅희: 저는 개인적으로 이상하고 재밌는 것들을 많이 장전을 해놨거든요. 그래서 다들 한번 맛 보시고 결론을 말씀해 주세요. 시정하겠습니다.(웃음) 이상한 거 많이 준비했으니까 한번 올해도 한번 맛봅시다.
김춘추: 2024년 완전 초다 보니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금 정해진 거 이외에는 확정할 수 없기는 하지만 2023년에 나왔던 여러 가지 재미있는 케이스들처럼 2024년에서 계속해서 고민하면서 재밌는 것들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김건재: 비슷합니다. 제가 계획한 대로만 되지는 않을 거고 순간순간 많은 선택들이 있을 텐데 잘 골라서 뒤돌아서 보면 재밌게 볼 수 있는 기록이 되도록 건강하게 살겠습니다.
김한주: 일단은 이제 저희 음악이나 활동에 관심 가져주시는 것에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많은 팬분들이 저희를 특별하게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 무엇보다 단순하게 이 음악이 좋고 활동이 마음에 들고 내 스타일이라서 라기보다는 본인들만의 어떤 소중한, 스스로 내부의 영역까지 실리카겔을 끌고와서 간직해주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그 간직된 마음에 실리카겔을 꽉꽉 채워주시고 저희는 썩지 않게 잘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실리카겔의 다양한 화보 이미지와 인터뷰 전문은 곧 발간될 롤링스톤 코리아 12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hotographs by Doo Yoon J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