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감정이 하나둘 모여들기 마련이다. 키스누(Kisnue)는 그렇게 발견한 마음을 헤아리는 음악을 한다. 감정과 기억을 재료 삼아 노래를 만드는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9월 8일 공개된 EP [REINCARNATION]도 그의 탐구의 소산이다.
키스누(Kisnue)는 ‘낙차가 큰 경험을 하며 느낀 것들을 노래했다’고 밝혔다. 감정의 폭이 크다는 건, 내면의 결이 섬세하고 연하다는 뜻이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떨리는 시기는 나이가 들며 서서히 끝난다. 경험치가 쌓인 인간은 웬만한 외부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 의연함을 갖추게 되기 때문. 단단한 마음은 쉽게 요동치지 않는다. 다른 말로는, 기쁠 때 크게 기뻐하고, 마음이 아플 때 크게 훌쩍인다는 건 청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REINCARNATION]을 들으며, 금빛 태양 아래서 수평선을 향해 끝없이 흘러가는 바다를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키스누(Kisnue)의 감정의 조각들로 쓴 이야기가 곧 청춘이 지닌 에너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 앞에서 우리는 여름빛으로 반짝이는 눈부신 시절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1. [RSK] 키스누(Kisnue) 님 안녕하세요! 롤링스톤 코리아와는 두 번째 만남이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개인적으로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
2. [RSK] 가을이 찾아오는 게 매일 느껴지는데요. 이 계절을 좋아하시는지요.
가을을 제일 좋아해요! 하루하루 선선해지는 공기가 정말 좋아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더위가 기다리면 끝이 나긴 하는구나’하는 기분이에요.
3. [RSK] 새로운 EP [REINCARNATION]가 공개되었어요.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는 어떤 감정이 많이 드셨나요?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씀드렸었죠. 커다란 행복감부터 절망까지, 자기부정부터 재시작을 위한 용기까지 하늘부터 땅 같이 낙차가 큰 경험을 했어요. 이런 감정들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노래한 앨범이에요.
4. [RSK] 앨범 제목인 ‘Reincarnation’은 환생, 윤회 등의 뜻으로 쓰이는데요. 이런 이름을 붙이신 이유가 궁금해요.
이미 늦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라는 사람의 부족함이나, 생각, 성격부터 시작해 잘못된 걸 고치기엔 너무 늦은 시기 아니냐는 절망감에 빠져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기를 지나오며 원래 알던 제 가치 등을 다시금 깨달았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앨범 주제로 담고 싶었어요.
5. [RSK] 이번 앨범에서는 5곡을 아우르는 17분 분량의 단편 영화 같은 영상이 공개되었는데요. 이렇게 기획하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전체적인 앨범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사운드트랙처럼 들렸으면 좋겠다는 의도로 곡을 만들고 배치했거든요. 그래서 전곡에 영상이 수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원했던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감도를 영상 감독님이 알맞게 캐치해 주셔서 곡들과 어울리는 분위기의 앨범 비주얼라이저가 만들어졌어요.
6. [RSK] 선공개 곡이었던 <Days of Dreaming>은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콜라보 뮤비로도 화제였죠. 영화와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기분이 어떠셨나요?
위에 언급한 내용처럼 사운드트랙을 생각한 곡들이었는데요. 평소 정말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작업하신 영화 홍보에 제 음악이 쓰일 수 있어서 정말 설렜어요. 영화 개봉 전에 시놉시스를 읽었는데, 예쁘게 어울릴 수 있는 그림이 많겠구나 싶어서 신나 했었답니다!
7. [RSK] <Days of Dreaming>에서는 설렘도 담겨 있지만, ‘서툰 과거’도 모티브로 쓰셨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처음에는 서툴고, 헤매며, 진심이기 마련이죠. 키스누님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면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저는 과거의 저에게 ‘충분히 잘했다’라는 말을 많이 해주는 편이에요. 분명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때는 그게 나의 최선이었고 그건 누구든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타인을 볼 때도 과거보다는 현실을 보며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여느 누구와 다를 것 없이 저도 애썼고, 아팠고,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을테니까요. 솔직히 이 앨범을 만드는 동안은 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못하는 시기가 길었어요. 자책하고 모자람을 꾸짖곤 했죠. 아무리 자신이 과거에는 부족했다 할지라도, (스스로를) 토닥여 주지 않는다면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8. [RSK] 전곡 작사 작곡에 참여하셨어요. 앨범 수록곡 중 솔직히 이건 잘 썼다고 생각하는 가사가 있다면 한 구절만 살짝 알려주세요.
사실 저는 그동안 한두 곡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부 제가 작사·작곡을 해 왔거든요. 이번 앨범은 멜로디와 작사에서 처음으로 협업하는 친구들의 역할이 컸던 작업이라 의미가 특별해요.
