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디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두 번째 정규앨범 [항해]를 통해서. 최근 그는 자신의 음악과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며 지냈고, 마침내 자신을 온전하게 응축한 하나의 앨범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음악이라는 너른 바다 위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길을 닦아가고 있는 후디와 그의 새 앨범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후디를 닮은 앨범이 나온 건 우연이 아닌,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온 덕이었다.
1. [RSK] 이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에는 뭘 하고 있었어요?
(인터뷰일 기준) 내일 있을 라이브클립 촬영을 위해 의상을 피팅했어요. ’멋지게 잘 나와야 할 텐데‘ 하는 기대와 걱정도 하고 있었습니다.
2. [RSK]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는 건 뭐예요?
나의 내면 안정과 행복. 정신없이 살다 보면 놓치기 쉽더라고요.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중에서는 자연과 자연 속에 있는 동물들을 유심히 봅니다. 마음이 편안해져요.
3. [RSK] 정규 2집의 제목은 [항해]라고요. 정규 1집 [Departure]와 같은 맥락으로 느껴져요. 마치 막 데뷔한 신인의 앨범 제목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공백기 동안 어떤 결심의 순간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1집의 제목 [Departure]는 제가 기존에 있던 곳에서 떠나 어딘가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 의미였다면, 2집의 제목 [항해]는 제가 여기저기 열심히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부러 순서대로 지은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주제가 자연스레 시간순으로 연결이 됐어요. 아무래도 1집과 2집 앨범을 만들던 순간의 제 모습이 다 담겨있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지금은 자유롭게 항해 중이라는 내용만 놓고 보면 정말 신인의 앨범을 소개하는 것 같긴 하네요. 음악보다는 제 인생관이 투영된 제목들이라, 제 안의 중심을 잃고 방황하던 시절을 떠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드러난 제목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공백기 동안 어떤 큰 결심을 하진 않았지만, 여러 곡을 담은 좋은 앨범을 내야겠다는 책임감 같은 건 있었어요. 제가 발매가 잦은 뮤지션이 아니다 보니 제 음악을 기다리시는 많은 분께 죄송하기도 하고, 저도 사실 제 새 앨범이 궁금했거든요. 적당한 때를 노려보다가 드디어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습니다.
4. [RSK] 최근 일상에서 새로운 시작을 경험한 순간도 있었나요?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살던 저 자신에게 클라이밍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줬어요. 친구가 클라이밍 너무 재밌다고 저를 한 번 데려갔는데, 해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비록 이틀 동안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리긴 했지만, 그 이후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가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5. [RSK] [항해]는 후디에게 어떤 앨범이에요?
내가 정말 잘 드러난 앨범. 가수 후디로서, 그리고 인간 김현정으로서의 가치관, 성격, 취향이 여기저기 많이 묻어있는 것 같아요. 제가 워낙 크게 튀는 성향이 아니어서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스타일인데, 이 앨범도 그런 것 같아요.
6. [RSK] 타이틀곡 <Lonely>는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궁금해요.
<Lonely>는 작업할 당시엔 타이틀곡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작년부터 최근까지 아프로팝 음악을 즐겨들었고, 아프로팝 스타일을 녹여낸 제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마침 저에겐 든든한 조력자 차차말론이 있잖아요. 올해 봄쯤에 작업을 의뢰했고, 이후 작업물을 주고받으며 노래를 완성해 나갔는데 이게 점점 완성될수록 너무 좋아지는 거예요. 가사도 현재의 저를 가장 잘 대변하는 내용이어서 타이틀곡으로 정해버렸습니다.
7. [RSK] 타이틀을 제외하고 이번 앨범에서 가장 애정을 품고 있는 트랙을 꼽는다면요?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모든 트랙을 아끼지만 그래도 하나만 고르라면 앨범과 같은 제목의 <항해>를 꼽겠습니다. 동네방네 다 들려주고 싶은, 멋지고 재밌는 곡이에요.
8. [RSK] 이번 앨범을 꾸릴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어디였어요?
