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숨이 턱 막힐 듯 차갑고 시린 도시에 짓눌린 두 인물이 만나서 절망 위에 얇은 희망을 얹는 이야기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감정이 삭제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이들은 최소한의 움직임과 대화를 통해 과묵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그렇게 회색빛으로 나아가던 영화가 문득 환히 밝아지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핀란드 팝 듀오인 마우스테튀퇴트(Maustetytöt)가 등장하는 가라오케 장면이다. 이들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로브를 무심하게 걸친 채로 ‘슬픔 속에 태어나 실망의 옷을 입다’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른다.
음조는 밝았지만, 가사는 음울했고, 악기를 쥔 채 노래하는 마우스테튀퇴트의 표정은 시종일관 건조하고 시니컬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흔들렸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이들이 노래하던 장면이 오래도록 생각날 정도였다. 후유증에 대한 원인을 찾아보고자, 마우스테튀퇴트(Maustetytöt)와 직접 대화를 나눠보았다.
1. [RSK] 안녕하세요, 마우스테티퇴트(Maustetytöt)! 만나서 반가워요. 롤링스톤 코리아 구독자분들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마우스테티퇴트(Maustetytöt)는 핀란드 팝 듀오예요. 카이사(Kaisa)는 키보드와 드럼 머신을 연주하고 안나(Anna)는 기타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노래는 둘 다 하죠. 작사는 카이사가 하고, 작곡은 함께해요.
2. [RSK]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투어 때문에 바쁘실 것 같아요.
저희는 공연을 두 달 정도 쉬었는데요. 쉬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 [RSK] 마우스테티퇴트(Maustetytöt)는 핀란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자매 그룹이라고 들었어요. 두 분은 어떻게 음악을 만들게 되었나요?
글쎄요, 정말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에요. 저희는 항상 쌍둥이 같았고 모든 것을 함께 하기를 원했어요. 15년 전쯤에 저희의 첫 번째 밴드인 Kaneli(영어로는 시나몬)를 결성했을 때, 둘이 함께하리라는 것은 이미 자명한 사실이었죠.
저희는 작은 마을(인구수 2,000명 정도)에 살고 있어서 대도시만큼 취미생활을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음악 수업이 많이 있는, 정말 좋은 민속고등학교에 다니며 음악을 접했어요. 저희 아버지도 옛날 음악을 듣고 기타도 치셨고요.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이 두 가지예요.
4. [RSK] 지난해 개봉한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äki) 감독의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Fallen Leaves)>에 출연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어요. 영화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듣고 싶어요.
저희는 아키의 영화관이 있는 카르킬라(핀란드 도시)에서 열리는 학생 영화제의 심사위원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3집 작업하느라 바빴던 시기라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는데, 거기 가면 아키를 만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이었던 터라 곧바로 마음을 바꿨죠. 영화제에서 감독님을 만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님은 자신의 영화관에서 저희가 공연할 수 있도록 진행해 주셨어요. 아마도 그때가, 감독님이 영화에 저희 음악을 사용하기로 한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5. [RSK] 영화 출연이 확정된 후 두 사람의 반응은 어땠나요?
믿기 어려웠어요. 현실이 되기에는 너무도 좋은 꿈처럼 느껴졌어요.
6. [RSK] 가라오케 장면에 등장하신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그전까지는 영화 촬영에 가본 적이 없었어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직접 보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저희가 나온 장면은 헬싱키의 한 현지 바에서 하루 동안 촬영되었습니다. 다른 촬영 장면을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우리 차례가 되자 아키가 "평소 하던 대로 연주하면 돼요"라고 하더군요. 카메라의 시점과 위치를 달리하며 촬영하는 동안 저희는 그 노래를 4번 정도 연주했어요.
7. [RSK] 네 번 연주하셨던 노래는 바로 <Syntynyt Suruun Ja Puettu Pettymyksin> 였죠. 이 노래는 언제 만들어졌어요?
2020년 2집에 수록된, 꽤 오래된 곡이에요. 제가 작곡한 멜로디에 카이사가 가사를 넣어줬어요. 제게 있어서 이 노래는 우울증, 포기, 죽고 싶은 마음에 관한 이야기예요.
8. [RSK] '슬픔 속에 태어나 실망의 옷을 입는다'라는 제목을 보니 문득 궁금해졌어요. 두 분의 삶에 있어 최초의 ‘실망'은 언제였나요?
기억이 안 나네요. 어린 시절 초기라고 생각해요. 실망은 일상생활에서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되는, 그저 정상적인 감정과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9. [RSK] 노래에는 '너를 좋아하지만 나 자신을 견딜 수가 없어'라는 가사가 나와요. 이 부분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카이사가 작사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해요. 평소처럼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그 가사가 떠올랐대요.
10. [RSK]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äki) 감독과 나눈 대화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을까요?
