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군대 이야기는 익숙한 콘텐츠다. 건강한 젊음(<신고합니다>), 대한민국 국적의 건강한 남성이 겪어야만 하는 통과의례여야 하기에 군대 이야기는 고루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친숙한 기억(<진짜 사나이>), 글로벌 히어로(<태양의 후예>)로 진화해온 군대이야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아왔다. 반면 군대라는 공간의 본질에 대한 관찰은 TV 밖에서 이루어졌다. 군대를 이유 없는 폭력(<노병가>), 인간군상의 바닥(<창>), 은폐된 죽음(<신과 함께>)의 공간으로 재해석한 작품이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현실은 불편하지만 결코 낯선 풍경은 아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잔혹함을 기어코 화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D.P.>가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의 미덕이다.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D.P.>는 탈영한 군인을 잡는 군인에 관한 이야기다. ‘개의 날’이라는 원작의 제목이 암시하듯 <D.P.>가 그리는 청춘의 세계는 어둡다. <D.P.>의 중심인물 준호(정해인)는 폭력과 함께 성장해온 청춘이다. 아버지와 고용주의 폭력으로부터 도피해온 준호가 다다른 곳이 군대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누구나 기억하고 있듯이 군대야말로 폭력의 순환으로만 굴러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준호가 호열(구교환)과 함께 추적한 탈영병들은 이 일상적인 폭력에 적응할 수 없는 평범한 청춘일 뿐이다.
하지만 군대에서 탈영한다는 것은 곧 돌아갈 곳이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하철의 종점에서, 자신의 집을 허무는 철거반에서, 북한군이 파놓은 땅굴의 끝에서 헤매는 탈영병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이었다. 편안하게 잠을 자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폭력없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군대를 거쳐간 수많은 청춘들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라며 되묻던 준호가 끝내 명령의 반대 방향으로 향한 것은 이 ‘평범’한 현실에 대한 가장 세심한 응답이다.
흥미롭게도 2014년 당시 대통령 연설과 윤일병 뉴스를 여과없이 그대로 송출하는 <D.P.>는 이 드라마가 ‘현실’임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현실의 사건을 직접적으로 환기시키는 <D.P.>를 보며 이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대답이 분노로 되돌아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상처에 대한 사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 한마디를 듣지 못한 채 잊혀져 간 수많은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것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아서”로 시작한 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에게 괴물일 수밖에 없었던 상처의 기억으로 남겨졌다. 폭력이라는 승자 없는 게임 위에서 우리는 그저 살아남은 공범이자 방관자다. 뭐라도 바꾸기 위해 절규하던 석봉(조현철)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여전히 드라마 밖 청춘들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들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D.P.>가 펼쳐놓은 군대이야기의 뒤로 여전히 누군가가 군대에서 죽거나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우리가 끝까지 이 목소리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여전히’ 죽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