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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이영지 “내 메시지를 다양한 형태로 전달하고 싶어요”

래퍼, MC·예능인, 시대의 아이콘으로서 무한한 빛을 발하는 힙합 아티스트 이영지. 올여름 서머소닉에 출연했으며, 5월에 발매된 호시노 겐의 새 앨범 [Gen]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그에게 곡 작업 과정, 무대에 거는 열정, 호시노 겐과의 일화, 일본에 관한 생각 등을 묻자, 시종일관 꾸밈없는 말투로 응답해 주었다.

 

 

 

1. [RSJ] 영지 씨는 <고등래퍼3>에서 단숨에 주목받는 존재가 됐어요. 랩을 시작한 지 불과 반 년 만에 우승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처음에는 랩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꼈나요?

 

영지: 솔직히 말하면, 그땐 랩 자체보단 ‘친구들한테 주목받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고등래퍼>는 또래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나가면 친구들이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었죠. 그 당시엔 제 랩의 어떤 점이 좋은지도 몰랐어요.

 

 

2. [RSJ] 편안한 허스키 보이스, 빠른 플로우, 압도적인 성량. 영지 씨의 랩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본인 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지: 어릴 때부터 성량이 다른 사람들보다 3배쯤 컸어요.(웃음) 전달력 자체가 타고나게 강한 편인데, 그게 랩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말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어릴 때부터 계속 말하고 다녔거든요. 그래서인지 목소리가 쉰 편인데 그렇게 독특한 랩 톤이 생긴 것 같아요.

 

 

3. [RSJ] 데뷔 후에는 곡 작업에 관한 많은 고민이 있었고, 5년이 지난 24년 6월 첫 EP [16 Fantasy]를 발표했죠. 짙은 R&B 무드에 록과 팝에 대한 애정도 깊어져서 이제는 힙합 뮤지션이라는 틀로는 다 담기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지: 그렇게 세심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승하고 데뷔한 이후, 제 안에는 ‘정말 이 길을 가는 게 맞을까?’라는 불확실한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다 보니 ‘의외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단계예요. 힙합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제 메시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하고 싶어요. [16 Fantasy]에서도 그랬고, 앞으로도요. 그래도 ‘가장 자신 있는 건 뭐냐’라고 묻는다면 ‘랩’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4. [RSJ]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음악의 중심에 있다고 했는데, 곡 작업은 어떤 순서로 진행하나요?

 

영지: 아직은 직접 트랙을 만드는 스킬이 없어서 여러 프로듀서분께 트랙을 받아서 작업하고 있어요. 들은 순간 직관적으로 떠오른 것을 작품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르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도 [16 Fantasy] 때처럼 메모장에 적어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떠오른 것을 그대로 즉흥적으로 곡을 만들고 있어요. 작업이 잘 안되는 날이 더 많은데, 그럴 땐 소리 지르면서 울다가 작업실에서 잠들어버리곤 해요. 그러면 꿈속에서 곡을 만들 때가 있는데 깨어나서 그걸 실제로 구현해 보기도 해요. 그렇게 만든 곡이 오히려 더 좋은 반응을 얻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5. [RSJ] 잠에서 깬 뒤에도 그렇게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랍네요. 그렇게 해서 완성된 곡도 있나요?

 

영지: <쇼미더머니11>에서 선보인 <NOT SORRY (feat. pH-1)>요. 큰 주제는 정해져 있었지만, 세부적인 표현이 잘 안 풀렸거든요. 3일 정도 고민하면서 ‘나 진짜 재능이 없는 걸까….’ 하고 울면서 잠들었는데, 꿈속에서 ‘Okay 엄마, 나 힙합 관둘게’라는 가사가 떠올랐어요. 눈을 뜨고 바로 적었죠.

 

 

6. [RSJ] 영지 씨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곡에 투영하는 것 같아요. 그중 특히 리스너들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던 곡은 뭔가요?

 

영지: <Small girl (feat. D.O.)>요. 그전에도 제 마음을 곡에 담긴 했지만,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다듬어왔거든요. 그런데 <Small girl (feat. D.O.)>은 제 연애 경험, 그것도 우울하고 자존감이 가장 낮았던 순간의 감정을 ‘날것’ 그대로 표현한 곡이에요. 한 30~40분 만에 쭉 써 냈고요. 많은 분들이 곡을 좋아해 주셨을 때 놀랐고,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7. [RSJ] <Small girl (feat. D.O.)>은 각종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고,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에도 진입하는 히트를 기록했죠.

 

영지: 대중이라는 건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느꼈어요.(웃음) 하지만 덕분에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공감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도 되겠구나. 숨기지 않아도 괜찮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창작해요.

 

 

8. [RSJ] 음악성이나 스타일에 영향을 준 아티스트를 꼽는다면요?

