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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 언더그라운드 파리 클럽에서 세계 정상까지, 자신의 여정과 집착, 그리고 다음을 말하다

2026년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Stade de France) 공연 3회 전석 매진 발표. 라틴아메리카에서 아시아까지 이어진 월드 투어, <인도 썬번 페스티벌(Sunburn Festival)> 무대까지. 올봄에는 라스베이거스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57세의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는 여전히 비트를 주도하고 있으며, 속도를 늦출 생각이 없다.

 

2025년, 그는 매거진 <디제이 매그(DJ Mag)>가 선정한 ‘월드 넘버원 DJ’에 다섯 번째로 이름을 올리며 마틴 게릭스(Martin Garrix), 아민 반 뷰렌(Armin van Buuren) 같은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리고 지금, <더 모노리스 투어(The Monolith Tour)>를 시작하며 이 EDM 개척자는 다시 한번 파티의 공식을 새로 쓰고 있다.

 

“셋(set)은 반드시 집단적인 경험이어야 한다.”

 

그는 17세에 파리의 한 게이 클럽에서 레코드를 틀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게타에게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사회적 힘이다. <롤링스톤 프랑스>와의 이번 단독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여정과 문화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열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강렬함, 감정, 그리고 증폭된 미래에 대해서. 
 

 

1. [RSK] 최근 콜롬비아부터 아르헨티나까지 이어진 라틴아메리카 투어를 마쳤어요. 그곳과의 연결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라틴아메리카를 정말 사랑해요. 제가 처음으로 국제 무대에 섰던 곳 중 하나거든요. 그곳의 에너지는 달라요. 굉장히 강렬하고, 열정적이고, 가공되지 않았죠. 제 아내는 쿠바 사람이에요. 저도 스페인어를 하고, 늘 그 문화와 가깝다고 느껴왔어요. 매니지먼트에도 항상 말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매년 라틴아메리카는 일정에 꼭 넣어야 한다고요. 보고타든, 부에노스아이레스든, 멕시코시티든… 분위기가 정말 폭발적이에요. 사람들의 파티 방식이 다른 곳과는 완전히 달라요.

 

 

2. [RSK] 처음으로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라고 느꼈던 음악적 충격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몇 번 있었어요. 1980년대, 제가 십 대였을 때 불법 라디오 방송이 제 세계를 완전히 뒤흔들었어요. 클럽 DJ들이 라이브로 믹싱을 하고 있었죠. 트랙을 이어 붙이는 방식, 각 리믹스 뒤에 숨은 미스터리까지…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몇 시간이고 들을 수 있었죠. 그러다 어느 날, 로저 부아트 펑크(Roger Boîte Funk)에서 디 네스티(Dee Nasty)가 플레이하는 걸 봤어요. 진짜 힙합, 진짜 바이닐이었죠. 그 순간 머리가 완전히 깨졌어요. 이후에는 프랭키 너클스(Frankie Knuckles), 에릭 모릴로(Eric Morillo), 데이비드 모랄레스(David Morales) 같은 하우스 레전드들이 있었고요. 그때 확신했어요. DJ가 되고 싶다고요.

 

 

3. [RSK] 어릴 때 집에서는 어떤 음악을 들으며 자랐나요?
 

솔직히 말하면 많이 틀어놓지는 않았어요. 대신 펑크 음악에 집착했죠. 마빈 게이(Marvin Gaye),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같은 음악을 계속 반복해서 들었어요. 지금까지도 제 음악의 기반이에요. 그 소울, 그 따뜻함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어요.
 

 

4. [RSK] 1980년대에 믹싱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록이 지배적이었고 뉴웨이브가 폭발하던 시기였잖아요. 그 에너지가 초기 셋(set)에도 영향을 줬나요?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17살에 파리의 ‘르 브로드(Le Broad)’라는 게이 클럽에서 시작했어요. 펑크, 디스코, 블랙 뮤직에 빠져 있었죠. 하지만 그때 신(scene)을 지배하던 건 뉴웨이브였어요. 클럽 오너가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너는 잘하지만, 뉴웨이브를 틀지 않으면 이 일은 못 해.” 그 장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펑크와 디스코, 뉴웨이브를 섞는 법을 현장에서 배워야 했어요. 그 매시업 안에는 이미 전자음악의 씨앗이 있었죠. 드럼 머신, 신시사이저, 그리고 아주 펑키한 소울. 지금의 저를 정의하는 두 가지 축이에요. 최첨단 전자 프로덕션과 날것의 소울 감정이죠.

