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피아노와 호른, 밴드와 솔로, 작곡가와 교사, 팝과 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색채를 한 몸에 입고 있는 사사미. 그는 자신의 음악이 마치 ADHD 같다고 말한다.
1. [RSK] 엄마의 나라, 한국은 얼마만의 방문인가요?
2022년 10월에도 한국에 왔었는데, 그때는 가족을 만나러 왔던 거였어요. 새로운 한국 친구들이랑 버섯 숲 여행도 갔었고요. 개인적으로 삼계탕을 정말 좋아하는데, 사실 지금 계절엔 잘 안 먹는 음식이잖아요? 더운 날에 먹는 거라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미국인이자 좋은 한국인이 되고 싶은 마음에 여름까지 기다릴까 싶은데… 그래도 항상 먹고 싶어요.
2. [RSK] 사사미는 본명인 사사미 애시워스(Sasami Ashworth)에서 성을 제외한 이름을 활동명으로 사용하고 있죠? 재일교포계 미국인 뮤지션임이 이름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사사미라는 이름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본명을 그대로 활동명으로도 쓰는 건 정말 고민되는 선택이에요. 이제는 제 일과 사생활, 공적인 삶이 이름 하나에 다 엮여버렸거든요.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선샤인 클럽’ 같은 이름을 쓸지도 몰라요. 그래도 괜찮은 것 같은 게, ‘사사미’라는 이름이 흔하지 않아서 검색 최적화(SEO)에도 좋거든요. 사실 그게 이름을 고른 이유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저는 저 자신이 자랑스러우니까요. 여러 의미가 섞인 이름이에요.
3. [RSK] 어머니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교포 한국인이라고 들었어요. 사사미에게 한국과 일본, 미국은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나이가 들수록 문화의 복잡한 면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전반적인 지정학적 맥락, 제국주의나 식민지 역사 같은 걸 알게 되면서 점점 더 선명해져요. 어릴 때 한국어나 일본어는 엄마한테 혼날 때나 듣던 언어였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언어들을 들으면 혼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두 언어와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그 차이를 명확하게 느끼게 됐어요. 매일매일 더 깊이 이해해 가는 과정 속에 있어요.
4. [RSK] 여러 문화가 복합적으로 융합된 삶을 산 만큼, 사사미의 유년 시절을 함께하며 영향을 끼친 음악도 궁금해져요.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엄마는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많이 틀어주셨어요. 그리고 우리 가족은 정말 자주 노래방에 갔죠. 엄마는 아줌마들이 부르는 옛날 한국 노래들을 자주 부르셨고, 미국인 아빠는 비틀스나 플리트우드 맥 같은 록 음악을 많이 들으셨어요. 음악적으로 되게 다양한 배경 속에서 자랐다고 생각해요.

5. [RSK] 90년 미국에서 태어나 이스트먼 음악학교 졸업 이후 광고음악 작곡가, 음악 교사, 호른 연주자, 그리고 록 밴드 체리 글레이저(Cherry Glazerr)의 신시사이저 연주자를 거쳐 현재는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 중입니다. 본격적으로 뮤지션이 되기 전엔 어떤 삶을 살아왔어요?
사실 저는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 때 LA로 이사해서 거의 LA에서 자랐어요. 어릴 땐 모범적인 한국인 딸처럼 살았죠. 네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고, 열 살부터 프렌치 호른을 불었어요. 그 후에는 음악 대학에 진학해서 음악 교사도 거쳤고, 밴드에서도 연주했어요. 저한테 음악은 말 그대로 ‘빵 먹기’나 ‘대화하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음악을 했고, 투어를 돌기 전에도 음악을 가르쳤으니까요. 그래서 제 인생에서 음악이 멈췄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어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죠. 오히려 어려운 건 이걸 ‘팔아야 한다’는 압박이나, 사람들 앞에 나서는 존재가 되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가끔 수줍은 사람이 되거든요. 하지만 음악을 만드는 건 마치 걷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정말 재밌게 느껴져요.
6. [RSK] 18년에 뮤지션이 되기로 결심한 후 음악 교사를 그만뒀다고요.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었음에도 싱어송라이터가 돼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가르치는 일에서 공연하는 일로 완전히 전환한 시점이 있었어요. 당시 저는 하루에 7개의 수업을 담당했는데, 그게 공연을 7번 하는 에너지랑 비슷하더라고요. 너무 지쳐서 퇴근하고 나면 아무것도 할 힘이 없었어요. 그래도 가르치는 일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죠. 아이들이 수업을 정말 좋아했고, 그걸 제 눈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만두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가르치는 일로는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운 좋게도 체리 글레이저(Cherry Glazerr)와 투어를 하게 됐고, 이후 제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어요.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요.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물론 모험이었지만, 동시에 굉장히 큰 기회이기도 했어요.
