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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도로 위의 분노

넷플릭스 화제의 신작 <성난 사람들(Beef)>, 운전자들 간의 사소한 다툼이 전면전으로 번지는 이야기

2019년 봄에 이성진 감독은 꿈에 그리던 애니메이션 시리즈 <언던(Undone)>의 작가로서 완벽하게 멋진 하루를 마친 후 로스앤젤레스의 분주한 도로에서 운전을 하며 귀가하고 있었다. 신호 대기하며 Waze 네비게이션 앱을 살피던 그는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는 순간을 놓쳤다. 뒤에 있던 흰색 SUV 운전자가 경적을 울렸다. 이성진은 그 남자가 자기 차 옆에 차를 세우고 욕설을 퍼붓고는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우리 모두 욕설을 하는 쪽이든 받는 쪽이든 그와 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은 진정한 뒤 가던 길을 간다. 하지만 동료들이 사려 깊고 느긋하다고 평가받는 이 감독은 상황을 그냥 넘기지 못했다. “저는 ‘이것 봐라! 이건 아니지. 끝까지 쫓아가 주마'라고 속으로 말했어요.” 이성진의 얘기이다. 그는 계획에 없던 고속도로 추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 운전자가 추격자의 번호판을 확인하기 위해 차를 세웠을 때,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이 감독은 창문을 내리고 두 손가락으로 “지켜보고 있어"라는 제스처를 취한 후 차를 돌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현장을 벗어났다.

이 일은 후에 드라마와 다크 코미디 요소가 넘쳐나는 이성진 감독의 새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4월 6일 공개되었다)의 중심 장면이 되었다. 이 시리즈의 초반부에서 도급업자 대니(스티븐 연)은 우울한 기분으로 할인 매장 주차장을 후진으로 빠져나오다가 야심 찬 사업가인 에이미(앨리 웡)와 충돌할 뻔한다. 에이미는 경적을 울리고 대니는 기분이 상해 이 둘은 <분노의 질주(Fast & Furious)>에서나 볼 법한 운전 실력을 뽐내며 LA의 도로에서 서로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그때부터 대니와 에이미는 서로의 삶을 망가뜨리기로 결심하는데, 그들이 엉망진창으로 만든 상황을 덮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일련의 사소한 해프닝으로 시작된 일이 순식간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서적 및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성난 사람들>은 <워킹 데드> 이후 몇 년 동안 스티븐 연이 보여 온 놀라운 연기의 범위와 깊이를 잘 나타내는 최근의 사례이자, 앨리 웡의 대단한 드라마 연기가 확연히 드러난 쇼케이스이다. 제작 과정이 너무 격렬해서 두 주연 배우 모두 제작이 끝난 후 심한 두드러기 증상을 겪었다. 심지어 앨리 웡은 캐릭터의 강압적이고 부정적인 기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중에 헤어스타일을 바꾸기까지 했다. 하지만 <성난 사람들>은 두 스타와 이 감독을 밀접하게 결속시키는 역할도 해, 웡은 이제 서로 멀리 떨어지는 것은 “건딜 수 없는"일이라고까지 얘기한다.

심지어 제작자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 시리즈가 제작으로 이어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별명이 소니(Sonny)인 이성진 감독은 NBC 페이지 프로그램(Page Program) 졸업생으로 뉴욕 시내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무일푼이었기에 초반에 한동안 “Captain Oats(오렌지 카운티의 아이들에 나오는 Seth Cohen의 플라스틱 장난감 말)”라는 이름으로 텔레비전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했다. 이성진은 2010년대 초반까지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It’s Always Sunny in Philadelphia)> 및 <Two Broke Girls>와 같은 코미디를 집필했다. 그 일을 즐겼지만 항상 자신의 색다른 취향을 감춰야 한다고 느꼈다.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를 묻는다면 <캐디쉑>을 언급할 것이다. 동료 배우들이 좋아하는 코미디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은 세스 로건의 <The Night Before>를 좋아한다.) 드라마 풍의 애니메이션 작품이었던 <Tuca & Bertie>(앨리 웡도 수줍은 버드우먼인 버티 역으로 공동 출연했다)에서 선임이었던 리사 해너월트(Lisa Hanawalt)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제가 소니를 만났을 때 그는 삶에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추구하려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내면에 많은 것이 꿈틀거리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어요.”

이성진은 <성난 사람들>에서 비로소 꿈틀거리던 무언가 중 일부를 발산하고 있다. 그 노상 분노 사건 이후 몇 달 동안은 친구와 동료들에게 들려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A24의 임원인 라비 난단(Ravi Nandan)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주관적인 현실에 갇혀 있는 두 캐릭터에 관한 작품을 만들 수도 있겠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해 가을 이 감독의 미판매 FX 파일럿 작품인 <Singularity>를 위한 오디션 후에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 <Tuca & Bertie>에서 앨리 웡의 온화한 남자친구 역을 맡은 스티븐 연에게 그 아이디어를 얘기했을 때 작품의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길 위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에 끌리지 않나요?”라고 스티븐 연은 묻는다.

