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 해야지!' 힘찬 기합을 내뱉으며 문밖을 나선다. 빽빽한 아침 지옥철을 견디며, 꽉 막힌 도로를 헤치고 회사 앞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다. 사무실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전쟁터다. 어제 쌓아둔 이메일에 답을 보내고 오전 회의를 들어간다. 스쳐 간 점심시간을 지나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전화와 서류 작업을 마주한다. 바삐 달려온 하루를 마무리하며 숨을 돌리며 퇴근하고, 반복되는 내일을 다시 맞을 준비를 한다. 평범한 일상이라도 나의 고충을 알아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세 친구가 있기에 외롭지 않다. 세븐틴 부석순이다.
여유로운 주말의 시작은 NCT 도재정과 함께한다. 따뜻한 봄기운에 맞춰 꽃다발을 들고 등장한 세 청년은 감미로운 향수를 뿌려주며 편안한 휴식을 선사한다. 나른한 일상에 부드럽게 파고드는 향은 과하지 않게 아늑한 공간을 조밀하게 채우고 익숙한 시간을 색다르게 가꿔나간다. 도재정의 음악은 기분 좋은 하루를 함께하고 다시 바쁜 생활로 돌아가기 전까지 좋은 추억을 오래 간직해 주는 향수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보이그룹 유닛 중 좋은 성과를 거둔 두 팀이다. 세븐틴 부석순은 2월 6일 발표한 싱글 <SECOND WIND>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짧은 활동 기간을 마치고 4월 24일 세븐틴의 컴백과 함께 원 그룹으로 돌아갔는데도 <파이팅 해야지>는 현재 각종 스트리밍 차트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NCT 도재정의 성과도 좋다. 첫 미니 앨범 [PERFUME]의 초동 판매량 67만 장은 케이팝 유닛 초동 신기록이며 NCT 유닛 그룹 최초로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다.
부석순은 2013년부터 등장한 팀이다. 세븐틴이 데뷔하기도 전부터 '세븐틴TV'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팬과 멤버들 사이에서 공인된 조합이었다. 보컬 팀의 멤버 승관과 도겸, 퍼포먼스 팀의 리더 호시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골라 이름이 정해졌고, 이후 세븐틴이 데뷔하고 나서도 다수 라이브 방송과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쾌하고 쾌활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이들에게는 데뷔 초 <아낀다>와 <만세>, <예쁘다>와 <아주 Nice>부터 커리어 중반 <Left & Right>, <홈런>까지 세븐틴을 대표하는 유쾌하고 해맑은 음악의 정수가 담겨있다.
그들을 지지하며 함께 성장한 팬들만큼이나 아티스트도 성숙했다. <파이팅 해야지>의 힘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또래들의 거친 하루하루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직접 직장인으로 분해 힘차게 응원하고 쉼 없이 웃음을 준다. 카페인을 물처럼 마셔가며 지하철에 지친 몸을 싣는 이들의 24시간에 들어가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하지만 가끔은 이들도 지칠 때가 있다. 현실에 맞서기 두려워지는 순간이 온다. 세븐틴은 부석순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공허감을 어루만지며 새로운 영웅으로의 각성을 알렸다. 그 결과가 미니앨범 [FML]과 타이틀곡 <손오공>이다.
도재정의 등장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무한확장을 내걸고 등장한 NCT 프로젝트의 첫 고정 유닛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내건 SM 3.0 개혁안의 가장 큰 핵심 변화 중 하나가 NCT의 무한확장 종료 선언이었다. 탄탄한 실력으로 무장한 멤버들과 과감하고 실험적인 음악을 앞세워 견고한 팬덤을 형성한 이들이었으나 난해한 메시지, 어려운 운영 방식 등은 숙제였다.
도재정은 힌트가 될 수 있다. 소녀시대 태티서, 슈퍼주니어 KRY, 엑소 CBX 등 선배들처럼 큰 고민 없이 활동명에서 이름을 가져왔고, 계절에 어울리는 콘셉트를 지향했다.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메인보컬 도영, 깊고 따뜻한 음색을 가진 재현, 미성의 정우가 만들어 내는 앙상블은 감각적이고, SM의 빈틈없이 꽉찬 프로듀싱을 통해 만들어진 음악은 손쉬운 반복 청취를 부른다. 부피 큰 베이스 리프가 주도하며 변화무쌍한 가운데 밀도 높은 소리를 이어가는 <Perfume>과 런던 노이즈가 참여한 <Kiss>와 <Dive>, 감미로운 발라드곡 <안녕>까지 즐길 곡이 많다. NCT와 산하 유닛들의 앨범에서 찾아볼 수 있던 여유로운 팝과 알앤비, 이지 리스닝 곡의 강점을 짙은 향으로 응축한 결과가 도재정이다.
원소속 그룹의 인기에 힘입어 유닛이 흥행하는 경우는 적지 않았으나 팀에 견줄 만큼 지지를 얻고 더 나아가 대중에게까지 소구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개별 멤버 주목도를 높임과 동시에 본체 그룹과의 연결점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시선과 활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사진제공 - 플레디스(세븐틴 부석순), SM엔터테인먼트(NCT 도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