 

 

5. [RSK] EDM은 록처럼 스타디움을 채우고 있어요. 반항성과 지속성 측면에서도 같은 잠재력이 있다고 보나요?

 

물론이에요. 하우스는 유행으로 끝나는 장르가 아니에요. 거의 40년 가까이 이어져 왔죠. 지금은 댄스 음악이 록보다 더 큰 시장을 점유하고 있어요. 초창기 하우스와 테크노는 완전히 언더그라운드였고, 사회적 혁명이었어요. 특히 영국에서는 귀족부터 아이들까지 모두 같은 댄스플로어에 모이게 했죠. 저는 그 분위기에 계속 충실해 왔어요. 셋은 차이를 문 앞에 두고 들어오는, 집단적이고 거의 영적인 경험이어야 해요.

 

 

6. [RSK] 당신의 공연은 롤링스톤스나 퀸 콘서트처럼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져요. 록 프런트맨들에게서 영감받은 적도 있나요?

 

저는 록보다는 블랙 뮤직으로 자랐어요. 그래도 킹스 오브 레온(Kings of Leon)이나 콜드플레이(Coldplay) 같은 밴드들은 저에게 영향을 줬어요. 그들의 에너지와 날것의 감정이 정말 인상적이었거든요. 크리스 마틴(Chris Martin)을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이 나에게 정말 큰 영향을 줬어요.” 그랬더니 웃으면서 “응, 들었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7. [RSK] 끝없는 월드 투어 속에서도 계속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하는 일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도전을 갈망하고,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신을 의심하는 걸 좋아해요. 무대에 서는 건 마약 같아요. 이비자에서는 아침에 음악 작업을 하고, 그날 밤 바로 수천 명 앞에서 새 트랙을 테스트해요. 몇 시간 전에 떠올린 아이디어에 관객이 열광하는 걸 보는 것만큼 좋은 건 없어요.

 

 

8. [RSK] 이비자의 <F*** Me I’m Famous> 파티는 전설적이에요. 실험실 같은 공간이기도 한가요?

 

완전히요. 그곳에서 새로운 트랙을 테스트하고, 다른 DJ들과 언더그라운드 신을 살펴봐요. 지금 뜨고 있는 것, 곧 터질 것들을 포착해서 더 큰 대중과 연결될 수 있는 곡으로 만들죠.

 

 

9. [RSK] <F*** Me I’m Famous>는 이제 상징적인 브랜드가 됐어요. 해당 콘셉트는 어떻게 진화했나요?
 

처음에는 농담이었어요. 레뱅 두슈(Les Bains Douches)에서 벌어지던 VIP 문화와 제 삶을 비꼰, 일종의 자기 풍자였죠. 셀러브리티, 모델, 유명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사이의 유혹 게임을 지켜보는 게 정말 웃겼어요. 그러다 제가 실제로 유명해지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더라고요. 하지만 언제나 자기 아이러니였어요. 자신의 과대평가를 믿기 시작하는 순간, 끝이에요.

 


10. [RSK] 이비자 클럽 유니버스(UNVRS)의 새로운 레지던시 <갤락틱 서커스(Galactic Circus)>는 어떤 DNA를 가지고 있나요?
 

우리는 스크린과 3D 비주얼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던, 완전히 퇴폐적이기까지 했던 파티의 시대에서 왔어요. 댄서, 곡예사, 진짜 상호작용이 있었죠. <갤락틱 서커스>에서는 현대적인 클럽, 현대적인 음악 속에서 다시 인간을 중심에 놓고 싶어요.

 

 

11. [RSK] 현대판 링 마스터(ringmaster) 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맞아요. 제 역할은 파티를 지휘하고, 집단적인 에너지를 조율하는 거예요.

 

 

12. [RSK]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클럽 문화의 미래라고 보나요?

 

이미 그렇게 되고 있어요. 디제잉은 관객의 반응에 대응하고, 그 에너지를 다시 받아서 확장하는 작업이에요. 저는 저 자신을 스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두와 함께 파티를 즐기고 있을 뿐이에요. DJ는 밴드처럼 고정된 셋리스트에 묶여 있는 게 아니라, 현장의 공기를 읽고 즉흥적으로 움직여야 해요. 그 끊임없는 에너지 교환이 멋진 밤을 만드는 비결이에요.

 


13. [RSK] 바이닐, CD, 디지털 덱까지 모두 경험했잖아요. 지금도 아날로그가 작업에 영향을 미치나요?

