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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킴과 전민주, ‘KHAN’을 기억하며

 “KHAN(칸)이 누구야?” 이 칼럼을 쓰기까지 KHAN이 누구인지 열 번쯤 설명해야 했다. 가장 타율 높은 소개는 이러했다. KHAN은 한국의 대표적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와 <언프리티 랩스타>와 <더 유닛>에 출연한 유나킴과 <K팝 스타> 두 시즌에 출연한 전민주가 2018년에 결성한 여성 R&B 듀오이다. 맞다. ‘그 유나킴’과 ‘그 전민주’이다. 99%의 아이돌 연습생이 데뷔하지 못하는 <오징어 게임> 유니버스 같은 K-pop 산업에서 실력만으로 계속 다음 기회를 얻었던 그들. 

 KHAN은 <I’m your girl?>이라는, K-pop 팬이라면 절대 잊기 어려운 제목의 노래 하나를 발표하고 해체했다. 두 사람은 2015년에 ‘디아크(THE ARK)’라는 여성 5인조 아이돌로 함께 데뷔해 역시 <빛>이라는 노래 한 곡만 발표하고 이미 해체한 적 있다. 현재 유나킴은 2021년 5월, 결혼 소식을 알리며 사실상 은퇴를 선언하고 유튜브 채널 ‘My EUNAVERSE’를 운영 중이다. 전민주는 인스타그램(@ur.soo)에 K-pop 커버 영상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KHAN을 소개를 마칠 수는 없다. 마치 영양성분표만으로 ‘불닭볶음면’의 맵기를 구글 번역기로 소통하는 필자의 일본인 친구 스즈키에게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KHAN은 2018년에 활동한 모든 K-pop 가수를 통틀어 가장 멋진 그룹 중 하나였다. 그것이 징기스’KHAN’과 쌍용자동차의 모델 ‘KHAN’이라는 쟁쟁한 라이벌 사이에서 3년 전 단 하나의 노래를 발표하고 해체한 KHAN이 검색 결과 첫 페이지에 뜨는 이유이다.

 

이상한 신인가수의 과하게 여유로운 라이브

KHAN의 무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건, 2018년 6월, 방탄소년단을 보러 간 한 음악방송 카메라 리허설에서였다. 카메라 리허설은 본 방송 직전에 하는 리허설이라,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가수들이 최대한 힘을 빼고 공연하는 것이 보통이다. ‘내 가수’ 외에 호응하는 분위기도 아니라서 필자는 방탄소년단이 나오기만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이상한 신인가수를 만났다. 리허설일 뿐인데 마치 콘서트처럼 전력으로 라이브 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신인이라기엔 과하게 여유로웠고, 기성 가수라고 하기엔 너무 절박해 보였다. 무대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동작으로 끝나는데, 어쩐지 함께 손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KHAN은 그날 모든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다. 제아무리 높은 데시벨의 환호도 이길 수 없는 정직하고 묵직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며 출연자 목록을 검색하고 마침내 그 이상한 신인가수가 신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I’m your girl?>은, 유나킴과 전민주의 유니크한 목소리가 3분 내내 교차하며 특유의 그루브를 만드는 감각적인 R&B 곡이다. 그들이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꿈꿔왔을 메이저 작곡가 ‘블랙아이드필승’이 만든, 두 사람의 재능을 원 없이 터트릴 수 있는 맞춤곡이다. SM엔터테인먼트 최초의 걸그룹 S.E.S.의 레전드 데뷔곡 <I’m your girl>(1997)에 물음표만 하나 더 붙은 노림수가 분명한 제목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 카드놀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I’m your girl?>에는 확고한 고유함이 있다.

유나킴은 뛰어난 보컬이지만, 아마도 생존을 위해 래퍼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 왔다. 하지만 ‘국힙’ 특유의 ‘눈물 젖은 밥’ 감성이나, 여성 래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인 ‘나쁜 남자에게 경고’ 장르와 거리가 멀어서 래퍼를 흉내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I’m your girl?>에서 그는 노래와 랩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특기를 정확하게 살린다.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것 같았던 유나킴의 음악이 하나의 형상으로 맺히며 놀라운 파워를 만든다. 주로 커버곡만 불러온 전민주는 이 노래에서 처음으로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한다. 전민주의 허스키하고 힘 있는 보이스가 뚫는 새로운 음역대는 그녀가 얼마나 독보적인 보컬인지를 절감하게 만든다.

 
 

KHAN을 기억하는 이유

KHAN은 <I’m your girl?> 활동 내내 모두 콘서트 같은 생라이브를 했다. 더 완벽한 라이브를 위해 메트로놈 기능을 하는 태엽 감는 소리와 라이드 심벌즈 소리를 MR에 추가했다고 한다. 이 노래로 유나킴과 전민주는 그동안 꿈꿔왔을 가장 이상적인 K-pop 아이돌 활동을 했다. 멋진 뮤직비디오, 데뷔 쇼케이스, 노출이 하나도 없는 단정하지만 감각적인 의상, 3주간의 음악 방송,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팬 사인회, V 라이브, 잘 관리된 유튜브 채널을 마침내 갖게 됐다. 아주 잠시 동안 이었지만.

아이돌이 가수이냐 아니냐에 대한 쉰내 나는 논쟁이 쉰내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K-pop 아이돌의 성패는 모든 가수가 그러하듯 결국 좋은 노래로 결정된다. ‘대형기획사’라고 불리는 회사들에 모두 확고한 음악 스타일을 가진 프로듀서 그룹이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기다림으로 완성된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대중에게 전해질 때까지 버티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방탄소년단도 음악 방송 1위를 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러나 KHAN은 <I’m your girl?> 단 한 곡만 남기고 10개월 만에 사실상 해체했다. 그 10개월 동안 KHAN이 고정으로 출연한 방송은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인 <보컬 플레이>뿐이었다.

<I’m your girl?>의 뮤직비디오는 현재(2022.03.02.) 550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곡이라는 것이 아프다(the fact that this was their first song, all while being their last hurts.)”이다. 필자 역시 같은 아픔을 느끼지만, KHAN의 다음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운 좋게 <I’m your girl?>보다 더 좋은 노래로 돌아온다고 해도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인생은 그렇다. 늘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하려고 한다. 3년 전 우연히 리허설 공연을 딱 한 번 본 누군가가 KHAN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무대가 두고두고 기억할만한 멋진 무대였다는 것을 말이다.

유나킴과 전민주의 내일을 축복하며.

 

 

 <사진 제공 – 마루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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