이성진은 대니의 캐릭터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스티븐 연과 얘기하기 시작했고, 점차적으로 스티븐 연의 삶을 대본에 반영했다. 스티븐 연과 대니 둘 다 어릴 때 한국에서 이민 왔다. 아울러 스티븐 연이 미시간 주에서 자라면서 그랬듯이 대니 또한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한국 교회에서 찬양대 일원으로 활동했다. 결국 스티븐 연은 그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최악의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해야 할지 씨름했다.(예를 들어, 대니가 교회로 돌아온 것은 진실된 신앙심 때문이 아니라 그의 그늘진 사촌인 아이작과 같이 하는 부업 때문이다. 방탕한 성격을 지닌 아이작은 아티스트인 데이비드 최가 연기했다.) 이성진이 구체화한 그의 일부는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다. 대니가 자신이 사람들과 잘 어울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고 얘기했듯이, 스티븐 연으 그가 간직해온 유치원 시절의 사진을 떠올렸다. “제 모습이 너무 슬프게 보여요. 저와 옆 사람 사이에서 약간 차이가 느껴져요. (사진보다) 일 년 전 한국에 있을 때의 사진을 보면, 너무 신나서 물구나무를 서있죠. 신나면서도 편안한 느낌으로요.”

두 사람은 처음에 대니의 숙적이 이성진에게 경적을 울린 살마과 같은 나이든 백인 남자로 가정하고 적임자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앨리 웡은 <Tuca & Bertie>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두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이성지는 팬데믹 초기에 그녀가 그에게 전화했을 때 앨리 웡이 상대방 운전자 역할을 맡으면 이야기가 훨씬 더 흥미 있고 짜임새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때 스탠리 투치(Stanley Tucci) 같은 유형으로 생각되었던 웡은 이제 중국계 아버지와 베트남계 어머니를 둔 야심 찬 여성이 되었으며, 스티븐 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난 사람들>에서 그녀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그레이스 윤은 웡의 집에서 영감을 얻어 에이미가 남편인 조지(조세프 리)와 함께 살고 있는 주택의 인테리어를 꾸미기까지 했다. 웡은 “세트장에 도착했을 때 마치 <웨인즈 월드(Wayne’s World)> 영화의 세트장을 재현해 놓은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익숙했지만, 약간 기묘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라고 말한다. 웡의 얘기에 따르면, 그레이스 윤은 에이미의 계단은 나무 발판을 공간을 두고 배치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차분하고 선(Zen) 스타일이지만 실제로는 새장에 갇힌 느낌을 주도록 하는 등 에이미의 차가운 내면 세계와 조지와의 역동적인 관계를 반영하기 위해 세트장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2022년에 저스틴 하쿠타(Justin Hakuta)와 이혼한 웡은 자신과 에이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느끼고 있지만, <성난 사람들>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예기하지 못했던 것까지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웡은 자신의 코미디에 고정 출연하는 하쿠타가 4년 만에 연기한 <성난 사람들>과 같이 까다로운 작품에 참여하지 말고 아마존의 SF 시리즈인 <페이퍼 걸스(Paper Girls)>에 출연하도록 독려하는 등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웡은 관객들이 에이미의 결혼 생활과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동일시할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제가 사람들의 생각을 신경 쓸 경우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예요. 항상 그랬듯이,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어느 정도의 솔직함을 표현하는 것이지 제 모습의 전부는 아니며, 또 그것이 일을 함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웡은 강조한다. 


 

<성난 사람들>이 대니와 에이미의 반목을 부추기는 구체적인 트라우마와 노이로제를 점진적으로 드러내지만, 순간의 쇼라는 느낌도 준다. 대척점에 있는 두 사람은 매우 다른 사회 계층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유하게 보이는 에이미의 라이프스타일이 실은 그녀의 회사를 인수하는 데 관심이 있는 변덕스러운 억만장자(마리아 벨로)의 기분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둘 다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노상 분노는 최근 들어 심해지고 있는 사회적 분노의 현상을 나타낸다. 

“저는 사람들이 팬데믹을 더 훌륭하게 극복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엉망진창이에요”라고 웡은 얘기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성진이 만들어 낸 이 어두운 세계의 안식처에 머물기 위한 각 주체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첫 에피소드에서는 결혼 생활에 크게 실망한 에이미가 조지의 반자동 권총으로 자위 행위를 하고 대니가 포문을 열고 화장실 바닥에 오줌을 싸는 장면이 나온다. 스티브 연은 모든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재미 있는 작품 중 하나를 하게 되었지만, “과연 내가 이런 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고 종종 걱정하고는 했다. 코미디 연기에 그렇게 낯설지 않았던 웡은 총기 장면보다는 치료 중에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장면과 같이 시리즈가 전개됨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순간들에 대해 더 걱정했다고 한다. 이성진조차 어느 날 작가실에서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눈물을 터뜨렸다. 이 경험은 에이미가 남편에게 말하는 장면에 반영되었다. 

시즌 피날레는 두 주연 배우가 화면 상에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에피소드로서 LA 교외의 챗스워스(Chatsworth)에 있는 광활한 자연에서 장기간에 걸쳐 마라톤 촬영을 했다. 웡은 연기를 맞출 목적으로 폭력적인 장면과 복잡한 심리적 장면을 촬영하는 중간에 수시로 스티븐 연을 옆으로 불러내어 개인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전체적으로 이 시리즈는 출연진이 쉽게 잊지 못할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 

“스티븐과 제가 두드러기까지 앓게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에요.” 웡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는 둘 다 분노와 독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분노가 아니라 스티븐과 소니와 맺게 된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리즈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저는 곧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으로 가 버섯을 먹었어요.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어느 순간 흐느끼며 스티븐이 연기한 캐릭터의 이름을 불렀죠. 저는 그것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그와 같은 경험은 이성진에게도 직업적으로 개인적으로 카타르시스로 작용했다. 그는 마침내 자기의 목소리에 충실한 작품을 썼다고 얘기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한 후로 노상 분노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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