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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이후의 청춘, <슬기로운 의사생활> (tvN, 2020~2021)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제 청춘의 꼬리표를 떼어낸 5명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순간 죽음과 싸우는 의사들의 드라마다. 그래서인지 <슬기로운 의사생활> 서사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가는 99즈의 삶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의료 현장의 치열함과 함께 친구, 연인, 가족으로서 이들이 감내해야만 하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은 수술실을 나간 이후에야 비로소 다가온다.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을 있었던 것도 수술복 뒤의 의사선생님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사람임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디컬 드라마의 거창한 윤리적 딜레마 없이도 생사의 경계에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전달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년의 TV드라마가 시청자에게 던지는 가장 진솔한 위안이 있다.
 

드라마의 중심 99즈는 병원의 후계자(유연석), 냉정한 외과의(정경호), 배려 깊은 모범생(전미도), 유머러스한 인싸(조정석), 은둔형 외톨이(김대명)으로 이루어진 5명의 의대 동기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이 의사로서 보여주는 전문성과 타인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메디컬 드라마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의사지만, 동시에 하찮은 일상을 찌질하면서도 진지하게 여기는 99즈의 어리숙한 모습은 드라마가 일상의 진정성 위에 놓여져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 어설픈 아이들의 성장기보다 성숙한 어른들의 처세술에 가깝다. 이들이 건네는 소박한 삶의 조언이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것도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신원호 PD 이우정 작가는 청춘을 불완전한 공간을 통해 구축해왔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아이들이 맴돌던 학교와 하숙집, 골목이 환기시키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더없이 아름다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은 우리가 청춘을 보내던 바로 기억이 자리 잡은 일상의 공간이 드라마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공간을 응시하는 것으로 신원호·이우정은 시리즈를 관통하는 청춘이라는 테마를 완성해냈고, 공간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을 통해 진정성 있는 위안을 건네왔다고 있다. 

문제는 사랑과 이별을 나누며 성장을 공유하던 아이들이 어른이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좁은 창고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던 20살의 기억이 곧바로 현실로 이어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성장의 공유 대신 자신들이 그토록 고수해오던 청춘 공동체의 경계를 공고히 한다. 때문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성장은 하는 것이 아닌 확인받는 것이 된다. 

학교(<인간수업>) 회사(<미생>)에서 점차 밖으로 밀려나는 수많은 청춘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현실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 건네는 위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건네는 따뜻한 위로는 그만큼 어둡고 차가운 현실이 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패와 이별에 상처입고 망가져도 끝내 괜찮다며 옆을 지키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오랜 시간동안 청춘의 곁을 지켜왔던 신원호와 이우정만이 건넬 있는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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