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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넷플릭스 시대의 복수극 – 더 글로리(Netflix, 2023)

이것은 꿈에 관한 이야기다. “나의 꿈은 연진(임지연)이 너”라며 망설임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동은(송혜교)은 수많은 학폭 피해자들이 꿈꿔왔던 복수의 의인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동은이 꾸는 꿈이 선명해질수록 폭력의 강도 역시 더욱 짙어지고 쾌감과 죄책감 역시 중첩된다. 그런 점에서 <더 글로리>가 보여주는 폭력의 잔혹함은 넷플릭스 시대의 미덕에 가깝다. 공중파가 애써 외면해왔던 폭력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넷플릭스는 지금 여기의 삶이 윤리보다는 쾌감과 죄책감이 중첩되며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화 시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는 동은을 둘러싼 과거에 집중한 파트 1과 복수에 집중한 파트 2로 나뉘어져 공개되었다. 파트 1이 고등학생 시절 이유 없는 폭력에 시달리던 동은이 고립된 세계에서 어떻게 패배했는지를 보여준다면 파트 2는 복수를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가는 동은을 보여준다. 시즌제를 위해 나눈 것처럼 보이는 <더 글로리>의 구성은 복수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몰입력을 조절하기 위한 영리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고립된 세계에서 자신만의 세계로 나아가는 동은의 여정을 구조화시킨 것이기도 하다. 김은숙 드라마에는 언제나 자신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늘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기에 정서적인 결핍을 공유할 누군가를 만나야지만 비로소 자신만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보자면 <더 글로리> 역시 폭력의 연쇄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고립된 동은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꾸는 꿈에 가깝다. 다만 <더 글로리>에서는 그 방법이 사랑에서 폭력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다른 가해자들이 죽음과 파멸에 이르는 것과 달리 연진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말의 시퀀스는 중요하다. 이 장면은 연진이 속한 세계에 갇혀있던 동은은 역으로 자신의 세계에 연진을 가두면서 복수를 끝마쳤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핍되지 않은 세계에서 결핍된 세계로 추락이야말로 김은숙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복수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그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동은이 남겨진 세계가 감정과 욕망이 넘쳐흐르는 세계라는 사실은 더욱 선명해진다. 스스로 감정을 버렸다고 되새기던 복수 기계가 이제 살아갈 세상은 자신이 추구하며 구축한 세계와는 너무도 다른 세상일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더 글로리> 이후 현실에서 폭력에 대한 증언이 이어지는 한편 동은과 연진의 대사가 밈(meme)으로 소비되는 현상이 이어졌다. 폭력과 놀이의 공존은 윤리적 감각의 퇴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 여기의 현실이 하나의 경향만으로 해석될 수 없는 증거처럼 보인다. 어쩌면 비극이 사라진 시대에 복수극은 이율배반적인 공존을 통해야지만 그낭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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