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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기어코 죽음과 대면하기 <서복> 2021

 

  이용주 감독의 영화 「서복」이 개봉했다.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드물다는 점에서 이용주 감독의 영화 「서복」은 그 자체로 도전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 (2012)에서 순수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섬세한 편집을 통해 영상으로 담아낸 바 있는 이용주 감독의 연출 방식은 영화 「서복」에서 유감없이 발휘되며 인물들 사이의 오가는 감정의 선을 잘 포착해 설득력 있는 드라마를 구성하고 있다.  

  영화 「서복」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영원한 삶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문제 삼는다.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곧 알아차리겠지만 영화의 타이틀 ‘서복’은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찾아 떠난 전설 속 인물의 이름이다. 서복이 불로초를 찾으러 떠난 이후 돌아왔다는 기록은 문헌에 없으니 그는 아직도 바다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서복은 영원한 삶이라는 욕망을 향해 미지의 혼돈 속으로 자신을 내던진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이 영화가 각자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난 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암시한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잿빛 바다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서늘하고 황량해 보이는 바다의 모습은 생명의 기원적 공간성을 상징한다. 신화학적으로 바다는 생명의 탄생과 재생 그리고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바다나 강과 같은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물의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복이 머무는 실험실에도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바다 풍경이나 서복과 기헌이 자신들을 쫓는 추격자들을 피해 달아난 곳에도 바다가 펼쳐진 모래사장 앞이다. 

  물의 이미지는 한 개인의 무의식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고, 서복이라는 실험체가 동경하는 순수한 세계이기도 하며, 노아의 방주에 등장하는 홍수가 상징하는 재난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읽어낼 수 있다. 핵심은 영화에서 물의 이미지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상징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물의 이미지는 작품에 신화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서복이라는 존재가 기성의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존재임을 관객들에게 납득시킨다.  

  이 작품은 무한의 존재인 서복과 죽음을 눈앞에 둔 기헌이 우연하게 마주해 만들어가는 브로맨스이자 로드 무비(road movie)이다. 길이란 인생의 은유이자 삶의 방향을 의미하며 어둠 속에 가려진 진실이 환한 빛 속에서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파랑새를 찾아 떠났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파랑새를 발견하는 동화 속의 모험처럼 로드 무비의 완성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어긋나는 자리에서도 삶은 지속된다는 발견에 있다. 

  예컨대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의 소설 『암흑의 핵심』 에서 길이 아프리카의 거대한 숲의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진실(제국주의적 폭력)이 밝은 빛처럼 드러나는 과정을 은유하는 것처럼 영화 「서복」 또한 주인공 기헌과 실험체 서복이 함께 예정된 목적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뒤틀린 욕망이 드러난다. 서복을 둘러싼 집단들은 각각의 이유를 제시하며 서복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그 본질은 죽음을 물화(物化)하고 권력과 자본의 도구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을 꼽는다면, 서복의 골수를 매일 같이 채취하는 행위가 잔혹한 것이 아니냐는 기헌의 질문에 돼지로부터 인슐린을 채취하는 것과 같다는 연구실 관계자의 답변이 돌아왔을 때이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사람을 대할 때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서복을 둘러싸고 기헌과 다른 인물들이 대립하는 것은  서복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느냐, 아니면 자유의지를 지닌 개체로 보느냐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기헌에게 서복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라면 다시 말해 ‘동생’이 되었다면 그것은 그가 더 이상 서복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인간과 생명을 대하는 보편적인 윤리성을 내포한다면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지켜져야 하는 도덕법칙이 있다는 분명한 윤리적 감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근본적인 사건이다. 죽음은 우리의 일상적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하는 토대이다. 과거 죽음은 우리의 생활세계 내에 있었다. 이웃집의 문턱을 넘어 죽음은 머물다가 때가 되면 떠나고는 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죽음을 사회 내부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 전통적인 삶에서 죽음은 우리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이제 죽음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장소로 옮겨지고 은폐된다. 즉 현대인들에게 죽음은 대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부정되고 회피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들을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서복의 유전적 엄마인 연구원 임세은 박사가 등장한다. 그녀는 교통사고로 남편과 자식을 잃는다. 그러나 그녀는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실험체 서복을 만드는 실험에 참여한다. 즉 서복이란 존재는 임세은 박사에게 가족들의 죽음을 부정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서복의 창조를 통해 가족들의 죽음을 극복한 것일까? 오히려 서복은 그녀를 더 깊은 번뇌(煩惱)로 이끈 것은 아닌가. 

  이러한 맥락에서 임세은 박사는 죽음과의 대면을 부정하고 있다. 그녀는 자기 삶에서 죽음을 배제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 삶마저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 속에서 죽음을 배제하고 부정하는 방식을 통해 자기 삶의 주체성을 상실하거나 살아도 죽어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우리 모두 하나의 사실을 잊지 말자. 죽음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며 삶 그 자체가 언제나 죽음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진 제공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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