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Review

완벽주의는 정답이 아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예술에 있어 완벽은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떤 뮤지션을 설명할 때 관성적으로 따라붙는 수식 중 하나가 ‘지독한 완벽주의’다. 잘못된 표현이라는 뜻이 아니다. 어차피 우리가 부리는 모든 언어에는 약간의 인플레이션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것이 비평가의 언어라면 더욱 그러하다. 비평가란, 과장하기를 참 좋아하는 족속이다. 

 

이에 대한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반박을 경청한다. “비평가란 최상급의 유혹을 견뎌내는 자다.” 즉, 최상급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 때 섬세한 비평은 탄생한다. 완벽주의라는 과장된 표현은 마치 거대한 이불 같다. 개별적으로 의미 있는 요소를 존재하지 않았던 양 뒤덮어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더 깊이 지혜의 두레박을 내려야 한다. 대상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예술에 완성은 없어요. 어느 순간 그냥 손을 떼는 거죠.” 백현진의 말 그대로다. 최선을 다하되 완벽주의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완전한 통제 속에 창조되는 예술이란 없다. 자신이 산파한 작품을 축복하고, 올바른 타이밍에 세상에 내보낼 줄 아는 감각이 되레 중요하다. 

더 나아가 음악가에게 요구되는 태도는 완벽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명확한 방향성’이야말로 뮤지션이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쇼펜하우어의 다음 가르침은 어쩌면 음악에서도 유효하다. “좋은 문체의 사실상 유일한 조건은 할 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5월 발매된 <Essence of Reverie>가 증명한다. 

 

 

언제나 그랬다. 돌이켜보면 백현이 천착해 온 음악적인 지향은 항상 알앤비라는 자장 안에서 운동했다. 이를테면 알앤비는 백현 음악 세계의 구심력이다. 그것을 더 세련되게 마감하든, 서정적으로 풀어나가든 그는 결코 알앤비의 울타리를 함부로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느낀 감정을 일정한 대역으로 통합해서 풀어낼 줄 안다. 타고난 스타일리스트여야만 비로소 해낼 수 있을 음악이다. 

 

그리고 재능. 우리는 재능이라는 것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할 줄 아는 것도 재능이다. 증거는 명확하다. 보도자료에 쓰여 있는 곡 소개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딱 하나 있다. 바로 알앤비다. 

 

“Just same as music/make eye contact with me Babe”

톤 조절이 무엇보다 절묘하다. 그는 보컬 호르몬을 마구 뿜어대면서 듣는 이를 압도하는 가수가 아니다. 차라리 서서히 스며드는 쪽에 가깝다. 첫 곡 ‘Chocolate’만 들어봐도 우리는 그의 음악적인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금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드라마틱한 서사는 없다. 강렬한 후렴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3분 내내 귀를 자연스럽게 잡아끈다. 과연 그렇다. 그의 보컬이 추구하는 바는 항시 ‘내추럴’이다. 

 

 

“And I’ll try other things for you/Bring some spice to the game” 

위의 노랫말 그대로다. 물 흐르는 듯한 구성이 핵심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좀 부족하다. 마치 스파이스와도 같은 변주는 필수다. 전체적인 방향은 유지하는 선에서 간간이 변화의 포인트를 찔러 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Chocolate’으로 현대적이고 매끈한 알앤비의 정석을 들려준 이후 백현은 ‘Elevator’를 통해 어쿠스틱한 초반부 질감과 트랩 비트로 전환을 시도한다. 

 

이어지는 ‘Lemonade’에서는 템포가 중간 정도로 바뀐다. 즉, 정리하자면 이렇다. 밀고 당기기가 기가 막힌 음반이라는 것이다. 슬며시 듣는 이를 당기다가도 잠시 쉬어갈 공간을 슬쩍 내어준다. 당연한 말이지만 트랙 배치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이 3곡만 감상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Love Comes Back’은 음반에서 두 번째 시작점으로 작용한다. 이번에는 베이스를 중점적으로 들어야 한다. 묵직하다. 총 7곡 중 베이스가 선사하는 울림만 따지면 이 곡이 제일이다. 반면 그 위를 유영하는 여러 다른 소리는 약간은 붕 떠 있는 듯 하늘하늘하게 흐른다. 이 대조가 곡의 매력을 한층 더한다.

 

 

하나 더 있다. 러닝 타임을 살펴봐야 한다. 2분 21초인 ‘Black Dreams’를 제외하면 모든 곡이 3분 내외에서 끝을 맺는다. 이 형식이 앨범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듣는 이도 모르는 새에 끌어 올린다.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때로 어떤 예술적 효과는 아티스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작용한다.

 

‘No Problem’의 경우, ‘Love Comes Back’과는 다르게 세밀하게 쪼개진 비트를 기반으로 전개된다. 어셔(Usher)나 니요(Ne-Yo)를 듣는 듯 클래식한 감성이 인상적인 곡이다. 음반은 몽환적인 신시사이저가 돋보이는 ‘Black Dreams’와 자장가를 연상케 하는 어쿠스틱 알앤비 ‘Late Night Calls’로 끝을 맺는다. 

 

아이돌 관련 리뷰를 보면 관습적으로 반복되는 찬사가 있다. 작사, 작곡에 직접 참여한 걸 유독 강조하는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소속사에서 작성하는 소개 글에는 그럴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돌이 작사, 작곡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면서 뮤지션, 아티스트로 진화한다는 성장 서사는 비평이 다루기엔 이제 너무 뻔한 수식이다. 그러니까,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싱어 송라이터가 가수보다 음악적으로 더 탁월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역사를 살펴봐도 작사/작곡자로부터 곡을 받아 노래한 ‘전설’은 셀 수 없이 많다. 

 

결론이다. 진정한 놀라움은 우리가 몰랐던 걸 알게 되었을 때 찾아오지 않는다. 잘 안다고 믿었던 것을 내가 잘 모르고 있었다는 깨달음 속에 찾아온다. 그렇다면 <Essence of Reverie>라는 앨범을 우리는 다음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백현의 <Essence of Reverie>는 익숙한 장르의 틀 안에서 움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어긋날 줄 아는 음반이다. 기실 <Essence of Reverie>만이 아닌, 알앤비에 바탕을 둔 백현의 경력 전체가 그러하다. 발 딛고 서 있는 자리는 언제나 변함 없으되, 그의 시야는 넓어지고 사정거리는 길어질 것이다. 

 

llustration by Two di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