7. [RSK] 곡을 만들 땐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묻고 싶어요. 영감이 떠오르면 작업을 하는 스타일인지, 무언가 떠오르지 않아도 책상에 앉는 스타일인지, 가사가 먼저인지, 멜로디가 먼저인지… 음악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궁금해요.
좋은 질문이에요! 사실 둘 다인 것 같아요. 저는 아침형 인간이라서, 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고 나면 꼭 음악 작업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거든요. 일정하게 작업하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악상은 정말 번개처럼 갑자기 떠오르기도 해요. 운전 중일 때나, 등산 중일 때도요. 예를 들자면… <Love Makes You Do Crazy Things>라는 곡은 숲에서 혼자 하이킹하던 중 멜로디와 가사가 동시에 떠올랐어요. 이렇듯 노래는 그냥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 내가 꺼내는 느낌이에요. 저는 그냥 건설 노동자처럼, 다른 누군가가 설계한 건물을 짓는 느낌이고, 보통 멜로디가 먼저 나오는 편이죠. 제가 악기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멜로디는 자연스럽게 나와요. 가사는 좀 더 노력해야 해서, 아직도 연습 중이고요. 요즘엔 하나의 팝송을 4~6명의 작곡가가 함께 만들잖아요. 저는 대부분 혼자 작업했어요. 주변에서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일부러 혼자 하려고 했어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성장하고 싶었거든요. 물론 다른 사람들과 함께했으면 더 좋은 곡이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아니었어요.
8. [RSK] 음악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해왔던 만큼, 일상생활에서 음악을 제외한 시간은 어떤 것들로 채우는지도 궁금해져요.
저는 균류학, 그러니까 버섯이나 생물학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숲이나 버섯, 슬라임 화석(Mold)이 있는 자연 속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요. 집도 바닷가 근처에 있어서 바다 근처에 자주 가고요. 인간 세계는 너무 빠르게 변하잖아요. 그런데 바다나 버섯은 수백만 년 동안 거의 똑같아요. 제 증조할머니도 같은 바다를 봤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안정돼요.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하니까 가끔 정신없잖아요. 자연은 그런 와중에 중심을 잡아줘요.

9. [RSK] 버섯을 따기 좋은 장소도 궁금해지는데요?
오, 멘도시노 카운티(Mendocino County)도 좋지만… 저는 메인(Maine)을 제일 좋아해요. 뉴욕 북동쪽 해안에 있는 주인데, 산과 바다가 바로 붙어 있어요. 높은 침엽수와 이끼가 덮인 땅, 따뜻한 바닷물, 거기에 버섯과 나방까지 가득해요. 서사시의 한 장면 같죠. 바닥의 이끼는 카펫 같아서 신발을 벗고 걸을 수 있는데, 그러고 있으면 디즈니 영화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에요.
10. [RSK] 지난 19년 발표한 뮤직비디오 <Morning Comes>에는 사사미의 할머니가 등장해요. 김치를 담그는 모습과 함께 ‘배추’나 ‘무’, ‘마늘’ 같은 재료와 ‘조심하세요’, ‘고맙습니다’ 같은 한글로 삽입했고요. 어떻게 이 곡에 이런 뮤직비디오를 만들게 됐는지 궁금해요. 또, 뮤직비디오 제작 과정이나 이후에 생긴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이런 영상을 만들 기회가 주어진 게 너무 감사해서 ‘슬쩍’ 제 할머니를 찍는 데 쓴 거예요. 영상의 내용과 노래가 딱 맞아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냥 수천 달러짜리 뮤직비디오에 할머니가 김치 담그는 모습을 남기고 싶었어요. 그 순간 자체가 저한테는 힘이 되는 결정이었거든요. 그리고 김치 담그는 할머니보다 귀여운 게 또 있을까요? 저희 할머니는 은근히 끼도 있으세요. 주목받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그래서 “와, 진짜 스타다” 싶었어요. 그중엔 일부러 웃기게 만든 장면들도 있어요. “배추를 10년간 절이세요” 같은 식으로요. 할머니는 너무 즐거워하셨고, 화면 속에서 정말 아름다우셨어요.
11. [RSK] 22년 발매한 [Squeeze] 커버에는 일본의 요괴인 누레온나가 그려져 있고, 그 옆에는 한글로 '스퀴즈'라고 적혀있어요. 이를 통해서는 어떤 것을 전하고 싶었나요?
음악이나 민속 이야기는 다 오래된 인간의 이야기고 전통이잖아요. 저는 다문화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다양한 요소들을 섞고 싶었어요. [Squeeze]의 세계관은 역사적으로 정확한 건 아니고, 그냥 판타지예요. 누레온나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게 다리가 달려 있고, 뱀의 몸 대신 다른 걸 썼죠. 그냥 ‘스퀴즈 크리처’인 거예요. 앞면에는 한글, 뒷면에는 일본어가 있는데 그 글씨는 엄마가 직접 손으로 써주신 거예요.