 

영지: 너무 많아서 어렵네요. 강하게 영향을 받아서 복사본처럼 돼버릴까 봐, 동경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은 순수하게 즐기려고 해요. 음악적으로 영감보다는 오히려 삶의 방식이나 프로모션 방식에서 자극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빌리 아일리시나 시저 같은 팝 아티스트들의 성공 뒤편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책이나 인터뷰 기사 등을 자주 찾아봐요. 요즘은 케이팝 아이돌 분들의 프로모션 방식에도 많이 매료되고 있어요. 블랙핑크 제니  같은 경우 최근 코첼라 무대를 포함해 정말 멋진 순간이 많았거든요! 어떻게 하면 문화적으로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요.

 

 

9. [RSJ] 영지 씨는 부석순, 아이들 소연 씨, 아이브 유진 씨, 엑소 디오 씨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했잖아요.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선 어떤 자극을 받나요?

 

영지: 케이팝 아티스트 분들과 시상식이나 무대에서 마주칠 기회가 많다 보니 친근함을 느껴요. 학교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요. 음악성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서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함께 작업하면서 ‘왜 이분들이 대중에게 큰 반응을 얻는 존재일까’에 관한 힌트나, 커리어를 어떻게 지속해 나갈지에 대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아요.

 

 

10. [RSJ] 호시노 겐 씨의 앨범 [Gen] 수록곡 <2>에 참여한 것도 큰 화제였죠. 영지 씨는 전부터 호시노 씨의 팬임을 공개적으로 밝혀왔고, 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로도 언급했는데 그 바람이 이뤄졌네요.

 

영지: 이렇게 멋진 방식으로 협업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에요! 중학교 졸업 후에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마침 호시노 겐 의 <코이>가 유행해서 노래방에서 불렀더니 친구들이 엄청 좋아했어요. 지난해 1월 일본 공연에서도 일본 팬분들이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싶어서 무대에서 <코이> 퍼포먼스를 선보였어요. 팬분들 덕에 그 영상이 호시노 에게 전달됐다고 들었고, 그때부터 교류가 시작됐어요.

 

 

11. [RSJ] 콜라보 제안을 받았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호시노 겐 씨도 원래 영지 씨의 음악을 자주 들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었죠.

 

영지: 맞아요! 저는 그 사실을 호시노 겐 님의 인터뷰를 읽고 처음 알았어요.(웃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랐고요! 작년 12월 제 공연 시작 전에 일부러 찾아와 주셨고, 그때 처음 인사드렸는데 정말 따뜻하고 온화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호시노 겐 님의 콘서트 굿즈까지 가득 챙겨와 주셔서… ‘어떻게 이렇게 다정하실 수 있지?’ 하고 감동했어요. 그때 받은 연두색 티셔츠는 요즘도 자주 입어요!

 

 

12. [RSJ] <2>에서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오가는 랩에 도전했죠. 평소에도 일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애정도 느껴지는데요, 첫 일본어 랩은 어땠나요?

 

영지: 일본에 대한 애정을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웃음) 저는 정말 일본을 좋아해요! 중학교 졸업 직후 전 재산을 털어 8박 9일 일본 여행을 다녀왔어요. 지금도 스케줄 여유가 생기면 바로 도쿄로 가요. 음악은 물론, 일본 만화도 정말 좋아하거든요. 특히 사키사카 이오 선생님의 작품을 애독하고 있는데, 한국어판 출간을 기다릴 수가 없어서… 빨리 제 힘으로 원서를 읽고 싶어요. 콘서트에서도 통역 없이 관객분들과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역시 끝이 없네요.(웃음) 저는 예전부터 일본어 발음이 재밌다고 느껴서 일본어로 랩은 오랫동안 시도해보고 싶던 도전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가사를 쓰려니 너무 어려워서…. 이번에는 완전히 어플 파파고에 의지했어요.

 

 

13. [RSJ] 영지 씨가 한국어로 쓴 가사를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해서 일본어로 번역하며 가사를 완성한 건가요?

 

영지: 맞아요. 제가 쓴 가사를 일본에 거주 중인 타투이스트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어린아이가 처음 입에 올린 일본어 같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저는 일본 팬분들이 제가 일본어로 랩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느껴주실 거라고 믿었고, 끝까지 밀고 나갔어요. 호시노 겐 에게 가사를 드렸을 땐 살짝 당황하신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결국엔 좋아해 주셔서 ‘틀리지 않았구나’ 하고 안도했어요.(웃음) 참고로 원래 가제는 따로 있었는데, 제가 가사를 보내드린 후 호시노 님이 <2>라는 제목을 붙여주셨어요. 호시노 님이 쓰신 ‘두 사람이 함께하기에,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특별한 시너지가 생긴다’라는 파트가 인상 깊었는데, ‘그런 주제로 곡을 정리해 주신 거구나’ 하고 기뻤어요.