저희는 아키와 함께 몇 번 저녁 식사를 함께했어요. 그는 뚜렷한 의견과 훌륭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캐릭터가 확실한 사람이에요. 그가 자신의 영화 <타티아나, 당신의 스카프를 조심하세요(Pidä huivista kiinni Tatiana)>에 나오는 두 갱단의 차이점에 관해 얘기하셨던 기억이 나요. 흥미로운 얘기였는데, 문화적인 것들을 영어로 설명하기는 너무 어렵네요.
11. [RSK] 무미건조한 톤, 솔직하면서도 간결한 표현. 마우스테티퇴트(Maustetytöt)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세계관에는 공통 키워드가 많아요. 마우스테티퇴트의 곡 “tein kai rotorivini väärin" 뮤직비디오도 아키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 혹은 우연이었는지 궁금해요.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우리를 아키와 비교하기 시작한 것은 핀란드 언론이었어요. 물론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의 영화를 봐왔기 때문에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어요.
건조하게 표현하는 이유는 저희가 비관적이기 때문이에요. 또한 공연을 시작하면 불안한 동시에 몰입하게 돼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어서요. 저희는 특출난 가수는 아니지만 최대한 잘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12. [RSK] 작업 과정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해요. 평소 두 분은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모든 곳에서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책, 영화, 노래처럼요. 평화로운 장소에서, 방해 요소가 많이 있지 않으면 영감 찾기가 더 쉬워요.
13. [RSK] 영감이 찾아오면, 어떻게 음악으로 연결하나요?
멜로디나 구절은 다른 일을 하다가 즉흥적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오랫동안 고민해서 나오기도 해요. 앉아서 글을 쓰거나 몇 시간 동안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면서 흥미로운 멜로디를 찾으려고 노력해요. 저희는 각자 창작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음악 제작 과정에서는 서로 이메일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토론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아요.
14. [RSK] 아까 책과 영화를 언급해 주셨는데요. 좋아하시는 작품이 있다면 독자분들께 소개해 주세요.
저희는 오래된 영화를 보거나 고전을 읽는 것을 좋아해요. 저(Anna)는 최고의 영화를 꼽는 일이 항상 어려운데요, 카이사의 경우에는 <졸업(The Graduate)>을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Christiane F.의 책인 <Zoo Station>이나 Deborah Spungen의 <Nancy>를 정말 좋아해요. 둘 다 내용이 어려워요.
15. [RSK] 가족을 음악적 동료로 둔다는 것은 분명 특별한 일이에요. 쉽게 경험할 수 없죠. 가족을 음악적 동료로 두는 것에는 어떤 장점 혹은 불편한 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상대방에 대해서라면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어요. 저희는 자매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비슷해졌어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가치관과 원칙이 겹치는 것 같아요. 불편한 점이라고 한다면, 쉽게 “어린아이의 기분(child mood)”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친구에게는 하지 않을 법한 행동들을 하게 되죠. 그래서 때때로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 후에는 토론으로 입장을 조율해요.
16. [RSK] ‘Ilosaarirock’ 페스티벌(핀란드 동부에서 매년 7월에 열리는 페스티벌), ‘Kesarauha’ 페스티벌(핀란드 Turku 지역에서 열리는 인디 록 페스티벌)을 비롯하여 지난 한 해에도 다양한 무대에 서셨어요. 무대와 관련하여 어떤 노하우나 태도를 얻으셨나요?
무대에서 악기의 기능과 접근성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 및 사운드 효과를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이게 너무 복잡해서 사용하기가 어렵다면 라이브 공연에서는 사실 쓸모가 없거든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복잡하거나 거창할 필요가 없어요. 심플한 게 최고예요.
17. [RSK] 이제 독일, 프랑스, 스웨덴에서 생방송 일정으로 유럽 투어를 시작하시죠. 오는 5월에는 프리마베라 페스티벌에 처음 출연하는데, 어떤 기대를 품고 있나요?
지난 5년 넘게 핀란드를 순회하며 국내 공연을 했었기에 이번 투어는 확실히 새롭게 느껴져요. 이런 기회를 통해 해외에서 연주하고, 다양한 장소들을 직접 보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특권이에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고, 우리 밴드를 모르시는 분들도 있기에 해외 투어는 더욱 흥미진진해요.
18. [RSK] 이런 반응을 많이 봤어요. '마우스테티퇴트(Maustetytöt)의 노래 어디에도 직접적인 위로의 가사는 없다. 오히려 삶을 비관적으로 노래하는데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어느 순간 스며들고 나면 계속 찾게 되는 음악'이라는. 여러분의 음악을 통해 치유된 분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주실 수 있나요?
누군가가 저희 음악을 좋아하거나, 위로나 감동을 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늘 기분이 좋아요. 어떤 감정도 일으키지 않는 음악은 정말 좋은 음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의 음악이 뭔가 제대로 된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Photographs by Maustetytö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