작사는 항상 특별히 어려운 기분이라 잘 썼다는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트랙 <Reincarnate>에서 ‘또 너를 안고서 멀리 날아가던 꿈을 꾸고 있어 울음을 참고’라는 가사가 괜시리 마음에 남아요. 전체 앨범의 마지막 가사이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더라도 후회나 슬픔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앨범에서 ’환생‘이라는 단어는 사실은 ’인정‘, ‘극복’, ‘체념’ 같은 감정이 전부 내포되어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 구절을 들을 때마다 그런 마음이 다시 떠오르는 기분이에요.
9. [RSK] 이번 앨범을 들은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직 많이 들려 드리지는 않았지만,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뿌듯했어요! 각자가 꼽는 최애인 곡도 사람마다 달랐어요. 다양한 느낌을 담고 싶었던 제 의도가 딱 들어맞는 듯 해서 기뻤어요.
10. [RSK] 키스누의 음악은 우리가 겪는 청춘을 담아내는 것 같아요. 제가 이해한 게 맞을까요?
맞는 것 같아요. 제가 겪고 살아내고 있는 시기가 청춘이라서요. 얼른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평화나 안온한 삶을 노래하고 싶은데요. 아직은 하루하루 오르락내리락하는 시간을 살고 있네요.
11. [RSK] 키스누 님에게 청춘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듣고 싶어요.
키스누가 발표한 앨범들은 항상 제 정서 및 인생의 시기와 맞물려 있어요. 초창기에는 설레고 밝은 모습이 많았다면, 지금은 힘들고 어두운 그림자도 꽤 많아졌어요. 한결같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키스누 노래 중에서는 마냥 밝거나 마냥 어둡기만 한 곡은 없다는 점이에요. 어두워도 희망을 찾거나, 밝아도 그 안에서 시니컬한 부정을 찾을 수 있거든요. 청춘이 그런 것 아닐까요. 행복하지만 불안하고, 우울하지만 가끔 웃을 수 있어서 버티는 그런.
12. [RSK] 지난번 롤링스톤 코리아와의 만남에서는 ‘The 1975’ 밴드를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요즘도 이 밴드 음악을 많이 들으시나요?
The 1975의 신보를 많이 듣다가, 요즘은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애니메이션 OST나 일본 음악을 좀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13. [RSK] 키스누 님의 근래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떤 곡들이 담겼는지도 궁금합니다.
Eve - Inochi no Tabekata
The Beths - Expert in a Dying Field
Six Lounge - kitakaze
Remi Wolf - Liz
SPITZ - Robinson
Tatsuya Kitani - Ao no Sumika
Boygenius - Not Strong Enough
앨범을 만들던 때부터 최근까지 많이 들은 곡들이에요. 애니메이션을 즐겨보시는 분들은 제가 뭘 봤는지 바로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흐흐.
14. [RSK]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음악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에게 필요한 음악은 위로인 것 같아요. 시기에 따라 따뜻함의 형태가 다르게 제공되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위안의 종류도 다르기 마련이에요.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나도 너와 같아.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계속해 보자’는 모양을 하고 있어요. 수고했다거나, 다 지나갈 거야 같은 말은 지금의 제가 꺼내기엔 조금 시기상조 같거든요.
15. [RSK] 마지막으로, ’키스누다운 음악’은 어떤 것인지 여쭤보며 인터뷰 마무리 지어볼게요.
’키스누다운 음악‘은 ’송은석‘, 저라는 사람 그 자체 같아요. 다른 친구들과 같이 밴드로 활동할 때도 그건 항상 핵심이었고, 멤버들이 그 색깔을 존중해 주고 키워줘서 더 새로운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의 원맨밴드인 저는 그때보다도 더욱 ’송은석‘ 그 자체의 음악을 하는 것 같아요. 자정 작용이 되지 않을지도, 가끔은 제멋에 취해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음악을 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게 목표이자 재미에요. 이번 앨범은 최근의 취향 및 일관성있는 음악성이 만나서 발현된 새로운 모습이이에요. 변화 요소와 고정 요소가 합쳐져서 ’키스누다운 음악‘을 만드는 것 같아요.
16. [RSK] 오늘 긴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하신 소감과 끝인사를 부탁드리며, 다음에 또 뵐게요. 감사합니다!
항상 적재적소에 맞게 깊이 있는 질문을 해주시는 게 신기해요! 이건 좀 더 얘기하고 싶은데 하며 답하면, 구체적인 질문들이 뒤이어 나오는 구조였어요. 너무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롤링스톤 코리아, 그리고 제 음악을 듣고 이 인터뷰를 읽으시는 모든 분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사진 제공 - SEL>