12. [RSK] 마침 얼마 전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죠. 신보 [Blood On the Silver Screen]는 그보다 하루 앞선 7일에 발매됐습니다. 트랙을 하나씩 들어보면서 느낀 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고 있음에도 조화롭단 느낌이었어요. 이 앨범은 어떤 앨범인가요?
이 앨범으로 팝이 얼마나 다양한 옷을 입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기타 기반 음악도 팝이고, 전자 음악도 팝일 수 있고, 금관악기가 들어가도 팝이잖아요. 그래서 이 앨범은 팝이 입을 수 있는 다양한 ‘코스튬’을 실험해 본 거예요.

13. [RSK] 5번 트랙인 <In Love With A Memory>에선 싱어송라이터 클레어오(Clairo)와 함께했어요. 협업은 어떻게 이뤄졌어요?
우린 원래 친구였고 서로의 팬이었어요. 그냥 문자를 보냈고, 다행히도 그녀가 흔쾌히 OK해줬어요.
14. [RSK] 이번 발매한 신보의 13곡의 트랙 중, 창작자의 입장에서 유독 애정이 가는 곡이 따로 있다면요?
저는 앨범을 만들 때마다 마음이 가는 곡이 시기에 따라 계속 달라져요. 어떤 날은 이 곡에 빠지고, 또 어떤 날은 다른 곡에 몰입하고요. 요즘은 <Nothing But A Sad Face On>이라는 곡을 공연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왜냐하면 그 곡에 프렌치 호른이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그 곡이 제 히어로 같은 존재예요. 그런데 시기에 따라 계속 바뀌어요.
15. [RSK] 과거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선 늘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밴드와 함께 투어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어요. 이러한 행보도 사사미의 음악과 메시지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느껴져요.
첫 번째 앨범 투어 때는 전원이 여성인 밴드와 함께 투어했어요. 두 번째 앨범 투어 때는 메탈 밴드와 함께했기 때문에 여성 뮤지션 팀은 아니었고요. 앨범마다 밴드 구성도 달라지는데, 이번 앨범은 메탈과 팝이 섞여 있어서 메탈 드러머가 함께하고, 기타리스트는 채플 론(Chappell Roan) 밴드에서 연주했던 분으로 다양한 장르를 다 소화하는 분과 함께해요. 프로젝트가 계속 변하듯이, 밴드 구성도 계속 바뀌어요.
16. [RSK] 그간 여러 음악 전문지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스스로가 생각할 때 여러 매체의 호평을 이끈 건 어떤 이유에서라고 생각하나요?
정말 긍정적인 반응인 걸까요?(웃음) 그런데 저는 팝 음악의 좋은 점이 바로 그거라고 생각해요. 팝은 사람들을 밀어내는 음악이 아니라, 끌어들이는 음악이잖아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만들어진 음악이니까요. 그래서 그런 반응이 있을 땐 정말 기쁘고, 제 작업이 자랑스러워져요.

17. [RSK] 얼터너티브 록, 헤비메탈,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비롯한 다양한 사운드, 융합, 폭력, 분노, 고통, 솔직함... 사사미의 음악은 다양한 단어로 정의돼 왔죠. 자신의 음악을 단어로 표현해 본다면 어떤 낱말들로 표현할 건가요?
음… ADHD? 감정적 ADHD? 그런 느낌이에요. 어떤 사람은 고등학교 때 연애한 사람이랑 결혼해서 집 사고, 애 낳고 정착하잖아요. 반면 어떤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바리스타 하다가, 프랑스에서 제빵사도 되고, 한국에서 보석 만드는 법을 배우죠. 저는 두 번째 같은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제 음악도 늘 다른 것에서 영감을 받고, 계속 움직이며 새로운 데로 나아가요. 한 가지를 오래 붙잡고 집중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게 틀린 것도 아니고, 정답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마다 다를 뿐이죠.
18. [RSK]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은 건 뭐예요?
음…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요. 사실 전 사람들에게 ‘이렇게 들어야 해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제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요. 사람들이 그걸 즐겨줬으면 좋겠고, 그게 다예요. 정해진 메시지를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19. [RSK] 마지막으로 사사미의 꿈에 관해 듣고 싶어요.
저는 항상 가장 적은 예산으로 그 무엇보다 큰 세계를 만드는 걸 꿈꿔요. 그래서 미래에는… 제게 수백만 달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돈으로 정말 말도 안 되는 스케일의 스타디움 공연을 하고 싶어요. 그게 제가 꿈꾸는 미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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