어떤 트랙을 골라도 모두 싱글로 발매돼도 괜찮을 만큼 좋은 곡들로만 앨범을 꾸렸어요. 이게 바로 타이틀곡을 정하기 어려웠던 이유입니다. 물론 다른 아티스트들도 앨범을 만들 때 당연히 좋은 곡들로만 채우려고 하죠. 근데 저는 이번 앨범을 꾸리면서 정말로 한 곡 한 곡이 너무 소중해서 어떤 걸 앞으로 내세워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이었어요. 모든 트랙이 다 똑같이 소중한 내 자식들 같아요.
9. [RSK] 피에이치원(pH-1), 진보(JINBO), 지소울(GSoul)과 작업하면서 서로 호흡이 잘 맞는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세 아티스트 모두 제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경험이 있고, 그 결과물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던 분들이에요. 모두가 알다시피 실력도 정말 뛰어나고요. 함께 작업하면 곡이 훨씬 반짝반짝 빛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어요. 피드백이 오갈 필요도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작업이었어요.
10. [RSK]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맞았어요. 입단 당시에는 AOMG 홍일점이었는데, 이제는 동성 동료도 많이 생겼고요. 이외에도 음악을 직업으로 삼으며 후디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음악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정말 여성 뮤지션이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동성 동료들이 많아서 정말로 기뻐요. 저도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음악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사실 제 인생이 아예 바뀌었죠. 저는 음악을 직업으로 삼길 잘했다고 늘 생각합니다. 인생이 다채로워요. 물론 좋은 쪽으로만 다채로울 순 없지만 어쨌든 음악을 선택하고 10년이 지난 지금의 제 모습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11. [RSK] 대학교 3학년 때 음악을 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처음 믹스테이프를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그 시기가 전환점이 된 셈인데, 만일 이 시기에 여러 가지 일들로 휴학이나 음악 작업을 하지 못했다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음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으니 그쪽 업계로 취업해서 살고 있었겠죠? 아마 졸업하고 식품회사에 취직해서 일했을 거예요. 사실 제 전공 공부도 재밌었거든요. 제 오랜 친구들은 대부분 자기 전공을 살려서 직장에 소속되어 일하는데, 가끔 만나 얘기해 보면 우리의 삶이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느껴요. 신기하고 재밌기도 하고요.
그리고 결혼해서 아기 낳고 평온하게 살고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계속 음악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자꾸 이것저것 시도해 보려고 했을 수도 있어요. 제가 휴학하고 음악을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게, 지금 이걸 시도해 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였거든요. 시간이 지나버리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라고 확신했어요.
12. [RSK] 나의 성격 중 어떤 부분이 음악 작업을 할 때 도움이 된다고 여겨요?
섬세한 성격. 작은 부분 하나하나 잘 놓치지 않는 성격이에요. 그렇다고 지독하게 작은 것들에 집착하진 않고 꽤 쿨한 편입니다. 아마 많은 음악가 분들이 섬세한 면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13. [RSK] 음악의 어떤 면을 특히 사랑하나요?
사람의 감정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점이 제가 음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아요. 더 나아가 사람의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큰 힘도 가졌다고 생각해요.
14. [RSK] 두 번째 정규앨범 발매를 잘 마무리한 다음엔 어떤 스텝을 계획하고 있어요?
오랜만에 단독 콘서트를 준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고요. 이전에 시도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곡을 선보이고 싶기도 합니다. 물론 이번 발매를 마치고 충분한 휴식으로 재충전한 뒤에! 너무 오래 쉬진 않을게요.
15. [RSK] 과거 한 인터뷰에서 ‘뚜렷한 색깔이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얘기한 적 있어요. 데뷔 10주년을 맞은 지금, 뮤지션으로서 후디의 목표는 뭐예요?
점점 더 깊이 있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가수로, 더 아름답고 감동적인 멜로디를 쓰는 작곡가로, 마음속에 기억될 멋진 가사를 쓰는 작사가로 계속 성장하고 싶은 게 제 목표예요.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그에 맞게 제 음악도 더욱 알차게 무르익기를 바랍니다.
16. [RSK] 그럼 인간 김현정의 꿈은요?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게 제 꿈이에요. 그거 말곤 바라는 게 없어요!
Photographs by AO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