 

 

14. [RSJ] 영지 씨가 좋아하는 일본어는 무엇인가요?

 

영지: ‘빗쿠리시타!(놀랐다!)’요. 일본에서 옷을 사러 갔을 때, 제가 엄청 하이텐션으로 계속 말을 했더니 점원 분이 ‘빗쿠리시타!’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칭찬인 줄 알고, 계속 ‘빗쿠리시타!’를 연발했는데, 친구가 의미를 알려줘서 ‘아, 그런 말이었구나’ 하고 놀랐어요(웃음). 그때부터 제 최애 일본어가 되었죠. 그리고 사카구치 켄타로 씨와 식사를 했을 때 배운 ‘무즈카시이(어렵다)’라는 말도 좋아해요. 그때도 파파고를 사용해서 대화하느라 좀 힘들었는데, 사카구치 씨가 ‘무즈카시이’의 뜻을 직접 설명해주셔서 그 이후로 좋아하게 됐어요. 지금도 곤란할 때면 “무즈카시이네~(어렵네)”라고 말하곤 해요.(웃음)

 

 

15. [RSJ] 정말 귀여운 에피소드네요.(웃음) (인터뷰일 기준) 올해는 서머소닉(SUMMER SONIC)에 출연하죠. 작년에는 태풍으로 못 왔던 터라 더 기쁠 것 같아요.

 

영지: 정말 서고 싶었던 무대였기 때문에 너무 아쉬웠어요. 그만큼 올해 더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고 힘을 쏟고 있어요. 아주 큰 이벤트이고,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도 많이 출연하시니까 일본 분들께 ‘이게 바로 이영지다!’라는 인상을 남길 수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출연 경험이 있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정말 더우니까 조심해!’라고 해서, ‘핸디팬을 활용한 퍼포먼스도 괜찮을지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라인업에서 예전부터 좋아했던 챤미나 님의 이름을 보고 기뻤고, 꼭 무대도 보고 싶어요. 아, 맞다! (후지록에 출연하는) 크리피 넛츠 분들과의 협업도 계속 제 꿈이에요. ‘저, <Bling-Bang-Bang-Born>을 풀버전으로 부를 수 있어요!’라는 말, 꼭 두 분께 전해주세요!(웃음)

 

 

16. [RSJ] 영지 씨의 라이브에는 강력한 에너지가 있어요. 과거 한 공연 영상에서 ‘죽는다면 무대 위에서 죽고 싶다’라고 말한 적도 있죠. 무대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영지: ‘무대 위에서 죽고 싶다’라는 말은 비유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런 각오로 무대에 서고 있어요. 솔직히 작곡보다 공연이 더 좋고, 무대는 제 인생이에요. 어릴 때부터 퍼포먼스 하는 걸 가장 좋아했고요. 제게 가장 중요한 건 공연의 ‘흐름’이에요. 한 번 무대에 서면 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저와 같은 흐름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령 인이어가 안 들린다든지, 의상이 풀어진다든지 하는 돌발 상황이 생기더라도 절대 당황한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되고요. ‘무대 위에서 죽고 싶다’라는 말에는 벼락이 떨어지든 재난이 일어나든,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노래하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어요. 죽을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어요.

 

 

17. [RSJ] 영지 씨는 춤도 정말 잘 추잖아요. 평소에 얼마나 연습하나요?

 

영지: 아뇨, 아뇨! 인터뷰에서 얘기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에요!(웃음) 그래도 어렸을 땐 ‘내가 제일 잘 춘다’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어요.(웃음) 댄스부에도 들어갔고, 다른 학교에서 공연도 하고, 오디션도 보러 다녔어요. 지금은 ‘출 땐 추고, 즐기면 된다’라는 스탠스라 연습은 안 하고 있어요. 그래도 춤에 대한 동경은 여전히 커서 요즘도 자주 댄스 영상을 찾아보고 있어요.

 

 

18. [RSJ] 그럼 마지막으로, 앞으로 아티스트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알려주세요.

 

영지: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 메시지가 누군가에게 힘이나 위로가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고요. 그리고 아무리 본의가 아니더라도, 범죄와는 관련 없는 사람이고 싶어요. 신중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노래도, 랩도, 춤도 더 잘하고 싶고, 무엇보다 언어 능력을 더 키우고 싶어요. 지금은 일본어와 중국어를 더 잘하고 싶지만, 그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언어를 익히는 게 제 목표예요.

 

이영지의 다양한 화보 이미지와 인터뷰 전문은 추후 발간될 롤링스톤 코리아 15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Text - Keika Kishino

Interview - Keika Kishino

Translation - Kim Dejong

Editor - Toshiya Oguma

Photographs - Lee Young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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