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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무너진 대의와 사라진 복수의 대상 -맷 리브스 감독의 영화 <더 배트맨> (2022)

 지금까지 배트맨 시리즈는 악당들로부터 고담시를 지켜내는 배트맨의 영웅담을 다루는 히어로 무비였다. 가장 가까운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 <배트맨 VS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2016) 및 영화 <저스티스 리그> (2017)에 이르기까지 배트맨은 저스티스 리그의 수장으로서 고담시를 악당들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영화 <더 배트맨>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영웅의 모습보다 세계 최고 탐정이라는 배트맨의 감춰진 면모를 부각시킨다. 지금까지 제작된 많은 작품들이 영웅으로서 배트맨의 이미지를 강조해왔기 때문에 탐정으로서 배트맨의 모습이 낯설지 모르지만, DC코믹스에서 오래전부터 배트맨은 탐정 캐릭터로 활약해온 바 있다. 맷 리브스 감독은 탐정으로서 배트맨의 면모에 주목함으로써 앞선 작품들과 다른 영화 <더 배트맨>만의 차별성을 만들어내었다. 탐정 느와르와 히어로 무비가 결합된 독특한 하나의 장르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 작품은 기존 히어로 무비가 보여주는 화려한 액션 장면 대신 연쇄살인범이 남긴 퍼즐을 풀어가며 범행 동기를 찾는 과정의 긴장감이 영화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덕분에 단서를 찾고 용의자들을 취조하는 내러티브의 느린 진행이 히어로 무비를 기대한 관객들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배트맨의 등장을 보여준다는 점만으로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가상의 도시인 고담은 시종일관 어둡고 비가 내린다. 어둠에 깊이 몸을 감추고 빗물에 젖어있는 고담시의 모습은 은폐된 비밀이 도시 전체에 감춰져 있음을 암시한다. 과연 고담시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연쇄 살인범 리들러가 남긴 퍼즐을 풀면서 고담시의 은폐된 비밀에 다가가던 배트맨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의 감춰진 비밀을 알게 된다. 그 진실이란 토마스 웨인이 결코 선하고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그도 나약한 한 명의 인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때로 사람들은 진실이란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치명적이고 절망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진실의 얼굴은 아름다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토마스 웨인이 청부살인과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의 유지를 이어서 고담을 지키려한 배트맨의 정체성을 불안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영화에서 연쇄살인범 리들러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배트맨에게 감춰진 고담시의 진실을 전하는 헤르메스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리들러가 무조건 악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가 자신이 고담의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려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며, 고담의 은폐된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을 응징하는 것과 배트맨이 다른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것 사이에 다를 바가 무엇인가. 영화는 이와 관계된 질문을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는다. 대신 영화 <더 배트맨>은 부르스 웨인이 배트맨으로서 느끼는 혼란에 주목한다.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 범죄와의 전쟁을 시작한 부르스 웨인은 리들러에 의해 자신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청부 살해를 지시했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모든 대의는 무너진다. 그럼에도 부르스 웨인이 배트맨으로서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토마스 웨인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프레드가 부르스 웨인에게 말해준 덕분이다. 이 영화에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은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알프레드가 토마스 웨인을 옹호할 때 사건의 아이러니는 봉합되고 배트맨은 자신의 무너진 대의를 지켜낸다. 덕분에 배트맨의 진짜 모험은 실패하고 만다. 


<사진 출처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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