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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자기 욕망의 주인 되기! - 크레이그 질레스피 감독의 「크루엘라」 (2021)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나로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나 질문들 앞에서 대답을 머뭇거리기 마련이다. 만약 당신이 같은 물음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영화 「크루엘라」를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달려가라고 추천하겠다. 패션에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 성공을 위해 누군가의 도구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기 욕망을 현실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세상에 도전하는 악녀 크루엘라로 살아갈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영화 「크루엘라」의 원작은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 (1961)이다. 원작에서 크루엘라는 백 마리의 달마시안을 납치해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고자 하는 악녀로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 「크루엘라」는 원작의 설정을 뒤집어 놓는다. 영화 속 크루엘라는 세상의 억압에도 자기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예술가적 인물로 표현되고 있다. 기성의 삶에 속박된 에스텔라가 바로네스 남작부인과의 대결을 통해 자유로운 크루엘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녀의 욕망을 점차 닮아가게 된다.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지닌 에스텔라는 런던 패션계 일인자 바로네스 남작부인의 눈에 띄어 자신이 원하던 패션 다자이너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녀는 자신의 엄마를 죽인 사람이 남작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에스텔라는 엄마의 복수를 다짐하며 패션계의 이단아 크루엘라로 변모해간다. 서서히 패션계의 일인자 바로네스 남작부인과 패션계의 이단아 크루엘라의 대결이 시작되고 두 사람의 대결은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그로 인해 크루엘라는 바로네스 남작부인의 음모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다.


영화 「크루엘라」 는 표면적으로 바로네스 남작부인을 향한 크루엘라의 복수극이지만 이 작품은 사실 한 소녀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이미 자신이 원하던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이룬 에스텔라는 엄마의 복수를 포기하고 안락한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현재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대신 크루엘라가 되기로 결심할 때 그녀는 기성의 삶과 단절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더 이상 누군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삶이 아닌 자기 의지를 지닌 삶의 주인이 되기로 한 크루엘라를 악녀라고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 


크루엘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기성의 삶을 거부하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불온한 여성 주체일 뿐이다. 그녀의 불온함이 불편하거나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부당함을 증언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크루엘라가 바로네스 남작부인의 손에 의해 절벽에서 떨어져 죽기로 결심할 때 기성의 삶과 결별하려는 그녀의 불온한 결심이 상징적으로 잘 나타난다. 바로네스 남작부인이 에스텔라의 생모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지만 크루엘라는 에스텔라로서의 삶을 미련 없이 포기한다. 


또한 이 작품에서 크루엘라가 선보이는 파격적인 패션은 단순히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려는 시각적 장치가 아니다. 그녀의 내면에 잠재된 자유로움과 자신감을 표현하는 시각적 언어이다. 이러한 시각적 장치와 크루엘라가 등장할 때 울려 퍼지는 강렬한 락사운드는 기성의 규범으로 규정할 수 없는 크루엘라의 존재감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영화 「크루엘라」에서 그녀가 파격적인 패션쇼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바로 너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삶의 다른 이름은 바로 자유뿐이다. 더 자유롭게 무한히 자유를 향해 나아가라. 이 땅의 모든 크루엘라들이여!


<사진 제공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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