 

조금은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거의 로맨틱한 개념에 가까워요.(웃음) 이비자에는 로즈(Rhodes) 피아노가 하나 있지만, 요즘 사운드 디자인이나 플러그인을 보면 디지털 사운드도 충분히 좋아요. 무거운 신시사이저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요. 대신 제가 좋아하는 건 어쿠스틱한 터치를 더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10월에 공개한 테디 스윔스(Teddy Swims)와의 곡 <Gone Gone Gone>에 사용한 브라스 섹션 같은 것들이요. 그런 요소들이 음악에 또 다른 소울을 불어넣어요.

 

 

14. [RSK] AI는 설레게 하나요, 아니면 두렵게 하나요?

 

저는 AI가 정말 흥미로워요. 실제로 관련 회사의 베타 테스트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두렵지는 않아요. 상상력을 대체할 수는 없으니까요. 음악가는 자신이 듣고, 배우고, 소화해 온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어요. AI도 비슷해요. 다만 수백만 개의 레퍼런스를 가지고 있을 뿐이죠. 기술을 민주화할 수는 있지만, 불꽃은 대체하지 못해요. 혁신과 소울은 언제나 인간의 영역이에요.

 

 

15. [RSK] 요즘 세대는 파티를 즐기는 방식이 다르다고 느끼나요?

 

네, 더 수동적인 것 같아요. 90년대 클럽은 음악, 패션, 아이디어가 태어나는 인큐베이터였어요. 지금은 인터넷이 그 역할을 가져갔죠. 하지만 그 과정이 덜 유기적이에요. 클럽이 예전만큼 창의적인 허브는 아니에요.
 

 

16. [RSK] 가장 인상 깊었던 예술적 만남은 누구였나요?

 

시아(Sia)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이자 송라이터 중 한 명이에요. 그녀의 창의력과 본능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대단해요.

 

 

17. [RSK] 클럽마다 스마트폰이 넘쳐나요. 감정을 해친다고 생각하나요?

 

어떤 사람들보다는 잘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사람들은 순간을 기록하고, 공유하고 싶어 하잖아요. 셋 초반에는 다들 촬영하다가, 어느 순간 내려놓아요. 제가 불편하게 느끼는 건 자유의 상실이에요. 예전에는 누가 볼지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미쳐도 됐죠. 지금은 카메라에 찍힐까 봐 다들 조심해요.(웃음)

 

 

18. [RSK] 아주 작은 공간에서, 그냥 재미로 셋을 할 수도 있나요?

 

물론이에요. 얼마 전 라 맹 존(La Main Jaune) 재개장 행사에서 밥 싱클라(Bob Sinclar)가 펑크를 트는 걸 봤는데, 정말 멋졌어요. 형식도 규칙도 없이,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트는 밤이야말로 순수한 즐거움이에요. 저도 밥처럼 예전에 8시간짜리 셋을 하면서 시작했거든요. 그런 음악적 토대가 있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어요.

 


19. [RSK] 수많은 상을 받았는데, 특히 의미 있는 상이 있나요?

 

솔직히 말하면 크게 연연하지 않아요. 시상식은 정치적인 요소가 많거든요.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진짜 보상은 티켓 판매, 스트리밍 수치,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과의 연결이에요.

 

 

20. [RSK] 최근 보니 타일러(Bonnie Tyler)의 곡을 리믹스한 〈Together〉를 발표했죠. 원곡을 모르는 젊은 클럽 애호가들까지 따라 부르고 있어요. 세대 간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그게 디제잉의 첫 번째 목표예요. 시대, 스타일, 세대를 잇는 다리를 놓는 것. 저는 처음부터 그 비전에 충실해 왔어요. 좋은 셋은 향수, 킬러 트랙, 그리고 새로운 곡의 균형을 맞춰요. 관객을 움직이게 하면서도 계속 놀라게 해야 해요.

 

 

21. [RSK] 가장 예상 밖의 히트곡은 무엇이었나요?

 

〈I’m Good〉요. 그냥 재미로 30분 만에 만든 곡이었어요. 2년 동안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 묵혀 있었고, 레이블도 원하지 않았죠. 그런데 라이브에서 틀었고, 누군가 틱톡에서 샘플링했어요. 그리고 괴물 같은 히트곡이 됐죠.

 

 

22. [RSK] 스튜디오에서 혼자 트랙 틀어놓고 춤춘 적도 있나요?
 

항상 그래요.(웃음) 아이디어가 걸리면 볼륨을 키우고 미친 듯이 춤을 춰요. 순간이 최고예요!

by Alma R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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